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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4. 21:25 내 생각

독서는 취미랄 것도 없으니, 굳이 최근에 내가 가진 취미를 말한다면 “일본 드라마 시청” 정도다. 드라마 시청이 취미라니 참 별 것 아닌 취미다 싶기도 하지만, ‘영화 감상’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취미에 속하는 것이 드라마 시청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왜 영화는 감상이고, 드라마는 시청이라 부르는 것일까. 이왕 취미라고 적을 거, 멋드러지게 일본 드라마 감상. 이게 내 취미 되시겠다.


최근이라 해도 작년(2016년)의 일인데, 취미의 일환으로 보았던 두 편의 일본 드라마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 편은 2016년 2분기 드라마 “중쇄를 찍자 (원제 : 重版出来)”이고 또 다른 드라마는 2016년 4분기의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원제 : 地味にスゴイ、校閲ガール河野悦子)”이다. 일본은 1년을 4분기로 나누어 드라마를 제작하고, 큰 변동이 없는 이상 한 편의 드라마는 10화 안팎으로 제작된다. 거의 모든 드라마는 사전제작의 형태로 제작되기에 중간에 스토리를 바꾼다거나 또는 불필요한 설정이 없는 것으로 일본드라마는 유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 드라마가 유명한 점은, 다양한 직업에 대한 소개와 그 직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게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것이 작년의 앞서 소개한 두 편의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두 편의 드라마 모두 출판과 관련이 있다.


우선 “중쇄를 찍자”라는 드라마는, 출판업계 중에서도 만화잡지를 만드는 편집하는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을 배경으로 한다. 유도선수로서 체육대학을 나왔지만 부상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된 신입직원(주인공)이 만화잡지를 만들어 나가고 편집자로서의 역량을 쌓아가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주된 내용은 아니지만 기성 만화가 및 신입 만화가가 느끼는 고충, 잡지를 통해 내어야만 하는 이익과 그와 동시에 담아야만 하는 독창성 간의 미묘한 갈등 그리고 영업사원이 느낄 수 있는 보람 등에 대한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다. 글로 적으니 드라마의 내용이 중구난방인 듯 보이지만, 드라마를 본다면 앞선 내용들이 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 드라마는 교훈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만화가와 만화잡지를 편집하는 편집자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만화가보다는 ‘만화잡지 편집자’라는 직업이 가진 어려운 점과 그런 어려운 점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만화잡지의 편집자는 결코 우리가 직접 만나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역시 출판업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는 드라마지만, 여기에서는 편집부서가 아닌 ‘교열’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로 다룬다는 것이 앞선 드라마와는 차이가 있다. 제목에서 이름이 드러나 있는 주인공, 코노 에츠코는 패션잡지의 편집자가 되기를 원해 ‘케이본샤’라는 출판사에 입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입사 후 알게 된 그녀의 부서는 책의 오탈자나 내용 상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는 ‘교열부’. 패션잡지라면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보는 그녀이지만, 책을 내기 전에 교열을 한다는 사실 조차 몰랐던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책을 교열해 나가며 교열부의 다른 직원들 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책상에 앉아 모든 교열을 했던 직원들이 사실관계 확인이나 지명 확인들을 위해 현장조사를 나가기도 하고,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담당하며 팬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교열까지 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단순히 작가가 적은 글을 수동적으로 교열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교열의 범위 내에서 교열자로의 의견을 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이끌어 냈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의 범위는 자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데 까지가 그 범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교열부 혹은 교열담당 직원들은 일반 독자들은 앞선 만화잡지 편집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그 존재를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취미’로써 갖고 있는 일본 드라마 ‘감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과 몇 일 전 새해가 되어 내게 들려온 한 가지 뉴스 때문이다. 그 뉴스란 국회에서 일을 하시는 청소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협력업체 직원의 지위에서 정규직인 국회 직원으로 전환되었다는 뉴스였다. 몇 해 전부터 국회 청소노동자의 지위와 대우에 대하여 국회 안팎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쉽게 사람들의 기억이나 관심에서 잊혀졌고, 그렇게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2016년 작년의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의 여야 구성이 변경되었고, (역시 나는 모르는 사이) 청소노동자의 지위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듯 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나는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딜 가나 쉽게 청소노동자를 만날 수 있다. 그곳이 도서관일 수도 있고, 빌딩의 로비나 공항 등 어디든지 청소를 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잘 찾으면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이나 업무를 보느라 혹은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때는 청소노동자의 모습은 쉽게 눈 앞에서 사라진다. 분명 존재하는 사람들이지만, 당연히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그들의 존재나 처우는 망각되고 만다. 그리고 깨끗해진 화장실 거울과 비워진 쓰레기통,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건물의 로비를 걸으며 누군가 이곳을 청소를 하고 있겠거니- 정도의 판단만 한다.


