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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6.12.12 겨울이 되면
  2. 2016.12.08 “행복하셨는지 물어볼 수 있다면”
  3. 2016.12.02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4. 2015.03.09 오늘한시_9
  5. 2014.12.27 현우의500자_24
  6. 2014.06.25 두 가지 생각
  7. 2013.07.05 효리와 상순
2016. 12. 12. 01:07 내 생각

“겨울이 되면”  20161212


날씨가 추워졌다. 무더웠던 여름은 사진과 추억으로만 남았다. 추워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덜 춥다는 생각도 든다. 더 추워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여름의 장마와 가을의 낙엽이 남긴 나쁜 박테리아나 세균들이 추위에 죽기를 바라는 어흥~ 마음이 있다. 또 지금보다 더 추워야 보리밭에 보리뿌리가 들뜨지 않아 내년 보리 농사가 잘될텐데 하는 으휴~ 마음도 있다. 도시 사는 사람이 별걱정을 다한다.


이런 걱정들과 별개로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친형은 집 밖에 나가서 노는 걸 참 좋아했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을 시절부터 나가 놀기 버릇한 형은,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가면 놀다가 누군가의 집에서 저녁밥까지 먹고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나는 날씨가 따뜻하면 형과 같이 가끔 놀러 나갈 때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날씨가 추워지면 집에 가만히 앉아 벽이나 스케치북에 항칠(낙서라는 뜻의 사투리)을 하며 나의 일과와 어머니의 소일거리를 만들어 냈다. 겨울이 아닌 계절에는 형과 같이 나가 놀고 싶어도, 형은 나를 번거로워했기에 같이 나가서 노는 게 서로에게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형은 나에게, 너는 너무 어리고 이해가 느려 같이 놀면 답답하다고 했다. 나는 형의 말을 듣고 울며 엄마~를 불러 찾고 있으면 그 사이 형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참고로 형과 나는 한 살 차이다.)


해가 지고 어머니의 걱정이 화로 바뀔 무렵, 형은 빨개진 볼로 집으로 돌아왔다. 저렇게 노는 게 재미있었을까 싶기도 했지만, 막상 밖에 나가서 할 수 있는 놀이라곤 숨바꼭질이나 자치지, 비석치기, 다방구, 팔방, 구슬치기 등 몸뚱아리 하나와 나무 막대기나 돌조각 따위라도 있으면 되는 유치하기 그지 없는 놀이들이었다. 재미의 요소는 놀이 자체에 있다기 보다, 형은 친구들과 동네의 형들과의 시간이 더욱 즐거웠던 듯 했다. 나는 형과 노는 게 재미있었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온 형은, 손과 발을 참으로 대충 씻었다. 손을 씻은 물에 발을 씻을 때에는 발을 세숫대야에 넣고 선 채로 아래위로 스윽슥 비비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어머니한테 걸리면 혼이 나서 그때서야 제대로 다시 씻었다. (씻는 걸 참 싫어했던 형이다 싶었다가도 성인이 되어 여자친구 만나러 나갈 때 그렇게 깨끗이 씻는 형을 보며, 얼마나 놀랐던가.)


이런 형은 겨울이 되면, 한 명의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 친구의 성은 ‘동’이고, 이름은 ‘상’이었다. 동상이라는 친구는 형의 귀에 딱 붙어 헤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했다. 형은 그 친구가 가렵고 아프게 괴롭혔던지 자다가도 일어나 귀를 긁어댔다. 피부가 사춘기를 지나지 않아 얇고 여렸을 때였으므로 동상에 걸릴 수 있다고 쳐도, 동상에 걸릴 때까지 노는 건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형이 잠을 못들 정도로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면, 어머니께서는 형을 깨우고 가만히 반짇고리를 꺼내오셨다. 일어나 앉은 형은,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기다렸다. 어머니는 반짇고리에서 바늘을 하나를 꺼낸 뒤 그것을 머리칼에 몇 번 샥샥 비비셨다. 그리고 형의 귀에서 검게 변한 귓바퀴 부분을 바늘로 콕 하고 찌르셨다. 준비하고 계셨던 휴지로 바늘로 찌른 귓바퀴를 감싸며 꾹 누르면, 형은 아파했지만 휴지에는 검게 변한 피가 젖어 나왔다. 형은 ‘아, 아프다~!’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귀를 빼지도 어머니로부터 도망을 가지도 않았다. 양쪽 귀 모두에서 동상이라는 친구가 들러붙었던 피를 빼내고 나면, 형은 다시 전에 없던 평화를 되찾은 듯 새근새근 잠이 들곤 했다. (형의 잠자는 모습은 참 평화로웠고 고요했다. 어머니도 나도 형의 자는 모습을 참 좋아했다.)


