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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03.28 사장님 어디 있어?
  2. 2016.03.28 천안함 6주기
  3. 2016.03.28 착하던데요.
  4. 2016.03.28 "좋은 경험으로 끝내서는 안돼."
2016. 3. 28. 18:14 내 생각

"사장님 어디 있어?"

2004년 그러니까 20살 때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2004년 10월 1일부터 2005년 1월 1일까지. 원래는 12월 31일까지 하기로 했지만, 사장님께서 새해 첫날 손님이 많이 올 것인데 짬뽕을 점심으로 사줄테니 하루만 더 하라고 해서 하루 더 했다. 짬뽕에 새해 첫날을 팔았다. 흑.


주유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유쾌하지 못한 일들이 종종 생겼다. 내게 반말을 하는 손님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었고 쓰레기를 봉투에 담지 않은 채 창 밖으로 하나씩 던지는 손님, 가득 넣으라고 해놓고 왜 가득 넣었냐고 따지는 손님도 있었다.


유쾌하지 못한 일 중 가장 찝찝하면서 매달 내 손해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결제할 때 유종(기름의 종류) 바꾸기와 경찰과 소방차들이 와서 하는 '기름 삥땅'이었다. 기름 삥땅이란, 법인 카드로 실제 주유량보다 결제를 더 많이 하고, 남은 기름의 양을 리터 단위로 적어 나중에 자신의 차에 넣는 그런 짓거리였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유종 바꾸기를 하려는 손님을 만났다. 50대 후반 즈음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운전자였고 조수석에는 부인이, 뒷자석에는 20대의 두 자녀가 타고 있었다. 승용차를 타고 왔고, 휘발유를 넣었다. 계산을 하기 위해 다가가자 카드를 내밀며, '경유로 결제해줘.'라 당연한 듯이 내게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당황하고 있자 원래 그러는 것이라며 경유로 결재하라 다시 한 번 엄중히 내게 권했다.


돈만 맞으면 된다는 생각에 나는 휘발유를 경유로 결제했고, 손님은 만족하며 떠났다.


하지만


한달에도 몇 건의 이런 일들이 있고 난 뒤에, 그 손해가 고스란히 아르바이트생인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휘발유와 경유는 판매되는 가격이 달랐고, 또 당연히 주유소에 들어온 기름과 나간 기름 사이에는 격차가 생겼다. 격차는 결국 돈이 빈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 돈은 아르바이트생의 월급에서 깎았다. 이때 시급이 2700원이었으니 정말 벼룩 간을 빼먹는 짓이었다.


이후 나는 이런 유종 바꿔치기를 하는 손님을 만나거나 할 때는, 손님에게 들리는 목소리로 다른 알바생에게 'OO야, 국세청 전화번호가 몇 번이더라?' 하며 손님이 알아서 유종 바꾸기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럼 그 손님들은 다시 우리 주유소에 오지 않았다.


악질 중의 악질은, 기름 삥땅이다. 하루는 소방차가 한 대 들어왔다. (소방차 말고도 경찰차, 법인 차량 참 다양한 차들이 기름 삥땅을 하러 왔다...) 소방수 옷을 입은 채로 차에서 내려서는, 몇 리터를 넣고 몇 리터는 알아서 빼달라고 내게 말을 툭, 던졌다. 나는 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지만 '그럴 수 없다'하며 강한 거부의사를 보였다. 뭐랄까. 소방차는 안그럴줄 알았다고나 할까. 일종의 실망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들었는지, 운전을 했던 소방수 말고도 다른 소방수들도 차에서 다 내렸다. 다들 한 마디씩 던진다. 알바 한지 얼마 안됐냐, 원래 그렇게 다 하는거다. 그리고 이어


"사장님 어디 있어?"


