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가고파라가고파

Notic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91,594total
  • 1today
  • 4yesterday

'입학'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12.30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2. 2016.11.28 절대값 취하기 (1)
  3. 2016.11.27 불편한 것은 때론 도움이 된다.
2016. 12. 30. 18:21 내 생각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처음 아동양육시설(고아원)이 공익근무요원으로서의 근무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으레 동사무소나 시청에서처럼 공익 같은 공익(?)의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잡무를 하거나 개인적 시간이 많은 그런 공익생활 말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동들의 학습 지도, 병원에 차로 데려다 주는 것, 식자재 구입에서 부터 증개축을 할 때에는 건설현장 인부 같은 일까지 하였고 소집 해제 직전 몇 개월 동안은 요리를 담당해 직접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일이 힘들었겠다 싶겠지만 사실 가장 힘든 것은, 아동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들, 버려진 아이들, 부모가 어디에 사는지 알지만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아 맡겨진 아이들 등 살아오면서 직접적으로 마주할 기회가 적었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기 위해 아침에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 나가는 일은 스스로에게 많은 혼란을 주었다.


지금도 고향에 추석이나 설날에 내려가게 되면, 아이들을 위한 사탕을 꼭 두 봉지 씩 사고 또 사회복지사와 직원분들을 위해 박카스를 한 박스 사서 들른다. 공익을 마친지 10년이 되어가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아 그러고 있다. 제일 최근에 방문했을 때는 살짝 충격도 받았다. 내가 공익근무를 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이제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대학을 간 아이도 있었고, 취업을 한 아이 그리고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그곳에서 일을 할 예정이라는 아이도 있었다. 시간이 그렇기 흘렀구나 싶으면서도 이 아이들이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립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 부모의 재산 여부에 따라 계급이 나눠진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 내에서 이 아이들은 어떤 수저, 아니 수저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이런 시설을 나온 아동들이 자신들의 재정관리 및 경제에 관한 교육이나 조언을 받지 못해 힘들어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돈을 가져본 적이 없고 또 누구를 믿어야 할 지 모른다는 어려움에 빠진 시설 출신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작은 결론을 내렸다.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시설출신들에게 경제 교육 뿐만 아니라 재무관리를 도와주고 장기적인 계획을 이뤄나가는데 가족 같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돈을 단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해주고 또 일자리나 복지 등에 대한 관리 및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회적 기업. 이런 회사가 벌써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없다면 지금이라도 만들어 재무관리 전문가와 사회복지 전문가 등으로부터 시설출신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실제로 만든다고 하면 어떻게 만드는지는 슬프게도 잘 모르겠다. 생각만큼 쉽진 않겠지만, 왜 지금에 와서야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됐는지 스스로가 미울 지경이다.


공익근무를 하며 이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다시 대학에 가서 고시에 합격해서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전부 진행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계획이 실패했다고 해서 아이들의 삶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지 일시적인 도움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서 함께 그들의 경제적 삶에 도움이 되는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나는 요즘 공부를 하다가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사회적기업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산다. 답 알고 계신 분은 연락주시면 산타가 선물을 주실지도. 메리 크리스마스.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모두, 수수하지만 굉장해  (0) 2017.01.04
"어른으로 태어나다"  (0) 2016.12.30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0) 2016.12.30
"관심"  (0) 2016.12.30
“알바 시각표”  (0) 2016.12.21
“2005년 산 포도주”  (0) 2016.12.16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6. 11. 28. 12:21 내 생각

절대값 취하기”  20161128

 

