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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6.12.02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2. 2016.06.28 실패해도 괜찮다.
  3. 2016.04.12 아끼는 법
  4. 2015.03.29 현우의500자_104
  5. 2015.03.09 오늘한시_14
2016. 12. 2. 20:55 내 생각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2016.12.02.

 

대부분의 친구들은, 졸업을 할 초등학교 인근의 중학교를 갔다. 하지만 나는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체학급에서 단 10명 만이 진학을 했던 마산중학교에 지원했고 어렵지 않게 입학이 결정되었다. 굳이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가 아니었어도, 유일하게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는 것도 큰 결정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중학교 진학이 결정되고 난 뒤, 내가 처음 한 일은 머리카락을 짧은 스포츠로 깎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두발자유화는 꿈 같은 소리였다.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나는 스포츠 머리에 익숙해져야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되려 어색한 머리가 되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앨범에는 정말 이상한 모습으로 찍힌 사진이 떡 하니 남았다. 졸업앨범 사진을 정식으로 촬영하였지만,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며 복도에서 찍힌 스포츠 머리의 내 모습은 지금 봐도 우스꽝스럽다. 거기다가 그날 입고 있던 옷이 하늘색 면 셔츠였다. , 하늘색이라니. 가능하다면 같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동기들의 앨범을 모두 몰수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그리고 이어 두 번째로 내가 중학교 진학을 위해 한 일은 교복을 맞추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특이한 선택을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교복 브랜드는, 스마트와 엘리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교복판매점에서 중학교 교복을 맞추게 되었다. 이것도 형이 그곳에서 맞추었기 때문이었고, 브랜드가 없는 대신 그만큼 저렴했다는 것이 이유일 수 있겠다.

 

처음 교복을 받아 온 날이었다. 마산중학교 교복은 정말 특징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교복이었다. 남색 상의에 같은 색깔의 하의. 단추에는 한자로 적힌 중학교를 뜻하는 중()글자가 금색으로 반짝였고, 상의소매에도 같은 형태이지만 크기가 작은 단추들이 3개씩 붙어 있었다. 흰 셔츠는 분명 면이라고 했지만, 이상하게 삼베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칠었다기 보다 삼베처럼 실 한 올 한 올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징도 없고, 고급 교복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 교복을 나는 매일, 입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한참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중학생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질 듯 보였고, 정장 형태로 된 교복을 입으면 마치 내가 어른이 된 듯해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하교 한 뒤 교복을 집안에서 입고 다니는 이런 나를 보며, 내가 곧 들어가게 될 마산중학교 교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온 형이 나에게 한 마디 툭 던졌다.

 

그거, 입기 싫어도 입어야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지금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의미였고, 이렇게 교복을 입고 있으면 번듯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척들은 나의 중학교 입학을 축하해주었고, 내게 기대하는 것들을 이전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중학교 교복을 입을 때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며 멋진 중학생이 되어야지, 하며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형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게 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1년이 지나는 것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선배들은 무서웠고, 선생님들은 더욱 무서웠다. 체벌이 당연했던 시절이라 사소한 잘못에도 선생님들은 가볍게 매를 들었지만, 그 매는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할 시점이 되어서는 체벌은, 마치 경주마를 다그치듯 너희를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양 뺨에서부터 발바닥까지 이어졌다. 교복을 입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중학생이라는 신분 뿐이었지만, 그에 따르는 의무는 자질구레한 것부터 때론 억울하다 느껴질 정도로 큰 것까지 많고 많았다. 그 결과 교복은, 매주 주말 다시 입고 싶지 않은 것이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교복을 입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었다. 하늘색(난 하늘색을 좋아하는 것인가...) 운동복을 입고 졸업식을 보내며, 고등학교 교복에 대한 환상 따위는 이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고등학교에 또 올라가는 것.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히 가야한다는 분위기에 취해 대학을 가는 것. 물론 당연하지 않았던 뭇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내가 살았던 당시에는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오며, 그 의미를 만끽했던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군대에 들어가고자 했지만 시력 탓에 공익을 가게 되며 겪게 되었던 차별 혹은 비판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고, 30살이 넘으며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사회적 의무들은 나도 모르게 나를 옥죄었다. 그리고 의무에 허덕인 탓에 권리는 간신히 그리고 어렵게 하나씩 얻어갔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중고등학교 입학이 그럴 것이고, 대학 입학이 그럴 것이고 취직, 결혼, 출산 등이 그럴 것이다. 이런 다양한 능선들이 눈 앞에 있을 때 그것을 정복하든 우회하든 그것을 선택함에 있어 책임은 다양하게 삶을 파고든다.

