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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4. 21:25 내 생각

독서는 취미랄 것도 없으니, 굳이 최근에 내가 가진 취미를 말한다면 “일본 드라마 시청” 정도다. 드라마 시청이 취미라니 참 별 것 아닌 취미다 싶기도 하지만, ‘영화 감상’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취미에 속하는 것이 드라마 시청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왜 영화는 감상이고, 드라마는 시청이라 부르는 것일까. 이왕 취미라고 적을 거, 멋드러지게 일본 드라마 감상. 이게 내 취미 되시겠다.


최근이라 해도 작년(2016년)의 일인데, 취미의 일환으로 보았던 두 편의 일본 드라마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 편은 2016년 2분기 드라마 “중쇄를 찍자 (원제 : 重版出来)”이고 또 다른 드라마는 2016년 4분기의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원제 : 地味にスゴイ、校閲ガール河野悦子)”이다. 일본은 1년을 4분기로 나누어 드라마를 제작하고, 큰 변동이 없는 이상 한 편의 드라마는 10화 안팎으로 제작된다. 거의 모든 드라마는 사전제작의 형태로 제작되기에 중간에 스토리를 바꾼다거나 또는 불필요한 설정이 없는 것으로 일본드라마는 유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 드라마가 유명한 점은, 다양한 직업에 대한 소개와 그 직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게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것이 작년의 앞서 소개한 두 편의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두 편의 드라마 모두 출판과 관련이 있다.


우선 “중쇄를 찍자”라는 드라마는, 출판업계 중에서도 만화잡지를 만드는 편집하는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을 배경으로 한다. 유도선수로서 체육대학을 나왔지만 부상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된 신입직원(주인공)이 만화잡지를 만들어 나가고 편집자로서의 역량을 쌓아가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주된 내용은 아니지만 기성 만화가 및 신입 만화가가 느끼는 고충, 잡지를 통해 내어야만 하는 이익과 그와 동시에 담아야만 하는 독창성 간의 미묘한 갈등 그리고 영업사원이 느낄 수 있는 보람 등에 대한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다. 글로 적으니 드라마의 내용이 중구난방인 듯 보이지만, 드라마를 본다면 앞선 내용들이 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 드라마는 교훈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만화가와 만화잡지를 편집하는 편집자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만화가보다는 ‘만화잡지 편집자’라는 직업이 가진 어려운 점과 그런 어려운 점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만화잡지의 편집자는 결코 우리가 직접 만나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역시 출판업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는 드라마지만, 여기에서는 편집부서가 아닌 ‘교열’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로 다룬다는 것이 앞선 드라마와는 차이가 있다. 제목에서 이름이 드러나 있는 주인공, 코노 에츠코는 패션잡지의 편집자가 되기를 원해 ‘케이본샤’라는 출판사에 입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입사 후 알게 된 그녀의 부서는 책의 오탈자나 내용 상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는 ‘교열부’. 패션잡지라면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보는 그녀이지만, 책을 내기 전에 교열을 한다는 사실 조차 몰랐던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책을 교열해 나가며 교열부의 다른 직원들 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책상에 앉아 모든 교열을 했던 직원들이 사실관계 확인이나 지명 확인들을 위해 현장조사를 나가기도 하고,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담당하며 팬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교열까지 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단순히 작가가 적은 글을 수동적으로 교열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교열의 범위 내에서 교열자로의 의견을 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이끌어 냈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의 범위는 자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데 까지가 그 범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교열부 혹은 교열담당 직원들은 일반 독자들은 앞선 만화잡지 편집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그 존재를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취미’로써 갖고 있는 일본 드라마 ‘감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과 몇 일 전 새해가 되어 내게 들려온 한 가지 뉴스 때문이다. 그 뉴스란 국회에서 일을 하시는 청소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협력업체 직원의 지위에서 정규직인 국회 직원으로 전환되었다는 뉴스였다. 몇 해 전부터 국회 청소노동자의 지위와 대우에 대하여 국회 안팎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쉽게 사람들의 기억이나 관심에서 잊혀졌고, 그렇게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2016년 작년의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의 여야 구성이 변경되었고, (역시 나는 모르는 사이) 청소노동자의 지위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듯 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나는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딜 가나 쉽게 청소노동자를 만날 수 있다. 그곳이 도서관일 수도 있고, 빌딩의 로비나 공항 등 어디든지 청소를 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잘 찾으면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이나 업무를 보느라 혹은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때는 청소노동자의 모습은 쉽게 눈 앞에서 사라진다. 분명 존재하는 사람들이지만, 당연히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그들의 존재나 처우는 망각되고 만다. 그리고 깨끗해진 화장실 거울과 비워진 쓰레기통,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건물의 로비를 걸으며 누군가 이곳을 청소를 하고 있겠거니- 정도의 판단만 한다.


