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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01.18 노화방지
  2. 2016.11.27 씨발
  3. 2015.03.09 현우의500자_90
2017. 1. 18. 11:22 내 생각

노화 방지

 

흐른 만큼 충분히 흐른 시간.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20대가 접어들자 마자 죽어갔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은, 역사책에서나 잠시 등장할 뿐이다. 수명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20대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게 된 것은, 10대 이전부터 받기 시작한 노화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지금의 시점에서의 노화란, 20대가 된 후부터 다시 80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그 시작이었다. 실제로 노화가 진행되지도 않은 시점에서부터 노화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된 것은 반어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10대를 지나며, 20대 이후부터의 삶이 나머지 80년을 좌우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닫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이 20대 이후 죽어버린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별다른 건 없었다. 그저 10대가 된 순간부터 앞으로 남은 10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내고 또 알차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 숭고하고도 또 긍정적인 고민이 결국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중, 길가에서 80대 노인을 발견한 이가 있었다. 많은 신문과 방송에서는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발표했고, 이제 갓 10대가 넘은 전문가들은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분석을 시작했다. 그 결과로 그 노인이 어린 시절 뽀로로의 노는 게 제일 좋아라는 부분을 보지 않았고, 터닝 메카드의 과학적인 변신 장면을 보지 못했던 것이라는 매우 심각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 노인을 직접 인터뷰한 한 방송사의 아나운서-죽음을 얼마 남지 않은 17세 여자였다-는 노인과의 만남을 이렇게 술회했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다. 80대 노인은 아무런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10대 때에도, 20대 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과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별 생각도 그리고 감정도 갖지 않았다.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데 집중했을 뿐이었다. 많은 10대의 사람들 그리고 10대를 준비하는 10살 미만의 어른들은 그 노인의 삶에 공포와 경의를 동시에 느꼈다. 삶을 살아가는데, 그리고 저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무런 감정과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는 놀라움과 저 때까지도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공포. 아무도 살아보지 못한 30대의 삶을 그는 겪었던 것이고 그와 동시에 그는 끈질기게도 살아남았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노인의 피에 특별한 어떤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경찰청은 조사팀을 꾸려 그 노인을 체포했고, 혈액 검사를 실시했다. 노인의 혈액을 검사해 본 경력 10, 19세의 의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상 없음.”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자, 다시 방송과 신문에는 그 노인의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것이 특별한 것이라며 특종을 방송했다. 혈액형은 O, 특징적인 것은 낙천적. 이 정도가 특징이었다. 이 노인에 대한 종합적인 소견을 발표하는 경찰청장, 나이 20, 곧 사망 예정은 이 남자가 특별한 위험성은 없으나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위험성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노인처럼 별 일 없이, 별 탈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감정 없이, 아무 계획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면 그들 역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불안이 위험했던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문구는 이 사회에서는, 금기어가 된 것처럼 청춘의 시기는 아프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노인은 아프지도 않았고 그 아픔의 원인이 되었던 고민, 갈등, 성장 등에 대한 걱정들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경찰청장은 검찰에 공식적으로 기소 의견으로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이미 이 노인에 대해서 명확한 정보를 갖고 있었으므로, 그 명확한 정보란 앞서 말한 아무런 생각 없음이다, 사형 구형 의견으로 법원에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마치 검찰의 기소를 기다린 것처럼 기소 의견을 받자 마자 판결했다. ‘사형.’ 판사(19, 경력 12, 7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나 매우 늦은 나이에 합격한 것으로 유명, 평균 사법고시 합격 나이 5.)는 선고문에 이렇게 밝혔다. “고민이 없이 사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10대의 고민은 평생을 좌우한다. 이 노인이 태어났을 당시, 2010년대에는 10대의 고민을 통해 20대에 일반적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30대에 결혼했을지 모르나 이런 사례는 매우 평범하고 또 몰지각하며 또한 지나치게 평범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화되었고, 10대 이전의 고민을 통해 10대에 무엇인가를 이루지 않으면 그 인간은 쓸모 없는 인간이다. 따라서 이 노인은(노인이라는 표현 역시 사회를 무너뜨릴 위험성이 있으므로, 이 판결 이후 모든 사회에서 노인이라는 표현은 불가토록 한다.) 사회에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고, 이미 지난 60년 간 그 죄를 저질렀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본 법원은 이 피의자에 대해서 사형을 선고한다.” 사형이 선고되고 나자 그 재판정에 있었던 10대 방청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고민 없이 사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당장 사형에 처하라! 라며 외치기 시작했고, 재판정 안은 무법지대처럼 변했다. 젊음은 혼란을 뜻한다는 이 시대의 직언에 매우 적당한 곳이었다. 그러다 10대의 방청객들 중 8명이 노인에게 뛰어 들어 몰래 숨겨 들고 왔던 칼로 노인의 등과 배와 목과 허벅지와 팔목과 눈과 그리고 발등을 찍었다. 수 십 차례 난자가 이뤄지고 난 뒤 노인은 목숨을 잃었다. 그 목숨을 잃게 되는 눈 앞에 노인이 알아본 유일한 이가 있었으니, 노인을 살해한 한 19세 국회의원이었다. 나라를 운영하는데 자신의 노후를 다 바치고 있었던 그 국회의원은, 노인의 목을 찔렀고 그것이 노인의 죽음에 주효했다. 하지만 이 국회의원, 이 노인의 후손이었다. 자신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낳은 아들.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후손은 노인은 이렇게 말을 하며 죽었다. “브루투스, 너마저.” 노인의 후손의 이름은 브루투스, 19세 국회의원이었고 그는 이 말을 듣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행한 이 행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야겠다. 그것이 내가 살아갈 길이다.” 그리고 이 브루투스는 20세가 되어서도 죽지 않았다. 멍하니 생각하지 않는 모습으로 감정 없는 표정으로, 눈물샘은 스스로 말려버렸으며 그 어떤 이와도 생각을 나눌 수 없게 깊은 산 속, 자신의 손으로 죽인 노인이 숨어 살 던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평생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다 2010년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죽었던 나이 100살이 되어서야,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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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7. 20:23 내 생각

