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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3. 11:02 내 생각

‘시멘트 핫도그’ 20161203

 


2009 1,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위앙짠)의 근교, 어느 한 초등학교에서 2주간의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 유스클립(Youth CLIP)이라는 대학생국제교류단체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였고, 보건복지부의 후원으로 진행하게 된 봉사활동이었다. 2주간 내가 맡았던 업무는 다름 아닌 도서관 짓기였다. 그곳의 초등학교는 교사(校舍)와 화장실 건물만이 있는 곳이었기에 도서관을 세울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당시 현지에서 활동중이던 시민단체로부터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라오스에 가기 이전까지 내가 손에 벽돌을 잡아본 적은, 2006년 아동양육시설에서 공익근무를 할당시 식당을 증축할 때 뿐이었으므로 완전 초짜였다. 현지의 인부-라고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지역 주민들이었다와 협력하며 도서관의 바닥이 될 곳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학교의 정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널찍한 공간이 형성된 뒤, 본격적으로 벽돌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평소 한국에서 길을 걷다가 집이나 건물을 새로 짓는 공사장을 지나가며 보았던 대로, 현지 인부들이 쌓아놓은 벽돌 첫 줄 위에 잘 게운 시멘트를 얇게 발랐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벽돌 줄을 만들기 위해 벽돌을 올려놓는 일이 반복되었다. 집중해서 몇 장 째 올리고 있었는데, 현지인 인부이자 2주간 봉사활동 끝에 친구가 된 뎅(빨갛다는 의미의 이름)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손사래를 쳤다. 뎅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라는 건 확실했다. 이어 뎅은, 자신이 들고 있던 망치로 내가 쌓아 올린 벽돌을 가볍게 툭 하고 쳤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하며 놀라기도 전에 벽돌은 힘없이 툭 하고 쓰러졌다. 나는 당황했다. 분명 벽돌은 세워져 있는 듯 보였다. 몇 장의 벽돌이 아주 보기 좋게 줄지어 서 있었고, 그것은 내가 익히 보던 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뎅은, 그렇게 해서는 벽돌이 제대로 붙어있지 못한다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 잘 게운 시멘트를 한 움큼, 손에 들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판자에 덜어내더니 그것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꽤 두꺼운 핫도그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세워져 있던 벽돌 위에 툭 하고 올려놓았다. 그럼 벽돌 위로 핫도그 모양의 시멘트 덩어리의 반 정도가 드러나 보였다. 나머지 반은 아래 벽돌과 접착되어 있었다. 드러난 반 정도의 시멘트 핫도그 위에 새 벽돌을 올리자 새 벽돌의 무게에 의해 시멘트 핫도그는 납작 눌려졌고, 벽돌과 벽돌 사이에 시멘트들이 삐죽하며 묻어 나왔다. 그것을 시멘트 칼로 긁어내자, 그때야 비로소 내가 흔히 보던 모습의 벽이 드러났다. 이어 뎅은 다시 망치를 들어, 처음에 내가 세웠던 벽돌을 넘어뜨리던 강도와 비슷해 보이는 강도로 그 벽돌을 툭 하고 쳤다. 벽돌은 움직이지 않았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 시멘트가 잘 접착되어 있었기에 벽돌은 큰 흔들림이 없었다.

 

방법을 알게 된 나는, 2주간의 시간 동안 벽돌 쌓기에 나름의 조예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실제 공사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우스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여타 봉사자들보다는 빠르고 바르게 벽돌을 쌓아 올렸다는 것은 확실했다. 덕분에 내 손과 얼굴은 거칠어져 갔지만 말이다.

 

라오스에 가기 전까지 벽을 보면, 보기만 좋은 그 평평한 모습만 생각했다. 벽돌은 아주 얇게 바른 시멘트로도 충분히 붙어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벽돌을 서로 붙이기 위해서는 보이는 양보다 보이지 않는 꽤 많은 양의 시멘트가 필요했다. 그것들이 끈끈히 붙어 무너지지 않는 벽이 되었고, 건물이 되었고 라오스에서는 도서관이 되었다.


