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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6.12.08 “행복하셨는지 물어볼 수 있다면”
  2. 2016.04.11 반가운 불행
  3. 2016.04.01 내 걱정
  4. 2015.12.31 "행복하세요?"
  5. 2015.04.12 나에게 바란다 _1
2016. 12. 8. 00:14 내 생각

행복하셨는지 물어볼 수 있다면”  20161208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건 미래의 거대한 기계보다 때론 지금의 한 장 사진이 더욱 그 효과가 클 때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갖고 있지도 않은 사진이지만, 한 장의 사진을 떠올리며 어머니와의 시간 여행을 떠나곤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의자에 앉으신 채 형과 나를 다리 위에 한 명씩 올려놓고 또 안고 계셨습니다. 사진 속에는 세 명 모두 웃는 얼굴입니다. 어머니와 형과 나. 가장 환하게 웃는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긴 파마 머리에 스웨터를 입고 계신 어머니. 날씨가 추운 탓인지 아니면 바깥의 추운 날씨와 집안의 따뜻한 기온 차이 탓인지 얼굴은 붉어져 있습니다. 저는 3살 남짓 되었을까요. 몇 개 있지도 않은 치아를 빼꼼 보이며 역시 붉은 양볼 사이 수줍게 웃고 있습니다. 형도 특유의 귀여움을 잔뜩 품고 웃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어머니의 웃음이 밝고 환했습니다. 장롱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계신 어머니. 사진은 누군가 앉아서 찍은 듯 아래에서 위로 찍힌 모습이지만, 웃음과 행복을 담기에 적절치 못한 각도란 없습니다. 그 어머니의 웃음이 지금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느 덧 저는 사진 속의 어머니와 비슷하거나 많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시간은 그렇게 흘렀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행복과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울에 오기 전이나 고향에 방문할 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어머니의 이야기라곤 했지만 특정한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결혼으로, 느끼게 된 다양한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 사이에는 분명 제가 기억하는 저 사진이 찍힌 당시도 포함될 것입니다.

 

저는 슬펐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제가 어머니의 행복을 빼앗아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건 아닌지 슬퍼졌습니다. 젊고 활력이 넘치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이나 추억 속에서만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서글퍼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저 역시도 이렇게 사진 속의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농담 삼아 말하곤 합니다.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가 없어져도 좋으니, 시간을 되돌려 결혼은 하지 말라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전 어머니가 저의 어머니여서 좋습니다. 살아가며 힘든 사이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어머니의 모습. 전 그 모습이 좋습니다. 그래서 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제 기억 속에 있는 저 사진 속의 어머니께 한 번 묻고 싶습니다.

 

행복하십니까?”

 

그럼 어머니는 대답하시겠지요. 힘들지만 행복합니다. 이 아이들이 성장을 하면서 사고를 치거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이 아이들의 아버지인 남편이 나를 힘들게 할 수 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일어나지 않은 일들입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수많은 힘든 일 사이에서도 저는 지금 웃을 수 있습니다. 일어날 수도 있는 불행이 있겠죠. 그렇지만 그때에도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은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에게는 제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긴다고 해도, 전 행복했던 기억으로 그리고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로 살 수 있습니다.

 

어머니. 어느덧 작은 아들도 나이 서른을 넘기고 이제 서른셋이 되기까지도 시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합니다. 행복을 기억합니다. 어머니와 행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행복을 기대합니다. 어머니와의 행복을 기대합니다. 어머니께서도 기억하고 계실지 모를 사진 한 장에, 작은 아들은 오늘 가볍게 시간 여행을 했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저와 친구가 될 법한 나이의 어머니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둘도 없을 웃음을 지으시며 저와 형을 안은 채 대답하셨습니다.

 

행복합니다.

 

제 글이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보내셨을 어머니께 잠시나마 기쁨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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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1. 17:05 내 생각

"반가운 불행"


사람들이 행복하지만 않았으면 한다. 자신의 불행을 통해 타인의 불행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면,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함께 먹고 싶은 사랑하는 가족이 없어서'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은 불행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혹은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이라면, '전쟁 때문에 가정 형편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그 어떤 상황 때문에' 서로 함께 있지 못한다면 불행일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사람은 불행을 느낄 필요가 있다. 불행을 통해 공감할 수 있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사람은 자신이 아닌 사람을 통해 성장해나갈 수 있다.


반가운 불행.


많은 사람은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었을지라도 가끔은 불행했으면 했다. 불행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것을 타인의 불행으로까지 확장시켜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반가운 불행의 끝은 영원한 불행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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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 17:00 내 생각
"내 걱정"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아무런 미사여구도 없는 저 문장은 읽는 순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닮아있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것은, 어떤 불행을 말하는 것일까.

다시 읽어보면 설핏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요즘과 같이 행복한 가정이나 불행한 가정 모두 자신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또는 불행한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여러 도구들이 있는 시대에는 말이다.

행복한 가정의 닮은 모습이란 아래와 같지 않을까.