 

평범한 사람이 이럴진대 다른 이들보다 특별한 지위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책임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작게는 카페나 구멍가게의 사장에서부터 크게는 한 나라의 대표라고 부를 수 있는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쉽게 얻은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과는 별도로 그것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많은 책임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카페 사장은 손님들을 위해 맛있는 커피를 준비해야 하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공정하게 국민들의 요구를 잘 받아들이고, 정의롭게 국가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원한 지위에 해당하는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복은, 단지 교복일 뿐이었다. 그것을 입고 있다고 중학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벗었다고 중학생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중학생이면 중학생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고등학생이면 또 그 나름의 의무와 권리가 생기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가지로 가족 안에서, 지역 안에서, 국가 안에서 그런 의무와 권리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해 교복을 벗고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그것이 주는 지위와 권리, 권한을 버리고자 한다면 자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한 손실이나 권리의 상실은 자신의 책임 범위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은 원하지 않았어도, 큰 잘못이나 학교나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사람은 퇴학을 당하기도 한다. 그 교복을 입기 위해서 아무리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해도 또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해도, 그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 또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수치심을 준다면 벗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이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군인, 어머니, 아버지, 국회의원, 총리, 대통령 등 다양한 사회적지위와 직업들이 존재한다. 되고 싶어 된 것이든 되고 싶지 않았음에도 된 것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벗고 싶어질 때가 있듯이, 마찬가지로 벗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우선 어울리지 않고, 그것을 입고 있음으로 인해 사회의 구성원들이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낄 때는 더욱 그렇다.

 

중학교를 입학하기 전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중학교 교복을 입어가며 설레고 있었을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을 입을 수 있는 것과는 별도로, 입게 되었으면 최선을 다하길. 최소한 그것을 입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또 친구들에게는 부끄럽지 않게 하길,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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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28. 22:06 카테고리 없음

운전면허를 갓 딴 뒤였다. 운전학원을 다니지 않고 아버지로부터 운전을 배웠기에 몇 번의 불합격을 겪은 뒤 딴 운전면허라 갓 20살의 나는 한껏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운전 실력은 사실 별볼일 없었다. 별볼일 없다는 수준을 넘어 아버지의 트럭 곳곳을 다치게 할 정도였다. 아버지께서는 사람만 치지 않으면 되니 차 걱정은 하지 말고 편하게 운전하라 하셨다. 


아버지를 조수석에 태우고 어딘가 갈 일이 있는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운전을 하시면 빠르고 안전하게 갈 수 있었지만 아버지께서는 첫째로 아들이 운전을 하는 것을 뿌듯해하셨고, 둘째로 운전은 계속 해봐야 한다 하시며 열쇠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이날도.. 나는 후방주차를 하다 오른쪽 깜빡이를 박살내어버렸다. 아버지께 죄송했고 차에게 미안했다. 볼일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운전을 할 자신이 없어져버렸다. 사고를 낸 직후라 긴장도 많이되고 또 다시 사고를 내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아버지, 돌아갈 때는 아버지께서 운전해서 가시죠?"
"아니다. 현우가 운전해서 가자."
"아까 사고 내서 운전하기 좀 그런데요."
"누구나 사고는 낼 수도 있다. 사고 한 번 냈다고 운전하기 힘들어하면 안되지. 앞으로 운전은 평생 해야하는건데, 사고를 내도 다시 시도해보고 그래야하지 않겠나?"


