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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따라하기

“따라하기”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학교 근처에 라면집이 있었다. 그 가게 이름이 토라(虎). 호랑이라는 이름의 라면집에는 호랑이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저녁을 먹기 위해 꼭 이 라면집을 들렀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학생은 곱빼기를 무료로 드립니다.’라는 아름다운 문구에 홀린 탓이다.


라면 가게는 작았다. ‘일본 라면 가게’라고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좁고 기다란 가게였다. 가게 안에는 부부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셨지만 추억은 미화되는 법이니-가 계셨다. 라면과 볶음밥 세트를 주문하며, ‘오오모리데(곱배기로)’라 말하며 누가 봐도 학생인 듯 보이도록 가방을 벗어보였다.


라면을 기다리는 동안 하는 일이란, 주인아저씨가 라면의 면을 삶다가 한 가닥 끄집어내어 제대로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후루룩 먹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손님들이 어떻게 먹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일본 생활에 익숙해졌을 때는 가게의 손님들을 보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라면을 먹는지 꼭 확인해야 했다.


따라 하는 것.


우리나라와 일본은 사는 방식이 닮은 듯하지만 달랐다. 일본 사람들의 관습과 습관이 있었고, 그것은 외국인인 내가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었지만 지킬 수 있다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라면을 먹는 방법도 다른 사람들을 보며 배웠다. 사실 라면 뿐만 아니었다.


일본어도 그랬다. 다른 것도 그랬지만.


처음 한 학기, 4개월 내도록 따라만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귀로는 유심이 듣고 눈으로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입술을 보았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부모의 말과 입술을 보는 것과 같았다. 일본어뿐만 아니었다. 그릇을 세 손가락으로만 드는 법, 인사를 일본식 예의에 맞게 하는 법, 수업시간에 공부를 하는 척 하며 딴 짓을 하는 법 등을 배웠다. 그리고 나아가 일본 문화로 사고하는 법까지 배웠다. 사고하는 법이라 거창하게 적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생활을 하는 것 정도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따라 하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가는 곳이나 겪는 것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따라한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탓에 따라 했다. 하지만 따라 하기에는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 다름 아닌 ‘제대로 따라 하기’다. 누군가를 따라하려 하면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다 따라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구를 따라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따라하는 사람을 따라하면 된다. 예를 들어,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이나 전통 문화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따라하면 된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사회 내에서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갑자기 따라 하기?


다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가는 곳이나 겪는 것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따라 한다. 앞서 적은 문장과 같은 문장이다. 하지만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다.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럴 때는 무엇을 하면 될까.


책을 읽으면 된다. (지겨운 결론이지만, 언제나 참인 결론인 듯 싶다.) 고전을 인간 문명의 정수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이상하게 생긴 할아버지, 할머니, 형, 누나, 오빠, 언니들이 우리보다 과거에 살면서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해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걸 또 이렇게 해보니까 해결되더라 – 하는 것을 친절히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살았고 또 죽어간 뛰어난 혹은 이상한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그 중에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적어 남긴 사람들의 책이 고전이다. 이런 고전에는 따라할 것들이 가득 차 있다.


몇 해 전 한국사회에서는 ‘힐링’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힘들어하는 수많은 ‘아프니까’ 청춘남녀 뿐만 아니라 몇 번을 흔들렸는지도’ 모를 어른들 모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위로는 받았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해답이나 시도해 볼만한 도전들을 찾지는 못했다. 다들 처음 겪는 일이었을 고민들과 어려움에 대해서, ‘괜찮다’라는 말 한 마디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괜찮다’ 한 마디 해주면 된다는 걸 알았으니 ‘따라한’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결론이 이상하다. 나도 안다.


일본 라면 먹다가 따라하라고 하다가 고전 읽으라니. 결국 나도 이 글을 적으면서, 누군가 나를 따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거나 힘들 때, 순간의 감정이 언짢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위로를 받기보다 나 이전의 살았던 사람들이 남겨둔 뼈아픈 충고나 그 속에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것이니 한 번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그런 마음. 따라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방법을 찾고 있을 것이고 그 방법을 또 누군가 따라할 것이다. 그렇게 고전은 이어지고 삶은 새로워진다. 행복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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