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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7.01.18 일상에 산다
  2. 2016.12.03 시멘트 핫도그
  3. 2015.01.15 현우의500자_35
  4. 2014.12.14 현우의500자_7
2017. 1. 18. 11:24 내 생각

일상에 산다

 

사당의 한 술집에서 시비가 붙은 일이 있었고, 몇 일이 지났다. 시비 자체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것은 없다. 그저 어리고 안타까운 영혼들이 술이라는 악마의 피를 마시고, 괜한 사람에게 자신의 더러움을 퍼부은 것. 그 정도의 술회를 갖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억울할 일도, 화날 일도 없다. 어이가 없을 뿐. 그러나 몇 가지 느낀 바 있다.

 

더러움은 묻지 않았다. 내가 티 없이 깨끗하였다면 더러움 묻었을 것이나 그렇게 깨끗하지 않아 술집에서의 시비정도, 묻어도 묻은 티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양아치들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 아니다. 살면서 몇 가지 잘못을 했고 그것을 반성하며 살고 있다. 누구, 잘못하지 않은 자 돌을 던져라. 순수하지 않기에 더욱 더러워지지 않고, 더더욱 상처받지 않는다.

 

그리고 일상.

 

더러운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복귀할 일상이 있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건 더러운 일 뿐 만은 아니다. 슬픈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일상이 있다는 건 소중한 일이다. 화나는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일상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나아가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쁜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일상이 있다는 건 필요한 일이다. 순간의 감정 변화가 삶 전체를 바꾸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감정의 충동은 일시적이라도 삶의, 일상의 주인은 나여야 한다는 것. 나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참는 것이 아니다. 이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삶 전체에 티끌 하나, 그것이 그림 전체를 망치게 두지 않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가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새 그림을 그릴 수는 없고, 포기할 수도 없으나 뭐, 아직 그릴 공간이 남았고 그 그림 그리는 일상. 그것이 소중하다는 것.

 

언젠가 적었지만.

 

비가 내려도 바다는 여전히 짜다. 파도가 쳐도 바다는 여전히 짜다. 시련은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 시련이지도 않은 것들은 하물며. 헛헛, 웃으며 일상에 있다. 일상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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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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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3. 11:02 내 생각

‘시멘트 핫도그’ 20161203

 


2009 1,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위앙짠)의 근교, 어느 한 초등학교에서 2주간의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 유스클립(Youth CLIP)이라는 대학생국제교류단체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였고, 보건복지부의 후원으로 진행하게 된 봉사활동이었다. 2주간 내가 맡았던 업무는 다름 아닌 도서관 짓기였다. 그곳의 초등학교는 교사(校舍)와 화장실 건물만이 있는 곳이었기에 도서관을 세울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당시 현지에서 활동중이던 시민단체로부터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라오스에 가기 이전까지 내가 손에 벽돌을 잡아본 적은, 2006년 아동양육시설에서 공익근무를 할당시 식당을 증축할 때 뿐이었으므로 완전 초짜였다. 현지의 인부-라고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지역 주민들이었다와 협력하며 도서관의 바닥이 될 곳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학교의 정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널찍한 공간이 형성된 뒤, 본격적으로 벽돌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평소 한국에서 길을 걷다가 집이나 건물을 새로 짓는 공사장을 지나가며 보았던 대로, 현지 인부들이 쌓아놓은 벽돌 첫 줄 위에 잘 게운 시멘트를 얇게 발랐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벽돌 줄을 만들기 위해 벽돌을 올려놓는 일이 반복되었다. 집중해서 몇 장 째 올리고 있었는데, 현지인 인부이자 2주간 봉사활동 끝에 친구가 된 뎅(빨갛다는 의미의 이름)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손사래를 쳤다. 뎅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라는 건 확실했다. 이어 뎅은, 자신이 들고 있던 망치로 내가 쌓아 올린 벽돌을 가볍게 툭 하고 쳤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하며 놀라기도 전에 벽돌은 힘없이 툭 하고 쓰러졌다. 나는 당황했다. 분명 벽돌은 세워져 있는 듯 보였다. 몇 장의 벽돌이 아주 보기 좋게 줄지어 서 있었고, 그것은 내가 익히 보던 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뎅은, 그렇게 해서는 벽돌이 제대로 붙어있지 못한다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 잘 게운 시멘트를 한 움큼, 손에 들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판자에 덜어내더니 그것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꽤 두꺼운 핫도그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세워져 있던 벽돌 위에 툭 하고 올려놓았다. 그럼 벽돌 위로 핫도그 모양의 시멘트 덩어리의 반 정도가 드러나 보였다. 나머지 반은 아래 벽돌과 접착되어 있었다. 드러난 반 정도의 시멘트 핫도그 위에 새 벽돌을 올리자 새 벽돌의 무게에 의해 시멘트 핫도그는 납작 눌려졌고, 벽돌과 벽돌 사이에 시멘트들이 삐죽하며 묻어 나왔다. 그것을 시멘트 칼로 긁어내자, 그때야 비로소 내가 흔히 보던 모습의 벽이 드러났다. 이어 뎅은 다시 망치를 들어, 처음에 내가 세웠던 벽돌을 넘어뜨리던 강도와 비슷해 보이는 강도로 그 벽돌을 툭 하고 쳤다. 벽돌은 움직이지 않았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 시멘트가 잘 접착되어 있었기에 벽돌은 큰 흔들림이 없었다.