 


우리 사회도 그렇다. 어떻게 이 사회가 유지되고 있을까 생각을 해보면, 겉으로 보면 별다른 것 없이 멀끔해 보이지만 사람들 사이 사이에도, 제도 사이 사이에도 두꺼운 핫도그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 그것이 개인 간에는 사랑일 수도 있고 가족 안에서는 책임감과 존경일 수도 있고, 사회 전체로 보면 법과 제도든지, 민주주의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겉에서 볼 때는 어떻게 지탱되고 유지되는지 궁금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떤 시련이나 고난이 닥치면 결국 이런 끈적임과 접착력이 그것을 지켜준다. 사랑, 가족애, 책임과 의무, 민주주의라고 했지만 그것들 결국 하나로 묶으면 연대(連帶)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아껴 여기고, 누구 하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함께 손을 잡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무너지려 할 때 힘을 모아 버틸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주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시멘트 핫도그가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겉모습에 신경을 써온 듯 했다. 겉으로 멀끔하면 되니, 부실공사를 한 탓에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붕괴했고, 씨랜드에서는 유치원생과 선생님을 포함한 2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세월호가 가라앉으며 사망자 295명과 실종자 9명이 발생한 것이다. 겉보기에 배는 바다에 침몰하지 않을 듯 보였다. 바다에 빠지더라도 나라가 승객들을 구해낼 것이라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어 사회적 연대는 원활히 진행되지도 않았다. 불필요한 색깔 논쟁과 유가족을 비난하는 글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법적인 책임만이라도 제대로 묻길 바랐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다시 말해 벽 안에 끈끈히 묻어 있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그것은 건물 하나를 짓기 위해 필요한 시멘트 핫도그 보다 더욱 중요하다.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공교롭게도 우리는 사회적 연대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가 누구를 지킬 것인가. 누가 국가를 지킬 것인가. 지킬 것은 자기 자신 뿐인 세상에 살고자 하는가,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가. 산업화가 주었던 사회적 연대 배고픔과 민주화가 주었던 사회적 연대 민주주의를 넘어 무엇을 사회적 연대의 목적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해 보인다.

 

일을 마치고 난 뒤 뎅과 술을 마시면, 우리는 서로를 격려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가 느꼈던 연대감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난 뒤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애국심 따위가 아니라 우리 친구의 이야기이며,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며, 우리보다 먼저 더 나은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이 남긴 이야기들이다. 더 튼튼한 벽을 세울 것이다.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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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31. 19:52 내 생각

“행복하기 위해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는 말


‘언제나’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들으면 참 틀린 말이라 생각하게 되는 말이다.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불행한 삶을 살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이 행복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도의 문제’라는 것이 있다. 삶의 수준을 유지하는 데는 어느 정도의 돈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주거와 의료, 교육이 대표적인 그 정도를 결정짓는 요소라 할 수 있다.


당장의 혹은 다음 달의 생계가 걱정인 사람이나 급하게 병원비가 필요한 사람에게, 돈에 행복을 연계해서는 안된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만큼 돈은 반드시 필요하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살기에 충분한 돈을 갖고 있는 사람 혹은 그만한 돈을 갖고 있는 부모를 두거나 그런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은, 돈이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한 발화를 멈추어주면 참 고마운 일인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돈이 없는 사람이 돈을 갖고자 하는 것을 보고 억척스럽다거나 삶에 여유가 없다거나 말한다.


충분한 돈을 가져본 적이라도 있어야, 돈이 행복의 절대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텐데 많은 서민들은 그런 경험을 해볼 수가 없다.


그렇기에 ‘돈이 행복에 있어서의 주요 가치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종의 과시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혹시 아주 가난해서 내일 먹을 음식이 없는 사람 중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이는 정신병증에 불과하다.


