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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12.16 “2005년 산 포도주”
  2. 2016.11.30 명예
  3. 2015.01.28 불친절한 글
2016. 12. 16. 01:41 내 생각

“2005년 산 포도주

 

10시가 넘은 시각,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글자를 보내주는 친구들에게 푸념하고 있을 때, 마침 같이 사는 친구가 집으로 돌아왔다. 부스스한 머리, 추위가 잔뜩 묻어 있는 어두운 색의 롱코트 그리고 손에 든 한 병의 포도주. 송년회를 하였다며 먹다 남은 포도주를 들고 왔다 한다. 포도주의 라벨에는 이 포도주가 2005년 산()이라는 표식이 있었다. 2005년이면,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이다. 그리고 이 포도주의 고향은 프랑스다.

 

집에 있는 몇 개의 안주거리를 꺼냈다. 먹다 남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전과 몇 조각의 치킨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냉장고의 냉기를 덜어냈다. 포도주 잔을 두 개 꺼내고 접시를 꺼내 가벼운 포도주 술상이 차려졌다. 포도주는 병의 3분의 1 정도가 남아 있었다. 작은 포도주 잔을 꺼냈기에 망정이지 큰 것을 꺼냈으면 한 명이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을 양이다. 포도주 잔에 조금씩 포도주를 따른 뒤, 쨍 하는 소리의 건배를 했다. 친구는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며 안주를 덜어 들고 가서 포도주를 마셨다. 나는 식탁에 그대로 앉은 채로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친구들에게 밀린 답장을 한다. 고마워. 다시 쓸 수 있게 되면 써서 보낼게.

 

비워진 포도주 잔을 다시 몇 번 적게 채워 넣으며 마시고 난 뒤, 포도주는 바닥을 보였다. 치킨이 두 조각 남았지만, 저녁을 일찍 먹은 탓에 다소 허기졌던 내가 먹어 치웠다. 안주를 모두 다 먹은 뒤, 젓가락과 접시를 탑 쌓듯 포개어 싱크대에 넣어 놓고 포도주 병을 재활용 분리수거 상자에 넣으려 일어났다. 그리고 혼잣말을 공기에 툭 던졌다.

 

“2005년 산이라.”

 

내 말을 들었는지 친구가 한 마디 거든다.

 

그거 한 병에 30만원 짜리다.”

 

순간 멈칫, 했다. 이 포도주 한 병이 30만원이란 말인가. 포도주를 마시기 위한 건배를 하기 전, 2005년 산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 이건 어느 정도의 가격일까 궁금했다. 친구는 그 때는 별 말 하지 않고 단지 좋은 거라고만 말했다. 그리고 2005년 산이면 꽤 오래된 것이라 했다. 나는, ‘2005년이면 우리가 21살 때인데, 그 사이 11년이 벌써 흘렀네. 11년이면 포도주한테는 긴 시간일 수 있겠네.’ 라 하며 가볍게 넘겼다. 포도주의 가치를 알았다고 해도 또 몰랐다고 해도 나에게는 그저 하룻밤의 마무리를 기분 좋게 도와주는 정도였다. 가치와 가격과는 관계 없이, 마셔서 기분 좋은 것으로 감정이 정리되는 어떤 것. 그럼에도 이것의 가격을 안 뒤, 순간 생각에 잠겼다.

 

나는 2005년 이후 지금까지 얼마나 더 숙성되었나. 얼마나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나. 사람을 물건처럼 가격으로 따진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내가 일을 하며 받았던 돈으로 비교는 가능하리라. 20, 2004 12월 당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받았던 시급이 2800원이었다. 이 시급도 원래 2700원이었던 것을 한 달 간의 근무성과를 강하게 사장님께 피력한 결과 100원의 인상을 얻어내었던 사소한 승리였다. 한 시간 2800원을 받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한다면 어떤가. 가장 최근에 돈을 번 것이 일본어 통역을 하였을 때인데, 2주 정도의 일정을 소화하고 적지 않은 돈을 받았다. 하루로 따지면 15만 원 남짓. 단지 금액으로만 따지면 악화되었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큰 성과를 내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신하지는 못한다.

