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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4.19 여드름 자국
  2. 2016.03.29 샤프를 쓰지 못한 이유
  3. 2015.03.09 현우의500자_94
2016. 4. 19. 00:31 내 생각

여드름 자국

 

중학교 시절까지 단 하나도 나지 않던 여드름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내 얼굴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춘기가 되면 누구나 나는 것이라 생각해 내버려두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선 배 밑에 베개를 깔고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양손을 얼굴에 대고 여드름을 상처로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드름을 무던히도 열심히 짰던 기억이 선명한 것은, 그 사소한 실수가 지금까지도 내 얼굴에 남아 있다는 것을 매일 거울을 보며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하얀 고름이나 유분기가 ’-이 소리는 실제로 난 소리는 아니고, 마음 속에서만 들렸던 소리다-소리를 내며 거울에 튀겼고, 나는 더욱 힘껏 여드름을 손으로 꾹꾹 눌러 피가 나도록 했다. 몇 번의 반복된 동작 끝에 내 얼굴에는 여드름의 기미는 사라졌지만 불긋한 상처와 딱지들이 남았다. 상처가 나으면 예전의 피부도 돌아가겠지- 하는 착각. 이 있었다. 그때는 그 사소한 행동들이 이후의 내 얼굴의 한 특징이 될 줄 알았을리 없다.

 

나에게는 익숙해졌지만.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익숙해지지 않는 듯 했다. 대놓고 내 피부를 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내 피부 상태를 보고, 나 자신을 관리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기는 듯 했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것은, 내 눈을 보지 않고 묘하게 피부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적어졌지만 과거에는 꽤- 많았다.

 

상처가 남았다.

 

여드름 흉터로 인해 상처가 남은 것은 내 피부였지만,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나 사소한 놀림-예를 들어 달의 표면 사진을 보는데, 네 피부가 생각났다.’ 라던지, ‘좀 씻고 다녀라라던지- 에 의해서 마음에도 상처가 남았다. 피부의 치료를 위해 피부과를 다녀보기도 했지만,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내가 익숙해진 만큼 크게 신경쓰지 않는 시간들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예전의 중학교 친구가 생각났다. 오른손이 있을 자리에 항상 붕대를 감고 다녔던 친구. 그 친구는 혈관기형으로 손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했다. 자신과 같이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기 위해 한의사가 되고자 했었는데,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친구는 손이 없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불편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는데, 그 시선탓에 굳이 감지 않아도 될 붕대를 감아야만 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혐오스럽다며 언짢은 표정을 자주 지었다고 했고 자신도 그런 피해를 남에게 주고 싶지 않다 했다.

 

손과 피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용도와 이질감이 덜 드는 쪽은 피부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다르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그 결과는 같을 수도 있다.

 

이질감.

 

티비를 틀어보면 피부 미끈한 사람과 손 두 개인 사람들이 나온다. 심지어 예쁘고 잘생기기까지 했다. 굳이 티비를 틀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도 관리 잘된 피부를 갖춘 사람을 꿀피부나 피부 미녀/미남이라 칭송하기도 하고 매력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손이 없거나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저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편하게 만들어내어 관리복지의 대상으로까지 만들어 버린다. 그 원인에는 이질감이 있다. 누가 만들어낸 기준이고 평균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은 피부가 미끈해야 하고 손은 두 개, 발도 두 개, 눈도 두 개 등등 다양한 평균적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이질적인사람이 되어버리고,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복지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다르다는 것의 아름다움.

 

나는 비록 내 실수로 인해 그리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여드름 흉터가 생겼지만,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를 가진 사람은 대부분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내 실수로 지금의 피부가 되었지만, 나는 내 피부가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저 내 피부는 남과 다를 뿐이다. 장애 역시 그렇다. 그저 그 한 사람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안될까. 개성이면서 일상 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부족한 사람에게 부족하다 비난할 것이 아니라, 부족하니 사회에서 조금씩 채워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러게 된다면 다름은 개성으로 굳혀지고, 그 개성은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하나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든 드러나지 않는 것이든, 다시 말해 신체적인 것이든 정신적(혹은 심리적)인 것이든 불편함과 다름을 안고 산다. 마치 현재 모든 인류의 공통점이라 할만한 불편함과 다름을 이질적이라거나 비정상이라고 낙인찍는다면 이 세상 누구도 정상은 없다. ‘정상평균이라는 것의 틀을 벗어나야만 모든 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지 않을까.

