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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_89

‪#‎현우의500자‬ _89


시동을 꺼야 한다. 스피커에서 한가득 웃음소리가 들린다. 개그우먼 김신영과 가수 나비의 웃음소리가 차 안의 먼지를 흔드는 듯, 아무런 색깔이 없는 공간에 색깔을 덧씌우는 듯 하다. 주차는 완벽했고, 사이드 브레이크는 올려져 있었으며 P는, 왜 나에게 시동을 끄지 않냐며 내 다음 행동을 재촉한다. 웃음소리다. 시동을 끄지 못하는 것은 웃음소리 때문이며 내가 이것을 끄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될 이 공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사람들은 즐거움이 지속되길 바란다. 하지만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즐거움 혹은 슬픔이라도,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손목을 잠시 비틀어 시동을 꺼 버리면 즐거움이 사라지고 다시 무(無). 때론 당연하게 생각되는 없음에 나는 공(空)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흐르지 않는 음악이 귀에 들리듯, 시동을 꺼버림으로써 채울 수 있는 공간에 무엇이든 쑤셔 넣을 수 있다는 것. 무엇을 채울지는 언제나 선택에의 강요다. 그리고 잇따를 책임도 또 함께. 엔진은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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