 

10년이란 얼마나 긴 시간일까. 포도와 설탕이 원목으로 만들어진 통에 들어가서 10년을 담겨 있던 기간과 나의 20대는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두 번의 대학교 입학과 한 번의 대학원 입학, 군대 입대 실패와 아동양육시설에서의 공익근무 그리고 1년 간의 일본 생활과 2년 간의 고시생 생활 등 넓게 펼쳐졌던 삶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늘의 포도주는 나에게 조용히 이야기 한 잔을 권했던 것은 아닐까.

 

흔들리지 않는 통에 들어 앉아 생각했다. 사람들은 내가 여기 가만히 오래 있을수록 나의 가치를 높게 쳐 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흔들리며 넘어지고 일어나서 다시 넘어지며 그 가치를 높여나가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이란 사람들이 자신만의 길을 열고 아픔을 겪으며 그 사이 얻을 수 있는 성취들을 이뤄나가는 중, 그들에게 잠시 기쁨을 주는 것. 아무리 내가 비싸진들 나를 마시는 어느 누구보다도 결코 그 가치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나를 마신 그대여. 자신이 만든 통 안에 갇히지 마라. 어지럽게 흔들리고 넘어졌다 일어나고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며 울다가 웃어라. 그러다 가끔 힘이 들 때 나를 한 잔 들이켜 다오.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자유로운 그대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될 것이다.

 

2005년 산 포도주 한 잔 마시며, 산미(酸味)와 생미(生味, 살아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맛)을 생각한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어떤 것들이라도 그것이 나의 가치를 낮게 할 것이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져야겠다. 20살 이후 지난 10여 년 간의 기간을 지내오며, 쉽게 손에 잡히지 못했던 생각을, 2005년 산의 포도주를 마시며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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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30. 01:13 내 생각

명예”   20161130

 

두 명의 이름이 등장했었다.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중국의 옛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은 친구였다. 한 명의 친구가 다른 한 친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마치며 말하길,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달라.” 부탁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친구는, 자살했다. 왜 자살했을까.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친구의 비밀을 영원히 지켜주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이야기. 대단한 우정이지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친구의 마지막 부탁, 즉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그 말에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생각해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명예? 친구에게 자신이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자신은 명예를 더렵혀졌다 여겼던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

 

1948년 광복 이후 우리 역사에 몇 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그 대통령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통령은 단 한 명이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서거 당시 나는 일본의 사이타마현의 한 맨션 안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교환학생 중이었고, 어머니로부터의 인터넷 전화에 잠이 깼고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누워있던 내 몸은 일으켜세워졌다. 누군가 일으켜 세운 듯 했다. 티비를 틀었고, 일본 뉴스에서도 그 사람의 서거 소식이 특종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 후 몇 일 간, 애먼 줄담배만 태웠다. 왜 그런 선택을 하였을까. 친인척 비리가 있다는 검찰의 발표. 그리고 검찰 소환.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 검찰 소환일 뿐이었다. 민주화운동을 거쳐 국회의원 그리고 대통령까지. 독재 시대를 끝내려는 노력과 다음 시대를 새롭게 만들려는 노력을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해왔던 인물. 아마 그는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통감(痛感)했을 것이다. 자신의 집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 바위에 서서 죽음으로써 더럽혀진 명예를 회복하고 살아남아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명예가 무엇인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명예가 무엇인지를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

 

그리고 2016년 지금. ‘명예로운 퇴진이라는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혼란을 막고 안정적인 방법을 찾는다는 그 사람의 사전에는 분명 두 글자가 없다. 나폴레옹의 사전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으로 유명하듯 그 사람에게는 제목으로 적은 이 두 글자, “명예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명예란 무엇일까. 지키고자 한다면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누구의 명예와 누구의 명예가 대립한다면 무엇을 지켜야할까. 국가의 명예와 개인의 명예가 충돌한다면 무엇을 지켜야 할까. 그 사람에게는 지킬 것이 없으니 충돌할 것도 없는 것일까. 하지만 누군가의 명예는 분명 훼손당하고 있다. 다름 아닌 국민이다. 국민의 명예, 국가의 명예 그리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명예는 난자(亂刺)당하고 조리돌림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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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요.”라고 말했다는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와네트. 하지만 사료에서는 그녀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 한다. 오스트리아 출생.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일한 여제이자 전쟁을 통해 자신의 왕위를 지켜낸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외로웠을 것이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했었던 적이었던 프랑스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시집을 가야했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자신의 남편과 함께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성공을 거둔다. 시민들의 명예를 위해, 시민들의 빵을 위해, 시민들의 권리를 위해 두 사람은 명예를 빼앗겼고 그것은 역사로 남았다. 시민혁명의 성공의 역사로, 시민들의 명예가 지켜졌던 첫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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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 어떤 명예가 남아있을까. 남아 있다면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그것을 갖지 못한 단 한 사람에게 어떤 책임을 지도록 할 수 있을까. 세대가 변하고 시대가 흘러도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 그동안 살아있는 우리는, 고통스럽더라도 지켜내야 한다. 한 명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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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8. 05:42 내 생각

