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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옷을 파는 노파


"옷을 파는 노파"


이대역과 신촌역 사이, 나무에 옷을 걸어놓고 옷을 파는 한 노파가 있다. 옷걸이에 걸린 옷을 연신 나풀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지나가는 여대생들이나 여자들에게 옷을 권유한다. 자주 마주쳐보았지만, 남자 옷은 팔지 않는다. 옷의 질은 낡았다. 보세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헌 옷 상자에 들어있을 법한 그런 옷들이다. 하지만 그런 옷들을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들이댈 때는 사뭇 진지하다. 저런 옷이 팔릴까 정말 궁금했다. 단 한 번도 누군가 옷을 사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러다 얼마 후, 집으로 가는 길에 그 노파가 보이지 않았다. 활기찬 모습으로 옷을 날개삼아 펄럭이고 있어야 할 곳에 아무도 없자 순간, 걱정이 스쳤다.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닐까. 환절기라 날씨가 아침저녁으로는 추웠고, 또 그 노파는 얇은 반팔티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새로 옷을 도매상에서 혹은 헌 옷 상자에서 사오거나 꺼내오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그 어떤 것도 답은 아닐지 모른다. 그저, 하루가 고단해 그날은 쉬고 싶었을지도.


나는 아마 다시 그 길을 지나겠지만, 그 노파가 파는 옷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옷을 팔고 있는 그 모습을 반가워는 하겠지만, 내가 입지도 않을 옷을 사 그 노파에게 동정심이 들었다는 것을 표현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정심이 든 마음이란, 그 노파가 가진 가난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아무도 옷을 사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데에 대한 동정이지, 다른 동정은 가진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노파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또 그것을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 삼는데 있어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함을 배웠다.


무엇보다 계절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서 꾸준하게 있는 그 모습이 멋져보이기도 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간혹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나, 편견에 대해서 쉽게 판정짓고 편한대로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삶의 방식이나 태도에는 답은 없다. 성공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꿈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이나 금전적 성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에게, 열정이 없다느니 젊은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느니 하는 말도 필요 없다. 꿈을 가지지 않아 되는대로 산다는 사람에게도 비난을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사는 방식이 다른 것 뿐이고 주어진 삶에 대한 태도가 다를 뿐이다.


이대-신촌 거리의 한 노파는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 살 것이다. 옷이 많이 팔리면 좋겠지만, 그러지는 않을 듯 하고, 노파가 그것을 깨달으면 자신이 스스로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찾을 것이다.


그러면 되지 않을까.


노파도, 삶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언젠가 깨달을 수도 있는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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