사무실에 계신다 하니, 다들 슬금 내 눈치를 보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장님 나오셔서, 내게 눈치 한 번 주시고선 기름을 넣고 결제를 하고, 삥땅한 기름의 양이 적힌 종이를 소방수에게 건넸다. 나는 가만히,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전에도 나도 많이 했던 것이었고, 또 이미 익숙해진 탓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소방수에 대한 어떤 환상이 무너진 것만이 그때는 문제라 느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사소한 불의와 만나가며 2005년 1월 2일이 되었고, 나는 더이상 이런 치졸한 사람들과는 만나지 않게 된다는 것에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후 공익근무를 하거나 대학에 다시 들어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결국 어딜 가나 불의랄까, 소악(小惡)이랄까- 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거대한 악이었으면. 차라리 거대한 악이라서 내가 그것을 무찌르고 타파하기 위해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었으면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삶은 의지와 타협 사이의 줄타기다. 무엇인가를 이루겠다거나 해내겠다는 의지와 상황이나 타인에 의하여 변경되는 것과의 타협. 이 둘 사이에서 사람들은 아슬아슬 살아간다. 자신의 의지만을 관철시키는 사람을 우리는, 이기주의자라거나 고지식하다고 하고 또 자신의 의지 없이 타협만을 아니, 때로는 추종만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기회주의자라 비난한다.


감히 바라건대, 타협을 하더라도 그 범위가 어느 한 사람의, 어느 한 사회의, 어느 한 국가의 양심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면 안될까. '사는 건 다 그래.'라며 위로 같지도 않은 격려 말고, 순수했던 젊고 어린 시절 자신의 양심이 아름답게 지켜질 수 있도록 사회가 구축되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의지와 타협을 넘나들어도 양심의 가책이나 불법은 아닐 수 있도록 말이다.


아마, 지금도 전국 어딘가의 주유소에서는 유종을 바꿔 계산하고 기름 삥땅을 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지 마세요. 그거 불법입니다. 불법 이전에 당신이 한 사람의 양심을 흔들고 있어요. 당신 양심이 더럽다고 또 다른 사람의 양심을 더럽히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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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8. 18:12 내 생각

“6주기”


천안함 폭침 6주기. 3월 26일은 6년 전 천안함이 두동강나고 바다로 침몰한 날이다. 나는 오늘 여기서,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천안함은 내 유년을 지키고자 했던 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2011년, 제10회 육군사관학교 안보토론대회에 참가했었다. 학부 시절의 마지막 대외활동으로서 선택했던 것이지만, 나는 우연히 아버지의 추억과 맞딱드리게 된다. 안보토론대회의 일정 중 해군2함대 평택기지에 전시되어 있는 천안함을 방문하는 일정이 그 계기였다.


천안함은 ‘정치’였다.


천안함과 관련된 논쟁에서 한 쪽의 이야기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그 믿음에 맞는 데이터를 찾았다. 근거가 된 데이터들은 상대방의 신념이 ‘비합리’나 ‘종북’이라고 매도하는데 활용되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 입장과 태도에 별 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고, 천안함을 방문하기 직전까지도 그랬다.


안보토론대회 둘째 날, 평택에 도착했다. 그리고 맨눈으로 처음 보는 천안함. 형체가 기괴했다. 철판이 저렇게 휘어질 수도 있구나 라는 놀라움과 함께 저 배 안에 타고 있었을 해군장병들에 대한 애도와 측은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코리아 타코마.


천안함 앞에 세워져 있던 철제 입간판에 천안함을 건조한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코리아 타코마. 익숙한 이름이었다. 아버지께서 다니시던 조선소의 이름이었고, 아버지의 작업복에 적혀 있던 이름이었다.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지금 저 천안함 전시되어 있는데 와 있습니다. 근데 건조회사가 코리아 타코마네요. 이거 아버지 계실 때 만드신겁니까? 응. 내가 만들었다. 천안함 진수식(처음으로 배를 바다에 띄우는 날)에 천안시장님도 오셨지. 그리고 자판기도 하나 놓아주시고 가셨다. 그날 참 사람들 많이 왔지.


