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가고파라가고파

Notic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91,843total
  • 1today
  • 2yesterday

'주유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2.21 “알바 시각표”
  2. 2016.03.28 사장님 어디 있어?
2016. 12. 21. 00:50 내 생각

“알바 시각표” 


‘이러다가 분명, 또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받지 못 할거야. 어떻게 하지? 내가 얼마만큼 일을 했는지, 시각표를 적어놔야겠다.’ 


2004년 겨울, 아직 11월임에도 더 이상 추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추위가 이어졌다. 내가 일했던 주유소는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에 세워져 있어 바다와 상당히 가까웠다. 바다는 다른 건물들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바다의 비린 냄새와 함께 차가운 겨울 바람은 주유소 곳곳을 파고 들었다. 나는 몇 번이고 주유소 소장님께 아르바이트를 위한 대피장소, 그러니까 주유소에 들어가면 흔히 보이는 조그마한 부스를 하나 사서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벌벌 떨며 손님을 기다려야만 했다.


10월에 시작한 주유소 주유원 아르바이트도 이제 손에 익을 무렵, 10월 달의 급여를 처음 받았을 때 생각했다. ‘내가 일한 시간보다 적은 금액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시간을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라고 정해두긴 했지만, 매번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손님들의 차에 기름을 넣는 일이 많았고, 추가 근무에 대한 것은 으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추가 근무에 대한 급여를 달라고 해도 소장님은 가끔 저녁을 사주는 것으로 몇 일 간의 추가근무에 대한 급여를 지불하는 것이라 여기시는 듯 했다. 


11월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집에 있던 A4 용지 한 장에 11월의 달력을 한 장 그려갔다. 토, 일요일도 없이 일을 했으므로 11월 한 달의 달력은 딱 내가 일을 할 날을 의미했다. 그리고 달력 위에 내 이름을 적어 소장님께 매우 친절한 목소리로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하며 드렸다. 


“소장님, 제가 이런 걸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이번 달 말에 알바비 계산하실 때 편하게 하시라구요.” 


소장님은 그 종이를 받아 드시더니, ‘이게 뭘까?’ 하는 눈빛으로 내가 내민 종이와 내 얼굴을 몇 번 번갈아 보셨다. 그리고 이윽고 “그래, 내가 일일이 못 챙길 수도 있으니까 월말에 다 적으면 나한테 다시 보여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소장님께서 화를 내시거나 혹은 내게 지난 달 급료가 적었냐고 따져 물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내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아마도 지난 한 달 간 내 근무 중, 주유 실수도 없고 또 청소나 단골 관리 등을 솔선하여 하는 모습들을 보시며 칭찬을 하셨던 것을 떠올리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날부터 퇴근하기 전 내가 몇 시에 출근을 했고 또 퇴근을 했는지를 정확히 계산해 표에 적어 넣기 시작했다. 월말이 되면, 총 몇 시간을 근무했는지를 모두 더한 값을 적어서 소장님께 드렸고 그렇게 나는 내가 일한 정확한 시간에 맞는 시급을 받았다. 그 당시 내가 한 달을 꼬박 일하고 받은 돈은 약 80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표는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왔을 때도, 같은 표를 만들어 올 것을 소장님께서 요구했고 그것을 적어 채워줄 것을 요구했다.) 


최근 대기업의 한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생의 시간을 쪼개고 뭉개는 형식으로 약 4만 명이 넘는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84억에 달하는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이 뉴스가 되었다. 깊은 화가 났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이 더러운 옛말을 아직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기업이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몇몇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식으로 어딘가에 취업하기 전, 아르바이트는 간접적으로 사회를 배우고 또 자신의 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이지 않냐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지금 현재의 한국에서는 아르바이트는 결코 젊은 사람만이 하는 것도 아닐 뿐 더러, 젊은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그것은 더욱 보호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찬란한 시절의 가치인 ‘젊음’이라는 시간을 써서 최저시급을 받아가며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경험이 되기 때문도 아니고, 사회를 배우기 위해서도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위해 단기적으로 나마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 따위가 아니다. 삶의 유지에 필요한 것은 경험이 아니라, 돈이다. 


