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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01.23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2. 2016.04.11 따라하기
  3. 2013.06.19 고전은 왜 재밌을까
2017. 1. 23. 20:03 내 생각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2017.01.23.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가장 자신의 아이를 망치는 것이 무엇인가, 를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

 

?

 

아이는 부모의 저 말을 듣고, 기뻤을 것이다, 아마 처음에는. 왜냐하면 머리가 좋다는 말은 분명 칭찬이고 부모로부터 인정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노력을 안한다는 이 말. 노력이야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당장은 칭찬 받은 것에 좋은 감정만을 느끼기로 한다. 물론 아주 특수한 경우이지만,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노력을 시작할지도 모르지만, 주변에 잘 보이지는 않는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책이 한 때 유행한 적이 있다. 책 내용의 핵심이란, 수족관의 돌고래나 고래를 훈련을 시킬 때 곡예의 난이도를 높여가며 그것을 성공시킬 때 마다 먹이를 주면 돌고래나 고래가 좋아하더라, 하는 내용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맥락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내 생각은,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한다. 왜냐하면 돌고래나 고래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안타깝게도 몇 가지 곡예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만약, 잘생긴 연예인, 예를 들어 장동건이나 원빈이나 공유 등등 하도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든 잘생긴 남자연예인들에게 잘생겼어요!’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자신도 모르는 바 아니었을 것이고, 처음 듣는 내용 아닐 것이며, 앞으로도 들을 말이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고맙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칭찬은 분명 고마운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중에 사랑해, 좋아해, 월급 들어왔다만큼 잘했네!’라는 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고마운 일이 아닌 경우가 있다.

 

앞서 말한 이야기에서, 아이들에게 머리가 좋다라거나, 잘생긴 남자연예인에게 잘생겼다고 하거나, 마찬가지로 예쁜 여자연예인에게 예뻐요라는 말들, 마냥 고맙기만 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연예인을 예로 들긴 했지만, 우리 일상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한테, ‘수학을 참 잘하는구나라는 첫 칭찬은 분명 그 학생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칭찬을 평소에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학생들이 수두룩할 터인데, 한 번의 칭찬은 분명 그 학생의 운명을 바꿀 만큼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할 것이다. 근데, 만약, 수학을 잘하는 학생에게 계속 수학을 잘한다는 칭찬을 해도 그 학생은 자신이 처음 느꼈던 어떤 보람이나 기쁜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칭찬에도 면역이 생기거나 점점 더 강한 자극적인 칭찬을 바라지 않을까?

 

칭찬은 고맙지만, 다른 칭찬을 해줘요.

 

가능하다면, 칭찬을 할 때 새로운 분야를 칭찬해주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분야란, 같은 수학이라도 내용이나 진도에 따라 다르게 칭찬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수학이 아닌 새로운 과목에 대한 칭찬을 해줄 수도 있다. 학생의 예를 들어 유치해 보일 수 있으니 어른의 이야기로 옮겨보자.

 

뭐 별 다른 거 있겠나. 성인이라고.

 

어른이든 청소년이든 아이든, 다만, 한 가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지 않을까 하고. 칭찬을 받았다고 머무르지 말자. 칭찬은 기쁜 것이지만, 칭찬에도 단계가 있고 발전이 있고 또 성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서 칭찬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분명 비판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칭찬 받으며 또 동시에 비판 받으며 성장한다.

 

새로운이라는 말에, 기존의 것들을 모두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더욱 잘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노력으로 단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새롭지 아니할까.

 

추신 같지 않은 추신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칭찬을 하려거든, 이보세요, 칭찬하시려는 분들. 칭찬을 하시려거든 말입니다. 관심을 깊게 그리고 오래 가지셔야 되요. 순간순간의 칭찬은 순간순간 소비되고 맙니다. 하지만 칭찬을 해줄 대상이나, 마찬가지로 비판을 할 대상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켜보세요. 쉽게 칭찬해준 사람은 쉽게 비난 하더라구요. 비판 말고, 비난이요.

 

타인을 깊이 있게 칭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도 성장하는 계기를 얻기도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감화(感化)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칭찬은 고맙지만,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그때 칭찬해 주세요. 그리고 혹시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거나,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불성실하다면 따끔히 비판해주세요. 여러분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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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1. 17:01 내 생각

“따라하기”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학교 근처에 라면집이 있었다. 그 가게 이름이 토라(虎). 호랑이라는 이름의 라면집에는 호랑이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저녁을 먹기 위해 꼭 이 라면집을 들렀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학생은 곱빼기를 무료로 드립니다.’라는 아름다운 문구에 홀린 탓이다.


라면 가게는 작았다. ‘일본 라면 가게’라고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좁고 기다란 가게였다. 가게 안에는 부부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셨지만 추억은 미화되는 법이니-가 계셨다. 라면과 볶음밥 세트를 주문하며, ‘오오모리데(곱배기로)’라 말하며 누가 봐도 학생인 듯 보이도록 가방을 벗어보였다.


라면을 기다리는 동안 하는 일이란, 주인아저씨가 라면의 면을 삶다가 한 가닥 끄집어내어 제대로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후루룩 먹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손님들이 어떻게 먹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일본 생활에 익숙해졌을 때는 가게의 손님들을 보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라면을 먹는지 꼭 확인해야 했다.


따라 하는 것.


우리나라와 일본은 사는 방식이 닮은 듯하지만 달랐다. 일본 사람들의 관습과 습관이 있었고, 그것은 외국인인 내가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었지만 지킬 수 있다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라면을 먹는 방법도 다른 사람들을 보며 배웠다. 사실 라면 뿐만 아니었다.


일본어도 그랬다. 다른 것도 그랬지만.


