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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12.02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2. 2016.11.30 명예
  3. 2016.11.27 씨발
  4. 2013.07.03 갤러리 민주주의
2016. 12. 2. 20:55 내 생각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2016.12.02.

 

대부분의 친구들은, 졸업을 할 초등학교 인근의 중학교를 갔다. 하지만 나는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체학급에서 단 10명 만이 진학을 했던 마산중학교에 지원했고 어렵지 않게 입학이 결정되었다. 굳이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가 아니었어도, 유일하게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는 것도 큰 결정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중학교 진학이 결정되고 난 뒤, 내가 처음 한 일은 머리카락을 짧은 스포츠로 깎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두발자유화는 꿈 같은 소리였다.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나는 스포츠 머리에 익숙해져야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되려 어색한 머리가 되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앨범에는 정말 이상한 모습으로 찍힌 사진이 떡 하니 남았다. 졸업앨범 사진을 정식으로 촬영하였지만,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며 복도에서 찍힌 스포츠 머리의 내 모습은 지금 봐도 우스꽝스럽다. 거기다가 그날 입고 있던 옷이 하늘색 면 셔츠였다. , 하늘색이라니. 가능하다면 같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동기들의 앨범을 모두 몰수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그리고 이어 두 번째로 내가 중학교 진학을 위해 한 일은 교복을 맞추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특이한 선택을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교복 브랜드는, 스마트와 엘리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교복판매점에서 중학교 교복을 맞추게 되었다. 이것도 형이 그곳에서 맞추었기 때문이었고, 브랜드가 없는 대신 그만큼 저렴했다는 것이 이유일 수 있겠다.

 

처음 교복을 받아 온 날이었다. 마산중학교 교복은 정말 특징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교복이었다. 남색 상의에 같은 색깔의 하의. 단추에는 한자로 적힌 중학교를 뜻하는 중()글자가 금색으로 반짝였고, 상의소매에도 같은 형태이지만 크기가 작은 단추들이 3개씩 붙어 있었다. 흰 셔츠는 분명 면이라고 했지만, 이상하게 삼베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칠었다기 보다 삼베처럼 실 한 올 한 올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징도 없고, 고급 교복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 교복을 나는 매일, 입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한참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중학생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질 듯 보였고, 정장 형태로 된 교복을 입으면 마치 내가 어른이 된 듯해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하교 한 뒤 교복을 집안에서 입고 다니는 이런 나를 보며, 내가 곧 들어가게 될 마산중학교 교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온 형이 나에게 한 마디 툭 던졌다.

 

그거, 입기 싫어도 입어야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지금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의미였고, 이렇게 교복을 입고 있으면 번듯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척들은 나의 중학교 입학을 축하해주었고, 내게 기대하는 것들을 이전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중학교 교복을 입을 때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며 멋진 중학생이 되어야지, 하며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형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게 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1년이 지나는 것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선배들은 무서웠고, 선생님들은 더욱 무서웠다. 체벌이 당연했던 시절이라 사소한 잘못에도 선생님들은 가볍게 매를 들었지만, 그 매는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할 시점이 되어서는 체벌은, 마치 경주마를 다그치듯 너희를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양 뺨에서부터 발바닥까지 이어졌다. 교복을 입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중학생이라는 신분 뿐이었지만, 그에 따르는 의무는 자질구레한 것부터 때론 억울하다 느껴질 정도로 큰 것까지 많고 많았다. 그 결과 교복은, 매주 주말 다시 입고 싶지 않은 것이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교복을 입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었다. 하늘색(난 하늘색을 좋아하는 것인가...) 운동복을 입고 졸업식을 보내며, 고등학교 교복에 대한 환상 따위는 이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고등학교에 또 올라가는 것.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히 가야한다는 분위기에 취해 대학을 가는 것. 물론 당연하지 않았던 뭇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내가 살았던 당시에는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오며, 그 의미를 만끽했던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군대에 들어가고자 했지만 시력 탓에 공익을 가게 되며 겪게 되었던 차별 혹은 비판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고, 30살이 넘으며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사회적 의무들은 나도 모르게 나를 옥죄었다. 그리고 의무에 허덕인 탓에 권리는 간신히 그리고 어렵게 하나씩 얻어갔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중고등학교 입학이 그럴 것이고, 대학 입학이 그럴 것이고 취직, 결혼, 출산 등이 그럴 것이다. 이런 다양한 능선들이 눈 앞에 있을 때 그것을 정복하든 우회하든 그것을 선택함에 있어 책임은 다양하게 삶을 파고든다.

