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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1.28 불친절한 글
  2. 2014.12.24 2014년 정리
  3. 2013.11.24 내일은 없다
2015. 1. 28. 05:42 내 생각

# 0   2015. 1.28. 
아래에 적힌 글은 매우 불친절한 글이다. 왜냐하면 글을 적는 내가 갖고 있는 단편적인 지식들이 두서 없이 나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감히 예견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 적고 나니, 글의 길이도 무척이나 불친절하다.)


# 1 
프랑스에서 '샤를리 앱도'라는 풍자 잡지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를 풍자한 그림을 그렸고, 이 잡지사에, 프랑스인이면서 이슬람 문화에서 살아 오던 청년들이 난입해 기자, 직원 및 이들을 막기 위한 경찰을 죽였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프랑스 내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처우 문제 역시 같이 불거지고 있다.


# 2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가 총선에서 승리했다. 국회 과반수를 넘기지는 못했지만 그리스 국민들의 열망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시리자의 대표이며 유력 차기 총리 후보인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총리를 뽑기 위한 과정을 곧바로 실행에 옮길 것이라 밝혔다. 그리스는 알다 시피 재정 문제로 포루투갈, 아일랜드, 이틸리아, 스페인 등 PIIGS 라 불리던 나라 중 하나이다. 외국에서 볼 때는 국가 재정 파탄의 원인이 과도한 복지지출이라 판단한 듯 하나, 내부에서의 시각에서는 부정부패와 공무원들의 행정 무능이 원인이라고 판단하는 입장도 있다. 어찌됐든 이번 급진좌파연합의 총선 승리는, 유럽연합 국가로서 그리스가 앞으로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고 그리스'만'을 위한 재정 정책을 필 것으로 예상되어 유럽 연합 국가들의 위기 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 3
프랑스에서 '샤를리 앱도' 사건 이후 프랑스 국민들이 거리에 나선 것은, 표현의 자유는 보호되어야 하고 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폭력적 수단(테러를 포함하여)에는 결사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샤를리 앱도 사건의 배후에는,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프랑스 국민이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국민들에 대한 사회 내의 분위기가 결코 좋지 않았던 데에 또 다른 문제의 시발점이 있다. 프랑스는 2011년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나고 여성인권을 억압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공장소에서의 히잡(부르카) 착용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히잡을 착용하는 것이 여성인권을 억압한다고 판단한 프랑스 정부 및 의회의 판단이었으며, 히잡 금지에 대해서 찬성하는 입장을 보인 프랑스 국민들이 존재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이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 중 다수가, 종교의 자유와 연계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집단 시위를 하였음에도 이 법은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


# 4 
프랑스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알제리를 비롯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라오스 등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었던 제국주의 국가였다. 지금은 모든 국가가 독립을 하였고, 일부 몇몇은 프랑스령으로 남아있긴 하지만 프랑스는 더이상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다. (우리 역사에도 제국주의 국가로부터의 국권 침탈이 이뤄지게 되는데, 그 나라는 일본이며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겪었다.) 프랑스로부터 식민 경험을 당한 알제리 등 일부 국가들은 이슬람 국가였다. 이슬람교를 믿는 국민들이 있던 나라에 프랑스가 식민지를 건설하여 카톨릭과 개신교를 믿는 식민 지도층을 형성했다. 식민지 국가들에게 있어서 독립은 국가의 독립임과 동시에 종교의 독립을 의미했다. 제국주의 시대는 1945년 세계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종식되었지만, 프랑스는 이후에도 몇몇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후 모든 국가들이 독립을 이루었다.


# 5
우리나라에서 일부 혹은 많은 사람들은, '샤를리 앱도' 사건을 마치 프랑스 내에서 일어난 일부 이슬람교 신도들의 극단적 테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또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그 대상이 되는 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 역시 있다. 이런 입장들은, 프랑스의 역사와 사회 구성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을 못하는 경우라고 여기는 것은 오만일지 모른다. 예를 들어, 주제와 벗어나지만, 일본에서 위안부 여성을 희화화하거나 조롱하는 그림을 그렸고, 한국인 혹은 중국인 청년이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을 테러했다고 해보자. 그러자 일본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 달라며 시위를 한다면 어떨까. 불편하고 극단적인 예이지만, 역사적인 맥락과 사회적인 흐름을 무시하고 사건을 바라볼 경우에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을 언급하고 싶었던 것이니 널리 양해를 구한다.


