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가고파라가고파

Notic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91,849total
  • 1today
  • 3yesterday

'장애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4.19 여드름 자국
  2. 2014.11.20 인류 역사 진보와 장애인
2016. 4. 19. 00:31 내 생각

여드름 자국

 

중학교 시절까지 단 하나도 나지 않던 여드름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내 얼굴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춘기가 되면 누구나 나는 것이라 생각해 내버려두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선 배 밑에 베개를 깔고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양손을 얼굴에 대고 여드름을 상처로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드름을 무던히도 열심히 짰던 기억이 선명한 것은, 그 사소한 실수가 지금까지도 내 얼굴에 남아 있다는 것을 매일 거울을 보며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하얀 고름이나 유분기가 ’-이 소리는 실제로 난 소리는 아니고, 마음 속에서만 들렸던 소리다-소리를 내며 거울에 튀겼고, 나는 더욱 힘껏 여드름을 손으로 꾹꾹 눌러 피가 나도록 했다. 몇 번의 반복된 동작 끝에 내 얼굴에는 여드름의 기미는 사라졌지만 불긋한 상처와 딱지들이 남았다. 상처가 나으면 예전의 피부도 돌아가겠지- 하는 착각. 이 있었다. 그때는 그 사소한 행동들이 이후의 내 얼굴의 한 특징이 될 줄 알았을리 없다.

 

나에게는 익숙해졌지만.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익숙해지지 않는 듯 했다. 대놓고 내 피부를 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내 피부 상태를 보고, 나 자신을 관리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기는 듯 했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것은, 내 눈을 보지 않고 묘하게 피부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적어졌지만 과거에는 꽤- 많았다.

 

상처가 남았다.

 

여드름 흉터로 인해 상처가 남은 것은 내 피부였지만,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나 사소한 놀림-예를 들어 달의 표면 사진을 보는데, 네 피부가 생각났다.’ 라던지, ‘좀 씻고 다녀라라던지- 에 의해서 마음에도 상처가 남았다. 피부의 치료를 위해 피부과를 다녀보기도 했지만,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내가 익숙해진 만큼 크게 신경쓰지 않는 시간들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예전의 중학교 친구가 생각났다. 오른손이 있을 자리에 항상 붕대를 감고 다녔던 친구. 그 친구는 혈관기형으로 손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했다. 자신과 같이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기 위해 한의사가 되고자 했었는데,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친구는 손이 없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불편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는데, 그 시선탓에 굳이 감지 않아도 될 붕대를 감아야만 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혐오스럽다며 언짢은 표정을 자주 지었다고 했고 자신도 그런 피해를 남에게 주고 싶지 않다 했다.

 

손과 피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용도와 이질감이 덜 드는 쪽은 피부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다르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그 결과는 같을 수도 있다.

 

이질감.

 

티비를 틀어보면 피부 미끈한 사람과 손 두 개인 사람들이 나온다. 심지어 예쁘고 잘생기기까지 했다. 굳이 티비를 틀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도 관리 잘된 피부를 갖춘 사람을 꿀피부나 피부 미녀/미남이라 칭송하기도 하고 매력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손이 없거나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저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편하게 만들어내어 관리복지의 대상으로까지 만들어 버린다. 그 원인에는 이질감이 있다. 누가 만들어낸 기준이고 평균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은 피부가 미끈해야 하고 손은 두 개, 발도 두 개, 눈도 두 개 등등 다양한 평균적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이질적인사람이 되어버리고,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복지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다르다는 것의 아름다움.

 

나는 비록 내 실수로 인해 그리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여드름 흉터가 생겼지만,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를 가진 사람은 대부분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내 실수로 지금의 피부가 되었지만, 나는 내 피부가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저 내 피부는 남과 다를 뿐이다. 장애 역시 그렇다. 그저 그 한 사람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안될까. 개성이면서 일상 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부족한 사람에게 부족하다 비난할 것이 아니라, 부족하니 사회에서 조금씩 채워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러게 된다면 다름은 개성으로 굳혀지고, 그 개성은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하나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든 드러나지 않는 것이든, 다시 말해 신체적인 것이든 정신적(혹은 심리적)인 것이든 불편함과 다름을 안고 산다. 마치 현재 모든 인류의 공통점이라 할만한 불편함과 다름을 이질적이라거나 비정상이라고 낙인찍는다면 이 세상 누구도 정상은 없다. ‘정상평균이라는 것의 틀을 벗어나야만 모든 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지 않을까.