그렇게 몇 번, 동상이라는 불청객이 형의 귀에 찾아오고 나서야 겨울이 끝났다. 한 번 동상에 걸리면 추운 겨울에 다시 놀러 나가는 게 두렵기도 했을 법 하지만, 형의 외출은 끊이지 않았다. 동상이 정말 친구라도 되었던 것일까.


요즘 아이들도 귀에 동상이 걸릴 만큼 노는지 궁금하다. 어른만큼 어린 아이들도 바쁜 시대라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하느라 잠도 충분히 자지 못하는 어린이도 많다고 한다. 이 아이들에게 겨울은 어떻게 기억이 될까. ‘추운 겨울’로만 지금의 계절을 설명하는 것은, 뭔가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피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형의 귀를 보며, 신기해 했고 어이없어 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형이 나와 함께 놀아주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가졌다. 그래서 형이 동상에 걸리면 속으로 ‘꼬시다!’라며 통쾌해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다 깬 형이 어머니께 꼼짝없이 잡혀 귀에서 죽은 피를 빼 내는 것을 보며 걱정도 했을 것이다. 아프지 말지. 아프지 말지. 밖에 나가 노는 것도 좋지만, 좋아하는 형이 아프지 말았으면 했던 마음도 있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해서 다시 봄이 오면, 나와도 함께 놀아달라 말하고 싶었다.


이제 같이 놀자 말하기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겠다. 형은 몇 해 전 결혼을 했고, 남자 아이 한 명과 여자 아이 한 명의 아버지가 되었다. 같이 놀자 말하면 뭐라 할까. 이번에도 어리다고 할까.


겨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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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8. 00:14 내 생각

행복하셨는지 물어볼 수 있다면”  20161208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건 미래의 거대한 기계보다 때론 지금의 한 장 사진이 더욱 그 효과가 클 때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갖고 있지도 않은 사진이지만, 한 장의 사진을 떠올리며 어머니와의 시간 여행을 떠나곤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의자에 앉으신 채 형과 나를 다리 위에 한 명씩 올려놓고 또 안고 계셨습니다. 사진 속에는 세 명 모두 웃는 얼굴입니다. 어머니와 형과 나. 가장 환하게 웃는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긴 파마 머리에 스웨터를 입고 계신 어머니. 날씨가 추운 탓인지 아니면 바깥의 추운 날씨와 집안의 따뜻한 기온 차이 탓인지 얼굴은 붉어져 있습니다. 저는 3살 남짓 되었을까요. 몇 개 있지도 않은 치아를 빼꼼 보이며 역시 붉은 양볼 사이 수줍게 웃고 있습니다. 형도 특유의 귀여움을 잔뜩 품고 웃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어머니의 웃음이 밝고 환했습니다. 장롱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계신 어머니. 사진은 누군가 앉아서 찍은 듯 아래에서 위로 찍힌 모습이지만, 웃음과 행복을 담기에 적절치 못한 각도란 없습니다. 그 어머니의 웃음이 지금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느 덧 저는 사진 속의 어머니와 비슷하거나 많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시간은 그렇게 흘렀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행복과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울에 오기 전이나 고향에 방문할 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어머니의 이야기라곤 했지만 특정한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결혼으로, 느끼게 된 다양한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 사이에는 분명 제가 기억하는 저 사진이 찍힌 당시도 포함될 것입니다.

