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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2.02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2. 2014.09.27 "평화를 이야기할 때"
2016. 12. 2. 20:55 내 생각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2016.12.02.

 

대부분의 친구들은, 졸업을 할 초등학교 인근의 중학교를 갔다. 하지만 나는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체학급에서 단 10명 만이 진학을 했던 마산중학교에 지원했고 어렵지 않게 입학이 결정되었다. 굳이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가 아니었어도, 유일하게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는 것도 큰 결정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중학교 진학이 결정되고 난 뒤, 내가 처음 한 일은 머리카락을 짧은 스포츠로 깎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두발자유화는 꿈 같은 소리였다.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나는 스포츠 머리에 익숙해져야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되려 어색한 머리가 되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앨범에는 정말 이상한 모습으로 찍힌 사진이 떡 하니 남았다. 졸업앨범 사진을 정식으로 촬영하였지만,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며 복도에서 찍힌 스포츠 머리의 내 모습은 지금 봐도 우스꽝스럽다. 거기다가 그날 입고 있던 옷이 하늘색 면 셔츠였다. , 하늘색이라니. 가능하다면 같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동기들의 앨범을 모두 몰수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그리고 이어 두 번째로 내가 중학교 진학을 위해 한 일은 교복을 맞추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특이한 선택을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교복 브랜드는, 스마트와 엘리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교복판매점에서 중학교 교복을 맞추게 되었다. 이것도 형이 그곳에서 맞추었기 때문이었고, 브랜드가 없는 대신 그만큼 저렴했다는 것이 이유일 수 있겠다.

 

처음 교복을 받아 온 날이었다. 마산중학교 교복은 정말 특징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교복이었다. 남색 상의에 같은 색깔의 하의. 단추에는 한자로 적힌 중학교를 뜻하는 중()글자가 금색으로 반짝였고, 상의소매에도 같은 형태이지만 크기가 작은 단추들이 3개씩 붙어 있었다. 흰 셔츠는 분명 면이라고 했지만, 이상하게 삼베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칠었다기 보다 삼베처럼 실 한 올 한 올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징도 없고, 고급 교복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 교복을 나는 매일, 입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한참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중학생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질 듯 보였고, 정장 형태로 된 교복을 입으면 마치 내가 어른이 된 듯해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하교 한 뒤 교복을 집안에서 입고 다니는 이런 나를 보며, 내가 곧 들어가게 될 마산중학교 교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온 형이 나에게 한 마디 툭 던졌다.

 

그거, 입기 싫어도 입어야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지금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의미였고, 이렇게 교복을 입고 있으면 번듯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척들은 나의 중학교 입학을 축하해주었고, 내게 기대하는 것들을 이전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중학교 교복을 입을 때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며 멋진 중학생이 되어야지, 하며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형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게 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1년이 지나는 것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선배들은 무서웠고, 선생님들은 더욱 무서웠다. 체벌이 당연했던 시절이라 사소한 잘못에도 선생님들은 가볍게 매를 들었지만, 그 매는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할 시점이 되어서는 체벌은, 마치 경주마를 다그치듯 너희를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양 뺨에서부터 발바닥까지 이어졌다. 교복을 입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중학생이라는 신분 뿐이었지만, 그에 따르는 의무는 자질구레한 것부터 때론 억울하다 느껴질 정도로 큰 것까지 많고 많았다. 그 결과 교복은, 매주 주말 다시 입고 싶지 않은 것이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교복을 입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었다. 하늘색(난 하늘색을 좋아하는 것인가...) 운동복을 입고 졸업식을 보내며, 고등학교 교복에 대한 환상 따위는 이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고등학교에 또 올라가는 것.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히 가야한다는 분위기에 취해 대학을 가는 것. 물론 당연하지 않았던 뭇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내가 살았던 당시에는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오며, 그 의미를 만끽했던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군대에 들어가고자 했지만 시력 탓에 공익을 가게 되며 겪게 되었던 차별 혹은 비판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고, 30살이 넘으며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사회적 의무들은 나도 모르게 나를 옥죄었다. 그리고 의무에 허덕인 탓에 권리는 간신히 그리고 어렵게 하나씩 얻어갔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중고등학교 입학이 그럴 것이고, 대학 입학이 그럴 것이고 취직, 결혼, 출산 등이 그럴 것이다. 이런 다양한 능선들이 눈 앞에 있을 때 그것을 정복하든 우회하든 그것을 선택함에 있어 책임은 다양하게 삶을 파고든다.