나는 이번 국회의 청소노동자들의 정규직 국회직원으로서의 전환에 대하여 찬성의 입장이다. 하지만 국회가 끝은 아니다. 그리고 시작도 아니다. 당연한 것을 그 시작과 끝을 나눌 수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에는 남들이 하지 않으려 하거나,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중 정확히 몇 퍼센트가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뉘어져 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갖고 그 보람에 상응하는 직업적 안정성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그 성과나 결과물에 대해 직접 자신의 이름을 내걸거나 표시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란, 사실 많지 않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일 속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있다. 굳이 티를 내어야 할 필요성도 또 그것이 그들의 삶에,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안정성과 삶에의 필요성을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하게 되는 또 하나의 필요충분조건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 수수하지만 굉장한 일을 하고 살고 있다. 어떠한 직업이든 자신이 언제 그 굉장한 일을 그만두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나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면, 그것은 목적으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고 직업이 아니라) 수단으로서의 존재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일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든 각자의 생계와 삶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직업을 통해 행복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글을 마무리 한다. 우리 모두, 별 볼일을 하는 듯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라며. (아, 그리고 소개한 두 편의 드라마는 꽤 재미난 드라마이니 한 번 나와 같은 ‘일본 드라마 감상’을 취미로 가진 분이라면 감상해보시길.)


이미지 출처 : http://channel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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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 20:55 내 생각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2016.12.02.

 

대부분의 친구들은, 졸업을 할 초등학교 인근의 중학교를 갔다. 하지만 나는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체학급에서 단 10명 만이 진학을 했던 마산중학교에 지원했고 어렵지 않게 입학이 결정되었다. 굳이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가 아니었어도, 유일하게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는 것도 큰 결정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중학교 진학이 결정되고 난 뒤, 내가 처음 한 일은 머리카락을 짧은 스포츠로 깎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두발자유화는 꿈 같은 소리였다.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나는 스포츠 머리에 익숙해져야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되려 어색한 머리가 되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앨범에는 정말 이상한 모습으로 찍힌 사진이 떡 하니 남았다. 졸업앨범 사진을 정식으로 촬영하였지만,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며 복도에서 찍힌 스포츠 머리의 내 모습은 지금 봐도 우스꽝스럽다. 거기다가 그날 입고 있던 옷이 하늘색 면 셔츠였다. , 하늘색이라니. 가능하다면 같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동기들의 앨범을 모두 몰수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그리고 이어 두 번째로 내가 중학교 진학을 위해 한 일은 교복을 맞추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특이한 선택을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교복 브랜드는, 스마트와 엘리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교복판매점에서 중학교 교복을 맞추게 되었다. 이것도 형이 그곳에서 맞추었기 때문이었고, 브랜드가 없는 대신 그만큼 저렴했다는 것이 이유일 수 있겠다.

 

처음 교복을 받아 온 날이었다. 마산중학교 교복은 정말 특징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교복이었다. 남색 상의에 같은 색깔의 하의. 단추에는 한자로 적힌 중학교를 뜻하는 중()글자가 금색으로 반짝였고, 상의소매에도 같은 형태이지만 크기가 작은 단추들이 3개씩 붙어 있었다. 흰 셔츠는 분명 면이라고 했지만, 이상하게 삼베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칠었다기 보다 삼베처럼 실 한 올 한 올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징도 없고, 고급 교복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 교복을 나는 매일, 입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한참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중학생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질 듯 보였고, 정장 형태로 된 교복을 입으면 마치 내가 어른이 된 듯해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하교 한 뒤 교복을 집안에서 입고 다니는 이런 나를 보며, 내가 곧 들어가게 될 마산중학교 교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온 형이 나에게 한 마디 툭 던졌다.

