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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12.30 "어른으로 태어나다"
  2. 2016.12.12 겨울이 되면
  3. 2015.03.09 현우의500자_91
  4. 2014.10.24 추억의 공유
2016. 12. 30. 18:25 내 생각

“어른으로 태어나다”


우리가 모르던 세상이 있어. 그곳에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데, 별다르지 않은 듯 하지만 한 가지가 달라. 그곳에는 아기가 태어나지 않아. 그렇다고 단 한 명도 아기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야. 오직 아기를 낳아 기를 수 있을 정도의 여유와 경제력을 가진 가족만 아기를 낳지. 하지만 그 수는 적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서 결혼을 하고, 또 아기를 낳아. 근데 그 아기, 태어나자 마자 어른이야. 남자 아이라면, 17살 정도로 태어나고 여자 아이라면 한 두 살 정도 더 이른 15살 정도에 태어나. 지금의 기준이라면 어린 나이로 보이겠지만, 이들이 이 나이로 태어나는 이유는 태어나자 마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야. 여자가 남자보다 더 어린 나이에 태어난다고 해서 기쁜 건 없어. 그저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남자보다 빨리 되기 때문이고, 또 그렇게 태어난 여자들은 태어나자 마자 결혼을 강제로 하게 되고 또 아기를 낳지. 그렇게 어른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하루 정도를 세상의 공기와 시간에 익숙해진 뒤 다음날부터 일을 하기 시작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를 듯 해 보이지만, 어디서든 사람은 필요하고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는 일은 차고 넘쳐. 태어나자 마자 시작한 일을 죽을 때까지 하게 되는거야. 

이 곳에는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일까. 살아가다 보면 필요한 건 추억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거의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이 첫 번째 이유야. 예를 들어 보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어린이들은 자신이 올해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 기대를 하겠지. 하지만 어느 순간, 산타 할아버지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 누구나 한 번쯤 산타 할아버지에 환상을 가진 적이 있었고, 또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들이 있어. 근데, 근데 말이야. 산타 할아버지가 실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는 게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지? 그저 어릴 적 추억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걸 우린 알잖아.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고, 결국 어린 시절의 추억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 결과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욕심은 많고 또 추위나 더위에 약하고 배울 것도 많은 어린 시절을 겪지 않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진화해 온 거지. 그러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산능력’을 갖춘 17살이나 15살 정도에서 삶을 시작하게 된 거야.

근데, 처음에 잠시 말했지만 그래도 아기를 아기의 모습으로 낳는 사람들이 있어. 이 사람들은 자신만의 유전자를 진화의 과정 속에서도 지켜온 사람들인데 그 수가 적어. 이 부류의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어. 한 부류는 번거롭고 귀찮고 비용도 많이 드는 육아의 과정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야. 쉽게 말하면 여유와 경제력이 있다는 것이지. 이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가진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이 사회에서 큰 권력과 유전적 우월성을 지닌다는 것을 알고 있어. 진화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는, 이 사람들은 ‘대기업’이라는 회사의 경영자 집단이었거나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갖는 권력 속에서 살았었어. 이들의 조상들은 그때에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어. 그들만의 어떤 공간을 만들고 살아왔다는 것도 여전해. 이런 사람들의 후손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유전자로 남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이들은 예전부터도 자신들이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항상 주장해왔었거든. 이들이 아기를 낳았다고 해도 이들이 아기를 기르는 건 아니야. 아까 말해두었지만, 아기를 기르는 일을 할 사람들은 차고 넘쳐. 아마 자신의 아기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가 자신의 어른을 낳은 뒤, 부풀어오른 젖가슴을 싸게 팔 여자는 많아. 그렇게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리고 산타는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들을 즐기며 살아. 