처음 한 학기, 4개월 내도록 따라만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귀로는 유심이 듣고 눈으로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입술을 보았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부모의 말과 입술을 보는 것과 같았다. 일본어뿐만 아니었다. 그릇을 세 손가락으로만 드는 법, 인사를 일본식 예의에 맞게 하는 법, 수업시간에 공부를 하는 척 하며 딴 짓을 하는 법 등을 배웠다. 그리고 나아가 일본 문화로 사고하는 법까지 배웠다. 사고하는 법이라 거창하게 적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생활을 하는 것 정도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따라 하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가는 곳이나 겪는 것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따라한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탓에 따라 했다. 하지만 따라 하기에는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 다름 아닌 ‘제대로 따라 하기’다. 누군가를 따라하려 하면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다 따라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구를 따라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따라하는 사람을 따라하면 된다. 예를 들어,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이나 전통 문화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따라하면 된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사회 내에서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갑자기 따라 하기?


다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가는 곳이나 겪는 것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따라 한다. 앞서 적은 문장과 같은 문장이다. 하지만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다.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럴 때는 무엇을 하면 될까.


책을 읽으면 된다. (지겨운 결론이지만, 언제나 참인 결론인 듯 싶다.) 고전을 인간 문명의 정수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이상하게 생긴 할아버지, 할머니, 형, 누나, 오빠, 언니들이 우리보다 과거에 살면서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해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걸 또 이렇게 해보니까 해결되더라 – 하는 것을 친절히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살았고 또 죽어간 뛰어난 혹은 이상한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그 중에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적어 남긴 사람들의 책이 고전이다. 이런 고전에는 따라할 것들이 가득 차 있다.


몇 해 전 한국사회에서는 ‘힐링’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힘들어하는 수많은 ‘아프니까’ 청춘남녀 뿐만 아니라 몇 번을 흔들렸는지도’ 모를 어른들 모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위로는 받았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해답이나 시도해 볼만한 도전들을 찾지는 못했다. 다들 처음 겪는 일이었을 고민들과 어려움에 대해서, ‘괜찮다’라는 말 한 마디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괜찮다’ 한 마디 해주면 된다는 걸 알았으니 ‘따라한’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결론이 이상하다. 나도 안다.


일본 라면 먹다가 따라하라고 하다가 고전 읽으라니. 결국 나도 이 글을 적으면서, 누군가 나를 따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거나 힘들 때, 순간의 감정이 언짢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위로를 받기보다 나 이전의 살았던 사람들이 남겨둔 뼈아픈 충고나 그 속에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것이니 한 번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그런 마음. 따라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방법을 찾고 있을 것이고 그 방법을 또 누군가 따라할 것이다. 그렇게 고전은 이어지고 삶은 새로워진다. 행복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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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19. 02:07 카테고리 없음

고전은 왜 재밌을까. 2013.6.19. 


고전(古典, the classic)은 재미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란 막연한 웃음을 주거나 시간이 언제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박진감이 넘치는 재미와는 다르다. 내가 정의한 고전의 재미란, 인간으로서 인간을, 그리고 사회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감동을 재미라고 말하고 싶다. 


다양한 고전을 읽다보면, 고전을 적은 작가들이 진정으로 우리와 같은 생리구조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의미를 도출해 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또 다른 형태로 유추하며 평생 한번 생각해보면 많이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것. 이런 고전 작가들의 노력들이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그 형태를 남기고 있는 것이리라. 


인간으로서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보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그것들을 문자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책이라는 공간에 담는 능력, 이러한 노력과 능력들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얼마나 그 책 한 권의 가치가 큰 것인지는 실로 표현할 수 조차 없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방법이란 다른 것이 아닌,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불행한 일이나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있었던 잊고 싶은 추억,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배신이나 절망들을 이겨내는 것, 이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인류'라는 이름을 머리 위에 달고 살고, 그 이름을 다시 '자연'으로 바꾸기 이전까지는 저 방법이 인류를 지탱하는 가장 큰 물줄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노력들을 힘들지만 하고 있고, 또 해보게 될 것이다.

 

위의 '방법'이 고전에는 참 다양하게 나타나 있다. 일일이 예를 들어가면서 고전에서의 '방법'의 예를 적고 싶으나 본뒤 내 머리의 지능이 낮은 탓으로 적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고전 속에서는 우리가 앞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다양한 위기와 기회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성취해 낼 수 있는지, 그리고 책 속에서 글자라는 이름으로 춤추고 있는 방법들이 어떻게 우리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지가 나와 있다. 이것이 재미가 아니면 무엇일까.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일 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거나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일이 전혀 아니다. 삶은 우리 생각보다 빡빡한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 얼굴 한 번 보는것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썩어빠진 계몽주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책을 읽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 다른 사람들과의 위기 뿐만 아니라 자신이 처해있는 다양한 문제와 내면의 고통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은, 우리가 일일이 경험해보지 않고도 고전이라는 책, 책이라는 고전을 통해서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책이 모든 것의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예시를 제시할 뿐이지, 상황은 변해 있을 것이며 우리가 원하는 답은 꼭 그 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책을 통해서 우리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 나가고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면 우리는 그 인생 속에서 또 다른 해법을 찾을지도 모른다. 


고전은 재미가 있다. 짧게 이야기를 하면, 인간에 대해서 인간이 한 고민의 흔적이 있기에 재미가 있다. '너는 나와 달라'로 끝나는 문장이 아니라 '나는 너와 다른데, 왜 나는 너와 다를까' 라는 고민을 시작하게 하는 고전은, 그 고민과 자신의 삶을 통틀어 적어 놓은 고백을 담고 있기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전 세계에서 고전은 다시 출판되고 다시 번역되고 다시 사람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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