# 6 
제국주의 프랑스라는 역사적 맥락에 대해서는, 언급을 이미 했다. 그렇다면 사회적인 맥락은 무엇일까. 프랑스 정계에서, 예전에는 아비지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았지만, 지금은 그의 딸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 된 사람이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과 마린 르펜, 이 두사람이다. 이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민자는 이 나라를 떠나라!"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살면서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민자의 자녀이거나 유럽 연합이 형성되면서 프랑스로 건너온 이민자 탓에 프랑스가 지금 경제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고, 또 청년들이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 핵심에 있다. 다시 말해, 순수 프랑스인을 위한 프랑스를 만들겠다 라고 하는, 어디선가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 독재자가 했던 말과 유사한 말을 하는, 현재의 그의 딸은 프랑스의 차기 대선 후보라고 생각되는 인물 중 인기가 1위다. 반(反) 이민자 정책과 더불어 이민자 유입에 큰 계기가 된 유럽 연합에 대해서도 높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 동유럽 및 구 식민지 출신 이슬람 이민자에 대한 이러한 극단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정당 대표가 차기 대선 후보가 된다면 프랑스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


# 7 
잠시 한국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작년 12월 10일 전북 익산에서 '평양에 다녀온 그녀들의 통일이야기'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 고등학교 3학년 19세 남학생이 황 등 인화물질을 폭발시켜 2명이 화상을 입었다. 재미교포 신은미 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열고자 했던 토크 콘서트는 종편에 의해 '종북 콘서트'라 불리게 되었고, 종북 논란의 핵심이 되었다. 재미교포인 신은미 씨가 미국으로 강제출국되는 것으로 논란은 줄어들었으나 19세 남학생이 저지른 백색테러에 대한 논란은 불씨조차 만들어지지 못했다. 주지하다 시피 한국은, 국가보안법이 있는 나라다. 북한 정권에 대한 찬양, 고무 등은 죄가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법은 과거 여러 민주화 인사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고 헌법 상 사상의 자유와 배치된다며 많은 비판을 받아오고 있지만 여전히 법전의 한 구석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여기서도 나오는 말이다. 테러, 역시 그렇다. 19세 남학생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표현의 자유를, 테러로서 막고자 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사회적으로 비판 받아야 마땅했으나 우리 사회는 그러한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 이유는, 표현의 자유가 용납되지 않는 '종북' 프레임에 피해자들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19세 소년은 종북주의자를 처단하려 했다며, 여러 보수주의 세력으로부터 변호사 비용을 후원받기도 했다.


# 8 
한국 사회에서 북한은 무조건적인 비판의 대상이다. 북한 국민들에 대한 무한한 연민은 별도로 논의된다.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 지식인이나 유명인들은 종북주의자가 되었고, '김정일 개새끼'에 이어 '김정은 개새끼'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종북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는, 종북 판별법까지 유행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현행법이 있으니, 북한에 대한 찬양 및 고무는 당연히 법적으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의와 별도로,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프랑스의 샤를리 앱도 사건이 던져주고 있다고 하면 과대 망상일까? '이슬람에 대한 조롱이나 희화화를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이슬람교를 믿는 프랑스 국민들이 하는 것에 대해서, 만약 우리가 북한을 흡수하여 통일하는 형태로 통일 한국이 형성된 이후, 다시 말해 국가보안법의 대상이 되는 국가가 사라지고 난 이후 북한 출신 대한민국 사람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희화화와 조롱을 하지 말아달라'라고 요청하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미래까지 예견하지 않더라도, 19세 소년이 행했던 표현의 자유를 막는 테러에 대해서, 프랑스 국민들의 '나는 샤를리'라는 팻말을 들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시위를 우리나라에서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신은미', '나는 황선'이라는 팻말이 등장하는 순간, 그 자신이 종북주의자임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은, 섣부르기만 한 것일까?