나는 이번 국회의 청소노동자들의 정규직 국회직원으로서의 전환에 대하여 찬성의 입장이다. 하지만 국회가 끝은 아니다. 그리고 시작도 아니다. 당연한 것을 그 시작과 끝을 나눌 수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에는 남들이 하지 않으려 하거나,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중 정확히 몇 퍼센트가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뉘어져 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갖고 그 보람에 상응하는 직업적 안정성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그 성과나 결과물에 대해 직접 자신의 이름을 내걸거나 표시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란, 사실 많지 않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일 속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있다. 굳이 티를 내어야 할 필요성도 또 그것이 그들의 삶에,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안정성과 삶에의 필요성을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하게 되는 또 하나의 필요충분조건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 수수하지만 굉장한 일을 하고 살고 있다. 어떠한 직업이든 자신이 언제 그 굉장한 일을 그만두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나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면, 그것은 목적으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고 직업이 아니라) 수단으로서의 존재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일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든 각자의 생계와 삶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직업을 통해 행복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글을 마무리 한다. 우리 모두, 별 볼일을 하는 듯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라며. (아, 그리고 소개한 두 편의 드라마는 꽤 재미난 드라마이니 한 번 나와 같은 ‘일본 드라마 감상’을 취미로 가진 분이라면 감상해보시길.)


이미지 출처 : http://channel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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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30. 18:25 내 생각

“어른으로 태어나다”


우리가 모르던 세상이 있어. 그곳에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데, 별다르지 않은 듯 하지만 한 가지가 달라. 그곳에는 아기가 태어나지 않아. 그렇다고 단 한 명도 아기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야. 오직 아기를 낳아 기를 수 있을 정도의 여유와 경제력을 가진 가족만 아기를 낳지. 하지만 그 수는 적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서 결혼을 하고, 또 아기를 낳아. 근데 그 아기, 태어나자 마자 어른이야. 남자 아이라면, 17살 정도로 태어나고 여자 아이라면 한 두 살 정도 더 이른 15살 정도에 태어나. 지금의 기준이라면 어린 나이로 보이겠지만, 이들이 이 나이로 태어나는 이유는 태어나자 마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야. 여자가 남자보다 더 어린 나이에 태어난다고 해서 기쁜 건 없어. 그저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남자보다 빨리 되기 때문이고, 또 그렇게 태어난 여자들은 태어나자 마자 결혼을 강제로 하게 되고 또 아기를 낳지. 그렇게 어른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하루 정도를 세상의 공기와 시간에 익숙해진 뒤 다음날부터 일을 하기 시작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를 듯 해 보이지만, 어디서든 사람은 필요하고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는 일은 차고 넘쳐. 태어나자 마자 시작한 일을 죽을 때까지 하게 되는거야. 

이 곳에는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일까. 살아가다 보면 필요한 건 추억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거의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이 첫 번째 이유야. 예를 들어 보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어린이들은 자신이 올해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 기대를 하겠지. 하지만 어느 순간, 산타 할아버지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 누구나 한 번쯤 산타 할아버지에 환상을 가진 적이 있었고, 또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들이 있어. 근데, 근데 말이야. 산타 할아버지가 실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는 게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지? 그저 어릴 적 추억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걸 우린 알잖아.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고, 결국 어린 시절의 추억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 결과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욕심은 많고 또 추위나 더위에 약하고 배울 것도 많은 어린 시절을 겪지 않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진화해 온 거지. 그러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산능력’을 갖춘 17살이나 15살 정도에서 삶을 시작하게 된 거야.