 

평범한 사람이 이럴진대 다른 이들보다 특별한 지위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책임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작게는 카페나 구멍가게의 사장에서부터 크게는 한 나라의 대표라고 부를 수 있는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쉽게 얻은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과는 별도로 그것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많은 책임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카페 사장은 손님들을 위해 맛있는 커피를 준비해야 하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공정하게 국민들의 요구를 잘 받아들이고, 정의롭게 국가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원한 지위에 해당하는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복은, 단지 교복일 뿐이었다. 그것을 입고 있다고 중학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벗었다고 중학생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중학생이면 중학생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고등학생이면 또 그 나름의 의무와 권리가 생기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가지로 가족 안에서, 지역 안에서, 국가 안에서 그런 의무와 권리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해 교복을 벗고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그것이 주는 지위와 권리, 권한을 버리고자 한다면 자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한 손실이나 권리의 상실은 자신의 책임 범위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은 원하지 않았어도, 큰 잘못이나 학교나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사람은 퇴학을 당하기도 한다. 그 교복을 입기 위해서 아무리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해도 또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해도, 그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 또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수치심을 준다면 벗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이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군인, 어머니, 아버지, 국회의원, 총리, 대통령 등 다양한 사회적지위와 직업들이 존재한다. 되고 싶어 된 것이든 되고 싶지 않았음에도 된 것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벗고 싶어질 때가 있듯이, 마찬가지로 벗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우선 어울리지 않고, 그것을 입고 있음으로 인해 사회의 구성원들이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낄 때는 더욱 그렇다.

 

중학교를 입학하기 전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중학교 교복을 입어가며 설레고 있었을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을 입을 수 있는 것과는 별도로, 입게 되었으면 최선을 다하길. 최소한 그것을 입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또 친구들에게는 부끄럽지 않게 하길,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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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27. 02:40 카테고리 없음

"평화를 이야기할 때"  2014.09.27.


군대 생활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를 담은 글을 작년 5월 경에 적었다. (그 글은 이미 소개하기도 했고 내 블로그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읽어보시길 바란다.) 핵심적인 주장은 이랬다. 군대 문화라는 것은 군대 내부의 문화여야만 하지 예능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사회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사회가 정체되고 있는 원인 중에 '개인의 창의성 부재'가 큰 몫을 담당한다고 하면 이 창의성을 말살시키고 있는 문화가 군대 문화인 만큼 군대 문화의 사회적 유연화 역시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선 얼마 전, 군대 내의 폭행으로 인한 사망사건과 성추행 사건이 연달아 밝혀지면서 내가 비판했던 근거와는 다른 논법으로 '진짜 사나이'의 폐지 주장이 있었다. 실제 군대는 사람이 맞아 죽어 나가는 곳인데 TV에서 보는 군대는 너무나 평화롭고 개인의 내적 안정이 보장되어 있는 듯하기에 폐지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런 폐지에 몰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된 것이 '여군 특집'이다. '진짜 사나이' 제작진은 분명 지난 특집을 계기로 한숨을 돌렸을 것이다. 시청률을 회복한 정도가 아니라 기록에 남을 만한 시청률을 남겼다고 하니, 야구 감독으로 치면 구원투수의 등판이 매우 적절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여군 특집은 본인도 재밌게 보았다. 군대 문화의 사회적 반영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기 보다 그들이 좌충우돌 그리고 여자들 간의 진한 우정과 같은 것이 엿보였기에 새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배우 라미란과 홍은희는 아들을 둔 것으로 방송에 비춰진다. 아마 이 아들들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향후 입대를 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라미란과 홍은희 이 두 사람에게 군대는 아들이 반드시 한 번은 거쳐 지나가야 할 관문일 수 있다.


뜬금없이 여배우들의 아들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들이 군대를 가게 되었을 당시가 지금과 같다면, 결코 우리는 더욱 나은 군대를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고 공식적인 '휴전' 상태에서 단 한걸음도 진보하지 못할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군대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과 의견이 존재한다. 적군의 도발을 막기 위한 억지력으로서의 군대, 자국의 국민과 재산을 방위하기 위한 수동적 목적의 군대 또는타국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기 위한 적극적 목적의 군대, 마지막으로 국제사회 내에서 자주적인 국방력을 갖추는 것이 국가의 위신에 걸맞는 행위라는 인식에 의거한 보유 등 다양한 보유 목적이 있을 수 있다. 일본의 경우는 수동적 목적에서 창설한 자위대를 적극적 목적으로 변경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고, 한국의 경우는 억지력으로서의 군대로서 주한미군과 그 보조를 맞추고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군대의 존재 목적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목적은 부수적이라고 밖에 판단할 수 박에 없다. 본인의 의견은 군대의 존재 목적은 "평화"를 위해서라 보인다.. 관념적 개념이 아닌, 실체적 평화 즉 외적으로는 자국에 공격이나 무력 행사를 할 의지나 시도 자체가 사라진 상황이며, 내적으로(국내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적에 대한 관용과 평화에의 경향성 나아가 사상적인 갈등이 해소된 상황이다.