87년에 건조되었다고 적힌 천안함. 내가 85년생이니 내 나이 3살 먹었을 당시 아버지께서는 조선소 노동자로서 천안함을 만들고 계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고, 국제정치를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두동강 난 천안함을 다시 만나고 있었다.


정치학을 공부하다 보면, 수많은 ‘결정적 시기’를 만나게 된다. 세계대전의 발발일이나 종전일 뿐만 아니라, 어떤 정치지도자가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큰 영향을 미친 시기 등, 다양한 시기들을 만난다. 한국정치사에서 결정적 시기라 할 수 있는 ‘천안함 폭침’이 내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경험. 새롭기도 했고, 일종의 감동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그럴 것 같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께서 각기 다른 곳에서 고생을 하셨던 것은, 나라의 경제 발전이라는 결정적 시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으셨을 것이다. 또 민주화 시대의 삼촌, 이모들은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결정적 시기를 만들어 내고자 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시대정신이랄까 시대의 대의는 사라져버린 지금,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결정적 시기를 지내며 그 시기에 대한 애정과 노력을 더하고 있는 듯하다.


20대 후반의 아버지께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땀 흘려 만드셨을 천안함을 역시 20대 후반의 아들이 정치학을 공부하며 마주하는 경험. 천안함 이 세 글자를 글이나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정치색이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나에게 있어서 천안함은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천안함 6주기. 이날 생을 달리하신 장병 여러분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 사랑 속에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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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8. 18:10 내 생각

"착하던데요."

2008년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당시 다시 대학에 갓 들어온 '24살' 신입생으로서, 대학생으로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해보자는 생각에 이런 저런 곳에서 주최하는 강연을 찾아 들었다.


고려대에 재학중이던 친구로부터 당시의 진보신당의 대표였던 심상정 국회의원의 강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222번 버스를 타고 고려대로 향했다. 정치적인 입장이 유사해서도, 심상정 의원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에 향했다.


강연 내용은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상가가 아닌, 정치인의 말이란 시처럼 함축적이고 소설처럼 역동적이다. 하지만 시나 소설이 아닌 탓에 마음에 남지는 않았다.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문학은, 정책이 아닐까.


여튼


강연은 마쳤고, 고대 정문 앞의 한 식당에서 뒷풀이를 가지게 되었다. 고려대 진보신당 모임이 주축이 된 모임인 만큼, 관련된 관심을 가진 학생, 강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내 옆자리에는 고려대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신다는 분이 앉았다. 가볍게 내 소개를 했다.


"건국대에서 오셨구나. 건국대 학생들은 참 착하던데요."


내 소개를 듣자, 이어 앞의 문장을 정말 환한 얼굴로- 그 어떤 악의도 찾을래야 찾을 수 없게- 반가워하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나는 궁금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대학들에서도 수업을 진행하지만, 서울대, 연대, 고대 같이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학교들이랑 비교해보면 건국대 학생들은 참 착해요. 크게 분란을 일으키지도 않고, 또 시키는 거 잘하고."


그렇구나. 당시 건국대 학부에 재학중이었으므로, 마치 내가 건국대를 대표해서 온 듯한 인상을 받긴 했지만, 그렇구나 정도로 말을 아꼈다.


간단한 저녁과 술을 먹고, 다시 2222번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착하다는 건 어떤 뜻일까. 또 그 착한 대상이 학문의 탐구를 하러 들어온 대학생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건국대 학생들이라는, 개개인이 아니라 집단적 의미로서의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랬다. 고려대는 투박하고, 연세대는 세련되고 서울대는 이기적이다 라는 인식이 나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착하다'라는 평가는, 놀라웠다.


서울에 있는 종합대학 중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고 또 학교를 다니면서 만난 수많은 '멋진' 친구들이 사회에서 바라 보았을 때는 단지 착한 대학생들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억울하기도 했다.