‘소소한 삶 속에서 사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요.’ 라는 말. 소소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 다음 달 월세나 식비가 걱정되는 삶은 소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완전한 만족까지는 아니라도 자신의 건강을 지키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거주공간을 갖추어야 할 것이며,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어야, ‘소소한’ 삶이 될 수 있을 것인데 이거, 쉽지 않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부자가 되는 삶을 바라는 것도 모든 사람이 생계 걱정에 허우적대는 사회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공동체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따위 소리를 그만두고, 필수재적인 성격을 갖는 주택이나 의료, 교육 등에 대한 지원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돈 많은 사람’은 왜 찾기 힘든 것일까.


현대 우리 사회에서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자신의 집이 아니라도, 월세가 떨어져 보증금이 올라 전세금이 올라 쫓겨날 걱정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주거환경이 필요할 것이며 가족 중 누군가가 병에 걸리거나 치료가 필요할 때 그것이 미래의 삶 전체를 흔들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끼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을 인정받고 발휘할 수 있는 직업 환경 등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은 반드시 행복에는 돈이 드는 법이다.


누구라도 노력해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이런 글 적지도 않았다. 가난에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 지원이 필요하다. 그 지원은 결코 누군가의 것을 뺏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을 높이는 것이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포용력이 높은 사람이 되고 가난한 사람이 가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 자신의 지질함을 드러내는 것이 되는 사회에서, 오늘도 목소리 한 구절을 지질하게 보탠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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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4. 16:59 내 생각

"혐오와 자기 혐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최근 1주일 사이 저의 SNS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었음에도 그 개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단어는 바로 '혐오'입니다.

 

혐오(嫌惡)란 보다시피 두 개의 한자가 모여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싫어한다는 뜻의 ''과 미워한다는 뜻의 '', 다시 말해 싫고도 미운 어떤 대상에 대해 품는 감정입니다. 교육심리학에서는 '혐오'를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제거하고자 할 때 발생하는 정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쉽게 풀어 설명하면, 사람이라면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고 물건이라면 부숴버리고 싶을 감정을 느끼는 대상에 대한 감정인 것입니다. 그 대상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될 때가 있습니다.

 

최근 '혐오'라는 단어가 저의 눈과 귀에 많이 들어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2016517일 밤 120분 경 서울 강남역 인근의 살인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20대 여성이 30대 남성으로부터 살해당한 사건입니다. 이 남성은 자신이 평소 여성으로부터 무시를 받아왔기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혐오 중에서도 '여성혐오'의 발현이 이번 살인사건의 큰 원인으로 보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 내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적 태도와 성범죄의 가해자로서의 남성에 대한 각성의 계기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혐오의 개념은 간신히 알게되었습니다만, 여성혐오란 무엇일까요.

 

집단지성인 위키피디아에 정리된 여성혐오는, 사회학자 마이클 플러드((Michael Flood)의 말을 빌어 여성혐오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성혐오는 대부분 남성들에게서 나타나나, 여성들이 스스로나 다른 여성을 대할 때에도 나타난다. 여성혐오는 가부장제와 함께, 수천년 동안 여성을 종속적인 위치에 못박았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권력과 의사결정에 대해 제한적인 접근만을 허락하는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이념 혹은 신념체계로 기능한다. [...] 서양 문화 속의 여성은 스스로의 역할을 사회적인 희생양으로 내면화하여 왔으며, 21세기에는 멀티미디어에 의한 여성의 대상화로 인해 문화적으로 승인된 자기 혐오와 성형 수술, 거식증 및 식욕항진증(폭식증)에 대한 집착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특이한 점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혐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여성에 대한 혐오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 들어와 여성에 대한 대상화가 하나의 문화적인 현상으로 정착되었다는 점 역시 특이합니다. 이러한 특이점은 여성혐오의 발원지가 남성 만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우리 일상에서 매우 쉽게 여성혐오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합니다.

 

학자들에 따라 다른 견해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여러 견해들을 종합하면 '여성에 대한 편견과 억압의 시작이며 일상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앞선 '혐오'의 개념과 연결시켜 보면, '죽이고 싶은 대상'이 여성이 되는 것입니다.