아기를 낳는 또 다른 분류의 사람들은, 앞선 부류의 사람보다 더욱 적어. 사실, 많을지도 모르지. 근데 이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아. 왜냐하면 자신이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들키면 앞선 부류의 사람들이 그 아기를 죽여버리고, 그 부모도 죽여버릴 것이 분명하거든. 누군가 자신이 가진 특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아. 그렇기에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깊은 산속이나 사람들이 잘 살지 않는 바다의 외딴 섬에서 살아. 도시도 가끔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방음처리가 잘 된 지하의 공간에서 그들의 아지트를 만들었지. 아기 울음 소리가 새어 나가면 안되니까 말이야. 아,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설명을 안했구나. 놀라지 말길.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 누구와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 그저 이 사람들의 평범함은 이 이상한 세상의 평범함이 아니라 그들의 선조이자,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살고 있던 시절의 평범함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아기를 낳아서 줄어든 잠을 이겨내기도 힘들지만 아기의 옹알이와 그 웃음 하나에 피로가 풀리곤 했던 예전 선조들의 평범함이지. 중학교 교복을 사주며 느꼈던 뭉클함과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느꼈던 묘한 상실감 등을 느꼈던 것들 말이지. 지금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전에는 숨지 않았었어. 처음에 진화가 시작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어른을 낳는 것으로 진화했을 당시, 앞서 언급했던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그런 권력과 추억을 가진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할까봐 몇몇의 사람들이 진화를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권리를 인정해주었지. 하지만 그건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더 이상 권리를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았어. 진화를 거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어른을 낳는데, 왜 아무런 권력도 없는 일부의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만이 그런 특권을 유사하게 가지나며 반대했고, 폭행했고,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게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없애줄 것을 법으로 요청했지. 그게 시행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 두 번째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유전자를 몰래 이어오게 된 거야. 아무런 특징도 없는 평범했던 사람들이 비밀조직처럼 살아가게 된 거지.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평범해. 아니, 평범하지는 않은 듯 하기도 하다. 그들은 진화의 방향을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야. 다시,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기 위한 어른, 어른을 낳기 위한 여자를 낳을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결혼하고 또 지극히 평범하게 아기를 기르며 느끼는 고통을 느끼길 바라는 것 뿐이야. 그리고 아이들도 그들이 어릴 적 느꼈던 느낌과 추억들을 갖고 길고 긴. 힘들고 힘든 세월을 이겨내고 또 그런 추억들을 만들며 살아가길 바라는 것 뿐 인거지. 평범하지 않은 평범함을 이 사람들은 지켜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묻혀 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 중 한 부부가 있었어. 자신들이 낳은 갓난 아기를 안고, 이 부부는 지하실에서 걸어나갔어. 처음에 이 부부가 세상으로 나오자 모든 사람들이 저 부부가 안고 있는 이 조그마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했어. 웅성거림이 시작되었고, 아기는 엄마의 품임에도 주위의 웅성거림에 놀라 그만, 아앙앙 울어버리고 만거야. 그러자 일제히 사람들이 저 존재가 자신들은 겪어보지 못했던 아기라는 것을 깨닫고 멀리 도망을 쳐버려. 하지만 그 울음소리가 자신들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또 그 울음 소리가 주는 생동감과 가슴을 저미는 모성애에 이끌려 몇몇 여자들이 그 아기를 보기 위해 다가왔어. 그리고 남자들 중 몇몇도 그 아기가 우는 소리가 자신을 지켜달라는 소리로 들린 듯 해 가까이 다가왔어. 어느새 아기를 안고 있던 두 번째 부류의 평범한 부부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게 된거야. 그리고 그들은 하나 같이 모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지어보지 못한 따뜻한 표정을 짓고 아기를 바라보고 있었어. 탕! 멀리서 들린 소리인 듯 큰 소리가 났어. 그리고 더 이상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따뜻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어. 그 이유는 아기의 머리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야. 아기의 머리 대신 그곳에는 붉은 피와 살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어. 그리고 이윽고, 탕탕. 다시 두 발의 총소리가 났고 그 자리에서 두 번째 부류의 평범한 부부가 총에 맞아 죽었어. 어디서 쏜 것인지도 모를 총에 두 명이 아닌, 세 명의 사람이 죽었어.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던 듯 자리를 서둘러 피했어. 모두가 사라진 자리,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보낸 ‘일을 하는 어른’들이 시체를 치우고, 핏자국과 여러 흔적 그리고 아기 냄새를 없앴어. 이 부부의 죽음은,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의 역사에 평범하게 남아있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기. 죽다. 