# 9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이 총선에 승리했다. 그리스만을 위한 경제 정책을 세우고, 유럽연합으로부터의 이탈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극우정당의 대표가 차기 대선 출마 예상자들 중에서 1위를 하고 있고, 이 사람은 이민자는 프랑스를 떠나야 하고, 이민자 유입의 물꼬가 된 유럽연합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그리스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불법체류자의 유입이나 이민자 확대에 대한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 10 
세계 1차 세계 대전은 어찌보면 참, 허무하게 발발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였던 페르디난트 대공이 유고슬라비아 민족주의자의 총알을 맞고 죽은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 제국 그리고 이탈리아(이탈리아는 1차 세계대전에는 삼국 협상의 편에 섰음)의 삼국동맹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삼국 협상 간의 갈등으로 비화되어 국가의 소멸과 생성 그리고 국경선의 변경에 까지 이르게 된 사건이다. 1차 세계 대전의 배경과 핵심에는 '민족주의'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역시도 1차 세계 대전 이후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확장에 따른 국가별 경제 이익의 차이 등의 원인에 의해서 발발하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민족주의다. 그리고 여전히 이 민족주의는 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까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많은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그 입김은 기분 나쁜 흥분감만 고취하고 있다.


# 11
우리나라의 경우에, 북한에 대한 입장을 민족주의라는 틀 내에서 보기는 상당히 어렵다. 왜냐하면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족이 같다고 해서 민족주의라는 파괴력 높은 이데올로기의 근원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현재 북한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감은, 북한과 유일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에 향하고 있다. 중국 역시 유일한 동맹국으로 북한과 '조중상호방위조약'으로 맺어져 있는 상태다. 한국전쟁 정전 이후 일부 국지전은 있었으나, 아시아 전체가 전쟁으로 빠져드는 상황의 위기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 이데올로기의 차이로부터 시작된 냉전 시기와는 유사하지만 또 다르게, 미국과 중국이라는 G2 간의 경제적 갈등이라는 큰 경기장은 이미 형성되었다. 이미 중국은 세계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가가 되었고 미국은 1985년 프라자 합의 이전부터 경제 대국이라는 지위를 지켜내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북한을 절대 중국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내부적인 합의를 이미 이룬 듯 하다. 그리고 그 과정으로서 북한 정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과 북한 국민에 대한 무제한적인 온정주의적 관점을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종북주의는 그만큼 힘을 가진다.


# 12
종북주의가 힘을 가짐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도 이민자 및 불법체류자에 대한 반감 역시 급증하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는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발의했다며, 불법체류자의 자녀에게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법이 곧 통과될 것이며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은 이민자와 불법체류자의 천국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발의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그 법안의 내용은 UN에서 정한 아동권리협약의 내용을 한국적으로 적용한 것이었다. 단지 법안 상의 오류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다른 정치인을 비판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고 하기에는, 다소 씁쓸한 감정이 남는 것은 이자스민 의원 자신이 이민자이며, 그 법안의 내용이 추구하는 방향이 이루어질 경우, 우리나라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민자나 불법체류자를 돕게 되니 절대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반응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수많은 이민자가 살고 있고, 또 그들의 사회적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적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와 동시에 이민자와 불법체류자에 대한 반감이 확대되고 그것이 정치적 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 역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실업률이 높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이러한 이민자 및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반감이 하나의 운동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하나의 기둥을 형성한다고 분석할 수도 있다. 과거 히틀러 집권 직전의 독일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 13
사회적 소수자 혹은 약자에 대한 적개심이나 증오는, 한국 사회에서 이미 큰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일간베스트' 통칭 '일베'로 불리는 반여성주의, 반국제화, 독재 찬양, 일부 지역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 훼손 등 다양한 문제점을 이미 드러내고 있는 이러한 사이트와 사용자들에 대해서 우리 정부는 큰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는 듯 하다. 오히려 20대, 30대의 표를 끌어오기 위한 인터넷 전위부대 쯤으로 생각하고, 후원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머물던 이들이 실제 사회에 얼굴을 들이밀었을 때, 이들에게 국가가 했던 반응은 '표현의 자유' 존중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나라만의 문제점은 아니다. 일본에서도 '재특회'와 같이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한국인(조선인)을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내자고 하는 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이러한 모임이 조직화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직 중국에서는, 민족적 소수자 혹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집단적 분노나 반발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것은 중국인 특유의 '누구든 들어와라, 그러면 넌 중국인이 될 것이다' 라는 태도일지도 모르겠으나, 중국은 역사적으로 일본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적개심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계기가 되었든, 그런 조건이 형성된다면 중국 역시도 이런 국가 내의 이민자 및 불법체류자 혹은 소수자에 대한 억압은 일어날지도 모른다.


