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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2014년 정리




2014년 정리. 2014.12.24. 


# 1
세월호가 가라 앉았고, 유병언이 떠올랐다. 한 명 한 명, 기억해야 하는 사람은 수 백 명인데, 단 한 명의 이름이 뉴스에 등장했다. 종교가 등장했다. 거대악이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이단을 싫어했고, 자기 가족이 죽지 않은 사람은 탓할 사람이 필요했다. 정부를 욕하자니 카톡을 뒤질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에 떨었다. 유병언은 죽어 가라 앉았지만 세월호의 기억도 같이 가라 앉았다. 유병언을 떠올린 사람은 알고 있었으리라. 세월호를 가라 앉힐 수 있음을.

# 2
군대에서 폭행을 당해 몇 명의 청년들이 죽었다. 병영혁신위원회인가 이름도 외우기 힘든 뭔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군 가산점제를 부활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낸다. 문제가 군대 내부의 문제에서 남녀 문제로 비화된다. 남녀가 싸우기 시작한다. 군대의 폭력 문제는 잊혀진다. 남녀 문제는 활활 불타오르지만 군대 내 가혹행위나 폭행문제는 서서히 식어간다. 식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얼어간다. 군대를 갔다 온 뒤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군대에서 '살아서 나와야' 함에도, 그 '살아서 나오는' 것은 무시받기 시작했다. 나도 갔다 왔고 너도 갔다 올 것이니 너는 그냥 견디고, 가산점 줄테니 여자랑 싸우란다.

# 3
청와대에서 작성한 문건이라고 말했다. 공식문서라 인정했다. 근데 찌라시란다. 찌라시란다. 전단지도 아니고. 찌라시란다. 청와대는 공식문서를 말할 때 찌라시라 하는 가 보다. 국립국어원은 청와대에 뭐라고 항의라도 했을까. '국어를 올바르게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나쁜 사람들의 손에 휘둘리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럴리 없다. 누가 작성했든 그것을 작성한 사람은 공무원이지만 그것을 유출한 죄가 더욱 크다. 사실이든 아니든 관계 없이 작성한 사람은 공무원이지만 그것이 유출한 것이 더욱 크다. 유출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몇 장의 문서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일지 모른다. 그러니 유출한 죄가 더욱 크다. 국민의 신뢰를 유출해 어디론가 빼돌렸는데 이건 누가 찾아주나.

# 4
창업을 하란다. 으쌰으쌰. 창업을 하란다. '창업넷'이 '스타트업'으로 이름을 바꾼단다. 영어로 적으면 더 멋져보이는가 보다. 창업에 몇 조를 푼다, 몇 천억을 푼다고 이야기해도 창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 돈은 멀리 있다. 실패하면 내 탓이고, 성공하면 정부 덕이니 일단 실패든 성공이든 뭐든 해보란다. 대기업은 사내 유보금을 늘리면서 투자할 데를 찾지만 땅만 보이지 사람은 안보인다. 아, 내가 인문계열 전공자라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나 보다. 아닌 것 같은데. 스티브 잡스 아저씨. 아저씨는 왜 빵집은 열지 않았나요. 아이 브레드. ibread.

# 5
민주적 기본 질서는, 독재를 막기 위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87년도에 다시 헌 법을 적을 때 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말은 더 이상 이 반도 위에서 독재를 위한 정당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독재는 그만하고 민주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적으로 해결해 나갔다. 대통령을 뽑았고, 총선을 했고, 헌재 재판관을 추천했다. 민주적이다. 아주 민주적이다. 당의 강령이 민주적 기본 질서를 훼손한다면 그 당은 해산되어야 한다. 그 당이 독재를 준비할 당이면 말이다. 민주적이라는 표현에 대한 민주적 합의가 필요할 시기이다. 독재하려 했으면 해산되어야 했는데, 독재도 뽑혀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 6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글과 사진들이 길다랗게 올라오기 시작하는 연말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린다. 외과는 더이상 필요 없는 시대다. 내과나 정신과만 필요한 시대다. 내상을 입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서로의 내상을 확인하며 '힐링'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라는 옛 드라마 '다모'의 대사를 서로 울부짓으며 힐링한다. 난 별로 행복하지 않다. 난 정말 아프다.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너도 아프구나' 라고 말한다. 아프다는 말을 들려주면 낫는다고 티비에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떠든다. 행복하란다.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살란다. 남은 어찌 됐든 자신만을 위해서 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럼 너무 무정한 사람처럼 보이니 겉으로는 남을 위하면서 속으로는 오직 나만을 위해서 살란다. 나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여러분, 정말 행복한 한 해였습니까?'

# 7 
주옥. 내일도 주옥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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