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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11.27 불편한 것은 때론 도움이 된다.
  2. 2015.03.29 현우의500자_109
  3. 2013.11.08 개나 소나 강연한다고 하니.
2016. 11. 27. 20:19 내 생각

"불편한 것은 때론 도움이 된다." 20161114


고등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였다. 일제시대부터 사용해오던 교사(校舍)가 낙후된 탓에 안전하지 않자 새롭게 교사를 짓기 시작했다. 신입생인 우리 1학년은 과거 도서관으로 사용하던 건물에 둥지를 틀었고, 그마저도 교실으로 사용할 공간이 충분하지 않자 옥상에 컨테이너 박스도 올려야 했다.


주목적이 도서관이었던 건물이었으므로, 그 건물에는 화장실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탓에 건설현장이나 관광지에서나 있을 법한 이동식 화장실이 건물 가까이 설치되었다. 개학을 막 했을 당시에는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오면서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400명이 넘는 혈기왕성한 남학생이 싸대는 오줌과 똥의 냄새는 참으로 복잡한 심경을 들게 했다.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하라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던 중 묘한 느낌이 들었다. 더워서 창문을 열고 수업을 들을 때였는데, 집중이 잘된다는 느낌이었다. 왜 이런지 궁금해서 화학시간에 선생님께 질문했다.


"쌤, 화장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처음에는 맡기 싫었다가 뭔가 계속 맡다보니 정신이 또렷해지는 거 같습니더. 이거 와 이런겁니꺼?"


내가 있던 교실은 2층이었고, 임시화장실은 건물 1층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창문을 열면 그 냄새가 정확히 우리 교실로 들어왔다. 화학 선생님은 창문을 열어보시곤, '암모니아 냄새네.' 라고 하셨다. 소변에서 나온 요산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암모니아가 된 듯 하시다면서, 암모니아 냄새는 사람한테 각성이나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셨다. 신기했다.


냄새나고 더럽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이, 그것을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게 삶에 도움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더러운 느낌은 들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을 때 창가에 서서 암모니아 냄새를 킁킁거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도 그렇다. 짧게 잡아도 1987년 이후 새롭게 형성된 민주주의 질서가 무너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일제식민지를 거쳐 해방된 사회에서 시간적으로 길고 더러운 독재와 여러 민주주의적 실험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 어디선가 더러운 냄새가 나고, 그 냄새를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100만명이나 모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 더러움이 우리가 스스로 뽑은 대통령과 정부에 의해서 자행된 것이기도 하고 또 방관한 책임이 있는 여러 주체들, 예를 들어 언론과 지식인 등에게도 있다고 하면 쉽게 대놓고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 더러움, 분명 도움이 된다.


민주주의가 일상이었고, 그것은 쉽게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이 피어오르던 더러움은 일부의 어떤 것이거나, 쉽게 정화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이상 참지 못할 것이 되니,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더러움이 있었기에 -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에 대한 파괴와 농단이 있었기에 - 그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더러움은 때론 도움이 된다. 내가 고등학교 때 느꼈던 암모니아의 더러움은 공부에 집중하게 도왔고,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민주주의와 헌정질서 파괴는 거의 모든 국민이 그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더러움이 도움이 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안고 살아갈 순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학교 건물은 새롭게 지어졌고, 그 건물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집중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무너진 민주주의와 헌법질서에서 그 더러움을 인내하며 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새롭게 민주주의의 건물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물론 새로운 건물에도 화장실은 있겠지만, 우리가 청소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더러움을 만들어야 할 것은 아닐까.


더러움은 때론 도움이 되지만, 그 더러움을 치우는 것 역시 사람들이다. '더러웠지' 라는 것을 기억하며,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 미래를 더욱 깨끗이 만들기 위해 노력할 일이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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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9. 22:24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109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한 번 정리해보고 싶다. 무슨 노릇인지 현우의 500자 전반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마치 새벽 아지랑이가 낀 넓은 호수가에 죽어가는 나무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물을 옆에 두고 죽어가는 나무는 무엇을 필요로 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반응들을 글로 표현했다. 또 한 번 어떤 계기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글이 밝아진다. 아지랑이 흩어지고 벌새 한 마리와 풍뎅이 한 마리가 사투를 벌이는 공간으로, 다시 말해 생의 공간으로 글의 색깔이 변했다. 열어 둔 결론에는 다양한 상상들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왜 이렇게 글을 쓰는가. 나는 내 경험이 나 개인의 기억이나 추억 속에 있기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험이 되었으면 한다. 공유되고 공감되어 독자도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더욱 생생히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이런 글을 쓰는 사람도 있으니, 나도 글을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도 가져보도록. 마지막으로 해두고 싶은 말은, 소재 고갈의 걱정은 접어두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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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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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8. 06:39 카테고리 없음

개나 소나 강연한다고 하니. 2013.11.8. 


제목이 좀 강렬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제목을 달아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개보다는 소에 가까우니, 나 스스로에게 하는 평가라고도 할 수 있다. 


강연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학이나 교육과정에서 듣는 '강의'와는 좀 다르다. 강의는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일정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체계적 수업을 뜻한다면, 강연은 하루나 이틀 정도, 아니면 몇 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여 한 가지 주제로 적은 수의 강사가 시간을 채우는 것을 강연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강의와 강연의 차이를 굳이 꼽고 싶지는 않지만, 그 중 한가지를 꼽자면 '깊이'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강의가 강연보다 더 깊은 수준을 가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강의는 긴 시간을 두고 하는 만큼 강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첫 강의와 마지막 강의까지 염두해 두어야 할 만큼의 체계를 가지는 반면, 강연은 짧은 시간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임팩트 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되기에 강의와 비교했을 때 만큼의 깊이를 도모하지는 못한다. 


