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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4.04 기타와 휘발유
  2. 2015.03.09 현우의500자_95
  3. 2014.09.25 대학과 성(性)
2016. 4. 4. 00:54 내 생각

"기타와 휘발유"


고등학교 1학년, 기타를 배웠다. 버스정류장 앞 조그만 기타 학원에서 성함이 '박진영'이라는 선생님으로부터 기타를 잡는 법부터 코드를 쥐는 법 등 하나씩 기타 현이 내는 소리를 만들어가는 법을 배웠다.


몇 개월 동안 배운 실력이지만, 코드의 운용이나 멜로디 잡는 법을 열심히 배운 덕에 그해 학교 축제에서 '비오는 거리'라는 노래를 무대 위에서 부르기도 했다. '인기' 처녀 선생님이었던 담임선생님과 반장인 나, 부반장, 총무 이렇게 4명이서 무대를 꾸몄다.


기타를 배우니


다른 노래를 들으면 기타 소리에 관심이 갔다. 드럼이나 베이스, 보컬의 소리 사이에서 기타의 음에만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이렇게들 잘 칠 수 있는지 흥분하며 악보를 찾아 연습을 해보기도 했고, 기타 연주곡을 찾아듣거나 관련된 영상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휘발유?


속초와 강릉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 친구의 차로 이동을 했던 터라 서울에 도착하면 기름을 넣어야 했다. 친구의 차는 경유 차. 주차장에 고이 모셔져 있지만 내 차는 휘발유 차다. 친구가 기름 가격을 보는데, 친구는 경유의 가격을 본다. 나는 휘발유의 가격을 본다.


평소에도 나는 휘발유 가격만 본다. 경유의 가격이야, 내 차가 먹을 것이 아니니 관심 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기타도 그랬고, 휘발유도 그랬다. 사람은 자기가 관심이 가는 것을 먼저 보거나 아니면 그것만 본다. 노래는 기타 소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나는 기타 소리만 들었고, 도로 위에는 휘발유 차만 다니는 것이 아니지만 나는 휘발유 가격만 보았다. 나 뿐만 아닐 듯 하다.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어떤 지위에 있는지에 따라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 심지어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이나 듣고 싶은 것만을 본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적은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율리우스 시저)가 먼 친척인 아우구스투스를 로마 초대 황제로 만들 때, 그를 평가하길.


"보고 싶은 것과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동시에 보는 사람"이라 평했다.


보고 싶은 것이든 듣고 싶은 것이든 먹고 싶은 것이든 자기가 하고 싶고 관심이 있는 것만 보고 듣고 느낀다면, 편하다. 상식이라는 것에 대한 상식이 사라진 최근에는, 결국 자기가 좋은게 좋은 거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나의 관심사와 타인의 관심사, 나의 위치와 타인의 위치 따위의 것들에 대해 비교는 하지 않아도 배려는 해야 한다. 배려를 해야 좋은 음악이 나오고, 다양한 탈 것들이 도로 위를 다닌다. 배려를 해야 좋은 정치인이 나오고, 좋은 나라가 된다. 굳이 정치가 아니라도. 좋은 가족이든 무어든.


살아가는데 있어 아는 것이 많을 필요는 없다. 살아갈 만큼 필요한 지식이면 된다. 하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이해해야 하는 것이 많을 필요는 있다. 나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타인에 대한 - 나아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여나간다면, 최소한 내 이야기만 무조건 옳다는 사람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좀 더 나은 어른이나 사람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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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9. 06:34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95


뚱둥착뚱두둥착. 노래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의아해 하던 선배와 친구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이제 알게 되었다는 표정이다. 총무와 부반장 그리고 반장인 나로 구성된 우리는 모두 기타를 한 대 씩 품어 올리고 있다. 연습을 하여도 노래는 잘 부르지 못했다. 비오는 거리를 걸어 본 적이 없는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노래가 흐르던 중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담임선생님께서 수줍은 미소와 함께 등장했다.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온갖 짐승소리에 노래가 잘 들리지 않았다. 우리의 걸걸한 목소리와 기타 음률 틈에 여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섞이니 묘한 화음이 만들어진다. 기타를 배운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학교 축제에 올라, 가수 이승훈의 '비오는 거리'를 불렀다. 단 한 장의 사진만이 남았지만, 비가 올 때 그리고 기타를 켜는 누군가를 볼 때면 고등학교 1학년 당시의 볼바알간 내가, 안경 안쪽에 서린다. 서려 있는 내 모습에 눈동자는 보이지 않는다. 음악은 사진보다 깊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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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25. 05:32 카테고리 없음

2014.09.25.