 

혐오 그리고 여성혐오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지금의 시점에서는 위험한 발상일지 모르겠지만, 지금 글을 적고 있는 본인은 남성이 가진 혐오의 대상이 '여성'이 되었든, 여성이 가진 혐오의 대상이 '남성'이 되었든 또는 그 대상이 바퀴벌레가 되거나 개미가 되었든 혐오를 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그 혐오의 감정을 근거로 실제 행동이 표현되었을 때는 법적 그리고 사회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혐오의 감정을 갖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혐오의 감정을 어떤 형태로든 실행한다면, 타인의 생명과 자유를 훼손할 수 있는 위험성과 가능성이 있기에 제약을 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혐오의 대상이 사람이라는 또 다른 인격이라면 문제는 더욱 첨예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바퀴벌레를 혐오해서 죽이는 것과 여성을 혐오해서 죽이는 것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에는, 혐오의 대상이 여성이었습니다. 특정되지 않은, 20대 여성에 대한 혐오 감정의 표현은 이제 개인의 자유 영역에서 벗어나 법적-사회적 차원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혐오 표현은 우리 사회 내에 아니, 인류의 역사 속에서 뿌리 깊게 스며 있는 여성혐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일지 모릅니다.

 

긴 글이 될 듯 하지만, 저는 여성혐오를 포함한 혐오 감정이 발생하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개인의 감정으로서의 혐오와 발현된 혐오 모두 같은 맥락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혐오의 원인은, 바로 도구화입니다.

 

도구화, 타인을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 혹은 감정입니다.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들은 여성을 자신의 성욕의 해소나 성공의 발판,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자궁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이 역사적으로 갖고 있었던 권력들이 자신들의 삶을 더욱 나은 삶으로 만드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이며, 그러한 권력의 붕괴를 위한 수단으로서 남자를 공격이나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성과 남성 뿐만 아니라, 도구화의 대상은 자기 자신에 까지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자기 삶의 목적을 찾기가 힘들어진 현대에 들어와 직업을 가짐으로 인해 한 조직의 구성원이 되는 자부심을 갖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회사를 위한 도구로 설정하기도 합니다. 직업적 측면 뿐만 아니라, 누군가는 부모의 꿈을 대리해 실현해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서로 사랑을 하는 연인 관계에 있어서도 타인의 행복을 돕는 수단으로까지 여겨지지도 합니다.

 

이즈음 되면 사람이 도구화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춘 철학자나 사상가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있습니다. 그것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도구화'를 막기 위한 철학적-종교적 체계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씁쓸한 것이 사람의 도구화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또 시대를 막론하고 만연한 문제였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혐오의 원인으로서 전제한 도구화에 대해서 역사 속의 인물들은 어떻게 서술했을까요.

 

칸트는 정언명령(定言命令) 중 하나로서 인간의 도구화를 일갈합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인격에 있어서건 타인의 인격에 있어서건 인간성을 단지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행위하라!“ 쉽게 말해, 자신과 타인 모두를 수단화하지 말라 말하죠.

 

공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논어위령공편에 나온 표현으로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 말합니다. 그 뜻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뜻입니다. 직접적으로 도구화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이는 듯 보이지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타인도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며, 자신이 어떠한 목적을 이루고 싶지 않으면 타인 역시 그럴 것이라 상정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을 타인에게 시키거나 수단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처는 어떻게 이야기했을까요. 다소 포괄적이고 다양한 해석이 있기도 하지만 자비가 수단화를 막는 답이자 대안입니다. 자비(慈悲)라는 단어는 혐오처럼 두 한자의 결합입니다. ()는 사랑한다, 즐거워한다는 뜻이고 비()는 슬퍼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자비란, 즐거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공감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있지 말고 타인의 행복이나 슬픔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라는 것은, 앞서 설명한 칸트와 공자가 언급한 맥락과 함께 합니다. 타인이 어떤 감정을 가질지 어떤 목적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존중입니다. 즉 타인을 수단화하는 것입니다.

 

수단화에 대한 비판은 칸트, 공자, 부처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예수의 아가페’- 무조건적인 사랑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혐오의 원인이 도구화이고, 도구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선인들의 일갈을 듣는다고 우리는 혐오를 멈추게 될까요. 그렇지는 않을 듯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성에, 타인에 대한 혐오를 멈출 수 있을까요?

