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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6.03.30 100쪽
  2. 2015.02.14 현우의500자_72
  3. 2015.01.15 현우의500자_41
  4. 2014.02.15 좋은 책이나 영화란 (1)
  5. 2013.11.10 수능 3번 친 사람이 지금의 고3에게-2
2016. 3. 30. 12:28 내 생각

"100쪽"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고전이라는 이름 말고 또 다르게 불리기도 한다. '누구나 제목은 들어보았지만,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드문 책'. 맞는 말인 듯 하면서도 또 누군가 지속적으로 사서 읽으니까 출판되는 것일테니 반쯤 맞는 말이라고 해두어도 될 것 같다.


나 역시도 제목을 들어본 고전을 사서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세 번 이상 어떤 책의 제목을 듣게 되면 그 책은 꼭 읽는 편인데,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세 번은 훌쩍 넘게 들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고전들을 죽 읽다보니, 한 가지 법칙이 자연스레 생겼다. 그것은 바로 '100쪽 까지만 읽자' 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100쪽 까지만 읽고 읽기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고전은 시간적으로 오래된 책들이기도 하고, 또 다양한 국가에서 적힌 책들인 만큼 시대나 배경을 이해하기 힘든 측면들이 많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정말 어려운 책들을 만나도 우선 '100쪽' 까지만 읽자고 마음 먹는다.


보통 책이 300쪽 전후라고 한다면 100쪽은 3분의 1은 읽은 셈이다. 500쪽의 책이라 할지라도 100쪽은 5분의 1.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다.


왜 꼭 100쪽 까지 일까?


100쪽을 지나서야 고전들은 이제 진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100쪽이 되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어떤 배경인지, 어떤 인물들이 나오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이러한 설명이 100쪽 정도가 되면 거의 마치게 되고, 내가 그때까지 책을 다시 책장에 꽂지 않는다면 이제 재미가 생긴다. 또 100쪽까지 읽었는데 억울해서라도 더 읽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고전에서(고전 소설이라 한정지어도 되겠다) 이 법칙은 지켜졌다. 100쪽을 넘게 읽은 책들은 그 결말까지 읽었고, 또 한 권의 책이 나의 책이 될 수 있었다.


책이 이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20년이 된 책도 있고, 50년 된 책도 있다. 이런 책과 같은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역시도 고전과 같이 100쪽의 법칙이 적용되는 듯 하다.


처음 만났는데, 뿅! 하고 마음이 가거나 '이 사람과는 무조건 친해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친구는,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이라고 영화 '친구'에서는 설명해주고 있듯이 친구는 고전의 전형이라 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 나아가 그 사람의 진실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100쪽이 필요하다. 시간적으로 몇 년이라던지 물리적으로 몇 번 만난다는 것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 있는 태도가 최근에 들어서는 더욱 필요해진 듯 하다.


읽다가 포기하는 책도 있고, 다 읽고 나서 혹평을 남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책에 대한,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의 자세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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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14. 19:53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72


나는 너와 밥을 먹을 수 없다. 밥 한 끼 먹는 것, 아무 것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너와 먹는 한 끼 식사의 즐거움보다 그 한 끼의 가격이 더 신경이 쓰인다. 그러지 말라고, 편하게 보자는 너의 그 말에 더욱 너와의 거리는 멀어져 간다. 식사 후, 커피라도 한 잔 하려면 그 커피 한 잔 값이 나의 3일 간 저녁값이 된다는 건 말할 수 없다.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마음이야 산타클로스가 들어오지도 못할 만큼 장작이 가득 찬 굴뚝 같지만, 그래도 나는 너의 이름 언저리에 손가락이 머물다 다시 휴대전화를 끄고 만다. 나는 너와 사랑을 할 수 없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일종의 죄다. 영화 방자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방자에게 유혹을 받는 춘향이 "우리끼리 이러면 안되잖아."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같은 노비끼리 사랑하면 결국 노비가 생산될 것이라는 뜻이다. 나는 너에게 내 사랑을 줄 수 없다. 결국 한 끼, 외로운 위를 라면으로 채우며 내일의 삶이라도 궁리해 볼 참이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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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5. 02:15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41