 

저는 슬펐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제가 어머니의 행복을 빼앗아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건 아닌지 슬퍼졌습니다. 젊고 활력이 넘치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이나 추억 속에서만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서글퍼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저 역시도 이렇게 사진 속의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농담 삼아 말하곤 합니다.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가 없어져도 좋으니, 시간을 되돌려 결혼은 하지 말라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전 어머니가 저의 어머니여서 좋습니다. 살아가며 힘든 사이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어머니의 모습. 전 그 모습이 좋습니다. 그래서 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제 기억 속에 있는 저 사진 속의 어머니께 한 번 묻고 싶습니다.

 

행복하십니까?”

 

그럼 어머니는 대답하시겠지요. 힘들지만 행복합니다. 이 아이들이 성장을 하면서 사고를 치거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이 아이들의 아버지인 남편이 나를 힘들게 할 수 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일어나지 않은 일들입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수많은 힘든 일 사이에서도 저는 지금 웃을 수 있습니다. 일어날 수도 있는 불행이 있겠죠. 그렇지만 그때에도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은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에게는 제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긴다고 해도, 전 행복했던 기억으로 그리고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로 살 수 있습니다.

 

어머니. 어느덧 작은 아들도 나이 서른을 넘기고 이제 서른셋이 되기까지도 시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합니다. 행복을 기억합니다. 어머니와 행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행복을 기대합니다. 어머니와의 행복을 기대합니다. 어머니께서도 기억하고 계실지 모를 사진 한 장에, 작은 아들은 오늘 가볍게 시간 여행을 했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저와 친구가 될 법한 나이의 어머니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둘도 없을 웃음을 지으시며 저와 형을 안은 채 대답하셨습니다.

 

행복합니다.

 

제 글이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보내셨을 어머니께 잠시나마 기쁨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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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 20:55 내 생각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2016.12.02.

 

대부분의 친구들은, 졸업을 할 초등학교 인근의 중학교를 갔다. 하지만 나는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체학급에서 단 10명 만이 진학을 했던 마산중학교에 지원했고 어렵지 않게 입학이 결정되었다. 굳이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가 아니었어도, 유일하게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는 것도 큰 결정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중학교 진학이 결정되고 난 뒤, 내가 처음 한 일은 머리카락을 짧은 스포츠로 깎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두발자유화는 꿈 같은 소리였다.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나는 스포츠 머리에 익숙해져야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되려 어색한 머리가 되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앨범에는 정말 이상한 모습으로 찍힌 사진이 떡 하니 남았다. 졸업앨범 사진을 정식으로 촬영하였지만,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며 복도에서 찍힌 스포츠 머리의 내 모습은 지금 봐도 우스꽝스럽다. 거기다가 그날 입고 있던 옷이 하늘색 면 셔츠였다. , 하늘색이라니. 가능하다면 같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동기들의 앨범을 모두 몰수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그리고 이어 두 번째로 내가 중학교 진학을 위해 한 일은 교복을 맞추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특이한 선택을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교복 브랜드는, 스마트와 엘리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교복판매점에서 중학교 교복을 맞추게 되었다. 이것도 형이 그곳에서 맞추었기 때문이었고, 브랜드가 없는 대신 그만큼 저렴했다는 것이 이유일 수 있겠다.

 

처음 교복을 받아 온 날이었다. 마산중학교 교복은 정말 특징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교복이었다. 남색 상의에 같은 색깔의 하의. 단추에는 한자로 적힌 중학교를 뜻하는 중()글자가 금색으로 반짝였고, 상의소매에도 같은 형태이지만 크기가 작은 단추들이 3개씩 붙어 있었다. 흰 셔츠는 분명 면이라고 했지만, 이상하게 삼베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칠었다기 보다 삼베처럼 실 한 올 한 올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징도 없고, 고급 교복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 교복을 나는 매일, 입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한참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중학생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질 듯 보였고, 정장 형태로 된 교복을 입으면 마치 내가 어른이 된 듯해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하교 한 뒤 교복을 집안에서 입고 다니는 이런 나를 보며, 내가 곧 들어가게 될 마산중학교 교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온 형이 나에게 한 마디 툭 던졌다.