 

제가 제시하는 대안은 자기 혐오를 멈추자는 것입니다. 자기를 스스로 혐오한다는 것이 어색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자기의 생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고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를 하게 된다면 자기 밖에 대한 혐오를 멈출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만들려는 노력을 통해 자기 혐오를 불식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타인에 의해 흔들리는 기준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을 확인하고 확보시켜 나간다면, 타인의 기준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타인에는 여성 뿐만 아니라 외국인, 장애인 나아가 동물 혹은 식물에게 까지 공감의 확대가 가능할지 모릅니다.

 

 

앞서 긴 글을 요약하면 이렇게 한 문장이 될 듯 합니다.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것은, 그러한 것들을 도구화시키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며 이런 혐오의 근저에는 자기 혐오가 깔려 있으니 자기 혐오를 하지 않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위 요약된 문장에는 많은 맹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만의 기준을 만들고 자신을 혐오하지 않게 되었다고 해도 타인들은 여전히 그 기준을 찾지 못했고, 사회-제도적으로도 차별이 남아있다면 여전히 혐오가 범람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것도 선후관계를 설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혐오를 멈추기 위해 노력하고, 동시에 사회 전체적인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혐오는 감정입니다. 그것을 갖든지 말든지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혐오든 타인에 대한 혐오든 혐오의 감정을 갖는 것은 자신에 대한 정신적 피해를 끼칩니다. 균형잡힌 시각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지만 혐오는,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 생각과 감정의 악순환에 빠져들 위험성이 있습니다. 또한 이런 혐오가 감정의 고삐에서 풀려나 실행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법적인 책임과 반드시 직면하게 됩니다. 우선 혐오의 감정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있어, 그 시작이 자기에 대한 혐오를 멈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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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9. 00:31 내 생각

여드름 자국

 

중학교 시절까지 단 하나도 나지 않던 여드름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내 얼굴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춘기가 되면 누구나 나는 것이라 생각해 내버려두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선 배 밑에 베개를 깔고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양손을 얼굴에 대고 여드름을 상처로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드름을 무던히도 열심히 짰던 기억이 선명한 것은, 그 사소한 실수가 지금까지도 내 얼굴에 남아 있다는 것을 매일 거울을 보며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하얀 고름이나 유분기가 ’-이 소리는 실제로 난 소리는 아니고, 마음 속에서만 들렸던 소리다-소리를 내며 거울에 튀겼고, 나는 더욱 힘껏 여드름을 손으로 꾹꾹 눌러 피가 나도록 했다. 몇 번의 반복된 동작 끝에 내 얼굴에는 여드름의 기미는 사라졌지만 불긋한 상처와 딱지들이 남았다. 상처가 나으면 예전의 피부도 돌아가겠지- 하는 착각. 이 있었다. 그때는 그 사소한 행동들이 이후의 내 얼굴의 한 특징이 될 줄 알았을리 없다.

 

나에게는 익숙해졌지만.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익숙해지지 않는 듯 했다. 대놓고 내 피부를 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내 피부 상태를 보고, 나 자신을 관리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기는 듯 했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것은, 내 눈을 보지 않고 묘하게 피부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적어졌지만 과거에는 꽤- 많았다.

 

상처가 남았다.

 

여드름 흉터로 인해 상처가 남은 것은 내 피부였지만,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나 사소한 놀림-예를 들어 달의 표면 사진을 보는데, 네 피부가 생각났다.’ 라던지, ‘좀 씻고 다녀라라던지- 에 의해서 마음에도 상처가 남았다. 피부의 치료를 위해 피부과를 다녀보기도 했지만,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내가 익숙해진 만큼 크게 신경쓰지 않는 시간들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예전의 중학교 친구가 생각났다. 오른손이 있을 자리에 항상 붕대를 감고 다녔던 친구. 그 친구는 혈관기형으로 손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했다. 자신과 같이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기 위해 한의사가 되고자 했었는데,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친구는 손이 없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불편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는데, 그 시선탓에 굳이 감지 않아도 될 붕대를 감아야만 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혐오스럽다며 언짢은 표정을 자주 지었다고 했고 자신도 그런 피해를 남에게 주고 싶지 않다 했다.