언제 처음 배웠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학시간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당연히 그렇겠지. 수학에서 밖에 쓰지 않는 말이니까. , 아니구나. 대학에 들어와서 경제학을 배웠을 때도 사용하긴 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숫자와 관련된 것에 절대값을 쓰는 것이겠구나. 절대값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세로로 두 줄을 긋는 것인데, 두 세로줄 사이에 +(양수, 플러스)가 들어가든 –(음수, 마이너스)가 들어가든 관계없이 그 결과가 양수로 나오게 하는 것을 두고 절대값을 취한다라고 한다. 예를 들어, 예를 들어보려 했는데 절대값 부호를 컴퓨터로 어떻게 찾지? 근의 공식은 찾았다, 이게 필요한 게 아니지. 이거?││ 이게 맞는 듯 하군. 다시 예를 들면, │-3│이라고 하면, 이것은 +3과 같게 된다. │+3│도 결과는 양수 3이긴 마찬가지인데, 어차피 양수(+)인 것에 절대값을 취할 필요는 없겠지? 하여튼 절대값을 취하게 되면 그 안에 있는 숫자가 음수라도 양수가 된다는 게 중요하다! 중고등학생 여러분, 이것만 기억하면 수학 시험에서 한 문제는 맞출 수 있습니다!

 

갑자기 왜 절대값 이야기를 하는걸까?

 

우리 삶에도 절대값이 필요하다. 각자의 삶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좋지 않은 일도 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좋은 일이라면, 헤어짐은 슬픈 일이다. 목표로 했던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면,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등등등. 더욱 많은 예들을 들 수 있겠지만 일일이 예를 드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정말 많은 예나 사건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예를 들기보다 전체적으로 좋은 일을 양수(+, 플러스)라고 하고, 좋지 않은 일을 음수(-, 마이너스)라고 해볼 수 있다면 삶에 왜 절대값을 취할 필요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 전체 삶을 보면, 좋지 않았던 일도 좋은 일이 된다. 다만 그 좋지 않은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 지금 당장 힘들어죽겠는데,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과연 좋은 일이나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마구 샘솟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러한 하나하나의 좋지 않았던 일들이 결코 음수(-, 마이너스)로만 남아있는 일은 없다. 생각해보자. 1년 전에 나를 슬프게 한 일이 뭐였지? 2년 전에 나를 괴롭힌 일이 뭐였지? 시간이 지난 뒤에까지도 자신을 괴롭혔던 고통이나 슬픔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시간이 흘렀기에 잊은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있지만, 좋은 경험이든 좋지 않은 경험이든 그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2014 4 16일의 세월호 사건과 같은 국가적 재난의 경우에는, 국민들이 잊지 않기로 함으로써 +(양수, 플러스)가 되었다. 국가적 재난을 떠나 개인적인 슬픔 혹은 뼈아픈 경험만을 본다면, 자신도 모르게 절대값을 취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삶에도 절대값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수학과 경제학에서만 절대값을 배우고 적용한다는 건 아무래도 좀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학 공부나 경제학 공부가 차지하는 시간의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하지만 삶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랬듯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 많은 경험을 하고, 감정을 갖는다.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 중 잊고 싶은 기억,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에 ││(절대값)을 씌어보자. 당장 절대값을 취하는 것이 어렵다면,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절대값을 취해 양수(+, 플러스)로 만들어보자.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관계 없이, 자신이 유발했든 유발하지 않았든 관계없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과 경험들에 대해 한 번 멋드러지게, “좋았어! 절대값을 취해보자!”라고 하는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누구나 알다시피 좋은 일과 경험은 적다. 좋지 않은 일과 경험은 징그럽게도 많다. 우리 삶에도 절대값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예  (0) 2016.11.30
멈추어 있다기보다 뒤로 가는 느낌  (0) 2016.11.29
절대값 취하기  (1) 2016.11.28
씨발  (0) 2016.11.27
불편한 것은 때론 도움이 된다.  (0) 2016.11.27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0) 2016.09.28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지나가다 2017.06.04 12:43  Addr  Edit/Del  Reply