 

그거, 입기 싫어도 입어야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지금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의미였고, 이렇게 교복을 입고 있으면 번듯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척들은 나의 중학교 입학을 축하해주었고, 내게 기대하는 것들을 이전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중학교 교복을 입을 때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며 멋진 중학생이 되어야지, 하며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형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게 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1년이 지나는 것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선배들은 무서웠고, 선생님들은 더욱 무서웠다. 체벌이 당연했던 시절이라 사소한 잘못에도 선생님들은 가볍게 매를 들었지만, 그 매는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할 시점이 되어서는 체벌은, 마치 경주마를 다그치듯 너희를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양 뺨에서부터 발바닥까지 이어졌다. 교복을 입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중학생이라는 신분 뿐이었지만, 그에 따르는 의무는 자질구레한 것부터 때론 억울하다 느껴질 정도로 큰 것까지 많고 많았다. 그 결과 교복은, 매주 주말 다시 입고 싶지 않은 것이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교복을 입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었다. 하늘색(난 하늘색을 좋아하는 것인가...) 운동복을 입고 졸업식을 보내며, 고등학교 교복에 대한 환상 따위는 이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고등학교에 또 올라가는 것.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히 가야한다는 분위기에 취해 대학을 가는 것. 물론 당연하지 않았던 뭇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내가 살았던 당시에는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오며, 그 의미를 만끽했던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군대에 들어가고자 했지만 시력 탓에 공익을 가게 되며 겪게 되었던 차별 혹은 비판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고, 30살이 넘으며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사회적 의무들은 나도 모르게 나를 옥죄었다. 그리고 의무에 허덕인 탓에 권리는 간신히 그리고 어렵게 하나씩 얻어갔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중고등학교 입학이 그럴 것이고, 대학 입학이 그럴 것이고 취직, 결혼, 출산 등이 그럴 것이다. 이런 다양한 능선들이 눈 앞에 있을 때 그것을 정복하든 우회하든 그것을 선택함에 있어 책임은 다양하게 삶을 파고든다.

 

평범한 사람이 이럴진대 다른 이들보다 특별한 지위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책임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작게는 카페나 구멍가게의 사장에서부터 크게는 한 나라의 대표라고 부를 수 있는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쉽게 얻은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과는 별도로 그것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많은 책임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카페 사장은 손님들을 위해 맛있는 커피를 준비해야 하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공정하게 국민들의 요구를 잘 받아들이고, 정의롭게 국가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원한 지위에 해당하는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복은, 단지 교복일 뿐이었다. 그것을 입고 있다고 중학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벗었다고 중학생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중학생이면 중학생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고등학생이면 또 그 나름의 의무와 권리가 생기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가지로 가족 안에서, 지역 안에서, 국가 안에서 그런 의무와 권리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해 교복을 벗고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그것이 주는 지위와 권리, 권한을 버리고자 한다면 자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한 손실이나 권리의 상실은 자신의 책임 범위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은 원하지 않았어도, 큰 잘못이나 학교나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사람은 퇴학을 당하기도 한다. 그 교복을 입기 위해서 아무리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해도 또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해도, 그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 또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수치심을 준다면 벗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이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군인, 어머니, 아버지, 국회의원, 총리, 대통령 등 다양한 사회적지위와 직업들이 존재한다. 되고 싶어 된 것이든 되고 싶지 않았음에도 된 것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벗고 싶어질 때가 있듯이, 마찬가지로 벗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우선 어울리지 않고, 그것을 입고 있음으로 인해 사회의 구성원들이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낄 때는 더욱 그렇다.