평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들은 역사 속에서 경주되어왔지만, 거의 대부분의 노력은 실패했다. 평화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국가별로 달랐던 것이 주된 원인임과 동시에 자국 위주의 평화를 무력으로 이루고자 했던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1945년 국제연합이 창설되고 난 뒤, 전쟁에 대한 법이 마련되기도 했고 인종학살을 금지하는 조약이나 전쟁 포로에 대한 대우에 관한 제네바 협약 등 국제 사회는 국가별로 상이한 평화에 대한 정의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았다. 그 문제가 남은 공간은 바로 '국제'가 아닌 '국내'였다.


다시 한국의 군대, 아니 한국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시점이 되었다. 한국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진보주의자'로 구분되어진다. 평화의 주체가 대한민국으로 설정되고 평화의 객체 즉 평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에 있는 주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이 된다. 북한과의 평화를 위한 방법은 과거 박정희 정권부터 시작하여 노태우의 북방정책, 김대중-노무현의 햇볕 정책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선핵포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나 그 실효성은 오리무중인 것이 현실이다. 북한과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으면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오리가 아니라 백리무중일 수 있으니 여전히 우리에게 '평화'라는 단어는 정치 지형에서 일부를 대표하는 양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게 옳은 것인가.


평화를 이야기함에 있어 진보와 보수는 동일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 그 목적은 다시 평화다. 앞서 언급했듯이 내적 평화와 외적 평화를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는 오히려 평화를 카오스로 만듦으로서 정권 유지 혹은 정권 탈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끊임없이 군대는 그 본연의 목적인 평화의 달성에 이르는 길은 찾지 못하고, 과거 조선 말기에 일어났던 '군역의 요역화' 가 일어나기도 하고 군대의 일원인 군인조차 지키기 못하는 지경에 빠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의 대상이 반드시 북한일 필요는 없다. 북한에 대한 평화에 골몰하고 있는 사이, 군대는 결국 고인 물이 되었고 고인 물에 대한 자정 작용을 해야할 정치는 그 고인물을 퍼마시며 자기의 배를 부르게만 하고 있었다. 북한에 한정된 평화로는 더이상 새로운 군대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지 못한다. 아니, 새로워질 필요까지 없을지도 모른다. 새롭지는 않을 지언정 기존의 문제점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할 시도라도 해야할 터인데 그 시도조차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의 대상은 '세계'가 되어야 한다. '전지구적 평화'라는 구색만 좋은 슬로건이 아닌 과거 발칸 반도의 지위를 그대로 물려받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내-외적 평화가 잘 구축되도록 해야한다.


그래서 지금 평화학이 필요하다. 평화에 대한 담론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을 경우 결국 기존의 군대는 유지될 수 밖에 없다. 군대 내부에서 평화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전지구적 평화에의 여정을 준비해야할 뿐아니라 군대 외부, 즉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도 평화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단지 한시적인 논의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평화에의 이상적 지향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정부들에서 이루어졌던 다양한 대북정책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 국제 사회 내에서의 대한민국의 지위에 있어서 우리가 그다지 성공적이었거나 높은 지위를 형성하지 못했던 것은 결국 '평화에 대한 아이디어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 아이디어를 짜내어도 모자랄 시간에 이미 구축된 정치 지형의 패러다임에서 네편-내편을 나누어 싸우고만 있었던 것이다.


평화학.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국제 사회의 평화를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진짜 사나이'가 가지는 긍정적인 역할일지 모른다. 군대의 존재를 부각시킴으로써 군대의 필요성과 목적 그리고 그것이 지향해야 할 방향 등에 대한 국민적인 토론이 이뤄진다면 평화학의 기초는 마련될 것이다. 기초 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이 우수하기 뛰어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평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내 가족의 이야기이며 내 아들의 이야기이며 '여군 특집'에 나왔듯이 내 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 평화학이자 평화이다.


그 어느 때보다 평화학 그리고 평화에 대한 일상적 담론이 형성되기 좋은 시점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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