 

평범한 사람이 이럴진대 다른 이들보다 특별한 지위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책임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작게는 카페나 구멍가게의 사장에서부터 크게는 한 나라의 대표라고 부를 수 있는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쉽게 얻은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과는 별도로 그것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많은 책임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카페 사장은 손님들을 위해 맛있는 커피를 준비해야 하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공정하게 국민들의 요구를 잘 받아들이고, 정의롭게 국가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원한 지위에 해당하는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복은, 단지 교복일 뿐이었다. 그것을 입고 있다고 중학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벗었다고 중학생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중학생이면 중학생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고등학생이면 또 그 나름의 의무와 권리가 생기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가지로 가족 안에서, 지역 안에서, 국가 안에서 그런 의무와 권리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해 교복을 벗고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그것이 주는 지위와 권리, 권한을 버리고자 한다면 자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한 손실이나 권리의 상실은 자신의 책임 범위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은 원하지 않았어도, 큰 잘못이나 학교나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사람은 퇴학을 당하기도 한다. 그 교복을 입기 위해서 아무리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해도 또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해도, 그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 또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수치심을 준다면 벗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이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군인, 어머니, 아버지, 국회의원, 총리, 대통령 등 다양한 사회적지위와 직업들이 존재한다. 되고 싶어 된 것이든 되고 싶지 않았음에도 된 것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벗고 싶어질 때가 있듯이, 마찬가지로 벗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우선 어울리지 않고, 그것을 입고 있음으로 인해 사회의 구성원들이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낄 때는 더욱 그렇다.

 

중학교를 입학하기 전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중학교 교복을 입어가며 설레고 있었을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을 입을 수 있는 것과는 별도로, 입게 되었으면 최선을 다하길. 최소한 그것을 입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또 친구들에게는 부끄럽지 않게 하길,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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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30. 01:13 내 생각

명예”   20161130

 

두 명의 이름이 등장했었다.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중국의 옛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은 친구였다. 한 명의 친구가 다른 한 친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마치며 말하길,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달라.” 부탁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친구는, 자살했다. 왜 자살했을까.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친구의 비밀을 영원히 지켜주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이야기. 대단한 우정이지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친구의 마지막 부탁, 즉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그 말에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생각해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명예? 친구에게 자신이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자신은 명예를 더렵혀졌다 여겼던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

 

1948년 광복 이후 우리 역사에 몇 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그 대통령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통령은 단 한 명이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서거 당시 나는 일본의 사이타마현의 한 맨션 안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교환학생 중이었고, 어머니로부터의 인터넷 전화에 잠이 깼고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누워있던 내 몸은 일으켜세워졌다. 누군가 일으켜 세운 듯 했다. 티비를 틀었고, 일본 뉴스에서도 그 사람의 서거 소식이 특종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 후 몇 일 간, 애먼 줄담배만 태웠다. 왜 그런 선택을 하였을까. 친인척 비리가 있다는 검찰의 발표. 그리고 검찰 소환.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 검찰 소환일 뿐이었다. 민주화운동을 거쳐 국회의원 그리고 대통령까지. 독재 시대를 끝내려는 노력과 다음 시대를 새롭게 만들려는 노력을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해왔던 인물. 아마 그는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통감(痛感)했을 것이다. 자신의 집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 바위에 서서 죽음으로써 더럽혀진 명예를 회복하고 살아남아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명예가 무엇인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명예가 무엇인지를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