자녀와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자하기까지 한 부모. 각자의 공간이 있는 충분한 넓이의 집. 여름과 겨울에 떠나는 휴가. 건강하고 자신의 삶을 관조할 줄 아는 할아버지, 할머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꿈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는 자녀 혹은 꿈을 찾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활기차게 하고 있는 자녀. 끊어지지 않는 가족 간의 웃음과 대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그리기란 참으로 쉽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의 마음 속에 어떤 이상처럼 그 모습이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한 가정이란, 결코.

상상하기 조차 싫다.

하지만 그 상상 속의 어떤 일이나 사건들은 각자의 의지와 다르게 일어난다. 또 누군가는 지금도 그 불행 속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모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아니, 확실히 살고 있다.

행복한 가정에서도 불행한 사건들은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이 끼치는 영향이 각 가정에는 다르게 나타난다.

아마도.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의 차이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이나 경제력의 상실, 삶에의 의지 박약 등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함에도 그것을 가족이 같이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그러지 못한 것이 아닐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이 아닌 한 개인이라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접하고 해결함에 있어 그것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을 감히 '행복'한 상황이라 불러도 될 듯 하다.

고등학교 시절.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이 있었다.

"너희는 그냥 너희 앞날을 위해서 공부만 하면 되는데, 왜 공부를 하지 않니?"

선생님들의 이런 말들을 듣다보면, 한편으로 참 다행이다 싶고 또 한 편으로는 어른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다행이다' 싶은 것은, 나에게 저런 말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 어릴 적 자기 걱정만 할 수 있었던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소위 말하는' 안정감 있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에 다행이라 느꼈다. 또 한 편 느끼는 것, 어른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질문이 드는 이유는, 나보다 최소 10년 이상을 더 산 사람들이 그 사이에 타인의 -그것이 비록 학생일지라도- 고민이나 고통에 대해서 저다지도 공감을 할 수 없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어른이면 누구나 다양한 경험과 식견을 통해 이해심이 넓을 것이라 여겼던 내가 '어렸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네 걱정만 해라.'

라는 말에는, 결국 부모의 배려와 학교를 포함한 사회의 노력이 필요한 듯 하다. 한 사람이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고민하고 걱정할 수 있다는 것은 어릴 적에는 부모의 배려가 필요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사회가 갖추고 있는 제도나 시스템이 필요하다.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으나, 뉴스 한 꼭지나 신문 한 장만 들추어보아도 불운한 사건을 당한 사람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말문이 막힌다.

부모의 배려가 무엇인지, 사회의 제도나 시스템이 어떤 구조인지는 모르겠다.

부모가 된 사람도-부모가 될 사람도- 제대로 알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각자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과 가치가 부딪히는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을 위한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가 그리 중요할까 싶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는 결국 '배 부르고 등 따뜻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조건만을 제시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내 걱정만 하고 싶다. 길게 적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내 걱정만 하고 싶다. 내 행복을 위한 걱정과 고민과 탐색과 시도를 하고 싶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 역시도 행복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 내가 되고 싶다.

그런 사회를 바란다는 것 만으로도, 톨스토이의 저 위대한 한 문장.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문장에 대해 "톨스토이 할아버지, 틀렸습니다. 훗!" 하고 콧방귀를 뀌어볼 수 있지 않을까.

내 걱정만 하고 싶다. 나만 내 걱정을 하는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걱정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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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31. 18:01 내 생각

행복하세요?”

 

나 뿐만 아니다. 내 옆사람 뿐만 아니라,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행복을 느끼고자 하는 것을 헌법에 명시해놓고 있을 정도다.

 

헌법 제10,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하지만, 때론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은 사뭇 불편하게 다가온다. ‘행복하다라 대답하기에는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들과 생계유지를 위한 돈벌이가 떠오르고, ‘행복하지 않다라고 대답하기에도 나를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과 여행을 가서 느꼈던 기분 좋았던 추억들이 입가의 미소와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묘답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 답이란 바로, 행복할 때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다, 가 그것이다. 너무 싱거운 대답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언제나 행복할 수도 없고, 또 쉬지 않고 불행할 수도 없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는 그날 따라 인력거를 타겠다는 사람이 많았기에 행복했던 김 첨지가, 집으로 돌아가자 죽어 있는 아내를 발견한 이후 불행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덤덤하기에 그지없는 문체에는 행복과 불행이 언제나 함께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문자 그대로의 행복추구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행복의 비중을 늘리고 불행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누구를 만날 때, 어떤 생각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지를 우선 명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이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가진 병폐의 한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쉽게 가지 못하는 곳을 가고, 쉽게 먹지 못하는 것을 먹는 행위가 되어 버린 탓이다.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비교하도록 강요당하는 이상, 자신의 행복은 상대적으로 불행한 것으로 쉽게 여겨진다. ‘행복의 절대성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이런 상황은, “내가 느끼는 기분 좋음은, 행복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저런 멋진 것들이 행복의 조건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절대적인행복을 전제해버린 탓에 자신의 소소하거나 일상적 행복을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비교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넓은 숲을 가진 사람과 조그마한 텃밭을 가진 사람을 비교하면 넓은 숲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듯 보이지만, 조그마한 텃밭에서 기르는 작물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숲 따위 어찌됐든 좋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행복의 비중을 늘리기 위한 첫단추로써, 타인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을 비교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감정이라 표현하기는 했지만, ‘기분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대부분의 사람은 앞서 언급했던 대로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 제대로 깨닫지도 못한 채 성인기를 맞이한다. 오로지 공부만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학창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었더라도 또 다시 설정된 외부의 목표에 의해, 행복 따위 느낄 겨를 없이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소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것을 방증하는데, 이런 것들을 통해서 자신이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용기에는 실패할 수도 있다는 위험이 뒤따른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자신이 무엇에 기분 좋음을 느끼는지를 성공한다면 하나의 행복을 찾은 것이겠지만, 실패할 수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다음 시도에 있서 첫 시도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에 임할 수 있다.