 

그거, 입기 싫어도 입어야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지금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의미였고, 이렇게 교복을 입고 있으면 번듯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척들은 나의 중학교 입학을 축하해주었고, 내게 기대하는 것들을 이전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중학교 교복을 입을 때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며 멋진 중학생이 되어야지, 하며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형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게 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1년이 지나는 것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선배들은 무서웠고, 선생님들은 더욱 무서웠다. 체벌이 당연했던 시절이라 사소한 잘못에도 선생님들은 가볍게 매를 들었지만, 그 매는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할 시점이 되어서는 체벌은, 마치 경주마를 다그치듯 너희를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양 뺨에서부터 발바닥까지 이어졌다. 교복을 입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중학생이라는 신분 뿐이었지만, 그에 따르는 의무는 자질구레한 것부터 때론 억울하다 느껴질 정도로 큰 것까지 많고 많았다. 그 결과 교복은, 매주 주말 다시 입고 싶지 않은 것이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교복을 입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었다. 하늘색(난 하늘색을 좋아하는 것인가...) 운동복을 입고 졸업식을 보내며, 고등학교 교복에 대한 환상 따위는 이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고등학교에 또 올라가는 것.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히 가야한다는 분위기에 취해 대학을 가는 것. 물론 당연하지 않았던 뭇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내가 살았던 당시에는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오며, 그 의미를 만끽했던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군대에 들어가고자 했지만 시력 탓에 공익을 가게 되며 겪게 되었던 차별 혹은 비판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고, 30살이 넘으며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사회적 의무들은 나도 모르게 나를 옥죄었다. 그리고 의무에 허덕인 탓에 권리는 간신히 그리고 어렵게 하나씩 얻어갔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중고등학교 입학이 그럴 것이고, 대학 입학이 그럴 것이고 취직, 결혼, 출산 등이 그럴 것이다. 이런 다양한 능선들이 눈 앞에 있을 때 그것을 정복하든 우회하든 그것을 선택함에 있어 책임은 다양하게 삶을 파고든다.

 

평범한 사람이 이럴진대 다른 이들보다 특별한 지위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책임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작게는 카페나 구멍가게의 사장에서부터 크게는 한 나라의 대표라고 부를 수 있는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쉽게 얻은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과는 별도로 그것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많은 책임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카페 사장은 손님들을 위해 맛있는 커피를 준비해야 하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공정하게 국민들의 요구를 잘 받아들이고, 정의롭게 국가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원한 지위에 해당하는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복은, 단지 교복일 뿐이었다. 그것을 입고 있다고 중학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벗었다고 중학생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중학생이면 중학생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고등학생이면 또 그 나름의 의무와 권리가 생기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가지로 가족 안에서, 지역 안에서, 국가 안에서 그런 의무와 권리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해 교복을 벗고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그것이 주는 지위와 권리, 권한을 버리고자 한다면 자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한 손실이나 권리의 상실은 자신의 책임 범위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은 원하지 않았어도, 큰 잘못이나 학교나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사람은 퇴학을 당하기도 한다. 그 교복을 입기 위해서 아무리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해도 또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해도, 그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 또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수치심을 준다면 벗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이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군인, 어머니, 아버지, 국회의원, 총리, 대통령 등 다양한 사회적지위와 직업들이 존재한다. 되고 싶어 된 것이든 되고 싶지 않았음에도 된 것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벗고 싶어질 때가 있듯이, 마찬가지로 벗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우선 어울리지 않고, 그것을 입고 있음으로 인해 사회의 구성원들이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낄 때는 더욱 그렇다.

 

중학교를 입학하기 전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중학교 교복을 입어가며 설레고 있었을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을 입을 수 있는 것과는 별도로, 입게 되었으면 최선을 다하길. 최소한 그것을 입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또 친구들에게는 부끄럽지 않게 하길,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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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30. 01:13 내 생각

명예”   20161130

 