 

그리고 2016년 지금. ‘명예로운 퇴진이라는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혼란을 막고 안정적인 방법을 찾는다는 그 사람의 사전에는 분명 두 글자가 없다. 나폴레옹의 사전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으로 유명하듯 그 사람에게는 제목으로 적은 이 두 글자, “명예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명예란 무엇일까. 지키고자 한다면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누구의 명예와 누구의 명예가 대립한다면 무엇을 지켜야할까. 국가의 명예와 개인의 명예가 충돌한다면 무엇을 지켜야 할까. 그 사람에게는 지킬 것이 없으니 충돌할 것도 없는 것일까. 하지만 누군가의 명예는 분명 훼손당하고 있다. 다름 아닌 국민이다. 국민의 명예, 국가의 명예 그리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명예는 난자(亂刺)당하고 조리돌림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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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요.”라고 말했다는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와네트. 하지만 사료에서는 그녀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 한다. 오스트리아 출생.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일한 여제이자 전쟁을 통해 자신의 왕위를 지켜낸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외로웠을 것이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했었던 적이었던 프랑스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시집을 가야했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자신의 남편과 함께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성공을 거둔다. 시민들의 명예를 위해, 시민들의 빵을 위해, 시민들의 권리를 위해 두 사람은 명예를 빼앗겼고 그것은 역사로 남았다. 시민혁명의 성공의 역사로, 시민들의 명예가 지켜졌던 첫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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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 어떤 명예가 남아있을까. 남아 있다면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그것을 갖지 못한 단 한 사람에게 어떤 책임을 지도록 할 수 있을까. 세대가 변하고 시대가 흘러도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 그동안 살아있는 우리는, 고통스럽더라도 지켜내야 한다. 한 명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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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7. 20:23 내 생각

"씨발" 20161124


어머니. 제목을 보시고 놀라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적고 싶은 글은 제목과 관련된 글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누군가를 비난하지도 해코지도 하지 않는 글입니다.


당분간 내년의 시험 준비 때문에 글을 적는 것을 멈추려했던 저에게, 아들의 글을 읽는 재미가 있으셨다는 말씀에 다시 하얀 화면을 마주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의 겨울이었습니다. 연도로 따지면 2000년이겠네요.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전, 저는 학교에서 꽤나 싸움을 많이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싸움의 이유는 별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이 저에게 '개새끼'라고 부르면 저는 무조건 싸움을 했습니다. 개새끼라는 것이 저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욕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새끼'라는 욕을 들으면, 저는 으레 '우리 엄마아빠가 개가?'라 하며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곤 했습니다. 제가 개새끼라는 말에 이런 반응을 한다는 것을 안 친구들은, 저에게 부러 시비를 걸기도 했습니다.


매번 이런 식이어서는,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어머니께 여쭈어보았습니다. "엄마, 학교에서 친구들이 내한테 개새끼라고 한다. 우쨰야 되노?" 어머니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그런 욕은 듣는 사람 잘못이 아니고, 하는 사람이 잘못이다. 니가 잘못한 게 없으면, 그런 욕 들어도 신경쓰지마라. 니가 나쁜게 아니니까." 저는 어머니의 그 말씀에 마음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선 당부하셨습니다. "니가 욕을 안하면 된다." 그랬습니다. 저 스스로 나쁜 말을 입에 담을 필요는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쉽게 풀리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개새끼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제목의 '씨발'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욕에 대한 문제들이 지나고, 중학교 3학년의 겨울이었습니다. 개새끼라 부르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나름의 논리를 가졌으나, 씨발은 아무리 찾아봐도 논리나 의미나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의 친구들은, 씨발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저 강해보이려 하거나 또는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썼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습관과 환경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도, 그렇다고 실질적인 효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만 거의 모든 친구들이 쓰는 씨발이라는 욕을 쓰지 않는 것이 어색해져갔습니다.