 

중학교를 입학하기 전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중학교 교복을 입어가며 설레고 있었을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을 입을 수 있는 것과는 별도로, 입게 되었으면 최선을 다하길. 최소한 그것을 입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또 친구들에게는 부끄럽지 않게 하길,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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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9. 06:39 오늘한시

‪#‎오늘한시‬ _9


난 두 개를 가졌소 
남들은 하나라지만 나는 두 개를 가졌소
두 개를 가진 탓에 두 배를 움직여야 하오
하지만 그 걸음 나쁘지 않소 
한 


발 
내딛는 걸음 나쁘지 않소


돌아와 하나를 만나면 가까이 하고 싶소
부비고 싶소
향기 맡고 싶소
잘 있었나 묻고 싶소


약속했소
멈추지 말자 약속했소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는 것 알았지만
그래도 약속했소


왜냐는 대답에


난 두 개를 가졌소
남들은 아니라지만 나는 두 개를 가졌소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모든 것이 되었소


그래도 나는 그 모든 것 나쁘지 않소


오늘도, 
잘 있었소
묻고 싶소


- 내 심장 두 개 그리고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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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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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7. 06:32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24


아직 부부가 되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부부로 지내는 모습은 언제까지나 간접 경험이다. 그런 와중에도 나에게 직접 경험과 같은 체험을 하게 하는 부부도 있고, 간접 경험을 넘어 호러나 SF영화를 한 편 본 듯한 느낌을 주는 부부도 있다. 언젠가 나도 부부가 되어 실제의 생활 속에서 만나고 사랑하며 둘이 하나가 되는 일을 겪을 수도 있고, 서약의 효약은 죽음의 묘약인 듯하여 서로 죽일 듯한 견원의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것, 만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 이런 일들이다. 이러한 일들은 시를 같이 적는 일이다. 답이 없는 것은 결국 시다. 이 시를 적어 내려가는 사람은 두 사람, 그런 의미에서 공동의 시다. 다음 구절을 적어내려가는 사람에게 온전히 그 구절을 맡기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영화의 원작인 인간극장의 '백발의 연인'을 보았다. 어머니 앞이라 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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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25. 03:24 카테고리 없음

두 가지 생각.  2014.06.25

# 1 
'다섯 줌의 쌀'이라는 일본 선승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 있다. 읽은지 한 7~8년 된 듯 한데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있다. (선승의 이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ㅠㅠ) 

어느 날 유명한 선승 한 명이 조용한 시골마을을 찾아온다는 소문이 났다. 시골 마을의 사람들은 두 번 다시 그런 기회가 없을 듯 하여, 이때를 빌어 가훈을 받고자 하였다. 
시간이 지나 선승이 지나가는 것을 알아 본 사람 중 한 명이 선승을 집으로 모셔 종이와 먹, 붓을 준비하여 가훈을 적어 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흔쾌히 마을 주민의 뜻을 받아들인 선승은 일필휘지로 이렇게 적어 내려갔다. 

祖死父死子死孫死(조사부사자사손사) 

위 여덟 글자를 본 마을 사람은 깜짝 놀라며 묻는다. 

"아니 스님, 가훈을 부탁드렸습니다만 이런 흉측한 내용을 적어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다들 죽는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이에 선승은 대답을 한다. 

"이보다 좋은 가훈이 어디 있소? 할아버지가 죽은 다음 아버지가 죽고, 아버지가 죽은 다음 아들이 죽고, 아들이 죽은 다음 손자가 죽는다. 이 뜻은 태어난 순서에 맞게 죽는다는 것으로 자식의 상을 치르지 않는다는 좋은 가훈이 아니오?"

마을 사람은 그제서야 그 뜻을 알아차리고 저 여덟 글자를 가훈으로 모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단 한가지다. 최근 몇 달 사이 그리고 몇 일 사이의 우리네 세상을 보면 저 여덟글자가 큰 의미로 다가온다.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들의 영혼이 아직 고이 눈을 감지도 못했는데 사람들은 잊어가고, 사건을 발생시킨 사람들은 다시 그들의 권력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어려서 죽은 자식은 돌로 무덤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흙으로 봉분을 만들면 비가 오면 흘러내릴 것이고 잡초가 쌓여 그 흔적이 사라질 것이나 돌로 만든 그 무덤은 부러 흐트리지 않는 이상 온전히 남아 있을 것이기에 잊지 않고자 돌로 무덤을 만든 것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그 돌 사이를 흐르는 바람이 울음 소리와 같이 되어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며 훌쩍이는 그 소리를 부모는 듣고자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 죽고 아버지 죽고 아들 죽고 손자 죽는, 이 간명한 이치가 이다지도 어려운 세상이 왔단 말인가. 

