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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멈추어 있다기보다 뒤로 가는 느낌

멈추어 있다기보다 뒤로 가는 느낌” 20161128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철역에 들어선다. 평소와 다른 점이란 하나도 없다.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찾을 것이며, 역까지 걸어오는 사이 누군가 나에게 보낸 메시지는 없는지 찾기도 할 시간. 스마트폰으로 무엇인가를 보는 사람들을 셀 수 없이 만날 것이며,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 신경도 쓰지 않을 그 시간으로 들어가는 평소와는 다를 것 없는 일상.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 아니어도 괜찮다. 백화점이든 대형마트든 그것이 있었던 어느 곳이면 어디든지,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 보았을 일상적이면서 평소와는 다르지 않는 그 시간에 그것이 고장이 난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에스컬레이터. 때에 따라서는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무빙워크(moving walk)라고 해도 될 것이다.

 

지난 번에 왔을 때까지도, 아니 어제까지도 멀쩡하던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 나 있다. 내려가는 길이 그것을 타고 지나가는 것 뿐이기도 하고 고장난 게 대수냐 싶기도 해서 멈춰선 에스컬레이터 위에 한 발자국 올려놓으면, 기분이 묘하다.

 

항상 눈으로 인식하고 몸으로 확인하며 움직인다거나 내려간다거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 멈추어 서 있을 때, 몸과 마음이 느끼는 그 느낌. 쉽게 표현할 수는 없다. 내 발로 걷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왠지 조금 뒤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별한 일 없는 걸음걸이임에도 걸을 때 마다 요상한 전율을 느껴가며 걷다가, 멈춰선 에스컬레이터의 중간 즈음에 이르러서는 어느새 익숙해져있다. 마치 그것이 원래 처음부터 계단이었던 것처럼.

 

고장이 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 고치면 다시 에스컬레이터는 원래처럼 사람들을 아래로 위로 실어 나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멈추게 만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다시 그것이 제대로 동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 그것이 움직이게 되면 사람들은 다시 예전처럼 그것을 타고 어딘가로 향해 움직일 것이다.

 

정치적인 용어라는 선입견을 버리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인류는 진보해왔다. 불과 100년 전과 지금의 삶은 얼마나 다른가. 1000년 전과는 또 얼마나 다른가. 오랜 시간이 아니어도 괜찮다. 10년 전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20년 전에 인터넷이 우리의 삶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과 비교해보면 옛날이라고 부를 정도의 과거.

 

지금까지 인류는,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진보를 거듭하며 자유를 확대하여 왔다. 기술이 그럴 것이고 예술이 그럴 것이고, 나아가 정치가 그럴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당일(20161128), 한국이라는 반도국가에서는 새로운 국정 역사교과서에 집필진으로 참여한 교수 및 교사의 명단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지금의 국정교과서재편찬이 있기 전, 국정교과서였던 역사교과서가 정부가 검정하고 인정하는 교과서로 변경된 적이 있었다.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검인정 역사교과서 중에서 선택을 하여 역사를 가르치던 때를 끝내고 다시, 국가가 일률적으로 편찬한 역사교과서를 사용토록 하고자 한지 1. 그 결과물이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멈추어 있다기보다 뒤로 가는 느낌이다. 과거에도 국정 역사교과서로 사용한 적이 있으니, 다시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하는 반론은, 인류의 자유 확대와 사상적 진취성의 발전을 멈추자 주장하는 것이다. 국정교과서를 채택하자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너무 방종하게 나아가고 있으니 멈추자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에 그것은 뒤로 가는 것이다. 느낌만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뒤로 간다고 느낄 정도로.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유가 확대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느껴오며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채 해결되지 않은 불평등과 부조리 등이 있지만, 성공했던 사례들을 기억하고 나아지려는, 나아가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이런 욕망들이 모여 자유와 민주주의의 향연을 준비하고, 예비해왔던 것이다. 이미 이룬 성취들을 지키고, 획득하지 못한 권리를 얻고 다하지 못한 의무들을 다할 마음가짐을 갖춰왔던 것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훼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길게 논할 것은 되지 못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현대인이라면 신문을 펼치거나 뉴스를 틀어볼 것이며, 미래의 사람이라면 20164분기의 사료를 살펴보길 바란다. 이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멈추어 있었던지를. 그리고 결코 그것은 멈추어있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고 복고(復古)적인 것이었던지를.

 

멈춰선 에스컬레이터. 그 위를 걸을 때의 묘한 느낌은 일시적일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다시피 반쯤 내려왔을 때 다시 그것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래서는 안된다. 익숙해질 것은, 지구가 멈추지 않고 돌고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유는 확대되어야 하고 권리와 의무는 정의로운 절차를 거쳐 획득되고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가 멈추면 모든 인류가 죽듯이, 우리의 운명을 우리의 손에 쥐도록 한 민주주의의 역사 앞에 멈출 수는 없다.

 

에스컬레이터가 멈추어 있다면, 그 위를 한 번 걸어보면 이 글이 이해가 더욱 잘될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이여, 그리고 지금을 역사로 만든 현대인들의 후손 미래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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