저는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씨발이라는 욕을 해도 될지, 하지 말아야 할지 말입니다. 고민의 과정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기간을 정해 씨발이라는 욕을 마음껏 써보기도 하고, 또 어떤 기간에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지내보기도 하였습니다. 욕을 하지 않는 기간에도 습관적으로 내뱉어지는 욕을 듣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욕을 하는 기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욕을 하는 순간의 마음을 잘 살폈습니다. 그때 저는 제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이건, 강해보이기 위해서이건 욕을 내뱉으면 그 누구보다 먼저 내가 먼저 듣게 되는 것이었고 그것은 제 마음에 울적함과 미안함을 안겼습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을 것이 분명했을 친구들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친구들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을테지만 말입니다.)


저는 이런저런의 고민의 결과로, 욕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너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욕을 안하네." 무슨 말인지, 순간 못알아들었다가도 '아, 내가 욕을 잘하게 생긴 얼굴이구나.' 하는 사실을 가끔 거울을 보다 깨닫곤 합니다. 농담입니다. 그래도 평소 욕을 잘 하지 않습니다. 욕이 정말 목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화가 나거나 울분에 차거나 묘한 쾌감을 느끼고 싶을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외치곤 하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해결이 되었구나, 싶으시겠지만 아직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욕을 하지 않아도, 친구들은 끊임없이 욕을 했습니다. 정말 끊임이 없었습니다. '아, 밥 잘먹었다. 씨발.', '날씨 드럽게 춥네, 씨발.' 등등이었습니다. 듣는 제 마음도 불편해지고 또 친구들 역시도 딱히 그렇게 기분 좋아 하며 욕을 하지는 않아보였습니다. 이런 친구들이야 웃으며 넘기거나 '욕하지 마라' 핀잔을 주고 넘기면 될 일이었지만, 또 다른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란, 바로 정말 저에게 진심을 담아 욕을 하는 경우였습니다. 감정이 맞지 않거나 서로의 인신공격 끝에 하는 그런 욕 말입니다. 이럴 때의 씨발은, 정말 씨발 같았습니다.


욕을 들어가며 푸닥거리 같은 싸움을 한 판 하고 난 뒤가 사실 더 어색했습니다. 어색했던 이유는, 제게 욕을 했던 친구와 저는 서로 사과를 하고 다시 친구 사이로 돌아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반 친구이거나 같은 학교 친구이거나 때론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얼굴을 치고 박고, 욕지거리를 단전 끝에서부터 올려 서로에게 내뱉던 적과 같은 친구와 다시 친해질 수 있을까,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며 지나가던 시간 중에, 다시 친구로 남아 거친 우정을 나눈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학교 복도에서 지나치며 얼굴을 보면서도 모른 척하고 인사조차 하지 않는, 쉽게 말해 절교를 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욕을 듣고 하는 것보다 더욱 불편한 마음이 남았습니다.


2016년 지금, 저는 다시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51.6%의 이야기입니다. 51.6%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받았던 투표율입니다. 어머니께서도 아시다시피 투표자의 반 이상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은 우리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투표 당시에는 51.6%였고, 이후 고정지지층은 35%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은 고정지지층 마저도 사라진 5%의 지지율을 3주째 유지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51.6%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왜 할까 싶기도 하실 겁니다.


씨발, 이라고 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만, 전 욕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욕을 듣고 하던 어렸을 당시보다 저는 지금 더욱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때문은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정착해온 이후, 국민은 누구나 선거권을 가지고 만 19세 이상이 되면 투표권을 가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투표권은 재산의 정도와 사는 지역에 관계없이 단 한 표 씩 국민에게 주어집니다.