# 0   2015. 1.28. 
아래에 적힌 글은 매우 불친절한 글이다. 왜냐하면 글을 적는 내가 갖고 있는 단편적인 지식들이 두서 없이 나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감히 예견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 적고 나니, 글의 길이도 무척이나 불친절하다.)


# 1 
프랑스에서 '샤를리 앱도'라는 풍자 잡지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를 풍자한 그림을 그렸고, 이 잡지사에, 프랑스인이면서 이슬람 문화에서 살아 오던 청년들이 난입해 기자, 직원 및 이들을 막기 위한 경찰을 죽였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프랑스 내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처우 문제 역시 같이 불거지고 있다.


# 2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가 총선에서 승리했다. 국회 과반수를 넘기지는 못했지만 그리스 국민들의 열망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시리자의 대표이며 유력 차기 총리 후보인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총리를 뽑기 위한 과정을 곧바로 실행에 옮길 것이라 밝혔다. 그리스는 알다 시피 재정 문제로 포루투갈, 아일랜드, 이틸리아, 스페인 등 PIIGS 라 불리던 나라 중 하나이다. 외국에서 볼 때는 국가 재정 파탄의 원인이 과도한 복지지출이라 판단한 듯 하나, 내부에서의 시각에서는 부정부패와 공무원들의 행정 무능이 원인이라고 판단하는 입장도 있다. 어찌됐든 이번 급진좌파연합의 총선 승리는, 유럽연합 국가로서 그리스가 앞으로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고 그리스'만'을 위한 재정 정책을 필 것으로 예상되어 유럽 연합 국가들의 위기 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 3
프랑스에서 '샤를리 앱도' 사건 이후 프랑스 국민들이 거리에 나선 것은, 표현의 자유는 보호되어야 하고 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폭력적 수단(테러를 포함하여)에는 결사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샤를리 앱도 사건의 배후에는,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프랑스 국민이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국민들에 대한 사회 내의 분위기가 결코 좋지 않았던 데에 또 다른 문제의 시발점이 있다. 프랑스는 2011년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나고 여성인권을 억압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공장소에서의 히잡(부르카) 착용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히잡을 착용하는 것이 여성인권을 억압한다고 판단한 프랑스 정부 및 의회의 판단이었으며, 히잡 금지에 대해서 찬성하는 입장을 보인 프랑스 국민들이 존재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이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 중 다수가, 종교의 자유와 연계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집단 시위를 하였음에도 이 법은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


# 4 
프랑스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알제리를 비롯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라오스 등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었던 제국주의 국가였다. 지금은 모든 국가가 독립을 하였고, 일부 몇몇은 프랑스령으로 남아있긴 하지만 프랑스는 더이상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다. (우리 역사에도 제국주의 국가로부터의 국권 침탈이 이뤄지게 되는데, 그 나라는 일본이며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겪었다.) 프랑스로부터 식민 경험을 당한 알제리 등 일부 국가들은 이슬람 국가였다. 이슬람교를 믿는 국민들이 있던 나라에 프랑스가 식민지를 건설하여 카톨릭과 개신교를 믿는 식민 지도층을 형성했다. 식민지 국가들에게 있어서 독립은 국가의 독립임과 동시에 종교의 독립을 의미했다. 제국주의 시대는 1945년 세계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종식되었지만, 프랑스는 이후에도 몇몇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후 모든 국가들이 독립을 이루었다.


