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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영웅

영웅 2014.11.14.


# 1
언제부터 이런 관점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유지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꾸준히 유지하게 될 듯 하니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그 관점이란, 세상은 결코 영웅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웅'에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 없음에도 결국 다시 적어 버리는 것은, 영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고자 하는 계략이다. 계략이란 말이다. 


한글을 창제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세종대왕'이라 대답할 것이고, 프랑스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나폴레옹'이 자연스레 연상되고,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단어에는 '링컨'의 그림자가 짙게 베어 있다. 앞의 인물들은 위인전의 주인공이 되었고 각국 국민들의 마음 속에 영웅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자 하였을 때 반대하지 않았던 신하들, 그리고 왕의 명령에 의해 일을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수많은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창제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폴레옹이 스스로 프랑스의 황제라 칭하기 이전, 프랑스 혁명을 처음으로 주도했던, 낫과 창을 메고 '빵을 달라'고 외쳤던 수많은 '어머니들' 이들이 프랑스 혁명의 영웅이 아닐까. 링컨의 그 유명한 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을 게티스버그 연설은, 사실은 남북전쟁에서 죽어간 군인들을 묻은 게티스버그 묘지에서 언급되었다는 것, 나라가 반토막이 되어서도 자신의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 목숨 걸고 말하고자 했고 지키고자 했던 죽은 군인들, 이들이 영웅이 아닐까. 

지금의 사회는 끊임 없이 '영웅'과 '영웅이 아닌 자'를 구분하고자 한다. 영웅이 되지 못한 탓에 스스로가 짊어지는 '평범함'이라는 굴레를 부끄러워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부끄러움을 다시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고 자녀에게는 '영웅'이 되되, 평범한 영웅이 되라 말한다. 가량 고시를 합격하든, 대기업을 들어가든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다. 

강 위에,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만 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배가 떠 있을 수 있는 것은 방울방울 모여 있는 강물과 바닷물이 있기에 가능하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고, 새로운 곳을 여행하게 했다. 과거의 사람들은 강물과 받닷물에게 고마움을 느꼈다고 본다. 그 보답으로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강이야 육지에 속해 있지만 바다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나누어 불렀다. 산도 그렇다. 바람도 그렇다. 

백 번 양보해서, 과거의 영웅들은 자신이 영웅이 된 것을,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보기에 인정하고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최근의 유명인 혹은 영웅 또는 영웅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런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태도를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미덕인 양 여겨지기도 한다. 

영웅을 없애자 라는 극단적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백번 양보해서 영웅이 생겼다고 할지라도 그 영웅을 만든 영웅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 이말이 하고 싶었다. 단 한번도 민초들이 영웅이었던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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