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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4.11 따라하기
  2. 2016.03.31 37점
  3. 2013.11.09 수능 3번 친 사람이 지금의 고3에게.
2016. 4. 11. 17:01 내 생각

“따라하기”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학교 근처에 라면집이 있었다. 그 가게 이름이 토라(虎). 호랑이라는 이름의 라면집에는 호랑이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저녁을 먹기 위해 꼭 이 라면집을 들렀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학생은 곱빼기를 무료로 드립니다.’라는 아름다운 문구에 홀린 탓이다.


라면 가게는 작았다. ‘일본 라면 가게’라고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좁고 기다란 가게였다. 가게 안에는 부부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셨지만 추억은 미화되는 법이니-가 계셨다. 라면과 볶음밥 세트를 주문하며, ‘오오모리데(곱배기로)’라 말하며 누가 봐도 학생인 듯 보이도록 가방을 벗어보였다.


라면을 기다리는 동안 하는 일이란, 주인아저씨가 라면의 면을 삶다가 한 가닥 끄집어내어 제대로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후루룩 먹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손님들이 어떻게 먹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일본 생활에 익숙해졌을 때는 가게의 손님들을 보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라면을 먹는지 꼭 확인해야 했다.


따라 하는 것.


우리나라와 일본은 사는 방식이 닮은 듯하지만 달랐다. 일본 사람들의 관습과 습관이 있었고, 그것은 외국인인 내가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었지만 지킬 수 있다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라면을 먹는 방법도 다른 사람들을 보며 배웠다. 사실 라면 뿐만 아니었다.


일본어도 그랬다. 다른 것도 그랬지만.


처음 한 학기, 4개월 내도록 따라만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귀로는 유심이 듣고 눈으로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입술을 보았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부모의 말과 입술을 보는 것과 같았다. 일본어뿐만 아니었다. 그릇을 세 손가락으로만 드는 법, 인사를 일본식 예의에 맞게 하는 법, 수업시간에 공부를 하는 척 하며 딴 짓을 하는 법 등을 배웠다. 그리고 나아가 일본 문화로 사고하는 법까지 배웠다. 사고하는 법이라 거창하게 적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생활을 하는 것 정도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따라 하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가는 곳이나 겪는 것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따라한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탓에 따라 했다. 하지만 따라 하기에는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 다름 아닌 ‘제대로 따라 하기’다. 누군가를 따라하려 하면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다 따라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구를 따라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따라하는 사람을 따라하면 된다. 예를 들어,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이나 전통 문화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따라하면 된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사회 내에서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갑자기 따라 하기?


다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가는 곳이나 겪는 것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따라 한다. 앞서 적은 문장과 같은 문장이다. 하지만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다.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럴 때는 무엇을 하면 될까.


책을 읽으면 된다. (지겨운 결론이지만, 언제나 참인 결론인 듯 싶다.) 고전을 인간 문명의 정수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이상하게 생긴 할아버지, 할머니, 형, 누나, 오빠, 언니들이 우리보다 과거에 살면서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해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걸 또 이렇게 해보니까 해결되더라 – 하는 것을 친절히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살았고 또 죽어간 뛰어난 혹은 이상한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그 중에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적어 남긴 사람들의 책이 고전이다. 이런 고전에는 따라할 것들이 가득 차 있다.


몇 해 전 한국사회에서는 ‘힐링’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힘들어하는 수많은 ‘아프니까’ 청춘남녀 뿐만 아니라 몇 번을 흔들렸는지도’ 모를 어른들 모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위로는 받았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해답이나 시도해 볼만한 도전들을 찾지는 못했다. 다들 처음 겪는 일이었을 고민들과 어려움에 대해서, ‘괜찮다’라는 말 한 마디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괜찮다’ 한 마디 해주면 된다는 걸 알았으니 ‘따라한’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결론이 이상하다. 나도 안다.