늦가을이다. 인도에는 은행나무의 낙엽이 열매를 숨기며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이런 날은 달리는 재미가 있다. 토요일 오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옷을 재빨리 갈아입는다. 그리고 헬멧과 열쇠를 챙겨 집을 나선다. 시동을 건 오토바이는 그다지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배기량이 작은 탓도 있지만 관리를 해주는 형 덕에 오토바이는 언제나 새 것 같다. 바닷가의 부모님 가게를 가는 길은 터널을 통해 가는 길과 터널 위로 나 있는 옛 도로로 가는 길이 있다. 토요일 오후의 옛 도로는 차가 없어 고등학생인 내 청춘에게 허락된 자유의 길이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내리막을 달린다. 은행잎이 도로에서 나뒹군다. 동공에 노란 색이 번진다. 헬멧의 앞 커버를 들어 올려 가을이 주는 풍성한 향기를 코와 피부로 마음껏 들이킨다. 짧은 시간이지만 일주일 중 가장 길게 남는 시간이다. 추억은 때론 한 장의 사진이라기 보다 한 편의 단편 영화처럼 기억에 남기도 한다. 감독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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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15. 17:36 카테고리 없음

좋은 책이나 영화란. 2014.2.15 (글을 적은 날짜는 그 이전) 


좋은 책이나 영화란, 멋진 문장으로 적힌 책도 아니고 화려한 화면으로 가득 채워진 영화도 아니다. 나에게 있어 좋은 책이나 영화란, 내가 무엇인가를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표현에서 내가 글을 쓰고 싶어지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인가 대답하고 싶다. 이 문장 뒤에, 이 장면 속에 내가 이런 말을 이 사람들에게 해줬으면 좋겠다 라 생각이 나는 그런 느낌.

 

무엇인가를 쓰고 싶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내가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해서 일수도 있고 음악으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림이나 음악에 재능이 없어서 가 아니라 단지 내가 글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무엇인가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으면서, 같이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읽은 책을 통해서는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언젠가 내 글만으로 이뤄진 책을 적게 된다면 사람들은 그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한 마음. 세상을 바꾼다거나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그런 거창한 이야기 말고 단지 누군가와 함께 생각을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딱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확신할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없는 세상이다. 자신의 상식이 세상의 상식과 맞지 않다면 과감히 자신의 상식을 선택해도 문제될 것이 없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상식이 다른 사람의 상식과 다르고,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궁금해 하는 것 또한 가능한 세상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삶에 연결되어 있고 또 그것을 확인해보고 싶어 한다. 그런 생각들은 지금 기술로 표현되거나 거리로 표현되거나 또는 새로운 만남을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해보고 또 이야기 나눠보고자 한 시대는 없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는 없었다고 확신한다.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것. 이것 역시도 누군가와의 연결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하지 못한 생각이면 그 생각을 받아들이고 싶고 또 반대로 내 생각은 어떤지 받아들일 의향이 있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 수단으로 나는 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큰 사건에 대한 사소한 농담일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감히, 전망을 해볼 수도 있고 가끔은 시크하게 가끔은 대담하게 누군가에게 비판을 가해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며 나는 그 생각을 글로 옮기려 한다.

 

자판 소리가 땅을 울릴 듯이 크게 나는 내 방 한구석에 앉아 담배 한 대를 꼬나 물고 글을 쓰면서도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글을 적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누군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 이렇게 길게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글이 공개되든 공개되지 않든 관계는 없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글이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해서 내 글을 그 사람들에게 읽히는 폭력을 행사하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누군가가 억지로 글을 읽게 만든다면 얼굴에 침을 탁, 뱉고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읽는다 고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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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포 2014.02.19 06:32 신고  Addr  Edit/Del  Reply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3. 11. 10. 15:31 카테고리 없음

수능 3번 친 사람이 지금의 고3에게-2. 2013.11.10. 


두 번째 이야기는, 영화를 실컷 보아라. 


'굶주려 있던 독서를 해보아라'를 주제로 삼을까도 고민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을 권유하기에는, 습관의 문제와 시간 소모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스스로에게로부터 발견되어 차마 그럴 수는 없다. 그리고 이제 막 수능을 친 시점에서, 또 어떠한 '글자에의 강요'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영화를 많이 보라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 밖에ㅠㅠ. 


영화는 생각보다 많은 종류가 있다. 흔히들 알고 있는 로맨스 영화나 전쟁 영화, 그리고 사회적 이슈를 다뤄주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등 많은 종류가 있다. 다양한 종류가 있는 만큼 우리가 무엇을 찾아서 보아야 하는지에도 고민이 생기기도 한다. 


영화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책을 통해서는 상상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을 영화는 시각과 청각을 통해서 그 정보를 제공한다. 오히려 책보다 영화가 더욱 사실적이고 또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책은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로 이뤄져 있듯이 영화는, 감독이 담고 싶은 앵글에 그 생각이 담겨 있다. 예를 들면, '라쇼몽'이라는 일본 영화의 경우, 한 가지 사건을 가지고 각 인물들이 처해 있는 입장에 따라서 얼마나 다른 견해가 가능한지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판단은 관객이나 시청자의 책임이라는 것을 감독은, 너무나 태연히도 맡겨버린다. 