# 2
얼마전 친구와 술을 한 잔 기울이면서 '가족'의 정치성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친구가 이야기 하길,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기면 사람은 자연스레 보수적으로 변한다고 했다. 자신에게 지켜야 할 것이 생기면 변화보다는 안정이 더욱 높은 가치로 변화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지킬 것이 생김' 이것은 분명 가족이 주는 가치임에 틀림이 없다. 
그때 당시에는 반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동갑의 친구는 결혼을 했고 가정을 이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반박의 근거를 찾게 되었다. 

결혼을 해서 가족을 만든다. 가족은 분명 지켜야 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아이를 낳을 것이고 아이 역시 부모가 지켜야 한다. 
여기다. '아이' 
아이를 지키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지만, 만약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처럼 아이가 똑같은 시대와 사회와 고통과 경쟁과 허황된 꿈 속에 빠져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난 그런 시대를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지금보다 나은 시대를 만드는데 무임승차하고 싶은 생각 역시 추호도 없다. 더욱 나은 시대를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은 하지 못하겠지만 방관하고 싶진 않다. 가족은 그렇게 진보적이다. 지키되 지금 보다 나은 세대를, 시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가족, 자신만의 아이를 위한 진보가 아닌 우리 모두의 가족, 우리 모두의 아이를 위한 한 걸음. 
비록 나는 중도보수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지만 단 하나, 내가 갖게 될 가족의 미래, 그리고 우리 모두의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진보해 나가고 싶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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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5. 18:34 카테고리 없음

효리와 상순 2013.7.7

가수 이효리와 역시 가수인 이상순이 9월 중 결혼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축하할 일이다. 두 명 모두 일면식도 없지만 누군가의 결혼은 또 다른 행복을 담보하는 행위라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기에, 우선 축하를 하고자 한다.


효리와 상순의 결혼을 주제로 무엇을 쓸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이미 효리가 방송에서 밝힌 내용들을 내 글에 담아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결혼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청첩장까지 찍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다시 한번 글로 옮기고 싶은 내용이 있어 이렇게 손가락을 바지런히 움직인다.


가수 이효리가 SBS의 토크 프로그램인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상순과의 만남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정확한 워딩을 옮기고 싶지만, 방송을 본지 오래된 것과는 별도로 다시 방송을 볼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되지 않기에 기억에 의존하여 적고자 한다.

 

효리가 상순을, 가수 정재형이라는 사람을 통해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은 시쳇말로 '탑스타'의 반열에 있었다고 했다. 성공적으로 솔로 데뷔 후 한국 가요계 시장에서 '이효리'의 대체제는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공가도에 있었던 효리에게 상순은 인디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독한 기타리스트'에 지나지 않았다. 상순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나, 그 당시 이효리는 자신의 삶에 만족해 있었고, 또 인기를 실감하고 있던터라 상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던 효리가, 표절 문제와 함께 약 2년 간의 공백기에 들어가게 된다. 그 기간 동안 효리는 자신을 '암흑'에 두지 않고,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자신이 누리고 있었던 '인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고, 또 바쁜 와중에 신경쓰지 못했던 반려동물에 관련된 내용이나 환경 문제 등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글을 적는 본인이 효리가 아닌 관계로, 효리가 이전부터 반려동물이나 환경에 관해서 관심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약 2년 동안의 기간 이후, 일반 대중의 한명으로서 본인이 느끼는 효리의 이미지는, 마치 다른 사람인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외연이 넓어져 있었다. 언론을 통해 접촉하는 것이 전부라 할지라도, 그가 쓰는 어휘나 표현, 그리고 공감은 새로운 분야로 접어든 듯 했다.