# 14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삼국의 보수화는 기정 사실이다. 자국 우선, 자국민 우선이라는 공감대는 국경 안에서 이미 통용되고 있다. 유럽과 같이 연합이 아니니 국민들 간의 왕래와 이민 등이 폭발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뿐이니 지리적으로 근접하고 경제적으로 밀착되어 있다. 그리고 쉽게 말해, 타국에 대한 반발심은 항상 상존하고 있으니 그 계기가 무엇이 될지 서로서로 눈치를 보며 살피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사상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으며, 한국에서는 현 정부와 여당의 목적과 목표대로 종북이라는 낙인은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명시 해놓은 헌법보다 높은 사회적 영향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일본은 자민당 독주체제를 확립하고 '정상국가'가 되어 군비를 다시 갖추어 과거의 경제적-군사적 영광을 되찾고자 하고 있다.


# 15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세계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 역시 민족주의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이 민족주의의 뒤에는 여전히 '경제 발전'이라는 지상 과제가 숨기지도 못하는 몸은 포기한 채 얼굴이라도 숨겨보자고 '민족주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본다. 유럽에서 1차,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여러 시도들을 해왔고, 제도적으로 완비되었다고 안심한 순간, 사람들은 더욱 나은 생활수준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과거와는 다르게 낮은 활기를 가진 자국에 대하여 과거의 향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내부의 적이 필요하게 되었고, 사회적인 약자로 보이면서도 만만해 보이는 집단에 대한 반감은 매우 사소한 시작으로 발현되었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서로 묶여서 돌아가다 보면 걷잡을 수 없는 형태로 비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국정 운영을 위해 그리고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좀 더 편리한 국가 지도 체제 완성을 위해, 한국에서는 종북이 등장했고, 일본은 국민 스스로가 정치에 관심을 끊는 형태로 자민당의 독주를 용인하며 '먹고 살게만 해달라' 말하지 않고도 말하기 시작했으며, 중국은 언젠가 완성될 진정한 공산주의 실현을 위해 국민들의 사상의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억누르고 있다. 아시아의 세 나라 모두 '경제'라는 것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핵보다 더욱 높은 층위의 어떤 것이라 상정하였고 이 지상 과제를 풀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될 것이다.


# 16 
유럽도 그렇고, 아시아도 그렇고, 본 글에서는 배제되어 있지만 지구 상 위의 수많은 국가들이 겪는 유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논의되고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책을 논의하는 것을 막고 있는 세계적 경제 침체는 일시에 풀릴 것 같지는 않다. 불안하지만, 그 해결책이란 또 다른 혁명과 또 다른 세계 전쟁과 또 다른 극단주의의 광풍 속에서 등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 드러나는 전쟁-극단주의의 실체는 과거의 어떤 형태보다도 더욱 잔인하고, 무자비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 17 
답은 무엇일까.


p.s 'IS 이슈'가 빠진 이유는 실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국가들 내부에만 집중하고 그 연결고리를 찾고자 했기 떄문이다. 다음 기회에, IS 등장이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적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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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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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4. 15:39 내 생각




2014년 정리. 2014.12.24. 


# 1
세월호가 가라 앉았고, 유병언이 떠올랐다. 한 명 한 명, 기억해야 하는 사람은 수 백 명인데, 단 한 명의 이름이 뉴스에 등장했다. 종교가 등장했다. 거대악이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이단을 싫어했고, 자기 가족이 죽지 않은 사람은 탓할 사람이 필요했다. 정부를 욕하자니 카톡을 뒤질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에 떨었다. 유병언은 죽어 가라 앉았지만 세월호의 기억도 같이 가라 앉았다. 유병언을 떠올린 사람은 알고 있었으리라. 세월호를 가라 앉힐 수 있음을.

# 2
군대에서 폭행을 당해 몇 명의 청년들이 죽었다. 병영혁신위원회인가 이름도 외우기 힘든 뭔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군 가산점제를 부활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낸다. 문제가 군대 내부의 문제에서 남녀 문제로 비화된다. 남녀가 싸우기 시작한다. 군대의 폭력 문제는 잊혀진다. 남녀 문제는 활활 불타오르지만 군대 내 가혹행위나 폭행문제는 서서히 식어간다. 식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얼어간다. 군대를 갔다 온 뒤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군대에서 '살아서 나와야' 함에도, 그 '살아서 나오는' 것은 무시받기 시작했다. 나도 갔다 왔고 너도 갔다 올 것이니 너는 그냥 견디고, 가산점 줄테니 여자랑 싸우란다.