가능하다면 좋은 영화 리스트 따위를 첨부하고 싶지만, 어느 누구에게나 좋은 영화는 없다. 개개인의 취향과 선호는 너무나 다양해 그것을 일반화시킨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개인의 취향을 일괄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권력의 의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리스트는 적지 않겠지만,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 몇 가지는 꼭 제시해보고 싶다. 


첫 번째 방법, 자신이 이전에 보았던 영화들 중 마음에 들었던 영화의 감독의 영화를 모두 보도록 해라.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영화들이 있다면, 가까운 대학 도서관이나 공립도서관에 가면 그 영화들의 영상자료들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 몇 명의 영화 감독들의 영화를 모두 다 보게 되면 그 감독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감독의 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되면 주제 의식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고, 이는 자신의 생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거나, 자신이 하는 이야기들 중에서 몇몇의 인용구를 제시하는 효과도 있다. 감독을 선택해서 영화를 보다보면, 그 감독이 언론 인터뷰나 다른 방법들을 통해서 자신이 영화를 제작함에 있어서 영향을 준 다른 감독을 소개하는 것을 읽게 될 것이다. 그때 다른 감독의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하면 또 다른 영향을 주었던 감독으로의 이해가 넓어진다. 이쯤 되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단순한 차원의 관심을 넘어 '흐름'을 읽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만약 자신이 처음 선택한 감독이 다른 감독을 추천하지 않거나 언론 인터뷰를 꺼리는 감독이라면, 그 감독이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에 그 감독과 경쟁자라고 불렸던 감독의 영화를 찾아보라. 보통 3명이나 5명 정도의 감독을 묶어 '시대의 감독'이라거나 '영화계의 트로이카' 등등 의 이름들을 붙여 그 감독들의 자존심을 건드는 기사들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기사를 통해서 다른 감독들의 이름을 얻고, 그 감독의 영화를 모두 보게 되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방법,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를 한 명 선정해라. 감독 선택과 유사한 이 방법은, 자신이 선호하는 배우를 한 명 두고, 이 배우가 나온 영화는 모두 보겠다라는 염원을 세워 그 영화들을 모두 보는 것이다. 영화 감독이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영화 감독도 자신이 쓰지 않은 시나리오를 감독할 경우가 있을 때, 왜 감독은 이 영화를 선택했을까의 궁금증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 배우 역시도 자신에게 들어오는 수많은 시나리오 중에서 영화를 선택해 그 영화를 찍은 것은, 그 영화 배우의 생각이 그 속에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배우라는 직업이, 단지 전문 연기자 정도의 지위를 가지거나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이슈에 발언을 하는 것을 마치 '월권 행위'나 '딴따라의 잘난 척' 정도로 비춰지긴 하지만, 외국의 상당수 배우들은 자신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또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당당히 밝힌다. 이런 배우들은 자신이 출연할 영화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나름의 생각과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아마도 감독들도 어떤 배우에게 그 시나리오를 보내면서, 단지 개런티의 수준에 맞추거나 연기력이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연기의 디테일을 살릴 수 있는 영화 배우의 생각에 시나리오를 송고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일종의 공범 확보랄까.  영화 배우를 선택해서 그 배우가 출연한 영화를 죽 다 보고 나면, 영화 배우의 데뷔 초기시절부터 지금의 모습까지 관망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고, 그 배우의 최고의 작품은 무엇이나 정도을 읊을 수 있는 안목이 생기면, 그와 함께 출연하는 또 다른 배우에게 관심을 갖게 될테니, 영화 감독보다는 영화 배우를 선택하는 것이 영화를 질리지 않고 보는 더 나은 방법이라고 할 수 도 있겠다. 


