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방지”
흐른 만큼 충분히 흐른 시간.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20대가 접어들자 마자 죽어갔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은, 역사책에서나 잠시 등장할 뿐이다. 수명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20대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게 된 것은, 10대 이전부터 받기 시작한 노화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지금의 시점에서의 노화란, 20대가 된 후부터 다시 80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그 시작이었다. 실제로 노화가 진행되지도 않은 시점에서부터 노화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된 것은 반어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10대를 지나며, 20대 이후부터의 삶이 나머지 80년을 좌우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닫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이 20대 이후 죽어버린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별다른 건 없었다. 그저 10대가 된 순간부터 앞으로 남은 10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내고 또 알차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 숭고하고도 또 긍정적인 고민이 결국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중, 길가에서 80대 노인을 발견한 이가 있었다. 많은 신문과 방송에서는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발표했고, 이제 갓 10대가 넘은 전문가들은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분석을 시작했다. 그 결과로 그 노인이 어린 시절 뽀로로의 ‘노는 게 제일 좋아’라는 부분을 보지 않았고, 터닝 메카드의 과학적인 변신 장면을 보지 못했던 것이라는 매우 심각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 노인을 직접 인터뷰한 한 방송사의 아나운서-죽음을 얼마 남지 않은 17세 여자였다-는 노인과의 만남을 이렇게 술회했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다. 80대 노인은 아무런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10대 때에도, 20대 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과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별 생각도 그리고 감정도 갖지 않았다.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데 집중했을 뿐이었다. 많은 10대의 사람들 그리고 10대를 준비하는 10살 미만의 어른들은 그 노인의 삶에 공포와 경의를 동시에 느꼈다. 삶을 살아가는데, 그리고 저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무런 감정과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는 놀라움과 저 때까지도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공포. 아무도 살아보지 못한 30대의 삶을 그는 겪었던 것이고 그와 동시에 그는 끈질기게도 살아남았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노인의 피에 특별한 어떤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경찰청은 조사팀을 꾸려 그 노인을 체포했고, 혈액 검사를 실시했다. 노인의 혈액을 검사해 본 경력 10년, 19세의 의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상 없음.”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자, 다시 방송과 신문에는 그 노인의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것이 특별한 것이라며 특종을 방송했다. 혈액형은 O형, 특징적인 것은 낙천적. 이 정도가 특징이었다. 이 노인에 대한 종합적인 소견을 발표하는 경찰청장, 나이 20세, 곧 사망 예정은 이 남자가 특별한 위험성은 없으나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위험성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노인처럼 별 일 없이, 별 탈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감정 없이, 아무 계획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면 그들 역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불안이 위험했던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문구는 이 사회에서는, 금기어가 된 것처럼 청춘의 시기는 아프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노인은 아프지도 않았고 그 아픔의 원인이 되었던 고민, 갈등, 성장 등에 대한 걱정들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경찰청장은 검찰에 공식적으로 기소 의견으로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이미 이 노인에 대해서 명확한 정보를 갖고 있었으므로, 그 명확한 정보란 앞서 말한 ‘아무런 생각 없음’이다, 사형 구형 의견으로 법원에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마치 검찰의 기소를 기다린 것처럼 기소 의견을 받자 마자 판결했다. ‘사형.’ 판사(19세, 경력 12년, 7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나 매우 늦은 나이에 합격한 것으로 유명, 평균 사법고시 합격 나이 5세.)는 선고문에 이렇게 밝혔다. “고민이 없이 사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10대의 고민은 평생을 좌우한다. 이 노인이 태어났을 당시, 2010년대에는 10대의 고민을 통해 20대에 일반적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30대에 결혼했을지 모르나 이런 사례는 매우 평범하고 또 몰지각하며 또한 지나치게 평범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화되었고, 10대 이전의 고민을 통해 10대에 무엇인가를 이루지 않으면 그 인간은 쓸모 없는 인간이다. 따라서 이 노인은(노인이라는 표현 역시 사회를 무너뜨릴 위험성이 있으므로, 이 판결 이후 모든 사회에서 노인이라는 표현은 불가토록 한다.) 사회에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고, 이미 지난 60년 간 그 죄를 저질렀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본 법원은 이 피의자에 대해서 사형을 선고한다.” 사형이 선고되고 나자 그 재판정에 있었던 10대 방청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고민 없이 사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당장 사형에 처하라! 라며 외치기 시작했고, 재판정 안은 무법지대처럼 변했다. 젊음은 혼란을 뜻한다는 이 시대의 직언에 매우 적당한 곳이었다. 그러다 10대의 방청객들 중 8명이 노인에게 뛰어 들어 몰래 숨겨 들고 왔던 칼로 노인의 등과 배와 목과 허벅지와 팔목과 눈과 그리고 발등을 찍었다. 수 십 차례 난자가 이뤄지고 난 뒤 노인은 목숨을 잃었다. 그 목숨을 잃게 되는 눈 앞에 노인이 알아본 유일한 이가 있었으니, 노인을 살해한 한 19세 국회의원이었다. 나라를 운영하는데 자신의 노후를 다 바치고 있었던 그 국회의원은, 노인의 목을 찔렀고 그것이 노인의 죽음에 주효했다. 하지만 이 국회의원, 이 노인의 후손이었다. 자신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낳은 아들.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후손은 노인은 이렇게 말을 하며 죽었다. “브루투스, 너마저.” 노인의 후손의 이름은 브루투스, 19세 국회의원이었고 그는 이 말을 듣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행한 이 행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야겠다. 그것이 내가 살아갈 길이다.” 그리고 이 브루투스는 20세가 되어서도 죽지 않았다. 멍하니 생각하지 않는 모습으로 감정 없는 표정으로, 눈물샘은 스스로 말려버렸으며 그 어떤 이와도 생각을 나눌 수 없게 깊은 산 속, 자신의 손으로 죽인 노인이 숨어 살 던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평생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다 2010년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죽었던 나이 100살이 되어서야,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것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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