일본 라면 먹다가 따라하라고 하다가 고전 읽으라니. 결국 나도 이 글을 적으면서, 누군가 나를 따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거나 힘들 때, 순간의 감정이 언짢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위로를 받기보다 나 이전의 살았던 사람들이 남겨둔 뼈아픈 충고나 그 속에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것이니 한 번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그런 마음. 따라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방법을 찾고 있을 것이고 그 방법을 또 누군가 따라할 것이다. 그렇게 고전은 이어지고 삶은 새로워진다. 행복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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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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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31. 18:53 내 생각

“37점”


이제부터 여러분이 읽게 될 이야기는,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나 중에서 자신이 어디까지 나아질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나 그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본어를 내 나이 또래가 흔히 접하던 계기로 접한 것은 아니었다. 내 또래가 ‘흔히 접하던 계기’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통해 일본어에 흥미를 갖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게 된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을 ‘오타쿠’라고 불렀는데, 최근에는 ‘덕후’라 부르는 듯 하다.


나는 ‘러브레터’라는 영화를 보고, 일본어에 흥미를 갖게 된 후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만’이라는 뜻의 ‘케도’라는 발음이 재밌었다. 그렇게 배운 일본어를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꾸준히 배웠다.


어떤 목적이 있어 배운 것이 아니었기에, 일본어능력시험을 치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저 일본어를 배워 일본인과 말이 통한다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낀 것이 다였다. 일본어능력시험을 처음으로 치게 된 시기는 일본 교환학생이 끝날 무렵이었으니, 일본어를 접하고 거의 10년이 흐른 다음이었다.


일본어를 재미로 배우고 말하고 있던 대학교 1학년 2학기의 어느 날 일본 교환학생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다시 들어온 대학이었고 열정과 의지가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교환학생 모집 공고에는 ‘일본어능력시험 2급 이상 소지자와 그에 준하는 일본어회화실력을 가진 자’라고 되어 있었다. 자신만만하게도 회화실력 하나만을 믿고 지원을 했고, 덜컥 합격을 해버렸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일본 사이타마현의 한 대학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외국인 학생을 위한 일본어교실이 있었고, 그것은 교환학생이라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었다. 수업을 듣기 전 반편성 고사를 치렀다. 그때 받은 점수가


37점.


기억에도 어렴풋이 남아있는 ‘매우 낮은’ 점수였다. 물론 100점 만점이다. 나는 내가 최하위반에 가겠구나- 생각을 했고, 일본어교실을 담당하고 계시던 교수님과의 면담에 들어갔다. 여자 교수님이셨는데, 보랏빛이 도는 여성용 정장을 깔끔히 입고 계셨다. 나는 자리에 앉았고, 교수님께서 내게 한 가지 질문을 하셨다.


‘시험지에 나온 글을 읽었지요?’


시험지에 나온 글을 읽었냐니.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그 뉘앙스가 묘했다. 읽다 읽지 않다의 ‘읽다’가 아니라, ‘읽어내다’의 읽다 였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음 날 나는 내가 일본어교실 중 가장 높은 반에 편성이 된 것을 알았다. 그 반에는 일본어능력시험 자격은 물론, 일본어한자시험인지 뭔지 나는 알지도 못하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쉽게 말해, 나보다 모두 일본어능력이 뛰어났다.


정말 힘들었다. 교환학생이라도, 아니 교환학생이므로 일반 일본인 학생들이 듣는 대학 수업도 들어야 했고 또 일본어 수업도 들어야했다. 오전에는 일본어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일반 수업을 듣었는데 내가 느끼는 난이도는 일본어 수업이 더 힘들었다.


말이 좋아 일본어교실이지, 일본의 역사나 일본 뇌사의 역사, 일본의 여러 이야기 등을 읽고 적고 쓰고 또 매주 시험을 치르기까지..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일주일일주일이 빠르게 흘러갔다.


역시나 점수는 꼴등.


한 단계 아래의 반으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한 단계 아래로 가면 다음 학기에도 다시 최상급 반의 일본어수업을 들어야했고 그럼 이 고생을 다시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개겨 보기로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나갈 즈음. 그러니까 한 학기가 한 달이 남은 즈음 점수가 갑자기 올랐다.


90점 대를 받기도 하고, 또 때론 두 개 이상 틀리지 않기도 했다. 놀란 것은 나 만이 아니었다. 우리를 가르치시던 일본인 선생님들께서도 놀라셨다. 하루는, 중년의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권 군의 실력이 급격하게 오른 게 화제입니다.