    개인적으로 좋았던 일을 +/ 좋지 않았던 일을-로 생각 하셨네요.
    수학 에서 절댓값 은 단지 -를 +로 바꿔 주는게 아닙니다. 수의 절대적인 양,거리를 보여주는거죠.
    삶에서 절댓값 을 씌운다면 좋지않았던 일이 좋은 일이 되는게 아니라. 그냥 본질 그자체. 감정을 뺀 상태가 되야 할것 같아요.
    그냥 벌어진 이벤트. 선형적 시간 개념에서 발생한 그 상태의 이벤트.
    절댓값 은 그런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 11. 27. 20:19 내 생각

"불편한 것은 때론 도움이 된다." 20161114


고등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였다. 일제시대부터 사용해오던 교사(校舍)가 낙후된 탓에 안전하지 않자 새롭게 교사를 짓기 시작했다. 신입생인 우리 1학년은 과거 도서관으로 사용하던 건물에 둥지를 틀었고, 그마저도 교실으로 사용할 공간이 충분하지 않자 옥상에 컨테이너 박스도 올려야 했다.


주목적이 도서관이었던 건물이었으므로, 그 건물에는 화장실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탓에 건설현장이나 관광지에서나 있을 법한 이동식 화장실이 건물 가까이 설치되었다. 개학을 막 했을 당시에는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오면서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400명이 넘는 혈기왕성한 남학생이 싸대는 오줌과 똥의 냄새는 참으로 복잡한 심경을 들게 했다.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하라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던 중 묘한 느낌이 들었다. 더워서 창문을 열고 수업을 들을 때였는데, 집중이 잘된다는 느낌이었다. 왜 이런지 궁금해서 화학시간에 선생님께 질문했다.


"쌤, 화장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처음에는 맡기 싫었다가 뭔가 계속 맡다보니 정신이 또렷해지는 거 같습니더. 이거 와 이런겁니꺼?"


내가 있던 교실은 2층이었고, 임시화장실은 건물 1층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창문을 열면 그 냄새가 정확히 우리 교실로 들어왔다. 화학 선생님은 창문을 열어보시곤, '암모니아 냄새네.' 라고 하셨다. 소변에서 나온 요산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암모니아가 된 듯 하시다면서, 암모니아 냄새는 사람한테 각성이나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셨다. 신기했다.


냄새나고 더럽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이, 그것을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게 삶에 도움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더러운 느낌은 들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을 때 창가에 서서 암모니아 냄새를 킁킁거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도 그렇다. 짧게 잡아도 1987년 이후 새롭게 형성된 민주주의 질서가 무너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일제식민지를 거쳐 해방된 사회에서 시간적으로 길고 더러운 독재와 여러 민주주의적 실험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 어디선가 더러운 냄새가 나고, 그 냄새를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100만명이나 모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 더러움이 우리가 스스로 뽑은 대통령과 정부에 의해서 자행된 것이기도 하고 또 방관한 책임이 있는 여러 주체들, 예를 들어 언론과 지식인 등에게도 있다고 하면 쉽게 대놓고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 더러움, 분명 도움이 된다.


민주주의가 일상이었고, 그것은 쉽게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이 피어오르던 더러움은 일부의 어떤 것이거나, 쉽게 정화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이상 참지 못할 것이 되니,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더러움이 있었기에 -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에 대한 파괴와 농단이 있었기에 - 그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더러움은 때론 도움이 된다. 내가 고등학교 때 느꼈던 암모니아의 더러움은 공부에 집중하게 도왔고,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민주주의와 헌정질서 파괴는 거의 모든 국민이 그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더러움이 도움이 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안고 살아갈 순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학교 건물은 새롭게 지어졌고, 그 건물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집중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무너진 민주주의와 헌법질서에서 그 더러움을 인내하며 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새롭게 민주주의의 건물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물론 새로운 건물에도 화장실은 있겠지만, 우리가 청소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더러움을 만들어야 할 것은 아닐까.


더러움은 때론 도움이 되지만, 그 더러움을 치우는 것 역시 사람들이다. '더러웠지' 라는 것을 기억하며,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 미래를 더욱 깨끗이 만들기 위해 노력할 일이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