이상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우리가 모르던 세상이지. 진화가 일어나기 전이라, 이상할지 모르겠네. 하지만 이 진화, 곧 일어날 것 같아. 그때가 되면,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산타 할아버지를 기대하는 어린이는 없겠지. 선물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 연말인데, 감기 조심하고. 내년에는 더 행복하자. 우리 모두 어릴 적 가졌던 꿈 다시 한 번 떠올리면서 말이지. 미래에 진화하면 ‘어릴 적 꿈’ 같은 말도 사라질 수 있으니까 말이야. 모두들, 새해 복들 많이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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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12. 01:07 내 생각

“겨울이 되면”  20161212


날씨가 추워졌다. 무더웠던 여름은 사진과 추억으로만 남았다. 추워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덜 춥다는 생각도 든다. 더 추워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여름의 장마와 가을의 낙엽이 남긴 나쁜 박테리아나 세균들이 추위에 죽기를 바라는 어흥~ 마음이 있다. 또 지금보다 더 추워야 보리밭에 보리뿌리가 들뜨지 않아 내년 보리 농사가 잘될텐데 하는 으휴~ 마음도 있다. 도시 사는 사람이 별걱정을 다한다.


이런 걱정들과 별개로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친형은 집 밖에 나가서 노는 걸 참 좋아했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을 시절부터 나가 놀기 버릇한 형은,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가면 놀다가 누군가의 집에서 저녁밥까지 먹고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나는 날씨가 따뜻하면 형과 같이 가끔 놀러 나갈 때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날씨가 추워지면 집에 가만히 앉아 벽이나 스케치북에 항칠(낙서라는 뜻의 사투리)을 하며 나의 일과와 어머니의 소일거리를 만들어 냈다. 겨울이 아닌 계절에는 형과 같이 나가 놀고 싶어도, 형은 나를 번거로워했기에 같이 나가서 노는 게 서로에게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형은 나에게, 너는 너무 어리고 이해가 느려 같이 놀면 답답하다고 했다. 나는 형의 말을 듣고 울며 엄마~를 불러 찾고 있으면 그 사이 형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참고로 형과 나는 한 살 차이다.)


해가 지고 어머니의 걱정이 화로 바뀔 무렵, 형은 빨개진 볼로 집으로 돌아왔다. 저렇게 노는 게 재미있었을까 싶기도 했지만, 막상 밖에 나가서 할 수 있는 놀이라곤 숨바꼭질이나 자치지, 비석치기, 다방구, 팔방, 구슬치기 등 몸뚱아리 하나와 나무 막대기나 돌조각 따위라도 있으면 되는 유치하기 그지 없는 놀이들이었다. 재미의 요소는 놀이 자체에 있다기 보다, 형은 친구들과 동네의 형들과의 시간이 더욱 즐거웠던 듯 했다. 나는 형과 노는 게 재미있었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온 형은, 손과 발을 참으로 대충 씻었다. 손을 씻은 물에 발을 씻을 때에는 발을 세숫대야에 넣고 선 채로 아래위로 스윽슥 비비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어머니한테 걸리면 혼이 나서 그때서야 제대로 다시 씻었다. (씻는 걸 참 싫어했던 형이다 싶었다가도 성인이 되어 여자친구 만나러 나갈 때 그렇게 깨끗이 씻는 형을 보며, 얼마나 놀랐던가.)