"씨발" 20161124


어머니. 제목을 보시고 놀라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적고 싶은 글은 제목과 관련된 글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누군가를 비난하지도 해코지도 하지 않는 글입니다.


당분간 내년의 시험 준비 때문에 글을 적는 것을 멈추려했던 저에게, 아들의 글을 읽는 재미가 있으셨다는 말씀에 다시 하얀 화면을 마주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의 겨울이었습니다. 연도로 따지면 2000년이겠네요.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전, 저는 학교에서 꽤나 싸움을 많이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싸움의 이유는 별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이 저에게 '개새끼'라고 부르면 저는 무조건 싸움을 했습니다. 개새끼라는 것이 저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욕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새끼'라는 욕을 들으면, 저는 으레 '우리 엄마아빠가 개가?'라 하며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곤 했습니다. 제가 개새끼라는 말에 이런 반응을 한다는 것을 안 친구들은, 저에게 부러 시비를 걸기도 했습니다.


매번 이런 식이어서는,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어머니께 여쭈어보았습니다. "엄마, 학교에서 친구들이 내한테 개새끼라고 한다. 우쨰야 되노?" 어머니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그런 욕은 듣는 사람 잘못이 아니고, 하는 사람이 잘못이다. 니가 잘못한 게 없으면, 그런 욕 들어도 신경쓰지마라. 니가 나쁜게 아니니까." 저는 어머니의 그 말씀에 마음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선 당부하셨습니다. "니가 욕을 안하면 된다." 그랬습니다. 저 스스로 나쁜 말을 입에 담을 필요는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쉽게 풀리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개새끼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제목의 '씨발'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욕에 대한 문제들이 지나고, 중학교 3학년의 겨울이었습니다. 개새끼라 부르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나름의 논리를 가졌으나, 씨발은 아무리 찾아봐도 논리나 의미나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의 친구들은, 씨발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저 강해보이려 하거나 또는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썼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습관과 환경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도, 그렇다고 실질적인 효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만 거의 모든 친구들이 쓰는 씨발이라는 욕을 쓰지 않는 것이 어색해져갔습니다.


