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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3. 11:02 내 생각

‘시멘트 핫도그’ 20161203

 


2009 1,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위앙짠)의 근교, 어느 한 초등학교에서 2주간의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 유스클립(Youth CLIP)이라는 대학생국제교류단체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였고, 보건복지부의 후원으로 진행하게 된 봉사활동이었다. 2주간 내가 맡았던 업무는 다름 아닌 도서관 짓기였다. 그곳의 초등학교는 교사(校舍)와 화장실 건물만이 있는 곳이었기에 도서관을 세울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당시 현지에서 활동중이던 시민단체로부터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라오스에 가기 이전까지 내가 손에 벽돌을 잡아본 적은, 2006년 아동양육시설에서 공익근무를 할당시 식당을 증축할 때 뿐이었으므로 완전 초짜였다. 현지의 인부-라고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지역 주민들이었다와 협력하며 도서관의 바닥이 될 곳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학교의 정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널찍한 공간이 형성된 뒤, 본격적으로 벽돌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평소 한국에서 길을 걷다가 집이나 건물을 새로 짓는 공사장을 지나가며 보았던 대로, 현지 인부들이 쌓아놓은 벽돌 첫 줄 위에 잘 게운 시멘트를 얇게 발랐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벽돌 줄을 만들기 위해 벽돌을 올려놓는 일이 반복되었다. 집중해서 몇 장 째 올리고 있었는데, 현지인 인부이자 2주간 봉사활동 끝에 친구가 된 뎅(빨갛다는 의미의 이름)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손사래를 쳤다. 뎅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라는 건 확실했다. 이어 뎅은, 자신이 들고 있던 망치로 내가 쌓아 올린 벽돌을 가볍게 툭 하고 쳤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하며 놀라기도 전에 벽돌은 힘없이 툭 하고 쓰러졌다. 나는 당황했다. 분명 벽돌은 세워져 있는 듯 보였다. 몇 장의 벽돌이 아주 보기 좋게 줄지어 서 있었고, 그것은 내가 익히 보던 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뎅은, 그렇게 해서는 벽돌이 제대로 붙어있지 못한다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 잘 게운 시멘트를 한 움큼, 손에 들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판자에 덜어내더니 그것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꽤 두꺼운 핫도그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세워져 있던 벽돌 위에 툭 하고 올려놓았다. 그럼 벽돌 위로 핫도그 모양의 시멘트 덩어리의 반 정도가 드러나 보였다. 나머지 반은 아래 벽돌과 접착되어 있었다. 드러난 반 정도의 시멘트 핫도그 위에 새 벽돌을 올리자 새 벽돌의 무게에 의해 시멘트 핫도그는 납작 눌려졌고, 벽돌과 벽돌 사이에 시멘트들이 삐죽하며 묻어 나왔다. 그것을 시멘트 칼로 긁어내자, 그때야 비로소 내가 흔히 보던 모습의 벽이 드러났다. 이어 뎅은 다시 망치를 들어, 처음에 내가 세웠던 벽돌을 넘어뜨리던 강도와 비슷해 보이는 강도로 그 벽돌을 툭 하고 쳤다. 벽돌은 움직이지 않았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 시멘트가 잘 접착되어 있었기에 벽돌은 큰 흔들림이 없었다.

 

방법을 알게 된 나는, 2주간의 시간 동안 벽돌 쌓기에 나름의 조예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실제 공사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우스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여타 봉사자들보다는 빠르고 바르게 벽돌을 쌓아 올렸다는 것은 확실했다. 덕분에 내 손과 얼굴은 거칠어져 갔지만 말이다.

 

라오스에 가기 전까지 벽을 보면, 보기만 좋은 그 평평한 모습만 생각했다. 벽돌은 아주 얇게 바른 시멘트로도 충분히 붙어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벽돌을 서로 붙이기 위해서는 보이는 양보다 보이지 않는 꽤 많은 양의 시멘트가 필요했다. 그것들이 끈끈히 붙어 무너지지 않는 벽이 되었고, 건물이 되었고 라오스에서는 도서관이 되었다.