이런 형은 겨울이 되면, 한 명의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 친구의 성은 ‘동’이고, 이름은 ‘상’이었다. 동상이라는 친구는 형의 귀에 딱 붙어 헤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했다. 형은 그 친구가 가렵고 아프게 괴롭혔던지 자다가도 일어나 귀를 긁어댔다. 피부가 사춘기를 지나지 않아 얇고 여렸을 때였으므로 동상에 걸릴 수 있다고 쳐도, 동상에 걸릴 때까지 노는 건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형이 잠을 못들 정도로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면, 어머니께서는 형을 깨우고 가만히 반짇고리를 꺼내오셨다. 일어나 앉은 형은,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기다렸다. 어머니는 반짇고리에서 바늘을 하나를 꺼낸 뒤 그것을 머리칼에 몇 번 샥샥 비비셨다. 그리고 형의 귀에서 검게 변한 귓바퀴 부분을 바늘로 콕 하고 찌르셨다. 준비하고 계셨던 휴지로 바늘로 찌른 귓바퀴를 감싸며 꾹 누르면, 형은 아파했지만 휴지에는 검게 변한 피가 젖어 나왔다. 형은 ‘아, 아프다~!’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귀를 빼지도 어머니로부터 도망을 가지도 않았다. 양쪽 귀 모두에서 동상이라는 친구가 들러붙었던 피를 빼내고 나면, 형은 다시 전에 없던 평화를 되찾은 듯 새근새근 잠이 들곤 했다. (형의 잠자는 모습은 참 평화로웠고 고요했다. 어머니도 나도 형의 자는 모습을 참 좋아했다.)


그렇게 몇 번, 동상이라는 불청객이 형의 귀에 찾아오고 나서야 겨울이 끝났다. 한 번 동상에 걸리면 추운 겨울에 다시 놀러 나가는 게 두렵기도 했을 법 하지만, 형의 외출은 끊이지 않았다. 동상이 정말 친구라도 되었던 것일까.


요즘 아이들도 귀에 동상이 걸릴 만큼 노는지 궁금하다. 어른만큼 어린 아이들도 바쁜 시대라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하느라 잠도 충분히 자지 못하는 어린이도 많다고 한다. 이 아이들에게 겨울은 어떻게 기억이 될까. ‘추운 겨울’로만 지금의 계절을 설명하는 것은, 뭔가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피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형의 귀를 보며, 신기해 했고 어이없어 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형이 나와 함께 놀아주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가졌다. 그래서 형이 동상에 걸리면 속으로 ‘꼬시다!’라며 통쾌해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다 깬 형이 어머니께 꼼짝없이 잡혀 귀에서 죽은 피를 빼 내는 것을 보며 걱정도 했을 것이다. 아프지 말지. 아프지 말지. 밖에 나가 노는 것도 좋지만, 좋아하는 형이 아프지 말았으면 했던 마음도 있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해서 다시 봄이 오면, 나와도 함께 놀아달라 말하고 싶었다.


이제 같이 놀자 말하기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겠다. 형은 몇 해 전 결혼을 했고, 남자 아이 한 명과 여자 아이 한 명의 아버지가 되었다. 같이 놀자 말하면 뭐라 할까. 이번에도 어리다고 할까.


겨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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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9. 06:32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91


적을 추억도 떠오르지 않고 특별한 이벤트도 없이 오늘 하루 평범하게 흘러갔다. 서울 곳곳을 텉털거리는 차를 타고 휘이젓고 다니며 많은 은행을 들렀고 그 사이 잠시 들은 라디오에서 똑같은 사연을 두 번 들었다. 아내가 잔소리를 하자 '그만 좀 해!'라고 소리를 질렀다며, 그 이후 아내가 아무말 하지 않아 더 불안하다는 똑!같은 사연을 오후에 한 번, 그리고 저녁에 한 번. 같은 사연을 두 번 듣다 보니, 나도 '그만 좀 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소리 듣는 이 나 밖에 없을 것이기에 쓴 웃음 한 번 지어 버렸다. 오전에 잠시 들른 마포구청에서 내게 도장을 쾅쾅 찍어주던 남자가 뒤로 앉은 채로 물러날 때, 그가 앉은 휠체어 덕에 내 세계는 더욱 넓어졌고 그렇게 넓어졌다. 친구와 함께 각 쏘주 한 병과 매액주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온 집은 여전히 그대로 집이고, 여전히 나도 그대로 나다. 하루를 꾹꾹 누른 찹쌀밥처럼 맛나게 멋나게 살아볼 만하다. 먹고 살고 살아가고 그렇게 또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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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4. 20:37 카테고리 없음

추억의 공유 2014.10.24. 


