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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고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2.30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2. 2014.10.24 자기 고백일지도.
2016. 12. 30. 18:21 내 생각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처음 아동양육시설(고아원)이 공익근무요원으로서의 근무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으레 동사무소나 시청에서처럼 공익 같은 공익(?)의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잡무를 하거나 개인적 시간이 많은 그런 공익생활 말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동들의 학습 지도, 병원에 차로 데려다 주는 것, 식자재 구입에서 부터 증개축을 할 때에는 건설현장 인부 같은 일까지 하였고 소집 해제 직전 몇 개월 동안은 요리를 담당해 직접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일이 힘들었겠다 싶겠지만 사실 가장 힘든 것은, 아동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들, 버려진 아이들, 부모가 어디에 사는지 알지만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아 맡겨진 아이들 등 살아오면서 직접적으로 마주할 기회가 적었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기 위해 아침에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 나가는 일은 스스로에게 많은 혼란을 주었다.


지금도 고향에 추석이나 설날에 내려가게 되면, 아이들을 위한 사탕을 꼭 두 봉지 씩 사고 또 사회복지사와 직원분들을 위해 박카스를 한 박스 사서 들른다. 공익을 마친지 10년이 되어가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아 그러고 있다. 제일 최근에 방문했을 때는 살짝 충격도 받았다. 내가 공익근무를 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이제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대학을 간 아이도 있었고, 취업을 한 아이 그리고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그곳에서 일을 할 예정이라는 아이도 있었다. 시간이 그렇기 흘렀구나 싶으면서도 이 아이들이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립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 부모의 재산 여부에 따라 계급이 나눠진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 내에서 이 아이들은 어떤 수저, 아니 수저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이런 시설을 나온 아동들이 자신들의 재정관리 및 경제에 관한 교육이나 조언을 받지 못해 힘들어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돈을 가져본 적이 없고 또 누구를 믿어야 할 지 모른다는 어려움에 빠진 시설 출신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작은 결론을 내렸다.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시설출신들에게 경제 교육 뿐만 아니라 재무관리를 도와주고 장기적인 계획을 이뤄나가는데 가족 같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돈을 단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해주고 또 일자리나 복지 등에 대한 관리 및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회적 기업. 이런 회사가 벌써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없다면 지금이라도 만들어 재무관리 전문가와 사회복지 전문가 등으로부터 시설출신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실제로 만든다고 하면 어떻게 만드는지는 슬프게도 잘 모르겠다. 생각만큼 쉽진 않겠지만, 왜 지금에 와서야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됐는지 스스로가 미울 지경이다.


공익근무를 하며 이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다시 대학에 가서 고시에 합격해서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전부 진행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계획이 실패했다고 해서 아이들의 삶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지 일시적인 도움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서 함께 그들의 경제적 삶에 도움이 되는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나는 요즘 공부를 하다가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사회적기업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산다. 답 알고 계신 분은 연락주시면 산타가 선물을 주실지도.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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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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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4. 02:48 카테고리 없음

자기 고백일지도.  2014.10.24. 


사실 난 '꿈'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막연하게만 느껴졌고 누군가 억지로 심어주어 가지게 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꿈이라는 것이 그다지 아름답거나 찬란한 '꿈'처럼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직업적' 꿈은 정해놓아 누군가 나에게 '넌 꿈이 뭐니?'라는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꿈을 이야기하곤 했기에 나에게 '꿈'은 가지지 못한 사람이 칭얼대는 어리광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2년 동안 내가 10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외쳐오던 외교관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외무고시 도전이 실패로 끝나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예를 들면, 큰 바다로 나가 범고래를 잡고자 출항했던 배가 큰 바다에 도달했을 때 들려온 소식이 '범고래는 사라졌다' 는 식의 상황처럼 말이다. 이미 바다에 나와 있었고 바다에 나오기 위해 소비해야했던 시간, 노력과 비용은 다시 되돌릴 수 없었다. 돌고래라도 잡아가자 생각하여 차선책이었던 대학원 입학을 하였지만 결국 대학원이라는 곳도 휴학을 했다. 내가 원했던 범고래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이 지출한 매몰 비용이 내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향후 돌고래를 잡기 위한 비용을 대는데에 열정은 사라져 버렸다.