 


우리 사회도 그렇다. 어떻게 이 사회가 유지되고 있을까 생각을 해보면, 겉으로 보면 별다른 것 없이 멀끔해 보이지만 사람들 사이 사이에도, 제도 사이 사이에도 두꺼운 핫도그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 그것이 개인 간에는 사랑일 수도 있고 가족 안에서는 책임감과 존경일 수도 있고, 사회 전체로 보면 법과 제도든지, 민주주의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겉에서 볼 때는 어떻게 지탱되고 유지되는지 궁금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떤 시련이나 고난이 닥치면 결국 이런 끈적임과 접착력이 그것을 지켜준다. 사랑, 가족애, 책임과 의무, 민주주의라고 했지만 그것들 결국 하나로 묶으면 연대(連帶)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아껴 여기고, 누구 하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함께 손을 잡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무너지려 할 때 힘을 모아 버틸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주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시멘트 핫도그가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겉모습에 신경을 써온 듯 했다. 겉으로 멀끔하면 되니, 부실공사를 한 탓에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붕괴했고, 씨랜드에서는 유치원생과 선생님을 포함한 2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세월호가 가라앉으며 사망자 295명과 실종자 9명이 발생한 것이다. 겉보기에 배는 바다에 침몰하지 않을 듯 보였다. 바다에 빠지더라도 나라가 승객들을 구해낼 것이라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어 사회적 연대는 원활히 진행되지도 않았다. 불필요한 색깔 논쟁과 유가족을 비난하는 글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법적인 책임만이라도 제대로 묻길 바랐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다시 말해 벽 안에 끈끈히 묻어 있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그것은 건물 하나를 짓기 위해 필요한 시멘트 핫도그 보다 더욱 중요하다.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공교롭게도 우리는 사회적 연대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가 누구를 지킬 것인가. 누가 국가를 지킬 것인가. 지킬 것은 자기 자신 뿐인 세상에 살고자 하는가,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가. 산업화가 주었던 사회적 연대 배고픔과 민주화가 주었던 사회적 연대 민주주의를 넘어 무엇을 사회적 연대의 목적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해 보인다.

 

일을 마치고 난 뒤 뎅과 술을 마시면, 우리는 서로를 격려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가 느꼈던 연대감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난 뒤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애국심 따위가 아니라 우리 친구의 이야기이며,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며, 우리보다 먼저 더 나은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이 남긴 이야기들이다. 더 튼튼한 벽을 세울 것이다.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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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1. 16:59 내 생각

[에스크미 봉사단 (ASKME Volunteer Team)]


안녕하세요. 에스크미 봉사단을 기획-운영중인 권현우라고 합니다. 많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제 더이상 에스크미를 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사실..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길을 안내해준 외국인과 함께 사진을 올리는게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습니다.


고민의 결과, 나름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이 글은 그 방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출퇴근 시간이나 자신이 원하는 아무 시간에나 할 수 있도록 하자. -> 각 지역의 대학이나 직장에 'OO대 에스크미 봉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자 합니다. 대학 동아리나 사내 동아리 형식으로 만들어서 운영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는 참가자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지역의 관광지를 다니며 외국인과 내국인들에게 길을 안내해줍니다.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길을 안내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2. 외국어를 잘하지 않아도 된다. ->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외국어는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외국어 실력이라는 문턱이 너무 높거나 또는 너무 낮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동아리 형태로 참가자(회원)가 모집이 되면, 동아리 내에서나 대학의 지원 혹은 기업의 후원 등으로 회원들은 '외국어 수업'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길을 안내해줄 수 있을 정도의 외국어라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정도이기는 하지만 명확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필요한 용어나 회화실력을 참가자가 갖출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남을 위한 봉사활동이지만, 에스크미 활동을 하며 자신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3. 봉사활동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 이 생각은 제가 잘못했던 생각입니다. 에스크미를 직접 해본 결과, 안내를 받는 사람의 고마움 표시와는 별도로 자신의 에스크미 활동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더욱 장기적인 활동이 가능해집니다. 실제로 에스크미 활동을 해보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또 많은 거리를 걷기 때문에 꽤나 힘든 활동입니다. 힘든 시간 속에서 외국인이나 길을 잃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그날은 좋은 마무리를 지을 수 있으나, 큰 성과가 없는 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활동 자체에 대한 장기적인 보상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봉사활동 시간 부여와 관련해서는 국가 소속의 봉사센터 등과의 협력이 필요할 듯 합니다.