 

방법을 알게 된 나는, 2주간의 시간 동안 벽돌 쌓기에 나름의 조예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실제 공사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우스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여타 봉사자들보다는 빠르고 바르게 벽돌을 쌓아 올렸다는 것은 확실했다. 덕분에 내 손과 얼굴은 거칠어져 갔지만 말이다.

 

라오스에 가기 전까지 벽을 보면, 보기만 좋은 그 평평한 모습만 생각했다. 벽돌은 아주 얇게 바른 시멘트로도 충분히 붙어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벽돌을 서로 붙이기 위해서는 보이는 양보다 보이지 않는 꽤 많은 양의 시멘트가 필요했다. 그것들이 끈끈히 붙어 무너지지 않는 벽이 되었고, 건물이 되었고 라오스에서는 도서관이 되었다.


 


우리 사회도 그렇다. 어떻게 이 사회가 유지되고 있을까 생각을 해보면, 겉으로 보면 별다른 것 없이 멀끔해 보이지만 사람들 사이 사이에도, 제도 사이 사이에도 두꺼운 핫도그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 그것이 개인 간에는 사랑일 수도 있고 가족 안에서는 책임감과 존경일 수도 있고, 사회 전체로 보면 법과 제도든지, 민주주의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겉에서 볼 때는 어떻게 지탱되고 유지되는지 궁금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떤 시련이나 고난이 닥치면 결국 이런 끈적임과 접착력이 그것을 지켜준다. 사랑, 가족애, 책임과 의무, 민주주의라고 했지만 그것들 결국 하나로 묶으면 연대(連帶)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아껴 여기고, 누구 하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함께 손을 잡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무너지려 할 때 힘을 모아 버틸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주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시멘트 핫도그가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겉모습에 신경을 써온 듯 했다. 겉으로 멀끔하면 되니, 부실공사를 한 탓에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붕괴했고, 씨랜드에서는 유치원생과 선생님을 포함한 2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세월호가 가라앉으며 사망자 295명과 실종자 9명이 발생한 것이다. 겉보기에 배는 바다에 침몰하지 않을 듯 보였다. 바다에 빠지더라도 나라가 승객들을 구해낼 것이라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어 사회적 연대는 원활히 진행되지도 않았다. 불필요한 색깔 논쟁과 유가족을 비난하는 글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법적인 책임만이라도 제대로 묻길 바랐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다시 말해 벽 안에 끈끈히 묻어 있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그것은 건물 하나를 짓기 위해 필요한 시멘트 핫도그 보다 더욱 중요하다.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공교롭게도 우리는 사회적 연대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가 누구를 지킬 것인가. 누가 국가를 지킬 것인가. 지킬 것은 자기 자신 뿐인 세상에 살고자 하는가,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가. 산업화가 주었던 사회적 연대 배고픔과 민주화가 주었던 사회적 연대 민주주의를 넘어 무엇을 사회적 연대의 목적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해 보인다.

 

일을 마치고 난 뒤 뎅과 술을 마시면, 우리는 서로를 격려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가 느꼈던 연대감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난 뒤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애국심 따위가 아니라 우리 친구의 이야기이며,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며, 우리보다 먼저 더 나은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이 남긴 이야기들이다. 더 튼튼한 벽을 세울 것이다.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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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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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5. 02:10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35


술과 담배의 가치가 폄훼되는 데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에 살면서 이 둘은 우리의 삶을 망치는 대표적인 해악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을 나아지게 하는 두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그것은 정치와 섹스다. 현대 뿐만 아니라 인류가 탄생할 때부터 우리는 이 둘에 의해 더 나은 하루를 꿈꾸고 살아왔다. 유일한 조건은 이것들의 건강함이다. 정치는 사회 속의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그것이 지향하는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의미의 미래는 제도와 타협이라는 오르가즘을 통해 일치된다. 섹스는 일부 문화권에 따라 언급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기도 하지만 결국 인간이라는 동물의 마음 속의 섹스는 끝을 모르는 동굴이다. 섹스와 유사 섹스는 종교 혹은 가족 간의 사랑, 우정으로 표현된다. 대상이 무엇인지는 개인의 취향임과 동시에 사회의 취향이다. 신음소리가 고통을 표현하는 소리가 아니듯이, 정치와 섹스는 환희를 가장하는데 가장 좋은 가면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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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4. 22:55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7


늦은 새벽이다. 나는 나와 체결한 약속을 지켜야한다. 500자를 채우지 못할 지언정 내 스스로와의 약속은 지켜야한다. 술을 마셨다. 술을 왜 마시는가에 대한 변명과 핑계는 기득하지만 나는 그런 핑계를 대지 않는다. 내일 후회할 글을 오늘 적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살펴보니 할 이야기가 많다.하지만 오히려 할 이야기가 많을수록 적을 이야기는 적어진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생각하는 이야기와 적을 수 있는 이야기가 다르듯이 말이다. 익숙해진 시간들에 익숙해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다만 나는 술에 취했고 글을 한 눈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약속은 지키기 어려운 만큼 그 어려움을 다음으로 넘기고자 하니 내일에게 그 부담을 지우게 되어 심심힌 사과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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