근데, 처음에 잠시 말했지만 그래도 아기를 아기의 모습으로 낳는 사람들이 있어. 이 사람들은 자신만의 유전자를 진화의 과정 속에서도 지켜온 사람들인데 그 수가 적어. 이 부류의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어. 한 부류는 번거롭고 귀찮고 비용도 많이 드는 육아의 과정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야. 쉽게 말하면 여유와 경제력이 있다는 것이지. 이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가진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이 사회에서 큰 권력과 유전적 우월성을 지닌다는 것을 알고 있어. 진화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는, 이 사람들은 ‘대기업’이라는 회사의 경영자 집단이었거나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갖는 권력 속에서 살았었어. 이들의 조상들은 그때에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어. 그들만의 어떤 공간을 만들고 살아왔다는 것도 여전해. 이런 사람들의 후손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유전자로 남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이들은 예전부터도 자신들이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항상 주장해왔었거든. 이들이 아기를 낳았다고 해도 이들이 아기를 기르는 건 아니야. 아까 말해두었지만, 아기를 기르는 일을 할 사람들은 차고 넘쳐. 아마 자신의 아기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가 자신의 어른을 낳은 뒤, 부풀어오른 젖가슴을 싸게 팔 여자는 많아. 그렇게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리고 산타는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들을 즐기며 살아. 

아기를 낳는 또 다른 분류의 사람들은, 앞선 부류의 사람보다 더욱 적어. 사실, 많을지도 모르지. 근데 이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아. 왜냐하면 자신이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들키면 앞선 부류의 사람들이 그 아기를 죽여버리고, 그 부모도 죽여버릴 것이 분명하거든. 누군가 자신이 가진 특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아. 그렇기에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깊은 산속이나 사람들이 잘 살지 않는 바다의 외딴 섬에서 살아. 도시도 가끔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방음처리가 잘 된 지하의 공간에서 그들의 아지트를 만들었지. 아기 울음 소리가 새어 나가면 안되니까 말이야. 아,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설명을 안했구나. 놀라지 말길.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 누구와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 그저 이 사람들의 평범함은 이 이상한 세상의 평범함이 아니라 그들의 선조이자,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살고 있던 시절의 평범함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아기를 낳아서 줄어든 잠을 이겨내기도 힘들지만 아기의 옹알이와 그 웃음 하나에 피로가 풀리곤 했던 예전 선조들의 평범함이지. 중학교 교복을 사주며 느꼈던 뭉클함과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느꼈던 묘한 상실감 등을 느꼈던 것들 말이지. 지금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전에는 숨지 않았었어. 처음에 진화가 시작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어른을 낳는 것으로 진화했을 당시, 앞서 언급했던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그런 권력과 추억을 가진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할까봐 몇몇의 사람들이 진화를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권리를 인정해주었지. 하지만 그건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더 이상 권리를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았어. 진화를 거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어른을 낳는데, 왜 아무런 권력도 없는 일부의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만이 그런 특권을 유사하게 가지나며 반대했고, 폭행했고,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게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없애줄 것을 법으로 요청했지. 그게 시행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 두 번째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유전자를 몰래 이어오게 된 거야. 아무런 특징도 없는 평범했던 사람들이 비밀조직처럼 살아가게 된 거지.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평범해. 아니, 평범하지는 않은 듯 하기도 하다. 그들은 진화의 방향을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야. 다시,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기 위한 어른, 어른을 낳기 위한 여자를 낳을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결혼하고 또 지극히 평범하게 아기를 기르며 느끼는 고통을 느끼길 바라는 것 뿐이야. 그리고 아이들도 그들이 어릴 적 느꼈던 느낌과 추억들을 갖고 길고 긴. 힘들고 힘든 세월을 이겨내고 또 그런 추억들을 만들며 살아가길 바라는 것 뿐 인거지. 평범하지 않은 평범함을 이 사람들은 지켜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묻혀 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 중 한 부부가 있었어. 자신들이 낳은 갓난 아기를 안고, 이 부부는 지하실에서 걸어나갔어. 처음에 이 부부가 세상으로 나오자 모든 사람들이 저 부부가 안고 있는 이 조그마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했어. 웅성거림이 시작되었고, 아기는 엄마의 품임에도 주위의 웅성거림에 놀라 그만, 아앙앙 울어버리고 만거야. 그러자 일제히 사람들이 저 존재가 자신들은 겪어보지 못했던 아기라는 것을 깨닫고 멀리 도망을 쳐버려. 하지만 그 울음소리가 자신들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또 그 울음 소리가 주는 생동감과 가슴을 저미는 모성애에 이끌려 몇몇 여자들이 그 아기를 보기 위해 다가왔어. 그리고 남자들 중 몇몇도 그 아기가 우는 소리가 자신을 지켜달라는 소리로 들린 듯 해 가까이 다가왔어. 어느새 아기를 안고 있던 두 번째 부류의 평범한 부부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게 된거야. 그리고 그들은 하나 같이 모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지어보지 못한 따뜻한 표정을 짓고 아기를 바라보고 있었어. 탕! 멀리서 들린 소리인 듯 큰 소리가 났어. 그리고 더 이상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따뜻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어. 그 이유는 아기의 머리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야. 아기의 머리 대신 그곳에는 붉은 피와 살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어. 그리고 이윽고, 탕탕. 다시 두 발의 총소리가 났고 그 자리에서 두 번째 부류의 평범한 부부가 총에 맞아 죽었어. 어디서 쏜 것인지도 모를 총에 두 명이 아닌, 세 명의 사람이 죽었어.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던 듯 자리를 서둘러 피했어. 모두가 사라진 자리,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보낸 ‘일을 하는 어른’들이 시체를 치우고, 핏자국과 여러 흔적 그리고 아기 냄새를 없앴어. 이 부부의 죽음은,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의 역사에 평범하게 남아있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기. 죽다. 