저는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씨발이라는 욕을 해도 될지, 하지 말아야 할지 말입니다. 고민의 과정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기간을 정해 씨발이라는 욕을 마음껏 써보기도 하고, 또 어떤 기간에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지내보기도 하였습니다. 욕을 하지 않는 기간에도 습관적으로 내뱉어지는 욕을 듣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욕을 하는 기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욕을 하는 순간의 마음을 잘 살폈습니다. 그때 저는 제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이건, 강해보이기 위해서이건 욕을 내뱉으면 그 누구보다 먼저 내가 먼저 듣게 되는 것이었고 그것은 제 마음에 울적함과 미안함을 안겼습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을 것이 분명했을 친구들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친구들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을테지만 말입니다.)


저는 이런저런의 고민의 결과로, 욕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너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욕을 안하네." 무슨 말인지, 순간 못알아들었다가도 '아, 내가 욕을 잘하게 생긴 얼굴이구나.' 하는 사실을 가끔 거울을 보다 깨닫곤 합니다. 농담입니다. 그래도 평소 욕을 잘 하지 않습니다. 욕이 정말 목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화가 나거나 울분에 차거나 묘한 쾌감을 느끼고 싶을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외치곤 하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해결이 되었구나, 싶으시겠지만 아직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욕을 하지 않아도, 친구들은 끊임없이 욕을 했습니다. 정말 끊임이 없었습니다. '아, 밥 잘먹었다. 씨발.', '날씨 드럽게 춥네, 씨발.' 등등이었습니다. 듣는 제 마음도 불편해지고 또 친구들 역시도 딱히 그렇게 기분 좋아 하며 욕을 하지는 않아보였습니다. 이런 친구들이야 웃으며 넘기거나 '욕하지 마라' 핀잔을 주고 넘기면 될 일이었지만, 또 다른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란, 바로 정말 저에게 진심을 담아 욕을 하는 경우였습니다. 감정이 맞지 않거나 서로의 인신공격 끝에 하는 그런 욕 말입니다. 이럴 때의 씨발은, 정말 씨발 같았습니다.


욕을 들어가며 푸닥거리 같은 싸움을 한 판 하고 난 뒤가 사실 더 어색했습니다. 어색했던 이유는, 제게 욕을 했던 친구와 저는 서로 사과를 하고 다시 친구 사이로 돌아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반 친구이거나 같은 학교 친구이거나 때론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얼굴을 치고 박고, 욕지거리를 단전 끝에서부터 올려 서로에게 내뱉던 적과 같은 친구와 다시 친해질 수 있을까,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며 지나가던 시간 중에, 다시 친구로 남아 거친 우정을 나눈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학교 복도에서 지나치며 얼굴을 보면서도 모른 척하고 인사조차 하지 않는, 쉽게 말해 절교를 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욕을 듣고 하는 것보다 더욱 불편한 마음이 남았습니다.


2016년 지금, 저는 다시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51.6%의 이야기입니다. 51.6%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받았던 투표율입니다. 어머니께서도 아시다시피 투표자의 반 이상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은 우리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투표 당시에는 51.6%였고, 이후 고정지지층은 35%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은 고정지지층 마저도 사라진 5%의 지지율을 3주째 유지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51.6%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왜 할까 싶기도 하실 겁니다.