저와 어머니는, 그런 민주주의의 선물이자 권리인 투표권을 가지고 박근혜 대통령을 뽑았던 51.6%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되기 전에는 35%의 고정지지층과 함께 살아야 했고, 지금은 아직도 남은 5%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지지층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을 수 있도록 도운 여당과 그에 속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한 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는 그 사람들은, 과거 자신이 얼마나 박근혜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지를 과시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이 사람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 날리고, 싸움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으로서 절교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어져야 하고, 어머니와 제가 사랑하는 주혁이와 혜빈이가 우리나라에서 꿈을 꾸고 수학여행을 가고,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라의 상황을 지금의 상황으로 만든 사람들을,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일부는 정치인이라는 이름으로 티비에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지요. 저는 그저 그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조용히 살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만, 그것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


어머니, 저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중학교 3학년 당시, 씨발이라는 욕을 할까 말까라는 고민을 했던 것보다 더욱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저와 싸움을 하고 절교를 했던 친구를 다시 만날 일은 생길지도 모르지만,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만든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는 않더라도 그들이 다시 권력을 잡고, 국민들을 괴롭힐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용서해야만 할까요? 제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누군가의 투표에 그 책임을 묻고 용서를 할 수 있는 사람이긴 할까요? 51.6%의 국민들은 편향된 언론과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국정원 선거개입 등으로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이 지금의 상황이 될 때까지 방관했고 오히려 그것을 도왔던 사람들을 저는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번의 계기를 통해서, 반성할 사람은 반성을 하고 각성할 사람은 각성을 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야 한 걸음이라도, 아니 반걸음이라도 나아지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머니, 제가 소심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3일 때는, 친구들 누구나가 쓰는 욕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저는 욕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고민의 결과에 답은 있을까요? 가볍게 생각하고, 법이 알아서 하겠지 라거나 똑똑한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넘어가면 저와 같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고민을 떠넘기는 것이 아닐지 걱정도 됩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선거권,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고, 국가가 상처를 받는 일이란 참으로 어색하고 불필요한 일이라 생각도 듭니다만.


어머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욕은 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듣는 욕에 대한 불편함은 있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뒤부터 합리적 의견개진과 토론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합리성이나 정의 보다는 편가르기와 말 바꾸기 등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저는,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배 속의 똥처럼 품고 있다가 싸버려야 할 어떤 나쁜 것인지, 아니면 ‘암세포도 몸의 세포이니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어떤 미친 듯 보이는 드라마의 대사처럼 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욕과는 다르게, 이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해나가야 할 듯 합니다. 어머니께, 넋두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어머니께서 아프시면 제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픕니다.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에 제 웃는 얼굴 실어 보냅니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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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3. 02:50 카테고리 없음

갤러리 민주주의 2013.7.3.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민주주의가 지속된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정체(政體)로서 익숙한 것은 군주제이거나 귀족합의체이다. 로마 제국이 그랬고, 프랑스 혁명 전 프랑스와 혁명 후 프랑스가 그랬다. 심지어 세계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난 이후에도 많은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정체로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 역사 내에서도 1945년 이전까지 민주주의 정체가 있었던 적은 없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는 '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 체계임을 인정하고 또 그것을 지켜나가고자 했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고종의 '대한제국'의 이름을 닮아있는 국가에서 그렇다. 


3년간의 미군정기, 한국전쟁 발발 전 2년 동안의 민주주의, 한국전쟁 3년, 이승만 하야 이후의 의원내각제의 짧은 민주주의 이후, 박정희 독재정치, 전두환 독재정치 그리고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거의 절반 정도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국가체제를 유지해왔다. 이런 대한민국에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있어, 그 한 마디를 남길까 한다. 


그것은 '갤러리 민주주의'다. 


갤러리는 '화랑'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다시 말해 그림을 볼 수 있는 곳, 곧 갤러리인 것이다. 그리고 갤러리라는 용어는 골프 시합에서도 등장하는데, 선수들을 구경하고 있는 수많은 관객들을 갤러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갤러리는 미술관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미술관에서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은 자신이 마음에 든 미술 작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살 수 없다. 하지만 '갤러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 가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살 수 있다. 이 갤러리가 '갤러리 민주주의'의 갤러리다. 