두 명의 이름이 등장했었다.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중국의 옛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은 친구였다. 한 명의 친구가 다른 한 친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마치며 말하길,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달라.” 부탁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친구는, 자살했다. 왜 자살했을까.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친구의 비밀을 영원히 지켜주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이야기. 대단한 우정이지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친구의 마지막 부탁, 즉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그 말에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생각해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명예? 친구에게 자신이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자신은 명예를 더렵혀졌다 여겼던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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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광복 이후 우리 역사에 몇 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그 대통령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통령은 단 한 명이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서거 당시 나는 일본의 사이타마현의 한 맨션 안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교환학생 중이었고, 어머니로부터의 인터넷 전화에 잠이 깼고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누워있던 내 몸은 일으켜세워졌다. 누군가 일으켜 세운 듯 했다. 티비를 틀었고, 일본 뉴스에서도 그 사람의 서거 소식이 특종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 후 몇 일 간, 애먼 줄담배만 태웠다. 왜 그런 선택을 하였을까. 친인척 비리가 있다는 검찰의 발표. 그리고 검찰 소환.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 검찰 소환일 뿐이었다. 민주화운동을 거쳐 국회의원 그리고 대통령까지. 독재 시대를 끝내려는 노력과 다음 시대를 새롭게 만들려는 노력을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해왔던 인물. 아마 그는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통감(痛感)했을 것이다. 자신의 집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 바위에 서서 죽음으로써 더럽혀진 명예를 회복하고 살아남아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명예가 무엇인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명예가 무엇인지를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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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6년 지금. ‘명예로운 퇴진이라는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혼란을 막고 안정적인 방법을 찾는다는 그 사람의 사전에는 분명 두 글자가 없다. 나폴레옹의 사전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으로 유명하듯 그 사람에게는 제목으로 적은 이 두 글자, “명예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명예란 무엇일까. 지키고자 한다면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누구의 명예와 누구의 명예가 대립한다면 무엇을 지켜야할까. 국가의 명예와 개인의 명예가 충돌한다면 무엇을 지켜야 할까. 그 사람에게는 지킬 것이 없으니 충돌할 것도 없는 것일까. 하지만 누군가의 명예는 분명 훼손당하고 있다. 다름 아닌 국민이다. 국민의 명예, 국가의 명예 그리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명예는 난자(亂刺)당하고 조리돌림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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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요.”라고 말했다는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와네트. 하지만 사료에서는 그녀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 한다. 오스트리아 출생.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일한 여제이자 전쟁을 통해 자신의 왕위를 지켜낸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외로웠을 것이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했었던 적이었던 프랑스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시집을 가야했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자신의 남편과 함께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성공을 거둔다. 시민들의 명예를 위해, 시민들의 빵을 위해, 시민들의 권리를 위해 두 사람은 명예를 빼앗겼고 그것은 역사로 남았다. 시민혁명의 성공의 역사로, 시민들의 명예가 지켜졌던 첫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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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 어떤 명예가 남아있을까. 남아 있다면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그것을 갖지 못한 단 한 사람에게 어떤 책임을 지도록 할 수 있을까. 세대가 변하고 시대가 흘러도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 그동안 살아있는 우리는, 고통스럽더라도 지켜내야 한다. 한 명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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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8. 22:25 내 생각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애석하게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올라갈 때 시험을 본 마지막 세대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내가 살던 경남 마산지역에서는 2000년을 마지막으로 '연합고사'가 폐지되었고 그 이후에는 중학교 내신성적 만으로 고등학교에 배정받아 들어갔다. 나와 같은 시점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내신과 연합고사 모두가 반영되는, 걸쳐진- 다시 말하면 재수 없는 시절의 친구들이었다.


 

연합고사가 중학교 3학년 말에 있다 보니, 3의 시작은 고3만큼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비장한 느낌이 돌았다. 실질적으로 학교에서 배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다 배웠다. 그리고 중31년 간은 문제집을 교재로 하여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풀거나 한 달에 한 번 혹은 2주에 한 번씩 지속적으로 있는 사설 모의고사를 풀어나가는 압박의 연속이었다.


 

모의고사는 말 그대로 모의고사였다. 학교 성적에 반영되지도 또 고등학교를 들어가는 연합고사에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당시만 해도 체벌이 너무도 당연했으므로 모의고사 '점수 하락'은 곧 '매 타작'을 의미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교육에 대한 철학도 있으시고 합리적인 분이셨지만, 성적에 있어서는 엄격했다. 그래서인지 교실의 밀대 자루는 수시로 교체되었고, 새로운 밀대자루를 사야하는 몫은 그 밀대 자루로 맞다가 부러뜨린(?) 친구의 몫이었다.