4. 활동시간은 자유롭게! -> 안됩니다. 에스크미 활동을 하기 위한 이동시간은 제외하고 하루 최대 2시간으로 봉사활동의 최대 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그리고 2시간을 걸어도 힘듭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에스크미 활동은 실제로 힘듭니다. 봉사자의 피로가 길을 잃은 사람이나 관광객들에게 전해져서는, 서로 불편할 뿐입니다. 대학 동아리 형태가 되었든, 사내 동아리가 되었든 개인이 할 수 있는 봉사시간은 최대 2시간으로 한정하고 팀을 바꾸어가며 일정 시간 동안 이어지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


5. 오프라인이 위주다 -> 장기적으로 볼 때 온라인(스마트폰 활용)의 필요성이 증가할 것입니다. 직접 만나 길을 안내해주고 안내 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은 편견입니다. 장기적으로 '구글 지도'와 연동된 지도 기반으로 전세계 어디에서나 자신의 언어로 에스크미에 접속을 하여 길을 잃었을 경우, 그 지역의 모국어 가능자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위키피디아' 처럼 각국에 센터를 설치해 오프라인 봉사자와 온라인 봉사자 및 운영자들을 통해 온오프라인이 연동되는 에스크미가 되고자 합니다.


6. 민간으로서의 독립성을 지킨다. -> 독립성은 지킬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독립성이란 자본으로부터 독립성입니다. 기업의 후원이나 협업은 필요할 때 하겠습니다만, 특정한 기업의 홍보를 위한 안내 등 호객 행위와 유사한 형태는 결코 바람직한 형태가 아닙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은 지켜나가되, 국가나 여타 시민단체 혹은 지역 커뮤니티와의 벽은 낮춰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에스크미 활동가가 교통 서비스(지하철, 버스 등)와 협업할 수 있다면 지하철 개찰구에서 에스크미 활동가들이 외국인이나 타지역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줄 수 있는 부스나 시설이 갖추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기존의 길 안내를 담당하고 있는 관광정보센터와도 연계하여 안내 방향에 대한 새로운 정보나 에스크미 봉사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들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시민단체'의 협업을 통한 거버넌스를 지향합니다.


7. 누구나 할 수 있다. ->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대학 동아리 형태나 사내 동아리 형태로 할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만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확실히 낮출 것입니다. '에스크미 봉사자 인증'을 통해 지금 현재 에스크미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의 신분을 에스크미 본부나 관련 지자체에서 인증해줌으로써 에스크미를 모방한 활동으로 혹여나 일어날 수 있는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겠습니다.


8.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한다. -> 에스크미 활동의 대상을 '외국인 관광객'으로만 한정짓지 않겠습니다. 최근의 여행 열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국내로도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여행지에서 길을 잃고 또 현지의 사람과 소통하기를 원합니다. 앞서 말한 대학 동아리 형태가 되면, 그 지역의 대학생들은 외국어가 적힌 뱃지와 동시에 그 지역의 이름을 달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전주의 경우에 전북대 에스크미 봉사단이 꾸려진다고 가정하면 전주 지리를 물어보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길을 알려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전주 뿐만 아니라 제주, 부산, 홍대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9. 가장 중요한 "어떻게"가 남았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저 혼자 이런 저런 생각들과 기획들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그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의 에스크미가 바라고 지향하는 방향에 맞는 사람들을 찾겠습니다. 운영진을 뽑고 에스크미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초기부터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한 대학 한 대학, 한 지역 한 지역씩 늘려 나가며, 장기적으로는 해외의 대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어떻게'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에스크미 활동은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닙니다. 누구나 길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만, 그 누구나가 되는 방법을 모르거나, 외국인에게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그 뜻과 의미를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어야 합니다.


참가자를 대학생이나 직장인으로 한정지을 필요는 사실 없습니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실력 또는 지역에 대한 이해)을 활용해 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직장인들 역시도 자신의 삶에서 필요한 외부적인 자극을 고파하는 사람들입니다. '대학'이란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고 또 그들은 배움을 추구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떄 고등학교나 중학교 혹은 중장년층의 참가 역시도 선호됩니다만, 지금의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듯 합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다고 해서 오해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짧게나마 에스크미가 지향하는 방향에 대해서 적어보았습니다. 관심 가지고 지켜보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에스크미가 아니라, 그저 '수많은 관광객'으로만 보이던 사람들 중 누군가 길을 잃어 위험하다 느끼거나 꼭 원하는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외국인 그리고 한국인 여행자입니다. 에스크미를 통해 한국이 가지고 있는 따스함이 한국으로 놀러온 외국인과 국내 여행자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나아가 전 세계로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궁금증이나 운영을 위한 참가 의사가 있으신 분, 혹은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 분을 알고 계신 분들은 댓글이나 태그, 공유를 통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준)에스크미 봉사단 권현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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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11. 04:02 카테고리 없음