그만큼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멍청하게 보이는 것도 싫었고, 또 내가 어느 정도까지 나아질 수 있는지 궁금했기에 그 좋다는 교환학생, 그렇게 놀거 다 논다는 교환학생의 1학기를 일본어 공부와 학과 공부를 하며 보냈다. 물론 공부 밖에 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저녁에 피곤한 상태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자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일본어 단어와 문장을 외우기도 했고, 학과 수업은 내용 이해를 위해 매 시간 녹음을 해서 들었다.


일본어가 늘었다.


원했던 결과였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이룰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힘든 일은 그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는 법이다.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간에.) 내 일본어 실력은 엄밀히 말하면, 나의 노력이 일부 들어가 있는 내 주변 환경의 영향이었다. 쉽게 말하면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과 경쟁하고 힘쓰는 환경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겸손’이라는 가치로 자신의 가능성을 쉽게 낮춘다. 하지만 무엇인가 배우려는 사람은 겸손하되 겸손하면 안된다. 겸손이 필요한 순간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아직 부족하구나’라는 것을 느낄 때이며 겸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은, '나도 저렇게 잘 할 수 있어' 라는 욕심을 가져야 하는 순간이다.


앞서 이야기를 했듯이, 여러분이 읽은 이야기는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을 할 수 없는 여건인 사람도 있고 또 지금의 상황도 충분히, 아주 충분히 힘든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지금 있는 곳 - 그곳이 학교여도 좋고, 직장이라도 좋고, 그 어디라도 좋다-에서 자신이 발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나고 싶다면 ‘다소 무리’라고 생각되는 범위나 ‘절대 무리’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여 보아도 될 듯 하다. 사람은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한다. 적응을 위한 초기에는 분명 힘들지만 어느 샌가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일본어교실을 담당하시던 교수님께서는, 문제는 틀렸지만 그것을 ‘읽어낸’ 나를 평가하셨다. 다시 말하면, 나아지길 원하는 나의-학생의 욕심을 알아차리신 셈이다. 이런 교수나 선생님 혹은 선배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좋은 선생님과 함께 있다. 바로 자기 자신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위의 이야기는 누구나에게나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중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고 그 배움을 통해서 더욱 나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글이, 하나의 방법이 되었으면 한다. 자신의 한계는 자신은 결코 모른다.


그러니 한 번 한계 너머로 자신을 던져보시길. 만약 너무 힘들어 다시 돌아오고 싶어도 한 번 더 참아보고, 그래도 정말 힘들면 그래도 한 번 더 참아보고 정말 죽을 듯이 힘들면 그때 돌아와도 된다. 그래도 당신은 그 전보다 성장해 있을 것이고, 그런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확신, 아니 예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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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9. 12:58 카테고리 없음

수능 3번 친 사람이 지금의 고3에게. 2013.11.9.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그런 욕심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재수는 일반적이었다고는 하나, 심지어 공익근무요원을 하던 중에도 수능을 치고, 소집 해제 이후에도 수능을 친 욕심은 보통 욕심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3번의 시험을 통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하고 싶던 공부를 실컷한 본인에게는 그 시간들이 아깝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수능을 처음 친 지금의 고등학교 3학년들에게는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또 글을 적는다. 


첫 번째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재수해라. 


농담이다. 


재수는 필수였던 시기가 있었다. 수시전형의 확대로 인해 학교는 마치 수시생들의 임시 거처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고 평준화되어 버린 학교는, 말 그대로 고등학교 졸업자를 만들어 내는 시기가 있었다. 또한 교육 정책은 잦은 변경으로 인해 수험생들이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 심지어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는 채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어느덧 졸업"이라는 다섯 글자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시기도 있었다. 이럴 때는 재수는 마치 필수인 양 사람들에게 인식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교육의 굴레로 들어갔다. 


재수가 반드시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필요하지도 않은 재수를 하도록 종용하는 것도 아니다. 재수가 필요한 학생들은, 고등학교 3년 동안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재수생이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 같은 학생이 아니라, 고등학교 3년의 성실함이 뒷받침된 학생이 재수를 하여야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가 명확한 사람이라도 재수 기간은 꽤나 길고 험난하다. 공부를 하는 것 자체도 힘들겠지만, 주변 친구들의 대학생활을 보면서 자신은 즐기고 있지 못하다는 상대적 박탈감에 하루하루를 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수하라는 것은, 농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길게 적은 이유는 1년의 공부가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고 난 뒤에도, 재수의 기회는 언제든지 있으므로 자신의 마음 가짐을 우선적으로 점검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었다. 