 

손과 피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용도와 이질감이 덜 드는 쪽은 피부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다르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그 결과는 같을 수도 있다.

 

이질감.

 

티비를 틀어보면 피부 미끈한 사람과 손 두 개인 사람들이 나온다. 심지어 예쁘고 잘생기기까지 했다. 굳이 티비를 틀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도 관리 잘된 피부를 갖춘 사람을 꿀피부나 피부 미녀/미남이라 칭송하기도 하고 매력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손이 없거나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저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편하게 만들어내어 관리복지의 대상으로까지 만들어 버린다. 그 원인에는 이질감이 있다. 누가 만들어낸 기준이고 평균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은 피부가 미끈해야 하고 손은 두 개, 발도 두 개, 눈도 두 개 등등 다양한 평균적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이질적인사람이 되어버리고,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복지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다르다는 것의 아름다움.

 

나는 비록 내 실수로 인해 그리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여드름 흉터가 생겼지만,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를 가진 사람은 대부분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내 실수로 지금의 피부가 되었지만, 나는 내 피부가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저 내 피부는 남과 다를 뿐이다. 장애 역시 그렇다. 그저 그 한 사람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안될까. 개성이면서 일상 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부족한 사람에게 부족하다 비난할 것이 아니라, 부족하니 사회에서 조금씩 채워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러게 된다면 다름은 개성으로 굳혀지고, 그 개성은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하나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든 드러나지 않는 것이든, 다시 말해 신체적인 것이든 정신적(혹은 심리적)인 것이든 불편함과 다름을 안고 산다. 마치 현재 모든 인류의 공통점이라 할만한 불편함과 다름을 이질적이라거나 비정상이라고 낙인찍는다면 이 세상 누구도 정상은 없다. ‘정상평균이라는 것의 틀을 벗어나야만 모든 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지 않을까.

 

피부 나쁜 것도 장애가 있는 것도, 마음이 아픈 것도, 몸이 아픈 것도 또 그 어느 한 곳 아프지 않은 것도 그저 그 사람이 가진 개성이고 다름이 되기를. 불편하더라도 스스로가 변하길 원치 않으면 마음 깊이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나만의 욕심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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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8. 18:14 내 생각

"사장님 어디 있어?"

2004년 그러니까 20살 때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2004년 10월 1일부터 2005년 1월 1일까지. 원래는 12월 31일까지 하기로 했지만, 사장님께서 새해 첫날 손님이 많이 올 것인데 짬뽕을 점심으로 사줄테니 하루만 더 하라고 해서 하루 더 했다. 짬뽕에 새해 첫날을 팔았다. 흑.


주유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유쾌하지 못한 일들이 종종 생겼다. 내게 반말을 하는 손님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었고 쓰레기를 봉투에 담지 않은 채 창 밖으로 하나씩 던지는 손님, 가득 넣으라고 해놓고 왜 가득 넣었냐고 따지는 손님도 있었다.


유쾌하지 못한 일 중 가장 찝찝하면서 매달 내 손해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결제할 때 유종(기름의 종류) 바꾸기와 경찰과 소방차들이 와서 하는 '기름 삥땅'이었다. 기름 삥땅이란, 법인 카드로 실제 주유량보다 결제를 더 많이 하고, 남은 기름의 양을 리터 단위로 적어 나중에 자신의 차에 넣는 그런 짓거리였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유종 바꾸기를 하려는 손님을 만났다. 50대 후반 즈음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운전자였고 조수석에는 부인이, 뒷자석에는 20대의 두 자녀가 타고 있었다. 승용차를 타고 왔고, 휘발유를 넣었다. 계산을 하기 위해 다가가자 카드를 내밀며, '경유로 결제해줘.'라 당연한 듯이 내게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당황하고 있자 원래 그러는 것이라며 경유로 결재하라 다시 한 번 엄중히 내게 권했다.