'꿈'이라는 단어가 우스울 때는 전혀 몰랐다. '그것도 없이 어떻게 살아?'라는 쭈볏거리는 반응을 대놓고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꿈이 있다'라는 것이 내 자신감의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그러다가 꿈을 이루는 것이 좌절되고 난 뒤 그것의 소중함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그것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크기와 종류에 관계 없이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 사회적 지위나 지금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서 꿈을 '변경할 수'는 있을 지언정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 그리고 꿈을 가지기에 앞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에 대해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 그 조사에는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주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 또 꿈을 이루는데에도 비용이 든다는 점, 꿈을 포기 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꿈'을 꾸어야 한다는 점. 다시 말하면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을 꿈으로 설정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래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은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다른 꿈들을 폐기해 버리면 안된다. 꿈은 '유일한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 중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선택한 첫 번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다른 꿈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 꿈으로 넘어가는데 있어 공백기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첫 번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다. 두 번째 꿈, 세 번째 꿈.. 이렇게 순서가 내려올 때마다 가끔은 '포기'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한 상황이 올 것이고, 이것을 흔히들 '실패'라고 부르지만 이때에는 좀 다르다. 단 하나의 꿈만이 있었던 사람에게 포기나 실패는 그 사람의 삶을 종결지을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일일 수 있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있는 사람에게는 포기든 실패든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실패가 경험이 된다'는 말은 다음 꿈이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사실 위의 이야기는 내가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대학원 휴학 이후 취업을 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여러 기업이나 공단 등에 원서를 썼지만 합격자 발표를 보지 않았다. 합격을 했을리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직장인'이라는 직업은 내가 아직 선택하기에는 낮은 순위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난 두 번째 꿈에도 진심을 다해 도전하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몇 번째인지도 모를 꿈을 이루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고 여러 준비를 한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바라보건대 지금의 내 상황은 '공백기'이지만 이 공백기가 길어지고 있다. 큰 의미가 없는 일들을 하루 하루 해나가면서 마치 그것들이 나를 지탱하는 것들인양 생각하고 있었고, 주변의 친구들을 만나 '내가 공백기다'라는 것을 자기 비하와 자기 확신이 반반 섞은 채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자기 비하는 첫 번째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의 비하였고, 자기 확신은 두 번째 꿈에서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지금 내가 해야할 것은 자기 비하도, 자기 확신도 아닌 내가 가지고 있는 두 번째 꿈에 대한 실현 노력이다.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다.


나쁘게도 '공백기'가 익숙해졌다. 두 번째 꿈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단지 공백기를 하루하루 '즐겁지 않게 즐기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스스로 분석하기에는 '내적 내전의 패전' 즉,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난 나만의 전쟁에서 졌다고 분석하지만 빨리 다시 전후 복구를 해야할 것임에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두 번째 꿈이 자신에게 열정을 불어 달라며 손을 내밀지만 애써 외면하며 가만히 자리에 앉아 소꿉놀이나 하고 있거나 아니면 첫 번째 꿈을 아쉬워하며 회상만 하고 있다. 그리고 첫 번째 꿈의 실패 탓인지 두 번째 꿈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다. 긴 가래떡을 뽑아내는 기계에서 가래떡을 자르듯이 첫번째 꿈과 두 번째 꿈이 '딱'하고 끊어지면 좋을텐데 구질구질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직도 첫 번째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쉬움이 남았을까. 아니면 두 번째 꿈, 세 번째 꿈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큰 것일까.


직장인 친구들이 보면 부러워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니 새벽까지, 먹고 쉬고 쉬고 먹고 책보다가 영화보다가 글 쓰다가 쉬고 먹고를 반복하고 있지만 단 1초도 편하지 않다. 내가 편하지 않은 이유는 '나이가 서른이니 이제 돈을 벌 때가 되지 않았니', '친구들은 적금 들고 결혼하고 집사고 하는데 넌 뭐하니', '대학원까지 입학해놓고 지금 놀고 있으면 어쩌자는거니', '일단 현실을 바라보고 취업을 해서 돈을 좀 모아야 하지 않겠니' 등의 이야기에 의해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야만 하고 선택할 두 번째 꿈이 내게서 더욱 멀어지고 있는 듯 하여, 내가 다시는 꿈을 선택하지 못할 듯 하여, 꿈을 선택하지도 못할 만큼 패배자가 되어 이번 삶을 '이리저리' 살다가 끝낼지도 모를 듯 하여 불편한 것이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참,

'공백기'의 나는 참 나약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내 성격 중 정말 나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이렇게 나약하면서도 아무런 근거 없도, 그 어떤 통계적 조사도 없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기대나 응원이나 비난이나 힐난이나 그 무엇이 나에게 가해지더라도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그 앞에 붙어야 할 세 글자, '무엇을'. 이것을 찾아야 한다. 아니, 채워야 한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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