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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기지개

"기지개"


고시 공부를 하며 신림동 고시촌에서 살 던 때다. 100만원 보증금에 월세 31만원(원래 33만원짜리 방인데, 2만원 깎았다. 앗싸!)에 살고 있던 방이었다. 침대는 없었고, 책상과 옷장, 조그만 냉장고 하나 그리고 화장실이 딸린 방이었다. 이정도 방이면 신림동에서는 '중산층'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이었다.


위치와 시설 모두 좋았지만, 한 가지 딱 안좋은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천장이 낮다는 것이었다. 윗옷을 벗을 때 팔을 뻣으면 천장이 손에 닿았다. 쉽게 말해 아침에 일어나서, 일어선 채로는 기지개를 켤 수 없었다는 의미다.


이때는 그저, 천장이 낮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1년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고 난 뒤, 연희동으로 이사를 왔다. '뿌리가 깊은 집'이었다. 뿌리가 깊은 집? '반지하'라는 말이다. 반지하였지만, 충분히 넓었고 또 그만큼 습기가 충분히 아주 충분히 가득찼다. 그렇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옛날집이라서 그런지 천장이 높았다.


하루는, 기지개를 키는데 내가 팔을 다 펴고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다시 조심스레 팔을 쭉 펴는데 손에 아무것도 닿지 않는 것이 아닌가!


기분이 묘했다.


자유로웠다고 할까. 사실 기지개를 키려면 굳이 집 안이 아니어도 되었다. 문 밖으로만 나오면 노옾은 하늘에 기지개를 마음껏 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집 안에서의 기지개 하나에 자유를 느꼈다.
1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내 스스로에게 "나는 집에서는 기지개를 편하게 켤 수 없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내 주변의 한계에 나의 한계를 맞춰가고 있었던 것이다.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다 했다. 작은 수조에 기르면 그 수조의 크기 밖에 크지 못하고 큰 바다나 강과 같은 곳에서 자라면 엄청난 크기로 자라난다는 물고기. 아마 나는 코이 물고기와 비슷했던 것 같다.
주변의 상황에 맞춰 자신의 가능성을 지레 작게 잡아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백날 '가능성을 높이 잡아라' 라던지 '꿈을 크게 가지라'던지 '노력을 더하라'는 말을 해도 그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


환경은 물고기 한 마리에서부터 사람 한 명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고 환경을 탓하라는 것도 아니다. 혹시 자신이 바꿀 수 있는 환경인지 그렇지 않은 환경인지 먼저 살펴보고, 그것이 바꿀 수 있는 환경이면 자신이 더욱 성장하는 방향으로 환경을 개선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도무지 바꿀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길 바란다는 마음이 있다.


기지개 하나, 별거 아니다 싶겠지만 내가 집 안에서 마음 편히 기지개를 켤 수 있었을 때, 그 짜릿한 자유의 기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포기하지 말자. 포기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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