 


맞기 싫다는 이유로, 같은 반 친구 몇몇(혹은 많은)은 모의고사를 치르는 중에도 컨닝을 했다. 애초에 모의고사인 만큼 선생님께서는 문제지를 나눠주신 후 크게 감독에 신경을 쓰시지 않읫고, 교실을 나가셨기에 컨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양심 뿐이었다. 하지만 중3의 친구들은 그 양심의 참으로 얕았고 또 동시에 습자지처럼 얇아 언제나 바닥이 보였고 또 쉽게 훼손되었다.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교실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되었다. 서로 답을 훔쳐보기에 바빴고, 그러던 사이에서도 답을 너무 많이 맞히게 되면 의심을 살 수 있으니 일부러 몇 문제씩은 틀려(?) 가며 시험이 끝난 후 몇 대를 맞을 것인지를 스스로 조율했다.

 


나는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컨닝을 하지는 않았다. 맞기 싫어서 라기 보다 굳이하기 싫었던 것이 가장 컸다. 어차피 모의고사였고, 점수가 떨어져 맞는다면 그것 또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그 당시에는 생각했다. 또 나름 목표한 고등학교가 있었기에, 실전처럼 열심히 해보고자 했던 마음도 있었다. 물론 모의고사는 '너무' 자주 있었지만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모의고사가 끝나면, 우리 교실뿐만 아니라 전체 3학년 교실이 장례식장이 된 듯 했다. 적막한 즈음, 선생님께서 답안지를 들고 들어오셔서 그것을 나눠주셨다. 자기 시험지를 자신이 메기면 틀린 것도 맞다고 할 수 있기에 무작위로 친구의 시험지를 메기도록 했다. 모든 답을 메기고 난 뒤, 자신의 것을 찾아든 아이들의 표정은 한 명도 밝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회초리(라고 적기에는 두꺼웠지만.. 사실은 몽둥이)를 우선 교탁에 올려놓으시고, 자신의 직전 모의고사 점수와 이번 모의고사 점수를 함께 종이에 적어 교탁 위에 올려놓으라 하셨다. 아이들은 자신의 사망선고를 하는 유령 의사처럼 하나씩 그 종이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이후는 상상할 수 있는 그대로다. 몇몇은 울며 맞으며 빌었고, 몇몇은 부들거리면서도 참았고, 극히 소수 몇몇은 고개를 숙인 채 이번에는 맞지 않았음을 안도했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모의고사를 치르고 맞기 싫다는 그 욕망으로, 맞는 것을 피하고 싶어 노력했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누구든 몇 대는 맞기 마련이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완벽히 벗어났다고 할 사람도 또 다른 실수를 했다. 그때에도 생각했고, 2016년 지금도 생각하는 것이 있다.


 

잠시의 고통을 잊기 위해 진정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망각하고 현재에만 매몰되어 버리면, 전체가 무너져 버린다.

 


그 무너져 버린 어떤 것이란, 중학생 시절의 우리에겐 고등학교 입시가 될 수도 있고, 연인에게 하는 사소한 거짓말이 불러일으킨 이별일 수도 있고, 크게는 정치인이 자신의 당리당략에 빠져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국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의 한국은, 중학교 3학년 당시의 어린 친구들보다 못한 듯하다. 누구나 당장의 비난과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정의감은 시궁창에, 연대의식은 쓰레기통에, 공감은 변기에 처박아 둔 듯 하다. 지금 이 시점이든, 아니면 과거든 미래든 그 상태 자체가 결과인 것은 없다. 거의 모든 것은 과정이다. 결과 같은 과정이 있고 과정인 것이 분명하지만 결과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하지만 몇몇 정치인들 혹은 관료들은 지금이 자신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인 양, 과정이 아닌 결과로서의 향유될 어떤 것인양 마음껏 그것을 누리고 있다. 그 근저에는 권력에 대한 확신뿐만 아니라 국민을 무시하는 아주 더러운 태도도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비리나 부정의 그리고 각자도생을 보면서,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없고 특히 그 피하고 싶은 대상이 국민의 비난이나 정권의 획득 실패나 비리 탄로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작금의 이런 망발들이 놓치고 있거나 또는 놓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권력이나 영예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실망이요 국가의 전체적인 질서를 무너뜨리게 만드는 것들이다.

