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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현우의500자_91 #‎현우의500자‬ _91 적을 추억도 떠오르지 않고 특별한 이벤트도 없이 오늘 하루 평범하게 흘러갔다. 서울 곳곳을 텉털거리는 차를 타고 휘이젓고 다니며 많은 은행을 들렀고 그 사이 잠시 들은 라디오에서 똑같은 사연을 두 번 들었다. 아내가 잔소리를 하자 '그만 좀 해!'라고 소리를 질렀다며, 그 이후 아내가 아무말 하지 않아 더 불안하다는 똑!같은 사연을 오후에 한 번, 그리고 저녁에 한 번. 같은 사연을 두 번 듣다 보니, 나도 '그만 좀 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소리 듣는 이 나 밖에 없을 것이기에 쓴 웃음 한 번 지어 버렸다. 오전에 잠시 들른 마포구청에서 내게 도장을 쾅쾅 찍어주던 남자가 뒤로 앉은 채로 물러날 때, 그가 앉은 휠체어 덕에 내 세계는 더욱 넓어졌고 그렇게 넓어졌다. 친구.. 더보기
현우의500자_89 ‪#‎현우의500자‬ _89 시동을 꺼야 한다. 스피커에서 한가득 웃음소리가 들린다. 개그우먼 김신영과 가수 나비의 웃음소리가 차 안의 먼지를 흔드는 듯, 아무런 색깔이 없는 공간에 색깔을 덧씌우는 듯 하다. 주차는 완벽했고, 사이드 브레이크는 올려져 있었으며 P는, 왜 나에게 시동을 끄지 않냐며 내 다음 행동을 재촉한다. 웃음소리다. 시동을 끄지 못하는 것은 웃음소리 때문이며 내가 이것을 끄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될 이 공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사람들은 즐거움이 지속되길 바란다. 하지만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즐거움 혹은 슬픔이라도,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손목을 잠시 비틀어 시동을 꺼 버리면 즐거움이 사라지고 다시 무(無). 때론 당연하게 생각되는 없음에 나는 공(空)이라 이름 붙.. 더보기
현우의500자_73 #현우의500자 _73 운전을 할 때 습관적으로 라듸오를 틀어놓는다. 라듸오가 들려 주는 음악이나 이야기 소리에 흔들리는 귓볼을 느끼고 있으면 어두운 방 하나가 떠오른다. 라듸오 디제이는 좁고 어두운 방에 앉아 스탠드 하나만을 켜 놓은 채 원고를 읽고 있다. 원고가 적힌 흰 종이에 반사된 빛이 디제이의 얼굴에 그을음 하나를 남기지 않는다. 디제이는 글자 하나하나를 자신의 목소리로 옮겨 가며 마이크 앞에서 침을 몰래 삼킨다. 왜 라듸오를 들을 때 마다 어두운 방과 얼굴이 창백할 정도로 하이얀 디제이의 얼굴이 떠오를까. 그건 내가 가졌던 첫 라듸오가 검은 색 금성인 탓이다. 라듸오 뒷면에는 건전지가 들어갔고, 건전지를 빼기 위해 붙여 놓은 붉은 셀로판 테이프가 삐죽이 튀어 나와 있었다. 원하는 방송의 주파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