우리는 민주주의 정체 내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권리를 행사하는 순간은 자주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대통령 선거는 5년에 한 번, 국회의원 선거는 4년에 한 번이다. 어떤 정치학자가 선거 기간에만 우리가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는 순간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고 했지만 이런 표현은 과격하다고 본다. 대신, 본인이 보기에는 선거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그것을 지켜만 보는 그림의 주인이자 갤러리의 손님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자신이 산 그림이 제 값에 팔릴 때나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자신이 소중한 한 표를 주고 산 그림 혹은 인물이 좋은 그림이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의 생각이 다른 경우에는, 그저 그 한 표를 버려야만 한다. 


갤러리 민주주의.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정해진 기간에만 통용되는 것이므로 나머지 기간에는 관조자로서 그 역할을 하는 국민들이 대다수인 민주주의, 이런 현상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든 없든 관계 없이 주인된 입장으로서 그것의 관리 책임을 묻지 않으니 관심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하는 정쟁(政爭)이나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갈등에 대해서 국민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팔짱을 낀 채, 몸을 뒤로 빼 멀찍이서 그것을 구경만 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나 관련된 업계의 정책이나 이슈가 나오면 심하게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나서 그 몸을 일으킨 것을 후회하며 다시금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이 없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이 있지만 그 의견을 말하지 않을 뿐더러, 말할 기회를 준다고 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고선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고 푸념하고 있다. 골프 시합에서 그렇지만, 자신이 골프 선수보다는 골프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갤러리들은 박수를 치거나 조용히 다음 홀로 이동한다. 그런데 정치란 경기는, 조용히 이동하지도 않으면서 막상 경기장으로 올려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더라도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자신은 단지 그 갤러리에서의 입장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갤러리 좌석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해도 저것보다 잘하겠다.'


갤러리 민주주의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정치적 이슈나 정쟁에는 직접적으로 뛰어들지 않으면서 입만 나불거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확한 정보나 생각을 심어준다. 그리고 분명 정치 섹터에 나아가지 않더라도 참여할 수 있는 분야가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무시하고, 자신이 설 곳은 저런 마이너 리그가 아니라, 메이저 리그라며 스스로의 가치를 근거없이 높이고 있다. 그런 와중에 민주주의는 그 활력이나 원칙을 잃어가고 있다. 


차라리, 아예 관심을 끄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플라톤이 '철인(哲人)정치'를 읊조리기엔 현 정치인들의 도덕성이 바닥을 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도움도 되지 않고, 시끄럽기만 한 갤러리들을 물리치는 것이 어떤 경기든, 어떤 정치상황이든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말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나중에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이 문단만을 발췌해서, 내가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느니 하는 왜곡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내가 40대 50대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없기를 바란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그렇지만, 갤러리가 빠지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없기에, 대의(代意) 민주주의를 형성했고, 그것의 대표가 국회의원이다. 갤러리들이 빠지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되, 갤러리 민주주의는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자 한 것은 아니다. 


갤러리 민주주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민중들이 자신들이 갤러리가 아님을 확실히 천명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적는다. 고매한 척 앉아서 팔짱끼고 있지말고, 부정의(不正義)를 일삼는 정치 세력에게 무엇이 정의인지 소리 높여,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이야기를 해야한다. 그리고 혼자서 힘든 경우에는 다른 사람과의 연대를 통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에서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 더욱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또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이것이 갤러리 민주주의가 사라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자 해결책이다.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SNS의 등장으로 비교적 과거보다 자신의 의견을 많은 사람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큰 확산효과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예전처럼 등사기를 돌려가며, 첩보 작전과 유사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던 시기는 지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입 밖으로 내거나 공개적인 곳에 올리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떻게 변질되고 왜곡되고 곡해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민주주의 상황은 좋지 않음이 틀림이 없다.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의견을 적고 알리는 데 대해서 조롱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지위나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권위에 따라 그 파급효과가 달라지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이런 행태는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강력히 주장해본다. 특히 20대에 만연하고 있는 '갤러리 민주주의' 현상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이 나 혼자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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