2004년 처음 대학을 들어왔을 때의 일이다. 
서울에 종종 올라올 일이 있었지만 내게 서울이란 '사람 많고, 얼굴 표정 어둡고, 무언가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45도 이상 들어야 하는 높은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은, 차마 내가 너무 촌스럽게 느껴질까봐 적지 않도록 하겠다. (이미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잠을 잘 곳이 생기고(첫 보금자리는 2인실 기숙사였다.) 내가 소속된 곳이 있다는 사실은 내게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서울사람이 되어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표준어를 구사해보려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기에 지금도 여전히 노력중이다. 
서울에 내 24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다시 서울을 보게 됐다. 사실 '서울'을 보게 됐다기 보다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는 표현이 합당할 듯 하다. 당시 처음으로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을 '압축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많이 만나게 된 곳은 다름 아닌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줄여서 오티(OT)라고 부르기도 하고, 최근에는 한글 사용 분위기에 따라 '새내기 새로배움터'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곳 말이다. 짧게는 1박2일부터 길게는 3박4일까지 진행하는 학교가 있다고 하니, 대학은 짧게 배울 수도 또는 길게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아마 각 대학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나 보다. 
고향에서 올라와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기 전, 오티는 말 그대로 서울 대학 생활에 대한 오티이자 서울에 대한 오티였다. 오티를 가보니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많았다. 서울에 있는 대학의 특성인가 싶을 정도로 전국 각지 출신의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있다는 것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공립 남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에게 있어서 수많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곧 다니게 될' 여학우들의 존재는 신선의 수준을 넘어 황홀의 수준에 이르기에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의 시점에서 약 10년 전의 여학우들의 사진을 보면, 어딘가 촌스럽기도 하고 또 지금까지 알고 지내던 동기들과 선배들의 사뭇 다른 모습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때 당시의 '첨단' 유행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에 나름 새롭다.

내가 황홀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던 여학우들에 대한 생각이 변하게 된 것. 이것이 이 글의 주제임과 동시에 내가 서울에 대학을 올라오고 난 뒤 '아, 이것이 다른 것이구나'하고 느꼈던 것이다. 생각이 변하게 된 것이라고 하기에는 오히려 내가 무지했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인정하고 넘어가자. 내가 무지했다. 내가 무지했던 부분은 다름 아닌, 내가 너무 쉽게 여성의 상품화와 여성에 대한 희화화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다시 오티로 돌아가자. 오티에 가기 전, 학교에 옹기종기 선배동기들이 모였다. 가볍게 자기 소개를 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니 당시 학생회장 선배가 흰 종이를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무슨 종이인가 해서 보니, 양성 평등 교육 및 성불평등에 관한 문제점 그리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 등이 적혀 있는 종이였다. 그것을 단 한줄도 빼놓지 않고 읽어내려가는 학생회장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거부감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사례를 들어가며 읽어나가면서 가끔 유머 코드를 섞긴 했지만 그것이 흰 종이 위에 적혀 있던 내용의 전체적인 맥락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때 학생회장 선배가 들었던 예시 중 대표적인 것들은 아래와 같다.