이상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우리가 모르던 세상이지. 진화가 일어나기 전이라, 이상할지 모르겠네. 하지만 이 진화, 곧 일어날 것 같아. 그때가 되면,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산타 할아버지를 기대하는 어린이는 없겠지. 선물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 연말인데, 감기 조심하고. 내년에는 더 행복하자. 우리 모두 어릴 적 가졌던 꿈 다시 한 번 떠올리면서 말이지. 미래에 진화하면 ‘어릴 적 꿈’ 같은 말도 사라질 수 있으니까 말이야. 모두들, 새해 복들 많이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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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30. 18:21 내 생각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처음 아동양육시설(고아원)이 공익근무요원으로서의 근무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으레 동사무소나 시청에서처럼 공익 같은 공익(?)의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잡무를 하거나 개인적 시간이 많은 그런 공익생활 말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동들의 학습 지도, 병원에 차로 데려다 주는 것, 식자재 구입에서 부터 증개축을 할 때에는 건설현장 인부 같은 일까지 하였고 소집 해제 직전 몇 개월 동안은 요리를 담당해 직접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일이 힘들었겠다 싶겠지만 사실 가장 힘든 것은, 아동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들, 버려진 아이들, 부모가 어디에 사는지 알지만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아 맡겨진 아이들 등 살아오면서 직접적으로 마주할 기회가 적었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기 위해 아침에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 나가는 일은 스스로에게 많은 혼란을 주었다.


지금도 고향에 추석이나 설날에 내려가게 되면, 아이들을 위한 사탕을 꼭 두 봉지 씩 사고 또 사회복지사와 직원분들을 위해 박카스를 한 박스 사서 들른다. 공익을 마친지 10년이 되어가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아 그러고 있다. 제일 최근에 방문했을 때는 살짝 충격도 받았다. 내가 공익근무를 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이제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대학을 간 아이도 있었고, 취업을 한 아이 그리고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그곳에서 일을 할 예정이라는 아이도 있었다. 시간이 그렇기 흘렀구나 싶으면서도 이 아이들이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립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 부모의 재산 여부에 따라 계급이 나눠진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 내에서 이 아이들은 어떤 수저, 아니 수저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이런 시설을 나온 아동들이 자신들의 재정관리 및 경제에 관한 교육이나 조언을 받지 못해 힘들어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돈을 가져본 적이 없고 또 누구를 믿어야 할 지 모른다는 어려움에 빠진 시설 출신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작은 결론을 내렸다.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시설출신들에게 경제 교육 뿐만 아니라 재무관리를 도와주고 장기적인 계획을 이뤄나가는데 가족 같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돈을 단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해주고 또 일자리나 복지 등에 대한 관리 및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회적 기업. 이런 회사가 벌써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없다면 지금이라도 만들어 재무관리 전문가와 사회복지 전문가 등으로부터 시설출신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실제로 만든다고 하면 어떻게 만드는지는 슬프게도 잘 모르겠다. 생각만큼 쉽진 않겠지만, 왜 지금에 와서야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됐는지 스스로가 미울 지경이다.


공익근무를 하며 이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다시 대학에 가서 고시에 합격해서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전부 진행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계획이 실패했다고 해서 아이들의 삶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지 일시적인 도움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서 함께 그들의 경제적 삶에 도움이 되는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나는 요즘 공부를 하다가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사회적기업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산다. 답 알고 계신 분은 연락주시면 산타가 선물을 주실지도.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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