# 3
청와대에서 작성한 문건이라고 말했다. 공식문서라 인정했다. 근데 찌라시란다. 찌라시란다. 전단지도 아니고. 찌라시란다. 청와대는 공식문서를 말할 때 찌라시라 하는 가 보다. 국립국어원은 청와대에 뭐라고 항의라도 했을까. '국어를 올바르게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나쁜 사람들의 손에 휘둘리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럴리 없다. 누가 작성했든 그것을 작성한 사람은 공무원이지만 그것을 유출한 죄가 더욱 크다. 사실이든 아니든 관계 없이 작성한 사람은 공무원이지만 그것이 유출한 것이 더욱 크다. 유출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몇 장의 문서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일지 모른다. 그러니 유출한 죄가 더욱 크다. 국민의 신뢰를 유출해 어디론가 빼돌렸는데 이건 누가 찾아주나.

# 4
창업을 하란다. 으쌰으쌰. 창업을 하란다. '창업넷'이 '스타트업'으로 이름을 바꾼단다. 영어로 적으면 더 멋져보이는가 보다. 창업에 몇 조를 푼다, 몇 천억을 푼다고 이야기해도 창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 돈은 멀리 있다. 실패하면 내 탓이고, 성공하면 정부 덕이니 일단 실패든 성공이든 뭐든 해보란다. 대기업은 사내 유보금을 늘리면서 투자할 데를 찾지만 땅만 보이지 사람은 안보인다. 아, 내가 인문계열 전공자라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나 보다. 아닌 것 같은데. 스티브 잡스 아저씨. 아저씨는 왜 빵집은 열지 않았나요. 아이 브레드. ibread.

# 5
민주적 기본 질서는, 독재를 막기 위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87년도에 다시 헌 법을 적을 때 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말은 더 이상 이 반도 위에서 독재를 위한 정당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독재는 그만하고 민주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적으로 해결해 나갔다. 대통령을 뽑았고, 총선을 했고, 헌재 재판관을 추천했다. 민주적이다. 아주 민주적이다. 당의 강령이 민주적 기본 질서를 훼손한다면 그 당은 해산되어야 한다. 그 당이 독재를 준비할 당이면 말이다. 민주적이라는 표현에 대한 민주적 합의가 필요할 시기이다. 독재하려 했으면 해산되어야 했는데, 독재도 뽑혀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 6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글과 사진들이 길다랗게 올라오기 시작하는 연말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린다. 외과는 더이상 필요 없는 시대다. 내과나 정신과만 필요한 시대다. 내상을 입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서로의 내상을 확인하며 '힐링'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라는 옛 드라마 '다모'의 대사를 서로 울부짓으며 힐링한다. 난 별로 행복하지 않다. 난 정말 아프다.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너도 아프구나' 라고 말한다. 아프다는 말을 들려주면 낫는다고 티비에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떠든다. 행복하란다.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살란다. 남은 어찌 됐든 자신만을 위해서 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럼 너무 무정한 사람처럼 보이니 겉으로는 남을 위하면서 속으로는 오직 나만을 위해서 살란다. 나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여러분, 정말 행복한 한 해였습니까?'

# 7 
주옥. 내일도 주옥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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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24. 00:35 카테고리 없음

내일은 없다. 2013.11.24.


역사가 아무리 발전하다고 한들, 사람이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으며 자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역사가 아무리 발전하다고 한들, 사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는 없으며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확신을 가질 수는 없다. 


'내일은 없다'라는 말을,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오롯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내일은 없는 것이 아니라, 내일도 오늘일 것이며 사실은, 어제도 오늘이었다. 


시간을 나누기 시작한 것은, 사람들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에 '오늘'을 기억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늘을 더욱 세분화 하기 위해서 시간을 나누게 되었고, 더 확장 시키기 위해서 1년을 만들게 되었다. 그때 시간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아마도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오늘을 오늘로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것은, 그들이 쉽게 예상하지 못한 결과이다. 오늘이 있었다는 것만을 기억하지 않고, 내일이 올지도 모르고, 어제가 있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의 토론이 아니라, 단지 시간 상으로 '지나가 버린 것'으로 밖에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충격이었을 것이다. 