정외과를 지망하거나 혹은 현재 정외과에 재학중인 대학생들에게.  2014.6.11

본인은 어릴 적부터 대학을 가게 된다면 정치외교학과에 꼭 들어가고자 마음 먹었다. 다른 학문이나 분야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치외교'라는 학문만이 가지고 있는 갈등 해결 연구에 가장 높은 관심을 가졌었고, 꿈 역시도 외교관이라는 지극히 실무지향적이며 현실적인 이상을 갖고 있었기에 정외과를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정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두 군데의 대학에서 정외과를 다녔고 한 군데의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정외과는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점이 많았다. 최종적으로 졸업한 학부에서 높은 성적으로 졸업을 했고 학교를 다니면서 전국 단위의 대회에서 수상을 해 본 경험도 있었지만 그러한 것들과 '정치외교학도'라면 알아야 하는 내용과는 달랐다. 그렇기에 정치외교학도를 지망하거나 정치외교학과에 재학중인 학생들에게 당부해 두고 싶은 말이 있어 글로 남긴다. 

1. 이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리해 두어라. 
정외과에 처음 들어온 학생들은 '정치학의 이해'라던지 '정치학 입문' 등의 수업을 기초적으로 듣는다. 정치학이 어떤 것이며 어떤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온 학문인지를 대략적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어떤 이론들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 이론들이 적용된 실제 사례들은 어떤 것인지 또한 배우게 된다. 이때 수많은 학생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러한 이론들은 단지 이론에 불과하다. 내가 생각한 정치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 정치 현상에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그래서 난 이런 이론들을 굳이 열심히 배워지 않겠다.' 과감히 말해서 이런 생각은 틀렸다. 정치학은 이론의 학문이다. 여타 학문 역시도 이론이 매우 중요하겠지만 정치학은 특히 그렇다.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분석하기 때문에 더욱 이론이 중요해진다. 지금까지 많은 이론들이 만들어져왔고 또 적용되었다. 그러나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이론들 역시 존재한다. 새로운 이론을 만들기 위해서도 기존의 이론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반드시 정치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이론을 정리하는 방식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누군가 어떤 이론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때 그 이론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면 정치학을 제대로 배운 것이라 할 수 없다. 누구의 이론이며 어떤 책에 나오는 내용이라는 것을 굳이 외울 필요는 없겠으나, 이론의 구조와 역할에 대한 숙지가 제대로 되지 못하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정치 현상에 대해서도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 노트를 만들든 녹음을 하든, 만화를 그리든 영화를 찍든 어떤 방식으로든 이론을 정리해 두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면 대학원을 가지 않는 이상 이론들은 어느 샌가 자신의 머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싶어하는 야망이 있는 정치외교학과 신입생은 자신만의 이론 정리 방법을 꼭 찾기를 바란다. 

