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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31. 18:01 내 생각

행복하세요?”

 

나 뿐만 아니다. 내 옆사람 뿐만 아니라,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행복을 느끼고자 하는 것을 헌법에 명시해놓고 있을 정도다.

 

헌법 제10,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하지만, 때론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은 사뭇 불편하게 다가온다. ‘행복하다라 대답하기에는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들과 생계유지를 위한 돈벌이가 떠오르고, ‘행복하지 않다라고 대답하기에도 나를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과 여행을 가서 느꼈던 기분 좋았던 추억들이 입가의 미소와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묘답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 답이란 바로, 행복할 때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다, 가 그것이다. 너무 싱거운 대답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언제나 행복할 수도 없고, 또 쉬지 않고 불행할 수도 없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는 그날 따라 인력거를 타겠다는 사람이 많았기에 행복했던 김 첨지가, 집으로 돌아가자 죽어 있는 아내를 발견한 이후 불행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덤덤하기에 그지없는 문체에는 행복과 불행이 언제나 함께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문자 그대로의 행복추구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행복의 비중을 늘리고 불행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누구를 만날 때, 어떤 생각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지를 우선 명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이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가진 병폐의 한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쉽게 가지 못하는 곳을 가고, 쉽게 먹지 못하는 것을 먹는 행위가 되어 버린 탓이다.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비교하도록 강요당하는 이상, 자신의 행복은 상대적으로 불행한 것으로 쉽게 여겨진다. ‘행복의 절대성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이런 상황은, “내가 느끼는 기분 좋음은, 행복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저런 멋진 것들이 행복의 조건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절대적인행복을 전제해버린 탓에 자신의 소소하거나 일상적 행복을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비교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넓은 숲을 가진 사람과 조그마한 텃밭을 가진 사람을 비교하면 넓은 숲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듯 보이지만, 조그마한 텃밭에서 기르는 작물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숲 따위 어찌됐든 좋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행복의 비중을 늘리기 위한 첫단추로써, 타인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을 비교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감정이라 표현하기는 했지만, ‘기분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대부분의 사람은 앞서 언급했던 대로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 제대로 깨닫지도 못한 채 성인기를 맞이한다. 오로지 공부만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학창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었더라도 또 다시 설정된 외부의 목표에 의해, 행복 따위 느낄 겨를 없이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소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것을 방증하는데, 이런 것들을 통해서 자신이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용기에는 실패할 수도 있다는 위험이 뒤따른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자신이 무엇에 기분 좋음을 느끼는지를 성공한다면 하나의 행복을 찾은 것이겠지만, 실패할 수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다음 시도에 있서 첫 시도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에 임할 수 있다.

 

이런 수많은 시도들을 통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나 익숙해진 습관이 형성된다면 그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으려고 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행복을 느낀다.

 

용기라고 적었다고, 지레 겁먹거나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지는 마시라.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느끼는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 나 이거 하니까 행복하네.’라고 느끼려는 시도와 노력으로도 용기는 생기기 마련이다. 용기란, 맹자에 따르면 누구나 갖고 있지만 발현하지 못한 그 어떤 성분에 지나지 않으니 한 번 속는 셈치고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행복을 느끼는 법에 대해 장황하게 적었지만, 정작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듯 보이는 불행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해답은 같다. 불행을 줄이는 방법 역시 같다고? 그렇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때에 불행을 느끼는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 우선이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불편하거나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꾸역꾸역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만남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만나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불행을 피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예를 들면 또라이상사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가족 등을 만나며 살고 있다. 아니, 살아야 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퇴사를 하거나 가출을 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퇴사를 하고 가족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당신이 그러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테니, 현실적인 불행의 비중을 줄이는 방법을 알려주려한다.

 




불행과 불편을 구분하는 것.

 

불행과 불편을 구분한다면 또라이직장상사와 나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확신하고 있는가족으로부터 불행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불편은, 존재를 부정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것 혹은 그 사람이 내 주변에 있기에 느끼는 짜증남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었을 때, 발이 아프다고 느낀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단지 불편함을 느낄 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불편함을 불행으로 느낀다. 직장상사의 잔소리와 감정적 대응을 듣는 것은 분명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것을 들었다고 해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행과 불편을 구분 짓는 것만으로,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이어질 수 있다. 가족의 잔소리와 상사의 핀잔은 불편하지만 그것이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내 삶의 근간을 흔든다면 그것은 결국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편과 불행을 구분지어야 하는 이유는, 불편함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주는 대상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사의 감정적 대응에 대해, ‘과장님, 그런 발언은 저를 불편하게 만듭니다.’라고 대응한다면 상사는 되려 화를 낼 것이지만, 어떤 것이 불편하지를 되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과장님, 그런 발언은 저를 불행하게 만듭니다.’라 대응하면 상사는 어떻게 대답할까? 모르긴 몰라도, ‘그래서 어쩌라고?’ 정도의 반응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행복과 불행은, 삶의 근간을 이루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권리로서 인정받는 것이고, 불행과 불편을 구분하며 불편을 해소하고 불행의 가능성 자체를 줄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불행을 줄이는 방법에는 또 다른 것이 있는데,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많은 것들과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것이다. 불행을 느끼는 바탕에는,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어.”라는 일종의 포기가 내포되어 있다. 자신의 노력이나 시도를 통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은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력의 정도를 높이더라도 그것이 바뀌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불행을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다. 앞서 언급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나 해외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슈에 대해서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등은 분명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발생하는 테러에 대해서 무관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픔에 공감하되 나도 저기서 죽을 수도 있었겠다하는 불필요한 감정이입이나 세상은 정의롭지 않아라고 단정지어버리는 등의 태도는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행복하세요?”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합니다. 다만 저는 행복을 늘리기 위해 살고 있고 불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장 적확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루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대답이라 생각한다. 또 대부분의 시간이란 행복도 불행도 아닌, 기억에도 남지 않는 일상들의 연속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행복의 절대성을 버리고, 자신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의 요소를 찾아야 한다. 또 불편을 불행으로 손쉽게 연결시키지 않으려는 의지와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과의 과감한 관계 끊기가 가능하다면, ‘추구할가치가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 나날들이었지만, 오늘은 행복을 많이 느꼈다며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지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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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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