다시 생각했다.


세계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는? 세계경제 10위권에 머물러 있으면서, 역사와 전통이 있지만 착한 나라. 미국과 중국과 일본 그리고 다소 멀지만 러시아 사이에서, 식민지가 되기도 했지만 광복 이후 미국과의 동맹 속에서 미국의 말을 잘 듣고 있는 착한 나라.


누군가 외국에서 만난 사람이 우리 나라 사람을 두고, '착한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구나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듯 하다. 마찬가지로, 건국대 학생에 대한 이미지 역시 그래야만 했다.


세계 속의 한국과 서울에 있는 대학들 사이에서의 건국대. 참 많이 닮았다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는 많은 편견을 갖고 산다. 그 편견이 잘못된 것인지 잘못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불편하다. 편견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편하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지를 갖는다.


개인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집단에 대한, 국가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니라도 항변하는 것은, 피해의식이 드러난 것 뿐이라고 또 비난 받기 딱 좋은 태도기도 하다.


뭐랄까.


살면서 많은 편견들과 마주치고, 또 개인이 매몰된 조직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 수긍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이런 문제들은 우리 사회가 겪으면서도 또 동시에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상이 누구든지, 그 대상이 원하지 않은 편견과 이미지는 그 사람의 가능성을 낮추어 버리기 때문이다.


건국대도 그렇고, '아줌마'도 그렇고, '아저씨'도 그렇다. 마치 한국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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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8. 18:04 내 생각

"좋은 경험으로 끝내서는 안돼."

얼마 전부터 '4월 13일 총선' 관련 몇 가지 행사나 글에 내 이름을 올릴 기회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이기는 했지만, 딱히 할 일도 없었고 또 '정치'라는 분야가 20살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12년 간 내 공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기에 그 기회를 잡았다.

1월의 어느 날,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첫 번째 모임을 가졌다. 같은 기회를 잡은 사람들이 모였고, 나름대로 '정치'라는 범위 안팎에서 활동해오던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여성에 관해, 누군가는 NGO에 관해, 또 누군가는 진짜 정치에 뛰어들어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날 첫 모임에 우연히 참석한 사람도 있었다.

앞으로의 방향과 4월 13일이 되기 전에 해야할 일 등등을 정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기회를 잡은 사람들을 구경하러 온 한 명이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지금 이런 활동들이 다 좋은 경험이 되겠죠."

나는 그 말을 듣고, 정색했다. 원래도 인상이 좀 딱딱한 편이지만, 정색을 하면 더 험악해지는 탓에 내 정색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느껴진 모양이다. 나는 내가 정색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회를 잡아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있지만, 이 자리에 올 수도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하고 있는 만큼 단지 좋은 경험으로 남아서는 안됩니다."

사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는 정책이 필요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것을 표현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아무리 많은 젊은 정치인 지망생들이 나온다 한들 그 사람들은 일부, 아니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에 있어서는, '좋은 경험'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는 지금의 경험이 다음 경험과 성장을 위한 발판일 수 있겠지만, 기회를 잡은 사람이나 그것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해야 한다. 더욱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최대로 반영되게 해야 한다.

정치에서 뿐만 아니다. 해외봉사활동이나 국내봉사활동이 '스펙'의 중요한 한 꼭지가 되었다고들 한다. 언제가 '해외봉사활동, 아무나 가지마라' 라는 글에서 적은 적도 있지만 봉사활동은 나를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 봉사의 대상이 되는 이에게 있어 우리를 만나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생존이다. 우리는 생존 앞에 스펙을 이야기하고, 경험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봉사활동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행이나 대학원 진학 등 다양한 것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경험?

잘 모르겠다. 어떤 경험이 추억으로 남기에는 그 추억에 담아야 하는 의미가 너무 많은 시대다. 그런 시대를 살며, 경험을 쌓았다 자위하기 보다 '나를 통한 최선'이나 '기회를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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