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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03.28 천안함 6주기
  2. 2015.03.01 현우의500자_88
  3. 2015.02.21 현우의500자_78
  4. 2015.01.23 현우의500자_50
2016. 3. 28. 18:12 내 생각

“6주기”


천안함 폭침 6주기. 3월 26일은 6년 전 천안함이 두동강나고 바다로 침몰한 날이다. 나는 오늘 여기서,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천안함은 내 유년을 지키고자 했던 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2011년, 제10회 육군사관학교 안보토론대회에 참가했었다. 학부 시절의 마지막 대외활동으로서 선택했던 것이지만, 나는 우연히 아버지의 추억과 맞딱드리게 된다. 안보토론대회의 일정 중 해군2함대 평택기지에 전시되어 있는 천안함을 방문하는 일정이 그 계기였다.


천안함은 ‘정치’였다.


천안함과 관련된 논쟁에서 한 쪽의 이야기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그 믿음에 맞는 데이터를 찾았다. 근거가 된 데이터들은 상대방의 신념이 ‘비합리’나 ‘종북’이라고 매도하는데 활용되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 입장과 태도에 별 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고, 천안함을 방문하기 직전까지도 그랬다.


안보토론대회 둘째 날, 평택에 도착했다. 그리고 맨눈으로 처음 보는 천안함. 형체가 기괴했다. 철판이 저렇게 휘어질 수도 있구나 라는 놀라움과 함께 저 배 안에 타고 있었을 해군장병들에 대한 애도와 측은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코리아 타코마.


천안함 앞에 세워져 있던 철제 입간판에 천안함을 건조한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코리아 타코마. 익숙한 이름이었다. 아버지께서 다니시던 조선소의 이름이었고, 아버지의 작업복에 적혀 있던 이름이었다.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지금 저 천안함 전시되어 있는데 와 있습니다. 근데 건조회사가 코리아 타코마네요. 이거 아버지 계실 때 만드신겁니까? 응. 내가 만들었다. 천안함 진수식(처음으로 배를 바다에 띄우는 날)에 천안시장님도 오셨지. 그리고 자판기도 하나 놓아주시고 가셨다. 그날 참 사람들 많이 왔지.


87년에 건조되었다고 적힌 천안함. 내가 85년생이니 내 나이 3살 먹었을 당시 아버지께서는 조선소 노동자로서 천안함을 만들고 계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고, 국제정치를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두동강 난 천안함을 다시 만나고 있었다.


정치학을 공부하다 보면, 수많은 ‘결정적 시기’를 만나게 된다. 세계대전의 발발일이나 종전일 뿐만 아니라, 어떤 정치지도자가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큰 영향을 미친 시기 등, 다양한 시기들을 만난다. 한국정치사에서 결정적 시기라 할 수 있는 ‘천안함 폭침’이 내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경험. 새롭기도 했고, 일종의 감동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그럴 것 같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께서 각기 다른 곳에서 고생을 하셨던 것은, 나라의 경제 발전이라는 결정적 시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으셨을 것이다. 또 민주화 시대의 삼촌, 이모들은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결정적 시기를 만들어 내고자 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시대정신이랄까 시대의 대의는 사라져버린 지금,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결정적 시기를 지내며 그 시기에 대한 애정과 노력을 더하고 있는 듯하다.


20대 후반의 아버지께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땀 흘려 만드셨을 천안함을 역시 20대 후반의 아들이 정치학을 공부하며 마주하는 경험. 천안함 이 세 글자를 글이나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정치색이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나에게 있어서 천안함은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천안함 6주기. 이날 생을 달리하신 장병 여러분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 사랑 속에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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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 09:28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88 


공익근무요원이었다. 해군에 입대하고 나서야 내 시력이 군대를 갈 수 없을 만큼의 시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합병원에서 병사용 진단서를 떼어 보아도 결과는 같았다. 공익요원 판정을 받고 4주 간의 훈련 이후 내가 배치된 곳은 아동양육시설이었다. 부모가 버린 아이들이나 학대 받던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 다양한 일을 했다. 차량 운행 및 관리, 학습 지도 그리고 식사 준비가 내 업무 중 하나였다. 그날은 마늘 쫑대 볶음이 반찬으로 나가는 날이었다. 마늘 쫑대를 물에 데쳐 그것을 한 번 씻어 내고, 다시 볶아야 하는 음식이다. 마늘 쫑대를 물에 데치고 그것을 옮기려는데 손잡이 부분이 갑자기 헐거워졌다. 뜨거운 물이 내 왼쪽 허벅지 쪽으로 쏟아진다. 데친 마늘 쫑대를 버리지 않으려 싱크대 위에 냄비를 재빨리 올려 놓았다. 그리고 나서 다리에 냉수로 바지를 흠쩍 젖을 만큼 열을 식혀보아도 몇 일이 지난 후 큰 화상으로 남았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내가 받은 상처 모두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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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1. 16:03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78


골프를 치는 여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담장보다 높은 라운드는, 내가 타고 있던 버스와는 다른 세계인 듯 했다. 표정 하나 하나를 살펴보기는 힘든 거리였음에도 그들의 얼굴에 슬픔 따위 없었다. 그 바로 옆의 또다른 입구에는 새로이 입대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보였다. 짧게 자른 머리 그리고 그 뒤와 옆을 따르는 가족들의 모습도. 나는 생각했다. 저들 중 몇몇은 내가 타고 있는 버스를 누워 타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친구의 영혼 없는 몸을 싣고 가는 버스에 타 있었다. 뇌출혈이라 했다. 픽, 하고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선 또 다시 쓰러진 친구를 해군은 3시간 동안 부대에 머물게 뒀다고 한다. 마산으로 나와 큰 병원으로 옮겨진 친구의 머리를 열어본 의사는 피범벅, 이라 했다며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생생하다 못해 몸서리가 내렸다. 애도사를 읽던 나는, 유유히 흘러갈 골프공과 파리하게 깎은 머리를 잊을 수가 없었다.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던 친구, 최백호의 마지막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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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3. 09:44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50


돌고래들이 섬 뒤에 나란히 서 있다. 서로의 몸을 끈으로 묶은 듯 가로로 줄지어 있다. 섬은 고향 바다에 떠있는 돝섬이다. 맷돼지의 전설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옆에서 보면 꼭 거북이 같다. 목을 주욱 뺀 거북이가, 넓은 바다를 향해 누워 있다. 대양을 갈망하는 거북이 옆으로 돌고래들이 마산항을 향해 엉덩이를 삐죽이 내밀고 있다. 빨아도 나오지 않는 거북이의 젖을 대하듯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아래위로 출렁이는 돌고래들의 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여름 날 태풍 전야의 풍경이다. 진해에 있는 해군 함대는 태풍이 오기 전 날, 항상 함선들을 고향 바다 앞으로 보냈다. 돝섬에 가리어 합포만은 높은 파도가 일지 않았다. 육중한 회색 몸뚱이 위에 적힌 검은 숫자들이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전함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다른 이름을 가진 돌고래 몇 마리. 나라를 위한 군함이었고, 해군 수병에게는 자신의 집이었을테지만, 나에게는 태풍 직전의 여름의 시간, 미끈한 돌고래를 상상하도록 하는 추억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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