물론 이런 것들도, 우리나라에 한정되는 것이라고 해 두는 것이 옳다고 해야겠다. 지금은 '강연'이라는 것이 워낙 큰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고, 전문 강연자를 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이 강연의 큰 틀로 데려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미국의 TED가 그것이다. TED는 전문 분야에 오랜 기간 종사해 온 사람이나 자신 나름대로의 이벤트나 역사를 가진 사람을 초청해 약 20분 간 강연을 하도록 하는 무료 강연 사이트이다. 물론 강연을 보는 것은 무료이지만, 실제 강연장에 등록을 하여 듣는 강연을 꽤나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이런 TED가 우리나라에 도입되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어떠한 정보나 지식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강연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 강연시장이 확대되자 마자 왜곡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표적 왜곡 현상 중 하나는, 자기 자서전에나 쓰여져야 할 내용이나 마치 자신의 겪은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양, 강연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읽어나가는 것이다. 강연이라는 것이 짧은 시간에 임팩트를 주는 것이 장점이라고 한다면, 이런 '자서전류'의 강연자가 하는 이야기들이란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왔는지를 구구절절히 설명하는 것, 그것 뿐이다. 자신이 겪은 일과 그 강연을 듣는 사람이 겪을 일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강연자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나도 했는데, 당신은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당신이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에게 모든 문제가 있는 것 마냥 굴게 되고, 강연자가 지금 위치하고 있는 지위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때문에 더욱 노력하고자 믿게만 되는 것이다. 


두번째 왜곡 현상은, 강연 컨텐츠의 질적 하락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열리고 있는 강연들의 목록을 죽 뽑아보면 대부분의 강연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대상의 '꿈' 강연이나, 정치인의 '정치 인생' 강연이나,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육아' 강연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확한 자료를 찾기에는 다소 시간상 부족함이 있으므로, 수치를 대기를 어려우나 본인이 파악한 바로는 저 세 가지가 축을 이룬다고 본다. 그 중에서도, 강연 컨텐츠의 질적 하락을 가장 선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꿈' 강연이다. 여기서 말하는 꿈이란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 꾸는 꿈은 물론 아니다. 아마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에 대한 강연을 우리 사회에서 한다고 하면, 그의 유명세를 제외하고 그 강연에 몇 명의 사람들이 올 것인지 궁금해진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꿈을 강연한다는 사람들의 강연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이런 내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꿈을 가지는 것이다.'

'꿈을 가진다면 여러분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꿈을 실현시기키 위해서는 당신은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꿈을 이룬 사람들은 도전을 했다. 당신도 도전을 해야 한다.'  등등


이런 이야기들을 그들이 말하는 '꿈을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대학생이나 고등학생'에게 하고 있다. 일종의 '자서전류'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저런 꿈을 이루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강연을 통해서 자서전의 한자락을 채워보고자 하는 사람이다. 흔히 말하는 '스타강사'가 되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담보로 남들이 꿈을 갖도록 하는데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다.  


꿈을 갖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꿈을 가지는 사람과 꿈을 가지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은, 삶의 목표를 이루는데 있어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연'의 한 컨텐츠로서 누군가에게 꿈을 가지라고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꿈을 가지지 못한 것은 그사람의 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모를 때 그 사람은 꿈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꿈을 가지라는 강연을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직업의 특성과 그 직업은 선택한 계기 등을 알려주는 강연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이나 대학생들은 꿈을 찾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우선 '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만을 알려주고 나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아마도, 정확한 설문조사를 해보지는 못했지만 '꿈'에 대한 강연을 듣고 난 뒤, 그 강연이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를 조사해본다면, 단지 그 시간 동안 '꿈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정도의 반응만 나와도 아마도 그 강연은 좋은 강연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이런 비유를 하곤 한다. 말이 목이 마르다고 해서 강가에 데려가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말이 물을 마실 것인지 말 것인지는 말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비유 말이다. 하지만 본인은 이 비유에, 조금 다른 의미를 첨부하고 싶다. 말이 목이 마른지 마르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것 역시 사람이다. 사람은 말이 목이 마르면 스스로 강을 가든 아니면 주인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든 그러한 변화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지, '물을 마시는 것은 중요하다' 며 강가에 끌고 가 놓고선 '왜 물을 마시지 않느냐' 라고 하는 것은 다소 억지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꿈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는 따위의 강연을 할 것이 아니라 '꿈을 가지고 싶을 때, 어떤 꿈을 가지는 것에서 궁금한 사항에 생기면 물어보라' 라는 정도의 호기심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강연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조금 다른 내용이지만, 말이 물이 아닌 사이다나 콜라, 혹은 주스를 먹고 싶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의 꿈이 다양한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무리가 조금 감정적이 될 듯해 다음으로 미뤄야 겠다. 


결론이랄까, 간단히 결론만 적도록 하면. 


강연이라는 것을 하는데 있어, 강연자에게는 생각보다 큰 책임이 따른다. 학교 수업이나 대학 강의의 경우에 있어서는 일상성에 포획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강연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 원해서 듣는 것이거나, 자신의 상사나 선생님이 학생들이나 직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이 있는 강연을 신청한다. 이런 강연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꿈을 찾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잘못된 도전을 생각하기도 한다. 


마냥 꿈을 좇아 가라는 강연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책임감 있는 강연 시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적었다. 


그러니 개나 소나 강연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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