세 번째, 세계적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들 중 개막작을 골라서 보라. 세계적 영화제에 출품을 할 수 있는 영화들은 많지 않다. 그런 영화들 사이에서도 개막작으로 선택되는 영광을 얻는 영화들은 극소수이다. 매해 그 영화제의 얼굴이라고 볼 수 있는 개막작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는 영화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다. 박수를 칠 수 있는 영화라기 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했거나 사람들의 본성을 일깨우는 영화들이 꽤나 많이 선택되는 개막작은, 그 만큼 그 시대와 사회가 어떤 것들을 주도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영화들이다. 거의 매년 세계 각지에서 영화제는 진행되고 있지만, 각 영화제 마다 드러내는 상징성이 다르고 영화제가 요구하는 영화들의 메세지도 다른 만큼 개막작을 챙겨보는 것은 영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인간'에 대한 이해 역시 높일 수 있다. 영화제 개막작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제 수상 작품 중 최고작품상(감독상)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다. 개막작은 그 영화제의 얼굴이라고 본다면 최고 작품상(감독상)은 심장이라고 볼 수 있다. 최고작품상은 그 영화제에 참석한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한다는 의미에서 심장이라고 할 수 있고, 모든 영화를 몸이라고 본다면 최고작품상은 그들에게 새로운 피를 솓구치게 한다는 의미에서도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영화제들은 유명세를 띤 감독들에게만 최고작품상을 주기도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근거 없이 최고작품상을 시상하는 영화제는 없고, 그 수상한 감독들은 그것을 칭찬이라기보다 오히려 더욱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곤 하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고전 영화들을 찾아 보라. 책에 '고전'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사람들은 농담삼아 이렇게 평가한다. "누구나 제목은 들어봤지만, 누구도 읽어보지 않은 책". 이런 평가는 영화에서는 좀 덜한 편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전 영화를 몇 몇 장면만을 보고 난 뒤, 그 영화의 모든 것을 본 양 행동하기도 한다. 영화는 짧게는 40분, 길게는 3시간까지 꽤 긴 시간을 영상과 음악, 연기 등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재미, 감동, 의미를 선사한다. 이러한 영화를 보면서 몇몇 장면이 마치 전체를 대변하는 양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 영화를 꼭 한 번 찾아서, 영화 전체를 다 보기 바란다. 지금의 영화 기법과는 다소 다른 기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화질이나 조명, 음향 등이 지금의 영화와 비교했을 때 기술적으로 다소 떨어지는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클래식'하다고 생각해 버리고 그 영화의 의미를 잘 파악하면서 보길 바란다. 잘 찾아보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영화도 있고, 지금 이 시대의 영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연출력과 앵글을 갖춘 영화들도 있다. 고전 영화들이 가지는 의미는, 새로운 영화가 주는 '신선함'보다는 오랜 친구가 주는 '푸근함'이나 위인들이 주는 '따끔함'과 같은 것들이 그 속에 숨어 있다. 그리고 고전 영화 중 흑백 영화들이 주는, 또 다른 상상력의 공간을 스스로 채워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하겠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그냥 보라. 아무런 기준도 없이 영화관에 찾아가거나 DVD방에 찾아가거나, 정식 다운로드 사이트에 들어가서 아무런 영화나 한 번 보길 바란다. 그 기준이 재미일 수도 있고 감동일 수도 있고, 깨달음일 수도 있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우연히 본 영화가 정말 재밌을 수도 있다. 정말 슬플 수도 있다. 그리고 혹시 모르지만 우연히 선택한 그 영화가 여러분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모든 것에 기준이 있다는 것은 옳지 않은 말이다. 사람은 합리적이라고 하지만, 여러 심리학자들이 밝혀놓은 결과에 의하면 사람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감정적이어서 합리성을 찾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이라는 연구는 많이 알려져 있다. 이런 우리가,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기준이나 선호를 가진다는 것은, 기껏 위에 길게 적어 놓았지만, 사실 말이 잘 안된다. 아무 영화나 선택해서 그 영화가 마음에 들면, 여러분에게는 최선의 영화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영화를 보면 된다. 그런 관점에서 아무 영화를 보는 것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수능을 막 마친 고3 수험생들에게 '글자'에 대한 압박을 주기 싫어 책을 추천하지 못하겠다고 적어놓고선, 이렇게 또 길게 글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려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직접 일일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글이라는 매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또한 든다.)


두 번째 이야기, 영화를 실컷 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수능을 마친 시점에서 많은 학생들이 갑자기 주어진 많은 시간을 생각보다 가치 없게 보내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적었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는 어떤 이에게는 시간 낭비일 수도 있고, 단지 또 다른 방법의 회피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수많은 영화감독이나 작가들이 이야기하듯이 원없이 영화를 보았던 시기가 자신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를 떠올려본다면, 수능시험을 막 마친 지금의 고3학생들은 다시 못올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서 방학동안 영화를 실컷 보아야지, 휴학을 하고 영화를 실컷 보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여러분의 부모님은 아마 입영일자를 조정하고 있거나, 딸이라면 뜬금없이 '시집'이라는 말을 꺼내시게 될 것이다. 다시는 못올 4개월의 긴 시간동안 영화를 열심히 즐기면서, 대충대충 하루를 의미있게 보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세 번째 이야기는, 책을 읽어라. 


역시 세 번째 이야기는, 다시 더 정리해서 올리겠다~ㅎㅎ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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