2004년 여름 농활 때였다. 당시만 해도 '농활'은 농촌봉사활동이 아닌, '농촌-학생 연대활동'의 성격이 강했다. 정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행사임에 분명했고 한총련이 지급하는 티셔츠를 입고 가긴 했지만 20살의 나는 그런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했다. 보수성향의 지역에서 고등학교까지 보낸 본인은 좌파 학생들의 운동으로 인식되는 행사에는 더욱 많이 참가하여 생각의 균형을 잡고자 했다. 2004년 5월 1일 노동절이 그 시작이었으며, 농활이 그 두 번째였다. 


막상 찾아간 농활은 정치적인 곳이 아니었다. 충북 진천의 한 마을에서 진행된 농활이 나에게 남긴 인상이란 '농사는 힘들다' 딱 이 정도였다. 사전에 농민과 농촌 생활에 대한 공부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기도 했고, 그럴 생각할 여유도 없이 진천에서는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약 2주 간의 농활 중 하루는 꽃을 "따는"는 일을 했다. 장미를 기르는 하우스에 들어가 제일 높게 자란 장미를 제외한 장미를 꺾어 따는 작업에 배당되었다. 하우스 안은 더웠고 따야할 꽃은 많았다. 하루의 작업을 마치고 모아 놓은 꽃이 언덕을 이룰 정도였으니 그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손은 분주한 작업이었지만, 입은 자유로웠다. 라인 별로 두 명이 조를 이뤄 작업을 했고, 나도 한 명의 선배와 함께 한 라인에 서서 작업을 진행했다. 이떄 무슨 이야기를 나눴지는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 내 기억력의 한계는 여기까지이다. 


대화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눴다. 이른 아침에 시작되어 오후 늦게까지 이어진 작업이 끝난 뒤, 나는 나와 함께 일을 했던 선배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선배가 나를 잘 대해 주었거나 삶에 도움이 되는 대화를 나누었기 떄문이 아니었다. 단지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같은 일을 했으며 같은 공간에 있었다. 일상적 공간에서 벗어나 전날만 해도 상상하지 못햇고, 세상에 그런 작업이 있을 것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을 같이 했다. 어떤 일이든 상상을 했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단지 그것을 '같이' 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날 저녁, 총화 시간이 있었다. 그날 하루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잘못한 점이나 개선해야할 점이 있으면 이야기를 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물론 칭찬할 거리가 있는 사람에게 칭찬 역시 돌아갔다. 


이날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했던 이야기는 기억하고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오늘 저는 아무개 선배와 장미 하우스에서 장미를 땄습니다. 출하되는 장미를 딴 것이 아니라 한 송이의 장미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나머지 장미를 따내어 버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하우스 안이라 더웠고 또 장미의 양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름다워보였던 장미가 하루 작업을 마치고 날 즈음에는 예쁜 쓰레기로 보였습니다. 

장미를 따면서 아무개 선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학교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선배였지만 여기서 나눈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일을 같이 하며 나눈 이야기는 이전의 이야기와 달랐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친해졌습니다. 그래서 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추억의 공유'. 누군가 자신이 아닌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추억'을 공유해야 합니다. 추억은 개인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혼자 쌓는 추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추억은 나와 다른 누군가가 그 속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추억을 같이 쌓은 사람은 같은 추억을 공유합니다. 그 공유된 추억으로 사람은 친해지고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친한 친구가 친한 이유는 그와 함께 공유한 추억이 많기 때문입니다. 연인과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공유할 추억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가족 간에도 그렇습니다. 단지 생물학적인 연결만 있다면 동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끊임없이 공유되는 추억이 있기에 가족은 서로를 아낄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추억의 공유'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오늘 같이 작업을 한 학우들과 좋은 추억을 공유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이후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중 몇몇 사람들과는 좋은 추억을 나누었다. 좋지 않은 추억 혹은 기억을 남긴 사람과는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 추억이 떠오르게 되었고, 그 추억은 대부분 공유되었다. 공유된 추억이 많을수록 만들고 싶은 추억도 많다. 나쁜 추억을 가진 사람과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쉬움은 추억의 또 다른 단면일지도 모른다. 


추억의 공유.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역사'라면, 추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우정', '사랑', '배려'가 아닐까 한다.



                           2004년 당시 농활에서 찍은 사진. 컨셉은 '아메리칸 뷰티'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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