결국 다시 내가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고, 오는 길은 평소보다 더 안전하게 운전하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흐르며 몇몇 일들을 겪으면서, 아버지의 저 말씀이 계속 떠올랐다. 사람은 누구나 사고를 낼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구나 실패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를 했다고 해서 다시 그것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실수 한 번, 실패 한 번에 자신의 가능성을 막아버리거나 지레 겁먹어버리면 아무것도 도전할 수 없고 또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사라져버린다.


살아가는 건 분명 힘든 일이다. 원했던 방향대로 순탄히 나아가는 인생이란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하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이 살면서 꼭 필요한 일일 수도 있고, 필요하지도 않고 돈도 되지 않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인 경우도 있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사고를 쳐도 삶은 이어진다. 이어지는 삶 속에서 한 번 실패했다고 그것을 포기해버리면 누구보다 안전한 삶을 살겠지만, 그러한 삶을 원하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에게 부끄러워질 것이다.


작년, 운전으로 먹고 살았던 1년 간 사고를 '거의' 내지 않고 빠르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던 것은 20살 때 운전을 처음 배울 때 아버지의 말씀 덕분이었다.


누구나 처음에는 실수를 하고, 그 실수는 크게 느껴지는 법이지만 전체로 봤을 때 초반의 실수가 큰 실패를 막는데 도움도 된다. 그러니 실패하고 실수해도 너무 쉽게 그만두거나 포기하지 말자. 무조건 포기하지 않는 것도 항상 옳은 답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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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2. 19:06 내 생각

"아끼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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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하나. 명품 화장품, (bag)이나 고급 승용차 등 비싼 가격을 주고 산 것은 아끼고 저렴한 것들은 잘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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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아버지께서 해외에 나갔다 오시며 남성용 스킨 하나를 내게 선물로 주셨다. 향이 진했고, 병이 예뻤다. 나는 그것을 면도 후 피부결을 정리할 목적으로 상쾌하게 막 썼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유럽에 갈 일이 생긴 나는 비행기 안에 앉아, 내 손바닥에 흥건히 흐르던 그 스킨을 떠올리며 울적해졌다.

 