2.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하지 말라. 
영어에 대한 수요가 높은 것은 오늘 내일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영어 공부에 대한 집중은 쉽지 않다. 정치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이나 정치외교학도라면 영어는 수단으로든 목적으로든 반드시 필요하다. 수단의 의미에서 볼 때 영어 공부는 원서를 읽을 때 우선 가장 도움이 된다. 이미 많은 번역이 되어 있어 굳이 원서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뒤따라 올 것이지만, 번역은 그 원문의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이론가나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내용은 글자나 문장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행간에도 숨어있기 마련인데 아무리 완벽한 번역이라도 그 내용을 온전히 담을 수 없다. 신간의 책은 번역되지 않은 책도 여전히 많고 그러한 내용들을 제때 모른다는 것은 뒤쳐지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수단적 의미로 국제 정치를 전공하거나 비교정치를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각 국제 기구의 결의안이나 국제 회의 혹은 국가들이 내놓은 보고서를 읽어야 하는데 이런 보고서들은 거의 번역이 되지 않는다. 번역이 채 이뤄지지 않은 내용들을 알기 위해서는 영어를 공부해서 그 내용을 알 수 밖에 없다. '정치학과에 들어왔으니 영어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학생의 새로운 지적 영토 확장 역시 끝난다. 왜 철학과 학생이나 법학과 학생들이 이미 번역이 차고 넘치는 책들의 원서를 읽는지를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목적의 의미에서, 연구자가 되고 학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논문을 영어로 적을 만큼은 영어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한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학문 세계에서 영어는 세계 공용어가 되어 있다. 미국의 패권 어쩌구 하는 백마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영어를 수단으로 하여 자신의 논문이나 생각을 적을 수 없다면 정치학계에서 주목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영어로 쓴 논문이나 보고서가 반드시 주목을 끄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학문적 성과가 많다는 것은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3. 정치학과 정치는 다르다. 
수많은 학생들이 여기서 좌절한다. '제가 생각한 정치외교학은 이런 사변적인 이야기만 하는 학문이 아닌, 현실 반영을 도모하는 학문이었어요.' 틀리기도 하고 맞기도 하다. 정치외교학은 현실에 반영되고 또 현실 역시도 정치외교학에 반영되기도 한다. 이론가와 학자가 이론을 만들고 그 이론을 정부가 반영하여 정책으로 형성시키기도 하고 그 결과를 다시 정치학에서 받아들여 새롭게 이론을 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정치학의 연구가 일정 정도 마무리 되었을 때 이뤄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학에서 배우는 정치학은 현실에 반영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정합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정치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이나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현실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거나 이미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 정치는 정치학의 끝에 위치하고 있다. 정치학의 공부 과정에 있는 사람이 현실 정치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참여 방식으로 선호되긴 하지만, 대학 내의 정치학 학습은 현실 정치를 반영하지 않는 것이 옳다. 이는 의과대학에 재학중인 학생이 수술을 집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배우는 단계에서는 그 내용과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 현실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볼멘 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해서 자신이 원하는 정치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면 그때 주제를 잡아 연구를 해도 늦지 않다.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난 뒤 현실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니 설익은 사과가 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4. 정치학은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다. 
'사람을 다룬다'는 표현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정치학은 사람을 다룬다. 경영학은 기업에 소속되어 있는 노동자나 경영자가 어떻게 더욱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경제학은 간단히 이야기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체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영학과 경제학 역시 사람이 그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사람 자체를 다루기 보다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 관계나 효율성을 다루기에 정치학에서의 '사람'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정치학에서 다루는 '사람'은 다소 온정적인 개념이다. 국제 정치를 공부하든 비교 정치를 공부하든 정치 사상을 공부하든 그 핵심 내용은 '어떻게 하면 더욱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가, 왜 정당은 갈등을 하고 국가들은 전쟁까지 불사하면서 더 넓은 영토, 더 강한 국가를 형성하고자 하는가 에 대한 대답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의식에서 그 출발점이 있다. 다시 이야기하면 '사람'을 잊은 정치학은 그 시작점부터 틀린 것이다. 정치학에서 이론의 정합성이 중요해지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잘못된 이론이 확산되고 또 적용된다면 그 피해를 입는 대상은 '사람'이다. 나치즘, 파시즘, 교조적 공산주의 등의 사상들이 우리 인류에게 끼친 피해는, 사람을 잊은 정치학이 가져다 준 폐해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람을 다루는 학문인 만큼 정치학은 쉽게 접근해서도 안되고 어영부영 말만 맞추는 학문이 되어서도 안된다. 자신을 포함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는 이가 정치학을 공부하였을 때 얼마나 많은 피해를 끼쳤고 또 끼치고 있는가에 대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반성해야 할 부분이기기도 하지만 정외과를 지망하거나 이미 정치학도라면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몇 가지 정치외교학을 지망하거나 정치외교학과에 재학중인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었다. 다소 격렬한 표현도 있고 또 '영어 학습' 등 지겹게 듣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어 글을 적고 나니 민망한 부분도 있다.

정치학 혹은 정치외교학은 매력적인 학문 분야임에는 틀림이 없다. 수많은 학생들이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 매력을 나름대로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외교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단지 '매력' 혹은 '재미'를 느껴 들어온 학생들은 자신의 4년을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안타까운 부분이라 생각한다. 

4가지 알아두어야 할 점에 대해서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 역시 있으리라 예상한다.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토론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아마 지금의 대학 기말고사 시즌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당부해주고 싶은 말은 기말고사가 끝난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어렵게 얻은 지식과 소중한 시간이 수포로 돌아가는 안타까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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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vestory 2014.10.25 22:08  Addr  Edit/Del  Reply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2016.03.07 22:59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