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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교토에서 만난


"교토에서 만난." 2016.08.29.


처음에는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하는 줄 알았다.

 

일본 교토의 어느 시민회관에서 후쿠야마 테츠로(福山哲郞) 민진당 참의원의 강연이 끝난 뒤, 점심을 먹고 캔 커피를 하나 사러 나온 길이었다. 나와의 거리가 2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을까. 한 여자가 무릎을 바닥에 댄 뒤 양손 역시 바닥에 대며 수그리고 머리를 숙인 채 한 참을 있었다. 처음에는 교토라는 지역에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절도 많고 또 전통을 지키는 곳이라 생각해서, 삼보일배를 하는 승려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금 자세히 보니, 거지였다. 그것도 여자 거지. 그날도 날씨는 더웠고, 여자 거지의 옷도 그만큼 가벼워져 있었다. 긴 바지를 입고 조리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상의는 가슴이 거의 드러나 보이는 검은 민소매 티 하나를 달랑 입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는 부스스했고, 얼굴과 드러난 팔과 손은 검게 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삼보일배라고 오해했던 그 행동은, 다름 아닌 자판기 밑에 떨어진 동전을 찾는 행위였다. 일본은 길거리에 자판기가 많다. 음료 자판기 뿐만 아니라 담배 자판기도 있었기에 분명 그 아래에 동전을 실수로 떨어트리는 사람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저 여자 거지는 그런 동전 중 하나를 발견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바로 자판기 앞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호주머니에는 일본 엔화 동전이 가득 있었고, 지갑에는 빳빳한 일본지폐가 두둑히 있었다. 그리고 내 앞으로 사람이 지나갔다. 그 사람은 누군가가 자판기 아래에 실수로 떨어트린 동전을 찾기 위해 무단횡단을 하며 지나가는 일본의 여자 거지였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단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많은 단편을 남긴 그였기에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단편소설의 내용은 일본의 탄광마을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탄광에서 일을 하며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사는 극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당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로 팽창일로를 걷던 일본 내에서도 이런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있었겠구나 하는 일종의 측은함을 느꼈다. 식민본국의 국민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식민지의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일상적 삶과는 유리(遊離)된 제국주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전, 조지 오웰(George Orwell)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다. 조지 오웰 자신의 삶과 그 주변의 삶을 르포 형태로 적은 이 책에서는, 담배와 홍차를 포기하지는 못하지만 역시 극도로 가난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국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산업혁명과 중상주의 정책으로 영국은 세계제국이 되었음에도 그 혜택은 결코 모든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20168월의 일본 교토에서는 수많은 관광객이 붐볐고 버스 안은 발디딜 틈이 없었으며 키요미즈데라(청수사)에서 바라본 교토의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발전되었고 화려했다. 하지만 그 도시 안, 어느 곳에서는 자판기 밑에 떨어진 동전을 주우며 다니는 여자 거지가 있었다.

 

화가 난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건너며 수많은 국가들이 시장 개척이나 영토 확보 등의 이유로 다른 나라를 침략했고, 각 나라의 전통을 말살시켜 가며 자국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웠다. 우리나라 역시 그 대상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화가 난 부분은, 그렇게 다른 나라 국민들의 생사와 역사를 짓밟았으면 자국의 국민들이라도 편히 먹게 살게라도 해줄 것이지, 그러지도 못할 것이면서 왜 다른 나라에 침략을 했더란 말인가. 결국은 많이 가진 자가 더욱 많이 갖기 위해, 그것이 권력이든 돈이든 아니면 다른 그 어떤 것이든, 자국을 희생하며 또 다른 희생자를 찾는 것 뿐이었지 않냐 말이다.

 

이날 오전에는 한국과 일본과의 교류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일본 참의원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그 직후 일본에 살고 있는 거지도 만났다. 내 눈 앞의 자판기 아래에 동전이 없자 빠르게 다음 자판기를 찾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일본 참의원의 눈빛에는 자신이 36살에 당선이 된 후 18년 간 계속 참의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서렸다. 그 자신감 찬 눈빛과 여자 거지의 생존을 위한 눈빛은 도저히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국경을 갖춘 근대국가가 형성된 시점은 유럽에서의 30년 전쟁이 끝난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이라는 것이 정치학계와 국제법학계에서는 정론으로 받아들여진다. 전쟁의 상대국이었던 국가 내부의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기 위해 30년 간 싸웠다는, 그 어이 없는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것이 국경이다.

 

국민과 국경. 이것은 단지 누가 더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고 누가 더 경제력이 있는지를 살피는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되어서도 안된다.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이 과거에는 군주였고, 지금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국민들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그 지배집단을 선출하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국가 안에서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핍박받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경이란, 바로 그 국경 안에서만이라도 그런 사람들이 사라지길 바라는 지배집단의 의무가 다하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일본 교토에 가서, 국경과 국민 그리고 지배집단의 의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더불어 빈곤계층을 안정적인 삶의 궤도에 올리는 옳은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