그 남성용 스킨이 비행기 내 면세 카탈로그에 비싼 가격으로 예쁜 사진과 함께 떡! 하니 실려 있는 것이었다. 몇 십 만원이 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스킨의 가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목욕탕 안의 '쾌남'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에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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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비싼 것은 아낀다. 그렇기에 그것은 오래 가고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쉽게 훼손되지 않는다. 비싼 것이란, 그것을 사기 위해 들였던 자신의 노력이 돈으로 환산된 것일테고 그런 만큼 아끼게 되는 것이리라. 반면 싼 것은, 망가지면 또 다른 거 사면 되지- 하는 심정으로 함부로 쓰거나 잃어버려도 슬퍼하지 않는다. 그것을 얻기 위해 들인 노력은 미미하기도 하다. 심지어 망가지거나 잃어버리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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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비싼 것일 때도 있고, 아주 값싼 것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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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친구인 사람은 없다. 같은 동네에 살아서, 같은 학교를 다녀서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고 어려운 시기를 같이 겪어냈기에 나이와 성별을 떠나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친구들 중에 비싼 친구도 있고, 싼 친구도 있다. 비싼 친구란 다시 말하면, 오래된 친구다. 친구라는 단어 자체가 오래되고 가까이 사귄이라는 뜻이라면 동어반복이 되겠지만 요즘, 그렇지 않다. 오랜 친구는 서로 아낀다. 지금의 우정을 이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시간을 들였다. 헤어지거나 잃어버린다는 생각만으로도 우울해진다. 하지만 값싼 친구는 그렇지 않다. 막 대하거나 영영 보지 않게 되더라도 우울하긴 커녕 오히려 통쾌한 친구도 있다. 값싼 우정이란 들인 시간과 노력 따위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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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 중 좋은 친구가 되는 사람과 별 것 아닌 친구가 되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보면 좋은 친구란 별다른 친구가 아니다. 특별한 추억이 있어서 좋은 친구가 아니라, 그 친구와 좋은 시간과 추억을 갖고 싶기에 좋은 친구다. 별 것 아닌 친구란, 막 대하는 누군가이다. 친구라고 이름 붙이기도 싫을 정도의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좋은 기억이나 추억 따위 생각도 나지 않고 만들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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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비싼 것은 아끼고, 싼 것은 아끼지 않는다. 우정도 그렇다. 어떤 계기가 되었든 만나게 된 사람이면, 친밀해지려는 노력까지는 아니더라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아야 할텐데, 그러지 않는다. 저 사람 말고도 사람은 많아 보인다. 명품과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명품은 상처 받지 않지만, 사람은 상처 받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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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해본다. 싼 것이라 생각해서 막 썼던 비싼 스킨처럼, 좋은 친구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막 대했던 친구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고. 또 그 친구가 느꼈을 - 혹은 내가 느꼈을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 하고. 사람의 가치를 값으로 따졌다는 것, 이것부터 반성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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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는 것은 쓰면 쓸수록 넓어지는 것 같다. 서로에게 배려하는 마음이란, 특히 사람에게 있어서 그런 마음이란 나도 사랑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인 듯하다. 좋은 친구란 우연의 결과라기보다 배려가 준 필연의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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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9. 22:20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104


트럭이 나뒹굴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은 좋은 경험이 아니다. 아버지와 함께 배를 납품하러 가는 길이었다. 바닷길로 이어지는 지루한 길이 이어졌고 언덕 하나만이 남았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안도했다. 언덕을 올라가던 도중, 아버지께서 이상한 징후를 느끼신 것을 알아차렸다. 브레이크가 들지 않았던 것이다. 백 미러를 통해 보이는 것은, 한 가족이 차에서 내려 한가로이 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판단에 따라 한 가족의 목숨과 아버지, 나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왼쪽은 바다로 이어지는 낭떠러지였고 오른쪽은 높게 솟아 있는 논두렁이었다. 맑은 날을 즐기고 있던 가족의 차는 논두렁 쪽에 주차되어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순발력을 발휘해 가족의 차를 지나 논두렁 제방에 배가 실린 트럭의 우방을 갖다 대셨다. 이 글일 읽는 시간보다 짧은 시간이었다. 퍽찌근쿵. 아버지와 나는 운전석에서 엉켰다. 신의 이름을 부를 시간도 없이 얼굴에는 정체 모를 오일이 흘렀다. 살았다, 라는 안도감도 함께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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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9. 06:43 오늘한시

‪#‎오늘한시‬ _14


흰 머리 아저씨들 가득
나에게 누구의 아들이냐며 
인사를 하는 아저씨들 가득


누구의 아들이라며 인사를 하는 
아줌마들 가득 
어머니보다 나이들어 보이는 아줌마들 가득


놀라웁다


이 사람들 나의 아버지의 친구
나의 어머니보다 어린 친구


그런 친구들 같은 머리색을 하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뉘앙스를 풍기며
나를 보는 그 눈빛들 가득


언제나 청년처녀같은 그 모습의
어머니아버지는 내 상상 속의 모습인가
그랬던 것인가


돌아보니 내 나이 가득
다른 누군가와 비교해보아도 적지 않은
나 가득 나이 가득


아버지 친구 아들의 결혼식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어머니
어머니아버지의 모습


그런 시절이 지나 
내가 다시 그런 모습이 되었을 떄 
내 아이들의 모습을 기억할 
내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가득
가득 그리고 갸륵


-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이들 나의 모습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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