 

피부 나쁜 것도 장애가 있는 것도, 마음이 아픈 것도, 몸이 아픈 것도 또 그 어느 한 곳 아프지 않은 것도 그저 그 사람이 가진 개성이고 다름이 되기를. 불편하더라도 스스로가 변하길 원치 않으면 마음 깊이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나만의 욕심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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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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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9. 18:01 내 생각

"샤프를 쓰지 못한 이유"


지금도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초등학생은 샤프를 쓸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 샤프를 쓰지 말라 하시기도 했고, 부모님께서도 연필을 쓰라 하셨다.


왜 샤프를 쓰지 못하게 했을까.


연필은 매번 깎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었고, 또 연필심이 쉽게 부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샤프를 사용하지 말라는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특별한 이유라기 보다, 샤프를 사서 쓸 수 없는 친구들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연필은 저렴했고, 샤프는 초등학생이 사기에는 고가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혹은 지역만 하더라도, 지금의 기준으로 금수저와 흙수저가 편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편한 친구가 될 수 있었지만 또 그와 동시에 부모의 재산이나 직업이 학생에 영향을 끼친 측면도 물론 있다. 옷차림만 보아도 알 수 있었고, 간혹 있는 생일 잔치에 초대받아 가면 그 친구의 환경을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부모의 재산이나 배경이 아이들을 주눅들게 하거나 자신의 현재를 비관하게 두지는 않았다. 아이들과 부모 각자가 서로를 배려하려 노력했다.


최근의 뉴스나 기사들을 보면 자신이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몇 평의 집에 사는지 등으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구분 짓기'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부모의 직업으로 불려지는 것보다 정도가 더 심하게, 'OOO동'으로 불려지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또 간혹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고급 아파트 단지 사이로 지나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바리게이트를 치고 철조망을 친다는 기사를 읽을 때면, 고개가 자연스레 저어진다.


사회적 차별이란 별 것 아닌 듯 싶으면서도 한 사람에게, 특히 그 사람이 어린 아이라면 크게 영향을 끼치는 듯 하다. 옛날이 그립다는 생각이 아니라, 차이를 차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예전의 태도가 지금은 많이 사라진 듯 하기 때문이다.


사회와 학교 그리고 부모가 배려하는 속에서, 연필을 사용하게 된 아이들은 샤프를 사용하지 못하는 불만이야 물론 있었겠지만 다른 친구와 자신을 부모의 직업이나 경제력에 의해 차별하지는 않았다.


헬조선이니, 금수저니 흙수저니 다양한 계급의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지금에서, 나는 연필 한 자루에 담긴 그 배려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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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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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9. 06:34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94 


외가쪽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저녁 8시 즈음 모여 저녁을 같이 먹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외가쪽 친척들은, 자주 뵙지 못해도 나와의 관계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어른들이었다. 다시 말해 내가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었다. 제사를 마치고 조상이 주신다고 하지만, 사실 외숙모께서 고생하시면서 만드신 제사 음식을 가볍게 나누어 먹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조상이 남긴 과거가 아닌, 가족의 미래를 위해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 사이 어머니의 사촌오빠 즉 외가의 외삼촌 중 한 분께서 형과 나에게 용돈을 주셨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지만 형이 받은 돈이 내가 받은 돈의 두 배였다. 돈을 받아든 나는 인종차별하지 마라! 소리치며 돈을 친척이 가득 서 있는 거실에 세게 던져버렸다. 일순 정적이 흐른 것은 조상이 다녀갔기 때문은 아니었다. 외가 친척들이 부랴 뿌려진 돈을 주웠다. 그러시면서 미안하다며 형과 같은 금액을 나에게 건넨다. 어릴 땐 참 맹랑했다. 지금까지 놀림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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