다시, 진심으로 이야기 해주고 싶은 부분으로 돌아가야겠다. 


첫 번째, 제2 외국어를 배우도록 해라. 흔히들 제2외국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고등학교 당시 인문계 학생들이 반을 나누는 데만 필요하지 막상 제2외국어 수업에는 딴짓을 하는 정도의 과목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하면 제1외국어인 영어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2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든다. 


물론 그런 의심은 들 수 있다. 하지만 영어는 대학을 들어가든 대학 졸업 이후 취업을 하기 위해서든 반드시 다시 배우기 마련이다. 4년제 종합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교양영어라는 수업을 반드시 들어야만 졸업이 가능하고, 일부 학교에서는 졸업 사정의 기준을 공인영어성적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를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영어는 '시키는 대로, 필요한 만큼'만 해도 충분한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제2외국어는, 따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일어일문학과나 중어중문학과 등 외국어 관련 전공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인문학부나 공학부의 학생들은 제2외국어를 배울 시간을 따로 낼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수업 시간은 적게 듣지만 대학생활은 수업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팀플 활동, 과외 활동 그리고 봉사 활동, 학회 활동 등 다양한 활동들이 복합되어 있으므로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은,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지금 수능을 딱 치고 난 이 시점에 제2외국어를 한 번 시작해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지금이 11월이니 내년 2월 말까지 학원을 등록하거나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고 하면 4개월의 시간이 난다.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의 언어 들 중 자신이 가장 관심이 가는 언어 하나를 선택해서 '기초만 잡겠다' 라는 심정으로 한 번 들어보길 바란다. 기초가 잡히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난 뒤에는 혼자 공부해도 실력을 쌓을 수 있다. 


제2외국어를 배우라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스펙'이 된다거나 취업에 도움이 될런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고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취업은 아직 한참 멀리 있는 이야기이므로 현실성이 없다.


본인이 생각하는 제2외국어를 배워야하는 이유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만 사용해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어느 나라이든 그 나라 언어를 완벽히 구사하거나 일상회화 뿐만 아니라 토론이 가능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면 그 나라 자체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한 나라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단지 한반도에 살고 있다는 인식을 벗어나게 해주고 그런 노력들을 통해서 세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재밌기 때문인데, 세계에 대한 이해라고 하니 너무 거창해진 듯 해서 반성하고 있다. 


제2외국어는 재밌다. 영어는 우리가 배우고 싶어서 배운 언어가 아니다. 학교에서 억지로 가르쳤기 때문에 배운 것이 사실이고, 수능에 정식 과목으로 있는 만큼 영어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결코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사실은 영어든, 제2외국어든 언어는 재밌는 것이다. 어떤 언어이든 그 언어가 지금까지 사용되고 한 나라의 국어로 지정되기 까지는 많은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는 그 나라의 문화 또한 반영되어 있다. 우리가 접해보지 못했던 다른 나라의 문화를 그 나라의 말로 배우는데 재미는 당연히 수반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어를 즐기면서 공부하고 또 자신이 선택한 제2외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난 뒤 영국인이나 미국인, 혹은 중국인, 일본인, 독일인, 프랑스인 등 제2외국어를 구사하는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 통역없이 직접 이야기를 해보면,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다. 자신의 목소리로,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워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면 무엇이 즐거운 일이겠는가. 


그러니, 지금부터 대학 입학 이전까지 제2외국어를 한번 배워보자. 잘나간다는 중국어나, 굳이 필요없을 듯한 일본어 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예전부터 '아무런 이유 없이'도 그냥 배워보고 싶었던 언어가 있으면 지금이 기회이니 꼭 한번 '시작이라도' 해보길 바란다. 


 두 번째 이야기는, 영화를 실컷 보아라. 


두 번째 이야기는, 좀 더 정리해서 다시 올리도록 하겠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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