 

피부 나쁜 것도 장애가 있는 것도, 마음이 아픈 것도, 몸이 아픈 것도 또 그 어느 한 곳 아프지 않은 것도 그저 그 사람이 가진 개성이고 다름이 되기를. 불편하더라도 스스로가 변하길 원치 않으면 마음 깊이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나만의 욕심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함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0) 2016.04.22
길어도 괜찮아  (0) 2016.04.21
여드름 자국  (0) 2016.04.19
티 없는 순수함  (0) 2016.04.18
어리석은 질문  (0) 2016.04.17
아끼는 법  (0) 2016.04.12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4. 11. 20. 23:18 내 생각

인류 역사 진보와 장애인 2014.11.20. 


나는 인류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이다. 그 인류 역사 진보의 핵심은 기술 발전도 아닌, 우주 탐험도 아닌 인간 개인개인의 가치를 높였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도 '노예'가 있었다. 노예라는 표현보다는 노비 혹은 머슴이라는 표현이 익숙하지만 그들의 처지는 노예였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살지 못했고 원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했으며, 자녀의 출생은 '재산 증식'으로 간주되었다. 제1차 갑오개혁(1894년)에 이르러서야 공사 노비제를 없애는 정책이 시행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주인집에 '자발적으로' 남아 자유로인 노비를 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다. 남자 노비는 머슴으로라도 불렸지만 여자 노비의 경우는 그 이름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여자 노비의 경우에는 주인의 성폭행과 성추행의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어미가 노비인 경우에는 남편의 지위에 관계 없이 노비 지위를 물려주는, 말 그대로 노비 생산 공장으로 밖에 대접받지 못했다. 
광복을 맞이한 이후, 각 개인의 권리가 중요 시 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연합국들로부터 받아들였지만 막상 나아지지는 못했다. 알다시피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손을 잡고 들어왔고, 민주주의는 광복 이후 몇몇 독재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인간 개개인의 가치를 높여가는 인류 진보의 역사 속에 간과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는 지에 따라 그 국가의 선진성을 척도로 삼는다면 적절한 기준이 될 듯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 역시 비용이 문제로 밖에 치환되지 않는다. 낙태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고, 태어난 이들에 대해서 당연히 '불행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어제 내가 올린 아이디어는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더욱 편하게 탈 수 있도록 하자'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이 아이디어를 들은 한 친구는 "장애인은 안내견이나 자원봉사자가 있지 않냐."라는 질문을 내게 했다. 물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적인 논리 뿐만 아니라 사람이 가진 '선의'를 베풀 수 있다는 점에서 성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매번 그 도움을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장소에서 받을 수도 없고 또 줄 수도 없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장애 제도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가는 것이다.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생각되는 부분들을 혼자 해결해나가면서 사람은 성장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한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논의에서 벗어나 누구에게나 통용된다.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탈지 택시를 탈지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지에 대해서 선택권을 넓혀나가야 그 장애인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권리도 아닌, 의무도 아닌 한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장애를 갖고 있다 해서 혜택이라 생각해서도 또 혜택을 준다고 생각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지금 인도 위에 서 있다면 가운데 노란 보도블럭이 보이는가. 그 보도 블럭은 시각장애인이 길을 혼자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지금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면 '저상 버스'라는 이름의 버스가 혹시 서 있는가. 그 버스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버스다. 지하철 역에 있다면 휠체어 리프트를 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들 역시 장애인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인류 역사의 진보는, 노비 상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극적인 사건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역시도 제도로서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그 내용에 대한 학습과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허황된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인류 역사의 진보, 자유주의의 적용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장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잣대가 장애인에 대한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왜 집 밖에 나와서 난리야?' 라던지 '누군가 반드시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길에서 장애인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소한 것들이라도 장애인들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 나가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할 때 그에 대해 도움을 주어야 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이라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싶다.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통과의 단절  (0) 2014.12.03
정규직 애가  (0) 2014.11.27
인류 역사 진보와 장애인  (0) 2014.11.20
깃털 한 올  (0) 2014.11.20
하루하루  (0) 2014.11.20
고마운 일  (0) 2014.11.14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