 


선생님의 몽둥이보다 무서운 것은, 국민의 판단이다. 판단일 것이라 믿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장의 고통이나 비난을 피하고 싶은 그 치사하고 옹졸한 마음들에 들려주고 싶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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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8. 18:04 내 생각

"좋은 경험으로 끝내서는 안돼."

얼마 전부터 '4월 13일 총선' 관련 몇 가지 행사나 글에 내 이름을 올릴 기회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이기는 했지만, 딱히 할 일도 없었고 또 '정치'라는 분야가 20살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12년 간 내 공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기에 그 기회를 잡았다.

1월의 어느 날,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첫 번째 모임을 가졌다. 같은 기회를 잡은 사람들이 모였고, 나름대로 '정치'라는 범위 안팎에서 활동해오던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여성에 관해, 누군가는 NGO에 관해, 또 누군가는 진짜 정치에 뛰어들어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날 첫 모임에 우연히 참석한 사람도 있었다.

앞으로의 방향과 4월 13일이 되기 전에 해야할 일 등등을 정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기회를 잡은 사람들을 구경하러 온 한 명이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지금 이런 활동들이 다 좋은 경험이 되겠죠."

나는 그 말을 듣고, 정색했다. 원래도 인상이 좀 딱딱한 편이지만, 정색을 하면 더 험악해지는 탓에 내 정색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느껴진 모양이다. 나는 내가 정색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회를 잡아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있지만, 이 자리에 올 수도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하고 있는 만큼 단지 좋은 경험으로 남아서는 안됩니다."

사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는 정책이 필요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것을 표현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아무리 많은 젊은 정치인 지망생들이 나온다 한들 그 사람들은 일부, 아니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에 있어서는, '좋은 경험'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는 지금의 경험이 다음 경험과 성장을 위한 발판일 수 있겠지만, 기회를 잡은 사람이나 그것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해야 한다. 더욱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최대로 반영되게 해야 한다.

정치에서 뿐만 아니다. 해외봉사활동이나 국내봉사활동이 '스펙'의 중요한 한 꼭지가 되었다고들 한다. 언제가 '해외봉사활동, 아무나 가지마라' 라는 글에서 적은 적도 있지만 봉사활동은 나를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 봉사의 대상이 되는 이에게 있어 우리를 만나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생존이다. 우리는 생존 앞에 스펙을 이야기하고, 경험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봉사활동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행이나 대학원 진학 등 다양한 것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경험?

잘 모르겠다. 어떤 경험이 추억으로 남기에는 그 추억에 담아야 하는 의미가 너무 많은 시대다. 그런 시대를 살며, 경험을 쌓았다 자위하기 보다 '나를 통한 최선'이나 '기회를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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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3. 02:50 카테고리 없음

갤러리 민주주의 2013.7.3.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민주주의가 지속된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정체(政體)로서 익숙한 것은 군주제이거나 귀족합의체이다. 로마 제국이 그랬고, 프랑스 혁명 전 프랑스와 혁명 후 프랑스가 그랬다. 심지어 세계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난 이후에도 많은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정체로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 역사 내에서도 1945년 이전까지 민주주의 정체가 있었던 적은 없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는 '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 체계임을 인정하고 또 그것을 지켜나가고자 했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고종의 '대한제국'의 이름을 닮아있는 국가에서 그렇다. 


3년간의 미군정기, 한국전쟁 발발 전 2년 동안의 민주주의, 한국전쟁 3년, 이승만 하야 이후의 의원내각제의 짧은 민주주의 이후, 박정희 독재정치, 전두환 독재정치 그리고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거의 절반 정도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국가체제를 유지해왔다. 이런 대한민국에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있어, 그 한 마디를 남길까 한다. 


그것은 '갤러리 민주주의'다. 


갤러리는 '화랑'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다시 말해 그림을 볼 수 있는 곳, 곧 갤러리인 것이다. 그리고 갤러리라는 용어는 골프 시합에서도 등장하는데, 선수들을 구경하고 있는 수많은 관객들을 갤러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갤러리는 미술관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미술관에서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은 자신이 마음에 든 미술 작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살 수 없다. 하지만 '갤러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 가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살 수 있다. 이 갤러리가 '갤러리 민주주의'의 갤러리다. 