"예전에 어떤 선배가 오티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타입의 신입생이 있길래 친해지고 싶어 옆에 앉았어. 그리고 술을 같이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무슨 기분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여학생에게 건배와 함께 술을 서로 따라 주자고 이야기를 했다네. 그때 그 선배는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으나 다음날 총여학생회에서 그 선배를 찾아와 오티가 끝나는 대로 학교로 돌아가 사과 대자보를 붙일 것을 요구했대. 사과 대자보에는 선배가 했던 행위들, 예를 들면 술을 같이 마시자고 한 행위, 억지로 건배를 시킨 행위, 술을 따르도록 한 행위들에 대한 반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네. 그 선배는 총여학생회 소속의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실제로 대자보를 붙였어."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장기자랑 하면 여장들 많이 하지? 우리는 하면 안돼. 여장은 여성을 희화화하는 것이라 알려져 있어. 여장이 재밌는 이유는 남자가 여자처럼 분장을 해서 재밌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가진 특성을 부각시키고 또 그것을 통해 통쾌해 하는 것 혹은 여성에 대한 성적 상품화 등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시킨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 학교는 여장을 절대로 하지 않아. 만약 누군가 이따가 밤에 있을 장기자랑에서 여장을 하게 되면, 아마 장기자랑은 중단될 것이고 그 여장을 한 학생은 리포트보다 대자보 쓰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할 거야."

이런 이야기를 버스 안에서 가만히 듣다보니 "아, 서울에 있는 대학은 여성에 대한 존중을 높이 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되었다. (여담이지만, 여성을 여성이라 부르는 것이 오히려 여권신장에는 좋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여자/남자는 단지 성별에 대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반면, 여성/남성이라 함은 여자가 가지고 있는 본성, 남자가 가지고 있는 본성을 부각시키는 표현으로 여자에게는 남자에게 복종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유교주의적 사상이 깊게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많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리고 마치 '여자'라 부르면 비하하는 듯 하고, '여성'이라 부르면 높여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풍토 또한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아, 또 여담이 길었다. 본론으로 돌아와야지.

오티를 가는 버스 안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오티 장소에 가보니, 여학우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다. 선배가 했던 다른 이야기 중에, 내가 속해있었던 사회과학부 소속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각 단과대학 오티에 참석해서 여성 비하 혹은 희화화를 하지는 않는지 또는 여자 휴게실을 따로 만들어 두지 않은 것을 적발하거나 혼숙을 예방하기 위한 감시의 목적으로 총여학생회 소속의 학생들이 몰래 돌아다닌다는 사실도 있었기에 여학우들이 어떨때는 무섭게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2박 3일 동안의 오티 기간 중 '성'과 관련된 문제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즐거운 무박 3일의 오티를 보내고 다시 서울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총여학생회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계기들은 왕왕 있었다. 실제로 희롱이나 모욕에 대한 대자보를 읽어보기도 했고, 그것이 미치는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용어 하나에서도 그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는데, 총여학생회를 부를 때 줄여서 '여총'라고 부르는 것은 금지되었다. '여자총학생회'가 아니라 '총여학생회'가 정식 명칭인 만큼 줄여 부르려면 '총여'가 되어야 했고, '여총'이라 부르는 것은 남녀가 모두 포함된 '총학생회'와는 다른 별도의 조직같아 보일 뿐만 아니라, '여자'를 강조하는 듯한 뉘앙스를 품기에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티를 다녀온 이후 한 학기 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입대를 했고, 다시 서울에서 약 3년 간 멀어져 있었다.(당시 군입대는 실패ㅋ) 오티와 약 4개월 간의 신입생 생활 동안 받았던 임팩트 때문이었을까, 당시에는 꽤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다. 총여학생회의 감시때문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지평을 넓혔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여성인권이라는 미개척지를 자의는 아니었지만 개척하게 되었고 또 그것에 대한 공감을 충분하게 하였기에 나름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향에 내려오고 고향 근처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심찮게 당시 싸이월드 등과 같은 사이트에 올라오는 여장 사진들과 여자를 두고 싸움을 하거나 선택의 강요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었고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나는, 기껏해야 '여자 편 드는 이상한 놈'으로 밖에 인식되지 못했다. 나는 여기서 서울과 지방의 차이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지금도 일부 대학에서 여장을 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점, 그리고 그 문제의식을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거나 전통으로 여기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고 그런 대학들이 공교롭게도 서울이 아닌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빈도수가 높다는 것을 인식시켜주고 싶은 생각 뿐이다.(여담이지만, 아직도 지역 일부 체육대학에서 학우들을 때리는 것을 전통이니, 역사니 하는 대학이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내가 지방에서 대학을 다녀보지 못했으니 그 지역의 문화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여성을 희화화하는 것, 상품화 하는 것이 일부 지역의 전통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내가 가진 문제의식이 때로는 나 스스로를 불편하게 했지만 이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고 하는 것을 고백해야 하는 순간은 지금이 적절한 듯 하다. '전통'이니 '재미'니 하는 구태의연한 표현들을 포함해서 티비에서도 여장은 다시 웃음을 유발하는 모습으로 다가왔고 처음에는 불편했던 여러 장면들에 나 역시도 익숙해졌다는 것. 이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긴 글을 왜 적느냐.