돈만 맞으면 된다는 생각에 나는 휘발유를 경유로 결제했고, 손님은 만족하며 떠났다.


하지만


한달에도 몇 건의 이런 일들이 있고 난 뒤에, 그 손해가 고스란히 아르바이트생인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휘발유와 경유는 판매되는 가격이 달랐고, 또 당연히 주유소에 들어온 기름과 나간 기름 사이에는 격차가 생겼다. 격차는 결국 돈이 빈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 돈은 아르바이트생의 월급에서 깎았다. 이때 시급이 2700원이었으니 정말 벼룩 간을 빼먹는 짓이었다.


이후 나는 이런 유종 바꿔치기를 하는 손님을 만나거나 할 때는, 손님에게 들리는 목소리로 다른 알바생에게 'OO야, 국세청 전화번호가 몇 번이더라?' 하며 손님이 알아서 유종 바꾸기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럼 그 손님들은 다시 우리 주유소에 오지 않았다.


악질 중의 악질은, 기름 삥땅이다. 하루는 소방차가 한 대 들어왔다. (소방차 말고도 경찰차, 법인 차량 참 다양한 차들이 기름 삥땅을 하러 왔다...) 소방수 옷을 입은 채로 차에서 내려서는, 몇 리터를 넣고 몇 리터는 알아서 빼달라고 내게 말을 툭, 던졌다. 나는 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지만 '그럴 수 없다'하며 강한 거부의사를 보였다. 뭐랄까. 소방차는 안그럴줄 알았다고나 할까. 일종의 실망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들었는지, 운전을 했던 소방수 말고도 다른 소방수들도 차에서 다 내렸다. 다들 한 마디씩 던진다. 알바 한지 얼마 안됐냐, 원래 그렇게 다 하는거다. 그리고 이어


"사장님 어디 있어?"


사무실에 계신다 하니, 다들 슬금 내 눈치를 보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장님 나오셔서, 내게 눈치 한 번 주시고선 기름을 넣고 결제를 하고, 삥땅한 기름의 양이 적힌 종이를 소방수에게 건넸다. 나는 가만히,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전에도 나도 많이 했던 것이었고, 또 이미 익숙해진 탓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소방수에 대한 어떤 환상이 무너진 것만이 그때는 문제라 느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사소한 불의와 만나가며 2005년 1월 2일이 되었고, 나는 더이상 이런 치졸한 사람들과는 만나지 않게 된다는 것에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후 공익근무를 하거나 대학에 다시 들어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결국 어딜 가나 불의랄까, 소악(小惡)이랄까- 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거대한 악이었으면. 차라리 거대한 악이라서 내가 그것을 무찌르고 타파하기 위해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었으면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삶은 의지와 타협 사이의 줄타기다. 무엇인가를 이루겠다거나 해내겠다는 의지와 상황이나 타인에 의하여 변경되는 것과의 타협. 이 둘 사이에서 사람들은 아슬아슬 살아간다. 자신의 의지만을 관철시키는 사람을 우리는, 이기주의자라거나 고지식하다고 하고 또 자신의 의지 없이 타협만을 아니, 때로는 추종만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기회주의자라 비난한다.


감히 바라건대, 타협을 하더라도 그 범위가 어느 한 사람의, 어느 한 사회의, 어느 한 국가의 양심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면 안될까. '사는 건 다 그래.'라며 위로 같지도 않은 격려 말고, 순수했던 젊고 어린 시절 자신의 양심이 아름답게 지켜질 수 있도록 사회가 구축되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의지와 타협을 넘나들어도 양심의 가책이나 불법은 아닐 수 있도록 말이다.


아마, 지금도 전국 어딘가의 주유소에서는 유종을 바꿔 계산하고 기름 삥땅을 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지 마세요. 그거 불법입니다. 불법 이전에 당신이 한 사람의 양심을 흔들고 있어요. 당신 양심이 더럽다고 또 다른 사람의 양심을 더럽히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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