# 5
우리나라에서 일부 혹은 많은 사람들은, '샤를리 앱도' 사건을 마치 프랑스 내에서 일어난 일부 이슬람교 신도들의 극단적 테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또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그 대상이 되는 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 역시 있다. 이런 입장들은, 프랑스의 역사와 사회 구성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을 못하는 경우라고 여기는 것은 오만일지 모른다. 예를 들어, 주제와 벗어나지만, 일본에서 위안부 여성을 희화화하거나 조롱하는 그림을 그렸고, 한국인 혹은 중국인 청년이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을 테러했다고 해보자. 그러자 일본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 달라며 시위를 한다면 어떨까. 불편하고 극단적인 예이지만, 역사적인 맥락과 사회적인 흐름을 무시하고 사건을 바라볼 경우에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을 언급하고 싶었던 것이니 널리 양해를 구한다.


# 6 
제국주의 프랑스라는 역사적 맥락에 대해서는, 언급을 이미 했다. 그렇다면 사회적인 맥락은 무엇일까. 프랑스 정계에서, 예전에는 아비지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았지만, 지금은 그의 딸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 된 사람이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과 마린 르펜, 이 두사람이다. 이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민자는 이 나라를 떠나라!"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살면서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민자의 자녀이거나 유럽 연합이 형성되면서 프랑스로 건너온 이민자 탓에 프랑스가 지금 경제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고, 또 청년들이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 핵심에 있다. 다시 말해, 순수 프랑스인을 위한 프랑스를 만들겠다 라고 하는, 어디선가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 독재자가 했던 말과 유사한 말을 하는, 현재의 그의 딸은 프랑스의 차기 대선 후보라고 생각되는 인물 중 인기가 1위다. 반(反) 이민자 정책과 더불어 이민자 유입에 큰 계기가 된 유럽 연합에 대해서도 높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 동유럽 및 구 식민지 출신 이슬람 이민자에 대한 이러한 극단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정당 대표가 차기 대선 후보가 된다면 프랑스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


# 7 
잠시 한국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작년 12월 10일 전북 익산에서 '평양에 다녀온 그녀들의 통일이야기'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 고등학교 3학년 19세 남학생이 황 등 인화물질을 폭발시켜 2명이 화상을 입었다. 재미교포 신은미 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열고자 했던 토크 콘서트는 종편에 의해 '종북 콘서트'라 불리게 되었고, 종북 논란의 핵심이 되었다. 재미교포인 신은미 씨가 미국으로 강제출국되는 것으로 논란은 줄어들었으나 19세 남학생이 저지른 백색테러에 대한 논란은 불씨조차 만들어지지 못했다. 주지하다 시피 한국은, 국가보안법이 있는 나라다. 북한 정권에 대한 찬양, 고무 등은 죄가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법은 과거 여러 민주화 인사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고 헌법 상 사상의 자유와 배치된다며 많은 비판을 받아오고 있지만 여전히 법전의 한 구석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여기서도 나오는 말이다. 테러, 역시 그렇다. 19세 남학생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표현의 자유를, 테러로서 막고자 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사회적으로 비판 받아야 마땅했으나 우리 사회는 그러한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 이유는, 표현의 자유가 용납되지 않는 '종북' 프레임에 피해자들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19세 소년은 종북주의자를 처단하려 했다며, 여러 보수주의 세력으로부터 변호사 비용을 후원받기도 했다.


# 8 
한국 사회에서 북한은 무조건적인 비판의 대상이다. 북한 국민들에 대한 무한한 연민은 별도로 논의된다.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 지식인이나 유명인들은 종북주의자가 되었고, '김정일 개새끼'에 이어 '김정은 개새끼'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종북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는, 종북 판별법까지 유행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현행법이 있으니, 북한에 대한 찬양 및 고무는 당연히 법적으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의와 별도로,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프랑스의 샤를리 앱도 사건이 던져주고 있다고 하면 과대 망상일까? '이슬람에 대한 조롱이나 희화화를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이슬람교를 믿는 프랑스 국민들이 하는 것에 대해서, 만약 우리가 북한을 흡수하여 통일하는 형태로 통일 한국이 형성된 이후, 다시 말해 국가보안법의 대상이 되는 국가가 사라지고 난 이후 북한 출신 대한민국 사람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희화화와 조롱을 하지 말아달라'라고 요청하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미래까지 예견하지 않더라도, 19세 소년이 행했던 표현의 자유를 막는 테러에 대해서, 프랑스 국민들의 '나는 샤를리'라는 팻말을 들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시위를 우리나라에서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신은미', '나는 황선'이라는 팻말이 등장하는 순간, 그 자신이 종북주의자임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은, 섣부르기만 한 것일까?


