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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처음 아동양육시설(고아원)이 공익근무요원으로서의 근무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으레 동사무소나 시청에서처럼 공익 같은 공익(?)의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잡무를 하거나 개인적 시간이 많은 그런 공익생활 말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동들의 학습 지도, 병원에 차로 데려다 주는 것, 식자재 구입에서 부터 증개축을 할 때에는 건설현장 인부 같은 일까지 하였고 소집 해제 직전 몇 개월 동안은 요리를 담당해 직접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일이 힘들었겠다 싶겠지만 사실 가장 힘든 것은, 아동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들, 버려진 아이들, 부모가 어디에 사는지 알지만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아 맡겨진 아이들 등 살아오면서 직접적으로 마주할.. 더보기
나에게 바란다_5 "오늘도 한 걸음을 열심히 걸었다."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이면 자신이 하는 공부나 향후 합격 이후의 삶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나누게 됩니다.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진 못했지만, 신림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그것은 바로, 시험 공부를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자신은 그 시험에 합격한 사람인 양 행동하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시험 합격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상상하고 기대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자기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좋은 태도이기도 합니다.하지만, 합격이라는 지상명제를 얻기 이전까지 고시생은 고시생에 불과합니다. 고시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곧 구성원이 될 것이라 믿.. 더보기
2014년 정리 2014년 정리. 2014.12.24. # 1 세월호가 가라 앉았고, 유병언이 떠올랐다. 한 명 한 명, 기억해야 하는 사람은 수 백 명인데, 단 한 명의 이름이 뉴스에 등장했다. 종교가 등장했다. 거대악이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이단을 싫어했고, 자기 가족이 죽지 않은 사람은 탓할 사람이 필요했다. 정부를 욕하자니 카톡을 뒤질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에 떨었다. 유병언은 죽어 가라 앉았지만 세월호의 기억도 같이 가라 앉았다. 유병언을 떠올린 사람은 알고 있었으리라. 세월호를 가라 앉힐 수 있음을.# 2 군대에서 폭행을 당해 몇 명의 청년들이 죽었다. 병영혁신위원회인가 이름도 외우기 힘든 뭔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군 가산점제를 부활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낸다. 문제가 군대 내부의 문제에서 남녀 문제로 비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