이런 시간을 보낸 그가, 다시 상순을 만나게 되었다. 효리의 표현대로 한다면, 그 2년 동안에도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했고, 이상순 역시 다른 여자를 만났다고는 했지만, 지금 이 글을 적는 시점에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상순은 2년 동안, 아니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무엇을 하면서 지내는지 본인은 모른다. 상순이라는 이름을 효리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처음 알았던 본인은, 본의아니게도 이렇게 효리를 위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효리가 다시 상순을 만나고, 그와 결혼을 하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에는, 효리의 변화가 크게 다가온다. 


상순의 과거, 현재를 모른다는 것은, 변명이 아니다. 그리고 변명을 떠나서 상순이라는 사람이 효리가 보기에는, 변함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에 그의 과거와 현재는 큰 의미가 있는 시점은 아니다. 상순이라는 사람은, 소나무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효리가 화장을 진하게 하고 오든, 화장을 하지 않고 오든, 인기가 많은 사람이든, 인기가 없는 사람이든 상순은 효리를 효리로서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효리는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도 지켜봐 줄 수 있는 상순이라는 사람을 반려동물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반려자로서 택한 것이 아닐까. 


효리가 2년 동안의 방황과 성장을 겪고 난 뒤, 자신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했다. 젊고 예쁜 시절에, 또 인기 많던 시절의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자신으로 볼 수 있는 관점, 그리고 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외양이나 돈, 능력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효리는 그 2년 동안의 시간을 통해서 배운게 아닐까. 


효리와 상순의 이야기는, 사실 여기서 끝이다. 이 둘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새롭게 쓰여질 것이고 효리와 상순, 상순과 효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라기만 하면, 일종의 팬으로서 나의 역할은 끝난다. 


하지만 이 글을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효리와 같은 사람이 참 많다. 지금의 효리가 아닌, 자신의 최고라고 믿고 있고 자신에 맞추어서 세상이 돌아가기를 바라고,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생각했던 효리와 같은 사람 말이다. 그 수가 적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허황된 해석을 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이룬 것인양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이가 자신을 향해 하는 쓴소리들은, 자신을 시기질투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 자신이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처절히도 이어나간다.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이런 사람의 주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진정한 모습을 보지 않고 이미지만을 본다. 이미지 역시도 자신이 원했던 이미지가 아닌, 보는 사람이 편한 이미지로 자신을 평가한다. 그렇기에 자신은 그 이미지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효리가 겪었던 2년간의 시간을 겪는다면 어떻게 될까. 효리처럼 자신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까. 그렇지 않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답은 긍정적이지 않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보면 파도에 휩쓸려서이든, 몸에 힘이 빠져서이든 물 속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 허우적대거나 발버둥을 친다면 더욱 힘이 빠지거나 주위의 수풀이나 해초에 자신의 몸이 엉켜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몸에 힘을 빼고, 손에 들고 있고 있던 것이나 몸에 차고 있던 것을 버리고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것이다. 너무 깊지 않은 바다라면 그 바닥은 생각보다 금방 닿을 것이고, 그 바닥에 자신의 발이 닿는 순간 자신의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잠시 힘을 모아 바닥을 자신의 다리로 힘차게 차면 다시 물 위로 떠올라 자신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당황하여 허우적대면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지만, 사라진 줄 알았던 사람이 다시 멀쩡히 물에서 나오는 일 또한  흔하지 않은 일은 아니다. 


그와 같다. 


살다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떤 계기로 인해, 자신이 헤어나올 수 없을 듯한 고난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는 주위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것 같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만 같은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놓고,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한번 푹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살아가기' 위한 목적 하나만 생각한다면 필요한 것은, 입고 있는 옷이 아니라, 차고 있는 시계가 아니라 오롯이 자기 자신, 그 존재 한 단위만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그 의지가 아닐까. 아무리 힘이 없어도 살아가기 위한 '발 구르기'는 어디서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효리와 상순. 이효리는 자신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그로 인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이상순이라는 남자를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고 한 가정을 이루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이효리의 화장이나 옷이 아니라, 이효리 그 자체를 보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우리 자체를 보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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