# 9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이 총선에 승리했다. 그리스만을 위한 경제 정책을 세우고, 유럽연합으로부터의 이탈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극우정당의 대표가 차기 대선 출마 예상자들 중에서 1위를 하고 있고, 이 사람은 이민자는 프랑스를 떠나야 하고, 이민자 유입의 물꼬가 된 유럽연합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그리스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불법체류자의 유입이나 이민자 확대에 대한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 10 
세계 1차 세계 대전은 어찌보면 참, 허무하게 발발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였던 페르디난트 대공이 유고슬라비아 민족주의자의 총알을 맞고 죽은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 제국 그리고 이탈리아(이탈리아는 1차 세계대전에는 삼국 협상의 편에 섰음)의 삼국동맹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삼국 협상 간의 갈등으로 비화되어 국가의 소멸과 생성 그리고 국경선의 변경에 까지 이르게 된 사건이다. 1차 세계 대전의 배경과 핵심에는 '민족주의'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역시도 1차 세계 대전 이후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확장에 따른 국가별 경제 이익의 차이 등의 원인에 의해서 발발하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민족주의다. 그리고 여전히 이 민족주의는 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까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많은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그 입김은 기분 나쁜 흥분감만 고취하고 있다.


# 11
우리나라의 경우에, 북한에 대한 입장을 민족주의라는 틀 내에서 보기는 상당히 어렵다. 왜냐하면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족이 같다고 해서 민족주의라는 파괴력 높은 이데올로기의 근원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현재 북한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감은, 북한과 유일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에 향하고 있다. 중국 역시 유일한 동맹국으로 북한과 '조중상호방위조약'으로 맺어져 있는 상태다. 한국전쟁 정전 이후 일부 국지전은 있었으나, 아시아 전체가 전쟁으로 빠져드는 상황의 위기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 이데올로기의 차이로부터 시작된 냉전 시기와는 유사하지만 또 다르게, 미국과 중국이라는 G2 간의 경제적 갈등이라는 큰 경기장은 이미 형성되었다. 이미 중국은 세계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가가 되었고 미국은 1985년 프라자 합의 이전부터 경제 대국이라는 지위를 지켜내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북한을 절대 중국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내부적인 합의를 이미 이룬 듯 하다. 그리고 그 과정으로서 북한 정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과 북한 국민에 대한 무제한적인 온정주의적 관점을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종북주의는 그만큼 힘을 가진다.


# 12
종북주의가 힘을 가짐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도 이민자 및 불법체류자에 대한 반감 역시 급증하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는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발의했다며, 불법체류자의 자녀에게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법이 곧 통과될 것이며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은 이민자와 불법체류자의 천국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발의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그 법안의 내용은 UN에서 정한 아동권리협약의 내용을 한국적으로 적용한 것이었다. 단지 법안 상의 오류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다른 정치인을 비판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고 하기에는, 다소 씁쓸한 감정이 남는 것은 이자스민 의원 자신이 이민자이며, 그 법안의 내용이 추구하는 방향이 이루어질 경우, 우리나라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민자나 불법체류자를 돕게 되니 절대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반응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수많은 이민자가 살고 있고, 또 그들의 사회적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적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와 동시에 이민자와 불법체류자에 대한 반감이 확대되고 그것이 정치적 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 역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실업률이 높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이러한 이민자 및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반감이 하나의 운동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하나의 기둥을 형성한다고 분석할 수도 있다. 과거 히틀러 집권 직전의 독일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 13
사회적 소수자 혹은 약자에 대한 적개심이나 증오는, 한국 사회에서 이미 큰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일간베스트' 통칭 '일베'로 불리는 반여성주의, 반국제화, 독재 찬양, 일부 지역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 훼손 등 다양한 문제점을 이미 드러내고 있는 이러한 사이트와 사용자들에 대해서 우리 정부는 큰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는 듯 하다. 오히려 20대, 30대의 표를 끌어오기 위한 인터넷 전위부대 쯤으로 생각하고, 후원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머물던 이들이 실제 사회에 얼굴을 들이밀었을 때, 이들에게 국가가 했던 반응은 '표현의 자유' 존중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나라만의 문제점은 아니다. 일본에서도 '재특회'와 같이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한국인(조선인)을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내자고 하는 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이러한 모임이 조직화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직 중국에서는, 민족적 소수자 혹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집단적 분노나 반발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것은 중국인 특유의 '누구든 들어와라, 그러면 넌 중국인이 될 것이다' 라는 태도일지도 모르겠으나, 중국은 역사적으로 일본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적개심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계기가 되었든, 그런 조건이 형성된다면 중국 역시도 이런 국가 내의 이민자 및 불법체류자 혹은 소수자에 대한 억압은 일어날지도 모른다.


