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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2.30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2. 2013.11.08 아름답지 않은 아이는 없다.
2016. 12. 30. 18:21 내 생각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처음 아동양육시설(고아원)이 공익근무요원으로서의 근무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으레 동사무소나 시청에서처럼 공익 같은 공익(?)의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잡무를 하거나 개인적 시간이 많은 그런 공익생활 말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동들의 학습 지도, 병원에 차로 데려다 주는 것, 식자재 구입에서 부터 증개축을 할 때에는 건설현장 인부 같은 일까지 하였고 소집 해제 직전 몇 개월 동안은 요리를 담당해 직접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일이 힘들었겠다 싶겠지만 사실 가장 힘든 것은, 아동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들, 버려진 아이들, 부모가 어디에 사는지 알지만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아 맡겨진 아이들 등 살아오면서 직접적으로 마주할 기회가 적었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기 위해 아침에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 나가는 일은 스스로에게 많은 혼란을 주었다.


지금도 고향에 추석이나 설날에 내려가게 되면, 아이들을 위한 사탕을 꼭 두 봉지 씩 사고 또 사회복지사와 직원분들을 위해 박카스를 한 박스 사서 들른다. 공익을 마친지 10년이 되어가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아 그러고 있다. 제일 최근에 방문했을 때는 살짝 충격도 받았다. 내가 공익근무를 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이제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대학을 간 아이도 있었고, 취업을 한 아이 그리고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그곳에서 일을 할 예정이라는 아이도 있었다. 시간이 그렇기 흘렀구나 싶으면서도 이 아이들이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립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 부모의 재산 여부에 따라 계급이 나눠진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 내에서 이 아이들은 어떤 수저, 아니 수저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이런 시설을 나온 아동들이 자신들의 재정관리 및 경제에 관한 교육이나 조언을 받지 못해 힘들어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돈을 가져본 적이 없고 또 누구를 믿어야 할 지 모른다는 어려움에 빠진 시설 출신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작은 결론을 내렸다.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시설출신들에게 경제 교육 뿐만 아니라 재무관리를 도와주고 장기적인 계획을 이뤄나가는데 가족 같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돈을 단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해주고 또 일자리나 복지 등에 대한 관리 및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회적 기업. 이런 회사가 벌써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없다면 지금이라도 만들어 재무관리 전문가와 사회복지 전문가 등으로부터 시설출신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실제로 만든다고 하면 어떻게 만드는지는 슬프게도 잘 모르겠다. 생각만큼 쉽진 않겠지만, 왜 지금에 와서야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됐는지 스스로가 미울 지경이다.


공익근무를 하며 이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다시 대학에 가서 고시에 합격해서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전부 진행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계획이 실패했다고 해서 아이들의 삶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지 일시적인 도움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서 함께 그들의 경제적 삶에 도움이 되는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나는 요즘 공부를 하다가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사회적기업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산다. 답 알고 계신 분은 연락주시면 산타가 선물을 주실지도.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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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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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8. 14:16 카테고리 없음

아름답지 않은 아이는 없다. 2013.11.8.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어린 아이였던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더 어린 시절, 아기였던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 긍정문으로 다시 바꿔 적더라도, 우리는 모두 아기였다. 


모두가 아기였던 적이 있는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야, 우리가 아기였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가 그 때 얼마나 사랑받으면서 자랐고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지탱하는데 어느 정도 큰 힘을 발휘하는지 쉽게 예상하지 못한다. 


(위 문장을 적으면서, 과거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아동양육시설' 즉 고아원에서 일을 하면서 만났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아이들에게 부모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거나 자신을 양육할 수 없는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잠을 자고, 사회복지사의 관리 속에서 자라나도록 했던 사람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부모는 있었고 아마도 자신의 아이를 낳은 그 순간 그들의 부모는 그 아이들의 눈과 존재로서 그들의 미래를 보았을 것이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매번 예상했던 대로 되는 것은 아닐 뿐더러, 그 과정에서도 여러가지 고통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에게 직접적으로 양육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그 아이들에게 부모의 빈 자리를 완벽히 채우지는 못할지라도 따뜻한 관심과 그들이 받아야 마땅할 사랑을 간접적으로 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모두가 아기였던 우리는, 시간이 지나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기를 지나 자신의 생각을 형성한 뒤 사회가 요구하는 여러가지 기준들에 우리의 어린 시절을 끼워맞추곤 한다. 


