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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_73

#현우의500자 _73

운전을 할 때 습관적으로 라듸오를 틀어놓는다. 라듸오가 들려 주는 음악이나 이야기 소리에 흔들리는 귓볼을 느끼고 있으면 어두운 방 하나가 떠오른다. 라듸오 디제이는 좁고 어두운 방에 앉아 스탠드 하나만을 켜 놓은 채 원고를 읽고 있다. 원고가 적힌 흰 종이에 반사된 빛이 디제이의 얼굴에 그을음 하나를 남기지 않는다. 디제이는 글자 하나하나를 자신의 목소리로 옮겨 가며 마이크 앞에서 침을 몰래 삼킨다. 왜 라듸오를 들을 때 마다 어두운 방과 얼굴이 창백할 정도로 하이얀 디제이의 얼굴이 떠오를까. 그건 내가 가졌던 첫 라듸오가 검은 색 금성인 탓이다. 라듸오 뒷면에는 건전지가 들어갔고, 건전지를 빼기 위해 붙여 놓은 붉은 셀로판 테이프가 삐죽이 튀어 나와 있었다. 원하는 방송의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선 미세한 손놀림도 필요했다. 긴 안테나를 가진 내 첫 라듸오는 어딘가 사라졌지만, 라듸오 방송은 여전히 어두운 공간에서 하는 듯 하다. 디제이에게 빨간 꼬리가 있는지는 확인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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