봉사는, ‘돈을 벌지 않는 일’이 아니다. 돈이 아닌 또 다른 가치를 벌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봉사다. 그렇기에 결코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을 소비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마치 ‘봉사’나 ‘의무’와 같이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아르바이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자신의 시간을 들이는 모든 경제관계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스스로가 원하지 않은 것을 해달라며 요청하곤 그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결코 서로에게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자신이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임에도,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설명하진 못해도 느낄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글을 정리하며, 일본에서 유학했을 때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한다. 당시 여자친구가 없었던 나는 일본인 친구들 중 한 명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녀에게 호감을 표시하기 전, 한국과 일본에 연애에는 다른 점이 있을까 해서 일본인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일본인 여자친구와 가까워질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우선 밥을 같이 먹어라. 그리고 밥을 같이 먹을 정도의 사이가 되면, 술을 함께 마셔라. 그러면 그 여자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고백을 해도 된다’ 따위의 어이 없는 대답을 내게 해주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나는, 왜 그런 순서로 이어지냐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는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밥을 함께 먹자고 한 이야기를 듣고 같이 밥을 먹고, 또 술을 마실 정도라면 그 여자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들일 만큼.’ 


나는 시간이 소중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것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소중하기에 그 사람이 가진 시간 역시 소중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사람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두고 있을까? 한 명의 아르바이트가 어떤 일에서 그만둔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언제나 대체가 가능한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아니면 그 한 명이 소중하고 또 관계에 있어서도 유지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궁금해진다. 궁금해지기도 전에 우리 사회는 그 답을 이미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틀린 답을 정답이라고 우기며. 


한 명의 아르바이트라 할지라도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시간은 결코 스스로가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지켜 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 모두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람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지켜주기 위하여 발전해 온 역사가 우리 인류의 역사이자 자유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아, 너무 멀리 갔나?)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0) 2016.12.30
"관심"  (0) 2016.12.30
“알바 시각표”  (0) 2016.12.21
“2005년 산 포도주”  (0) 2016.12.16
겨울이 되면  (0) 2016.12.12
“행복하셨는지 물어볼 수 있다면”  (0) 2016.12.08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6. 3. 28. 18:14 내 생각

"사장님 어디 있어?"

2004년 그러니까 20살 때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2004년 10월 1일부터 2005년 1월 1일까지. 원래는 12월 31일까지 하기로 했지만, 사장님께서 새해 첫날 손님이 많이 올 것인데 짬뽕을 점심으로 사줄테니 하루만 더 하라고 해서 하루 더 했다. 짬뽕에 새해 첫날을 팔았다. 흑.


주유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유쾌하지 못한 일들이 종종 생겼다. 내게 반말을 하는 손님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었고 쓰레기를 봉투에 담지 않은 채 창 밖으로 하나씩 던지는 손님, 가득 넣으라고 해놓고 왜 가득 넣었냐고 따지는 손님도 있었다.


유쾌하지 못한 일 중 가장 찝찝하면서 매달 내 손해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결제할 때 유종(기름의 종류) 바꾸기와 경찰과 소방차들이 와서 하는 '기름 삥땅'이었다. 기름 삥땅이란, 법인 카드로 실제 주유량보다 결제를 더 많이 하고, 남은 기름의 양을 리터 단위로 적어 나중에 자신의 차에 넣는 그런 짓거리였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유종 바꾸기를 하려는 손님을 만났다. 50대 후반 즈음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운전자였고 조수석에는 부인이, 뒷자석에는 20대의 두 자녀가 타고 있었다. 승용차를 타고 왔고, 휘발유를 넣었다. 계산을 하기 위해 다가가자 카드를 내밀며, '경유로 결제해줘.'라 당연한 듯이 내게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당황하고 있자 원래 그러는 것이라며 경유로 결재하라 다시 한 번 엄중히 내게 권했다.


돈만 맞으면 된다는 생각에 나는 휘발유를 경유로 결제했고, 손님은 만족하며 떠났다.