여기서 항상 문제는 발생한다. 


가끔, 아기들의 사진을 보거나 혹은 길을 가다가 어린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다양하다고 적긴 하였지만 결코 옳은 생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뭇 반응들이 있어 이렇게 글을 남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꼭 한 번은 떠올려주기를 바랄 뿐이다.) 


옳은 생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반응 중 가장 본인의 심경을 거슬렀던 반응은 이것이다. 


"이 아이는 예쁘지 않네." 


이 반응은, 어린 아이나 아기가 외모적으로 예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반응이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마치 존재하고 있는 듯이, 사람들은 아이들을 보면서 '예쁘지 않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예쁘지 않구나' 라고 생각이라도 해주면 고마운 일이겠지만, 아마도 본인의 생각에는 '나는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 정도의 생각에서 머룰고 있을 듯 하다. 


아이들이나 아기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인식이나 기준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를 귀엽게 보고, 예쁘게 보아야만 한다는 의무나 당위 역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나 아기들은 자신이 그런 대접을 받아야만 하는 사회적 기준에 대해서 일말의 관심이 없다. 그들이 오직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내가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과 내가 꿈 꾸는 내 미래의 모습을 밝게 그려야 한다는 점, 이 정도 일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외모적으로 예쁘거나 귀엽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역시 아니다. 미추(美醜), 아름다움과 못남의 기준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해 왔다. 그것은 마치 높은 산이 있는 것에 비해 낮은 산이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우리는 낮은 산을 보고, 너는 왜 이렇게 낮니? 라고 묻지 않듯이 아이들에게 그런 질문이나 반응을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거나, 자신의 가지고 있는 기준에 의해 아이들을 제단해버리는 것에 불과하다. 


가끔 티비나 광고 등에 등장하는 아이들 혹은 아기들의 모습은, 동그란 눈에 적당히 긴 머리 그리고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더해 황인종의 아이라기 보다 백인의 아이라고 인식되는 눈동자와 얼굴형을 가지고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우리는 그런 아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는 예쁜 아이'라는 인식을 가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는 결국 아이인 것이고, 그 아이의 미래가 밝을지 어두울지 우리 어른들은 섯불리 판단할 수 없다. 덧붙여 본인은 아직 '흑인'의 아이가 광고에 나온 것을 29년의 삶 동안 본적이 없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오직 본인이 티비나 방송을 통해서 본 흑인 어린 아이는 유니세프의 기부 광고에 등장하는, 영양식을 먹고 있는 아이들에 불과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종적 차별의 결과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본 글의 주제인 '아름답지 않은 아이는 없다'를 왜곡하는 하나의 현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아이는 아름답고, 귀엽고, 예쁘다. 


이것은 하나의 명제이자, 우리가 마음 속 깊이 담아두어야 할 '올챙이' 시절의 추억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이다. 그들이 성장하여 어떤 사람이 될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아기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그 아이가 사랑받지 않아야 한다면, 그건 사랑이라는 것 역시도 조건이 달려야 한다는 3류 소설의 주제도 되지 않는 핑계일 뿐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이들이나 아기들을 보면서 그들의 가진 얼굴이나 외모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뽀뽀나 사랑, 혹은 무한한 칭찬으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관심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단지 관심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그 순수한 눈망울이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 있는 노력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아이는 없다. 그것은 미래를 말하는데 조건이 달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니, 혹시 주변에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의 외모를 보지 말고, 그 아이의 미래를 보고, 이것도 힘들다면 그 아이의 눈동자를 보자. 그리고 그 속에서 비치는 자신의 얼굴이 과연 웃고 있는지, 혹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지를 통해 지금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p.s 

장애를 가진 아이라면, 더욱 우리가 사랑을 쏟아야 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 거부감을 가지거나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은 내 주위에는 없었으면 한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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