 

이런 수많은 시도들을 통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나 익숙해진 습관이 형성된다면 그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으려고 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행복을 느낀다.

 

용기라고 적었다고, 지레 겁먹거나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지는 마시라.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느끼는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 나 이거 하니까 행복하네.’라고 느끼려는 시도와 노력으로도 용기는 생기기 마련이다. 용기란, 맹자에 따르면 누구나 갖고 있지만 발현하지 못한 그 어떤 성분에 지나지 않으니 한 번 속는 셈치고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행복을 느끼는 법에 대해 장황하게 적었지만, 정작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듯 보이는 불행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해답은 같다. 불행을 줄이는 방법 역시 같다고? 그렇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때에 불행을 느끼는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 우선이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불편하거나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꾸역꾸역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만남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만나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불행을 피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예를 들면 또라이상사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가족 등을 만나며 살고 있다. 아니, 살아야 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퇴사를 하거나 가출을 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퇴사를 하고 가족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당신이 그러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테니, 현실적인 불행의 비중을 줄이는 방법을 알려주려한다.

 




불행과 불편을 구분하는 것.

 

불행과 불편을 구분한다면 또라이직장상사와 나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확신하고 있는가족으로부터 불행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불편은, 존재를 부정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것 혹은 그 사람이 내 주변에 있기에 느끼는 짜증남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었을 때, 발이 아프다고 느낀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단지 불편함을 느낄 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불편함을 불행으로 느낀다. 직장상사의 잔소리와 감정적 대응을 듣는 것은 분명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것을 들었다고 해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행과 불편을 구분 짓는 것만으로,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이어질 수 있다. 가족의 잔소리와 상사의 핀잔은 불편하지만 그것이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내 삶의 근간을 흔든다면 그것은 결국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편과 불행을 구분지어야 하는 이유는, 불편함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주는 대상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사의 감정적 대응에 대해, ‘과장님, 그런 발언은 저를 불편하게 만듭니다.’라고 대응한다면 상사는 되려 화를 낼 것이지만, 어떤 것이 불편하지를 되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과장님, 그런 발언은 저를 불행하게 만듭니다.’라 대응하면 상사는 어떻게 대답할까? 모르긴 몰라도, ‘그래서 어쩌라고?’ 정도의 반응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행복과 불행은, 삶의 근간을 이루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권리로서 인정받는 것이고, 불행과 불편을 구분하며 불편을 해소하고 불행의 가능성 자체를 줄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불행을 줄이는 방법에는 또 다른 것이 있는데,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많은 것들과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것이다. 불행을 느끼는 바탕에는,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어.”라는 일종의 포기가 내포되어 있다. 자신의 노력이나 시도를 통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은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력의 정도를 높이더라도 그것이 바뀌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불행을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다. 앞서 언급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나 해외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슈에 대해서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등은 분명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발생하는 테러에 대해서 무관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픔에 공감하되 나도 저기서 죽을 수도 있었겠다하는 불필요한 감정이입이나 세상은 정의롭지 않아라고 단정지어버리는 등의 태도는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행복하세요?”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합니다. 다만 저는 행복을 늘리기 위해 살고 있고 불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장 적확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루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대답이라 생각한다. 또 대부분의 시간이란 행복도 불행도 아닌, 기억에도 남지 않는 일상들의 연속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행복의 절대성을 버리고, 자신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의 요소를 찾아야 한다. 또 불편을 불행으로 손쉽게 연결시키지 않으려는 의지와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과의 과감한 관계 끊기가 가능하다면, ‘추구할가치가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 나날들이었지만, 오늘은 행복을 많이 느꼈다며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지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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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12. 01:28 내 생각

완벽한 행복함이란 없다.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동시에 우리의 감정 속에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행복을 더 많이 느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불행을 더 많이 느낀다.

행복과 불행이 정확히 50 : 50 의 비율로 있다 하더라도, 행복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90의 행복과 10의 불행을 느끼고 또 그 반대인 사람도 있다.

무엇을 어떤 비율로 느끼는 지는 각 개인의 성향, 처해 있는 환경,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따라 다르다.

우리의 삶에서 완벽한 행복이 없듯이 완벽한 불행도 없다. 다만 일부러 불행을 느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이 행복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총량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두 가지 모두 마음껏 늘려가보는 삶을 살 길, 행복에 겸손하고 불행에 의연해지길, ‪#‎나에게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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