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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4.17 어리석은 질문
  2. 2016.03.30 100쪽
2016. 4. 17. 20:13 내 생각

어리석은 질문


운전면허를 갓 따고 운전에 재미를 붙여나가고 있던 20살이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아버지로부터 운전을 하나씩 배웠기에, 말 그대도 실용적인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운전 면허 시험장 코스는, 떨어져가며 한 코스씩 한 코스씩 익혀 나갔다. 몇 번의 낙방 결과 운전면허를 손에 쥐게 되었으니 그 재미와 기쁨은 크디 컸다.


택시를 탈 일이 있었다.


운전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시기였던 만큼 매일 운전을 하시는 택시기사님은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하다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택시 기사님께, 20살의 천진난만함을 담아 물었다. 기사님께서는 이렇게 재미난 운전을 매일 하시니 참 좋으시겠어요. 기사님께서 나를 슬쩍 보시고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뭐든 처음에는 재밌는데, 그게 먹고 살 일이 되면 재밌지 않아요.


그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재미가 없어지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다들 힘들게 운전면허를 딴 만큼 이렇게 운전을 하는 것 자체가 재미가 없을리 없다는 일종의 근거 없는 확신도 들었다.


그러고 시간이 꽤 지나,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할 때 였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점심과 저녁 시간을 포함해 약 10시간을 운전을 해야하는 업무가 이어졌다. 졸음을 이기기 위해 아메리카노와 담배를 물고 살았던 당시였다. 서울의 구석구석과 경기도라는 것만 알고 있던 평택 등을 직접 왕복하며 이틀에 기름 한 통을 비우며 운전을 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운전이 재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해야했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내 생활비와 조금씩 모으는 저축을 위해 필요했다. 다른 재미난 일을 하는 것을 찾을 시간도, 여유도 없었고 밤만 되면 피곤해서 쓰러지기 일쑤였다. 운전은 재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고, 생계라는 항목 속에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다.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20살의 내가 택시기사님께 했던 질문은, 살면서 경험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지를 모르는 내가 던진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쉽게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때로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론 매우 쉬워보이기도 한다. 힘들어 보이는 일들도 많은 것은 당연하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에 사람들은,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길 원한다. 간접경험도 경험일 수 있지만, 실제로 겪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많은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 뿐이다.


경험을 직접적으로 하든, 간접적으로 하든 그 경험을 통해서 얻어야 할 것은 경험 뿐이면 안되지만, 결국 경험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험을 통해 타인의 경험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려해야 한다. 타인의 경험을 읽거나 들으며 나의 경험이 될 수도 있었을, 혹은 운 좋게 피할 수 있었던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20살 때, 운전에 재미를 느꼈던 나는, 택시 기사님의 삶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하지 못했다. 이후 운전을 하지 않다가 운전이 삶의 큰 부분으로 들어왔을 때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내가 바보 같고 어리석은 탓일 수 있겠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내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단지 경험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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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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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30. 12:28 내 생각

"100쪽"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고전이라는 이름 말고 또 다르게 불리기도 한다. '누구나 제목은 들어보았지만,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드문 책'. 맞는 말인 듯 하면서도 또 누군가 지속적으로 사서 읽으니까 출판되는 것일테니 반쯤 맞는 말이라고 해두어도 될 것 같다.


나 역시도 제목을 들어본 고전을 사서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세 번 이상 어떤 책의 제목을 듣게 되면 그 책은 꼭 읽는 편인데,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세 번은 훌쩍 넘게 들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고전들을 죽 읽다보니, 한 가지 법칙이 자연스레 생겼다. 그것은 바로 '100쪽 까지만 읽자' 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100쪽 까지만 읽고 읽기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고전은 시간적으로 오래된 책들이기도 하고, 또 다양한 국가에서 적힌 책들인 만큼 시대나 배경을 이해하기 힘든 측면들이 많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정말 어려운 책들을 만나도 우선 '100쪽' 까지만 읽자고 마음 먹는다.


보통 책이 300쪽 전후라고 한다면 100쪽은 3분의 1은 읽은 셈이다. 500쪽의 책이라 할지라도 100쪽은 5분의 1.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다.


왜 꼭 100쪽 까지 일까?


100쪽을 지나서야 고전들은 이제 진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100쪽이 되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어떤 배경인지, 어떤 인물들이 나오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이러한 설명이 100쪽 정도가 되면 거의 마치게 되고, 내가 그때까지 책을 다시 책장에 꽂지 않는다면 이제 재미가 생긴다. 또 100쪽까지 읽었는데 억울해서라도 더 읽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고전에서(고전 소설이라 한정지어도 되겠다) 이 법칙은 지켜졌다. 100쪽을 넘게 읽은 책들은 그 결말까지 읽었고, 또 한 권의 책이 나의 책이 될 수 있었다.


책이 이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20년이 된 책도 있고, 50년 된 책도 있다. 이런 책과 같은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역시도 고전과 같이 100쪽의 법칙이 적용되는 듯 하다.


처음 만났는데, 뿅! 하고 마음이 가거나 '이 사람과는 무조건 친해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친구는,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이라고 영화 '친구'에서는 설명해주고 있듯이 친구는 고전의 전형이라 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 나아가 그 사람의 진실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100쪽이 필요하다. 시간적으로 몇 년이라던지 물리적으로 몇 번 만난다는 것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 있는 태도가 최근에 들어서는 더욱 필요해진 듯 하다.


읽다가 포기하는 책도 있고, 다 읽고 나서 혹평을 남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책에 대한,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의 자세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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