# 14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삼국의 보수화는 기정 사실이다. 자국 우선, 자국민 우선이라는 공감대는 국경 안에서 이미 통용되고 있다. 유럽과 같이 연합이 아니니 국민들 간의 왕래와 이민 등이 폭발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뿐이니 지리적으로 근접하고 경제적으로 밀착되어 있다. 그리고 쉽게 말해, 타국에 대한 반발심은 항상 상존하고 있으니 그 계기가 무엇이 될지 서로서로 눈치를 보며 살피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사상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으며, 한국에서는 현 정부와 여당의 목적과 목표대로 종북이라는 낙인은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명시 해놓은 헌법보다 높은 사회적 영향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일본은 자민당 독주체제를 확립하고 '정상국가'가 되어 군비를 다시 갖추어 과거의 경제적-군사적 영광을 되찾고자 하고 있다.


# 15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세계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 역시 민족주의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이 민족주의의 뒤에는 여전히 '경제 발전'이라는 지상 과제가 숨기지도 못하는 몸은 포기한 채 얼굴이라도 숨겨보자고 '민족주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본다. 유럽에서 1차,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여러 시도들을 해왔고, 제도적으로 완비되었다고 안심한 순간, 사람들은 더욱 나은 생활수준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과거와는 다르게 낮은 활기를 가진 자국에 대하여 과거의 향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내부의 적이 필요하게 되었고, 사회적인 약자로 보이면서도 만만해 보이는 집단에 대한 반감은 매우 사소한 시작으로 발현되었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서로 묶여서 돌아가다 보면 걷잡을 수 없는 형태로 비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국정 운영을 위해 그리고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좀 더 편리한 국가 지도 체제 완성을 위해, 한국에서는 종북이 등장했고, 일본은 국민 스스로가 정치에 관심을 끊는 형태로 자민당의 독주를 용인하며 '먹고 살게만 해달라' 말하지 않고도 말하기 시작했으며, 중국은 언젠가 완성될 진정한 공산주의 실현을 위해 국민들의 사상의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억누르고 있다. 아시아의 세 나라 모두 '경제'라는 것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핵보다 더욱 높은 층위의 어떤 것이라 상정하였고 이 지상 과제를 풀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될 것이다.


# 16 
유럽도 그렇고, 아시아도 그렇고, 본 글에서는 배제되어 있지만 지구 상 위의 수많은 국가들이 겪는 유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논의되고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책을 논의하는 것을 막고 있는 세계적 경제 침체는 일시에 풀릴 것 같지는 않다. 불안하지만, 그 해결책이란 또 다른 혁명과 또 다른 세계 전쟁과 또 다른 극단주의의 광풍 속에서 등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 드러나는 전쟁-극단주의의 실체는 과거의 어떤 형태보다도 더욱 잔인하고, 무자비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 17 
답은 무엇일까.


p.s 'IS 이슈'가 빠진 이유는 실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국가들 내부에만 집중하고 그 연결고리를 찾고자 했기 떄문이다. 다음 기회에, IS 등장이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적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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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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