글에 역사를 담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말은 역사학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그 당시에만 통용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역사를 담되 그 역사가 10년 뒤, 100년 뒤에도 그 시대 전체와 인류 전체를 관통하는 글을 쓰는 것은 누군가 '글을 쓴다'라고 말할 때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슬퍼할 수 있고, 또 때론 기뻐할 수도 있다. 기쁨만을 가진 삶은 없고 한정 없는 슬픔만을 감정으로 갖고 있는 삶도 없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픈 것이 삶이라고 한다면, 결국 우리는 그 삶의 굴레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어려움은 숭고함을 낳는다고 했던가. 앞서 말 했듯이 역사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한들,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죽지 않고 죽은 뒤의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서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그런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 남아 그것을 글이든 말이든 사진이든 그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던 사례들이 있다. 이런 사례들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감정의 극한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현실감은 매우 떨어진다. 우리가 직접 겪어 볼 수 없는 어떤 것은 마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보더라도, 그것을 우리가 믿어야 하는지 의심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둥글고, 우리가 글로 보는 역사, 기록된 역사 속에는 '어려움'을 느꼈던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증거들이 있다. 이런 증거들로부터 우리는 그런 어려움은 우리가 어떻게 이겨냈는가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 확인 자체가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키진 않는다. 


우리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곤, 당장의 식사일 수도 있고 자녀의 학업이나 취학, 혹은 자신의 연봉 협상 등일 수 있다. 이러한 것들도 어찌보면 '거시적'이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곤 지금 당장의 기분일지 모른다. 바로 10분 뒤에 후회할 일이라도 우리는 지금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가장 큰 근거로 삼으면서 어떤 현상들에 대해서 판단하고 설득당한다.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마치 지금은 모든 세계가 '기분의 세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양한 사례에서, 자신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기분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잃는 순간 기분 나빠 한다. '가진 것'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때로는 더욱 중요해 보이는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가지가 복합되어서 자신의 '선호'를 드러내게 되는데, 그 비율의 차이는 언제나 존재한다. 때로는 정신이 물질을 지배하기도 하고 또 반대의 경우도 빈번히 드러나기도 한다. 입장을 취하는 것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악의 입장이라도 그런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반가운 일이지도 모른다. 입장을 취한다고 했지만, 그 입장은 자신이 어떤 정신적, 물질적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매우 쉽게 바뀐다. 손바닥 뒤집는 것이 그것보다 어려울지도 모른다. 


자신의 입장이 어떻게 변하든, 자신에게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몇 명이든, 자신이 가진 재산이 얼마이든 관계 없이 입장이 변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냐, 그건 또 아니다. 입장은 언제나 변할 수 있고 자신의 상황이나 주변의 상황은 우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바뀌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준이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려운 기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결국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기준 말이다. 사람을 더 확장하면 '인류'라는 기준을 대입해 볼 수도 있는데, 그 인류라는 기준이 우리가 평소 쓰는 용어가 아니라서 다소 어색해 보일 수는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태어난 이상 이 인류의 역사성 속에 매몰되어 버린다고 하면, 그 흐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과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그리고 그 기준이 인류의 보편적 입장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은 결코 선만으로 가득찬 세상은 아니고, 오히려 자신과 입장이 다른, 가끔은 너무나 자명한 '악'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어찌 보면 고맙다고 할 수 있다. 히틀러가 없었으면 우리는 인간의 추악함의 끝을 지금 확인해 보았을지도 모를 것이며 독재가 만약 다른 나라나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지금 독재를 겪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를 수도 있다.


이런 결과론적 도덕론은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앞으로 또 어떤 악이 펼쳐질지, 그것들이 인류에 기여하는 바가 얼마나 추악하고 클지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과거의 어떤 사건들로부터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수한 사례가 이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금 그런 잘못들을 아무일도 아닌 듯이, 또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야 한다.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다.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어차피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않는다. 배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지 않는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는 오늘을 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을 정의롭거나 인류의 기준에 부합하는 삶으로 살지 않으면 그 의미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려움은 숭고함을 낳는다. 그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나 오늘일 수 밖에 없고, 지금도 지구 상 위 어디선가는 먹지 못해, 자지 못해 죽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바통을 터치 받아 다시금 누군가 태어나기도 한다. 그런 삶들에게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라는 따위의 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것이고, 어제의 노력이 오늘의 보상으로 다가 올 것이라는 거짓을 들려줄 수는 없다. 


역사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내일을 살지 않았고 오늘만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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