씨발, 이라고 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만, 전 욕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욕을 듣고 하던 어렸을 당시보다 저는 지금 더욱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때문은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정착해온 이후, 국민은 누구나 선거권을 가지고 만 19세 이상이 되면 투표권을 가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투표권은 재산의 정도와 사는 지역에 관계없이 단 한 표 씩 국민에게 주어집니다.


저와 어머니는, 그런 민주주의의 선물이자 권리인 투표권을 가지고 박근혜 대통령을 뽑았던 51.6%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되기 전에는 35%의 고정지지층과 함께 살아야 했고, 지금은 아직도 남은 5%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지지층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을 수 있도록 도운 여당과 그에 속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한 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는 그 사람들은, 과거 자신이 얼마나 박근혜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지를 과시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이 사람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 날리고, 싸움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으로서 절교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어져야 하고, 어머니와 제가 사랑하는 주혁이와 혜빈이가 우리나라에서 꿈을 꾸고 수학여행을 가고,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라의 상황을 지금의 상황으로 만든 사람들을,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일부는 정치인이라는 이름으로 티비에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지요. 저는 그저 그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조용히 살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만, 그것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


어머니, 저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중학교 3학년 당시, 씨발이라는 욕을 할까 말까라는 고민을 했던 것보다 더욱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저와 싸움을 하고 절교를 했던 친구를 다시 만날 일은 생길지도 모르지만,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만든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는 않더라도 그들이 다시 권력을 잡고, 국민들을 괴롭힐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용서해야만 할까요? 제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누군가의 투표에 그 책임을 묻고 용서를 할 수 있는 사람이긴 할까요? 51.6%의 국민들은 편향된 언론과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국정원 선거개입 등으로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이 지금의 상황이 될 때까지 방관했고 오히려 그것을 도왔던 사람들을 저는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번의 계기를 통해서, 반성할 사람은 반성을 하고 각성할 사람은 각성을 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야 한 걸음이라도, 아니 반걸음이라도 나아지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머니, 제가 소심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3일 때는, 친구들 누구나가 쓰는 욕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저는 욕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고민의 결과에 답은 있을까요? 가볍게 생각하고, 법이 알아서 하겠지 라거나 똑똑한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넘어가면 저와 같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고민을 떠넘기는 것이 아닐지 걱정도 됩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선거권,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고, 국가가 상처를 받는 일이란 참으로 어색하고 불필요한 일이라 생각도 듭니다만.


어머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욕은 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듣는 욕에 대한 불편함은 있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뒤부터 합리적 의견개진과 토론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합리성이나 정의 보다는 편가르기와 말 바꾸기 등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저는,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배 속의 똥처럼 품고 있다가 싸버려야 할 어떤 나쁜 것인지, 아니면 ‘암세포도 몸의 세포이니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어떤 미친 듯 보이는 드라마의 대사처럼 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욕과는 다르게, 이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해나가야 할 듯 합니다. 어머니께, 넋두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어머니께서 아프시면 제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픕니다.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에 제 웃는 얼굴 실어 보냅니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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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9. 06:31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90

생일 축하한다. 언젠가 말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든 말이 하나 있어. 그건 '메멘토 세로'라는 말이야. 많은 사람들은 '메멘토 모리'라는 말을 알고 있지.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 있는 동안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뜻으로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세로' 타동사 '태어나다'라는 라틴어를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나지 않았어. 올챙이였던 우리가 태어나고 싶어 꼬리를 더욱 흔든 게 아니잖아. 단지 던져졌을 뿐이라는 철학자의 말에 동의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태어나자 마자 지금의 우리가 가진 고민이나 결점을 가지기를 바랬던 부모는 아무도 없어. 누구나 축복 받으며 태어났지.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살았던 만큼 고민을 해. 한 살에게는 1년의 고민이, 지금 우리에게는 30년의 과거로부터의 고민이 있어. 지금의 고민을 치열하게 고민해보자. 과거 30년의 기간을 걸고 고민해보자. 생일 축하한다. 메멘토 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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