최근 서울의 모 여대 총학생회가 축제기간 중 학생들에게 요구한 '의상'과 관련한 부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 여대 총학생회는 학생들에게 심한 노출을 하거나 교복 등 흔히들 '아청아청'이라는 의성어로 익히 알려진 '아청법' 위반을 연상케 하는 복장들에 대한 자기 규제를 요구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 마음 속에서도 양시론이 구축되어 있다. 다만 남자로서의 입장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로서의 입장과 여성인권의 향상이 필요하다는 입장, 이 두가지 입장에서 양시론이다. 자유에 대한 보장은 권위로 펼칠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 '자유'에 대한 한계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는 억압일 수 있기에 우선 소속 학우들과의 논의가 필요했던 부분이 분명 있었다고 본다. 그와 동시에 축제라는 매개를 통해서 대학 내부의 구성원과 대학을 둘러싼 사회의 구성원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있어 여성에 대한 상품화가 만연해 있는 사회의 구조를 그대로 반영해야 했었나 하는데 총학생회의 문제의식이 있다고 보아 찬성표를 던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남녀공학 대학이라 하더라도 총학생회에서 여성의 상품화와 희화화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같은 성명을 낸다 하더라도 찬성할 것이다.

2004년에 들어갔던 대학과는 다른 대학에 2008년에 입학하기도 했던 나는, 2008년 입학 대학이 '축제 때 가장 물 좋은 대학'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 역시도 간과하지 못한다. '컨셉'을 잡아 운영한다고 하여 승무원 복장을 한다거나 간호사 복장을 한 여학우들이 주점을 운영한단다. 학생들은 그것에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고 매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고 하니 결국 '시장주의'의 답습을 대학에서 제대로 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문제의식도 없이 '자정'하지 못하는 것은 말그대로 문제 그 자체일 수 있다.

티비만 틀면 나오는 걸그룹의 복장은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고, 몸매를 드러낸 것으로도 부족한지 성인이 채 되지 못한 멤버에게 성행위를 암시하는 춤을 추도록 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를 구성하는 양대축 중 하나를 구성하기도 함과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은 섹시함에서 나온다'는 이념을 주입시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사회라고 특별히 그런 이념에 반항하고 대항하고 대학만의 양성평등을 구축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에게 무조건적으로 즐겁고 옳은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상대방에게도 옳을 것이라 인식하는 것, 또 이런 문제들을 직면함에 있어 내부적인 토론이나 그것을 넌지시 혹은 의도적으로 밀어넣는 사회에 대한 토론이 부재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매사에 치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매사에 전혀 치열하지 않고 단지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다보면 차별은 당연시 되고 억압은 마치 자유로운 것인양 인식될 것이다.

2004년 대학 신입생으로서 느꼈던 그때의 그 문제의식은 지금은 많이 희석되어버렸지만, 오히려 그 때보다 지금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의견을 구함에 있어 더욱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의 소유라기 보다 공유 그리고 토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더욱 굳건해졌다.

어찌들 생각하시는지.

p.s 서울과 지역에 대한 구분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의 미천함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혀둔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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