우리는 민주주의 정체 내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권리를 행사하는 순간은 자주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대통령 선거는 5년에 한 번, 국회의원 선거는 4년에 한 번이다. 어떤 정치학자가 선거 기간에만 우리가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는 순간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고 했지만 이런 표현은 과격하다고 본다. 대신, 본인이 보기에는 선거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그것을 지켜만 보는 그림의 주인이자 갤러리의 손님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자신이 산 그림이 제 값에 팔릴 때나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자신이 소중한 한 표를 주고 산 그림 혹은 인물이 좋은 그림이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의 생각이 다른 경우에는, 그저 그 한 표를 버려야만 한다. 


갤러리 민주주의.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정해진 기간에만 통용되는 것이므로 나머지 기간에는 관조자로서 그 역할을 하는 국민들이 대다수인 민주주의, 이런 현상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든 없든 관계 없이 주인된 입장으로서 그것의 관리 책임을 묻지 않으니 관심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하는 정쟁(政爭)이나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갈등에 대해서 국민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팔짱을 낀 채, 몸을 뒤로 빼 멀찍이서 그것을 구경만 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나 관련된 업계의 정책이나 이슈가 나오면 심하게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나서 그 몸을 일으킨 것을 후회하며 다시금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이 없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이 있지만 그 의견을 말하지 않을 뿐더러, 말할 기회를 준다고 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고선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고 푸념하고 있다. 골프 시합에서 그렇지만, 자신이 골프 선수보다는 골프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갤러리들은 박수를 치거나 조용히 다음 홀로 이동한다. 그런데 정치란 경기는, 조용히 이동하지도 않으면서 막상 경기장으로 올려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더라도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자신은 단지 그 갤러리에서의 입장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갤러리 좌석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해도 저것보다 잘하겠다.'


갤러리 민주주의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정치적 이슈나 정쟁에는 직접적으로 뛰어들지 않으면서 입만 나불거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확한 정보나 생각을 심어준다. 그리고 분명 정치 섹터에 나아가지 않더라도 참여할 수 있는 분야가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무시하고, 자신이 설 곳은 저런 마이너 리그가 아니라, 메이저 리그라며 스스로의 가치를 근거없이 높이고 있다. 그런 와중에 민주주의는 그 활력이나 원칙을 잃어가고 있다. 


차라리, 아예 관심을 끄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플라톤이 '철인(哲人)정치'를 읊조리기엔 현 정치인들의 도덕성이 바닥을 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도움도 되지 않고, 시끄럽기만 한 갤러리들을 물리치는 것이 어떤 경기든, 어떤 정치상황이든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말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나중에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이 문단만을 발췌해서, 내가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느니 하는 왜곡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내가 40대 50대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없기를 바란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그렇지만, 갤러리가 빠지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없기에, 대의(代意) 민주주의를 형성했고, 그것의 대표가 국회의원이다. 갤러리들이 빠지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되, 갤러리 민주주의는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자 한 것은 아니다. 


갤러리 민주주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민중들이 자신들이 갤러리가 아님을 확실히 천명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적는다. 고매한 척 앉아서 팔짱끼고 있지말고, 부정의(不正義)를 일삼는 정치 세력에게 무엇이 정의인지 소리 높여,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이야기를 해야한다. 그리고 혼자서 힘든 경우에는 다른 사람과의 연대를 통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에서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 더욱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또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이것이 갤러리 민주주의가 사라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자 해결책이다.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SNS의 등장으로 비교적 과거보다 자신의 의견을 많은 사람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큰 확산효과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예전처럼 등사기를 돌려가며, 첩보 작전과 유사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던 시기는 지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입 밖으로 내거나 공개적인 곳에 올리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떻게 변질되고 왜곡되고 곡해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민주주의 상황은 좋지 않음이 틀림이 없다.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의견을 적고 알리는 데 대해서 조롱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지위나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권위에 따라 그 파급효과가 달라지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이런 행태는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강력히 주장해본다. 특히 20대에 만연하고 있는 '갤러리 민주주의' 현상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이 나 혼자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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