하지만


한달에도 몇 건의 이런 일들이 있고 난 뒤에, 그 손해가 고스란히 아르바이트생인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휘발유와 경유는 판매되는 가격이 달랐고, 또 당연히 주유소에 들어온 기름과 나간 기름 사이에는 격차가 생겼다. 격차는 결국 돈이 빈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 돈은 아르바이트생의 월급에서 깎았다. 이때 시급이 2700원이었으니 정말 벼룩 간을 빼먹는 짓이었다.


이후 나는 이런 유종 바꿔치기를 하는 손님을 만나거나 할 때는, 손님에게 들리는 목소리로 다른 알바생에게 'OO야, 국세청 전화번호가 몇 번이더라?' 하며 손님이 알아서 유종 바꾸기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럼 그 손님들은 다시 우리 주유소에 오지 않았다.


악질 중의 악질은, 기름 삥땅이다. 하루는 소방차가 한 대 들어왔다. (소방차 말고도 경찰차, 법인 차량 참 다양한 차들이 기름 삥땅을 하러 왔다...) 소방수 옷을 입은 채로 차에서 내려서는, 몇 리터를 넣고 몇 리터는 알아서 빼달라고 내게 말을 툭, 던졌다. 나는 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지만 '그럴 수 없다'하며 강한 거부의사를 보였다. 뭐랄까. 소방차는 안그럴줄 알았다고나 할까. 일종의 실망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들었는지, 운전을 했던 소방수 말고도 다른 소방수들도 차에서 다 내렸다. 다들 한 마디씩 던진다. 알바 한지 얼마 안됐냐, 원래 그렇게 다 하는거다. 그리고 이어


"사장님 어디 있어?"


사무실에 계신다 하니, 다들 슬금 내 눈치를 보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장님 나오셔서, 내게 눈치 한 번 주시고선 기름을 넣고 결제를 하고, 삥땅한 기름의 양이 적힌 종이를 소방수에게 건넸다. 나는 가만히,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전에도 나도 많이 했던 것이었고, 또 이미 익숙해진 탓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소방수에 대한 어떤 환상이 무너진 것만이 그때는 문제라 느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사소한 불의와 만나가며 2005년 1월 2일이 되었고, 나는 더이상 이런 치졸한 사람들과는 만나지 않게 된다는 것에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후 공익근무를 하거나 대학에 다시 들어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결국 어딜 가나 불의랄까, 소악(小惡)이랄까- 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거대한 악이었으면. 차라리 거대한 악이라서 내가 그것을 무찌르고 타파하기 위해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었으면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삶은 의지와 타협 사이의 줄타기다. 무엇인가를 이루겠다거나 해내겠다는 의지와 상황이나 타인에 의하여 변경되는 것과의 타협. 이 둘 사이에서 사람들은 아슬아슬 살아간다. 자신의 의지만을 관철시키는 사람을 우리는, 이기주의자라거나 고지식하다고 하고 또 자신의 의지 없이 타협만을 아니, 때로는 추종만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기회주의자라 비난한다.


감히 바라건대, 타협을 하더라도 그 범위가 어느 한 사람의, 어느 한 사회의, 어느 한 국가의 양심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면 안될까. '사는 건 다 그래.'라며 위로 같지도 않은 격려 말고, 순수했던 젊고 어린 시절 자신의 양심이 아름답게 지켜질 수 있도록 사회가 구축되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의지와 타협을 넘나들어도 양심의 가책이나 불법은 아닐 수 있도록 말이다.


아마, 지금도 전국 어딘가의 주유소에서는 유종을 바꿔 계산하고 기름 삥땅을 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지 마세요. 그거 불법입니다. 불법 이전에 당신이 한 사람의 양심을 흔들고 있어요. 당신 양심이 더럽다고 또 다른 사람의 양심을 더럽히지 마세요.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샤프를 쓰지 못한 이유  (0) 2016.03.29
마음 둘 곳  (0) 2016.03.28
사장님 어디 있어?  (0) 2016.03.28
천안함 6주기  (0) 2016.03.28
기지개  (0) 2016.03.28
착하던데요.  (0) 2016.03.28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