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가고파라가고파

Notic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91,849total
  • 1today
  • 3yesterday
2016. 11. 30. 01:13 내 생각

명예”   20161130

 

두 명의 이름이 등장했었다.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중국의 옛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은 친구였다. 한 명의 친구가 다른 한 친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마치며 말하길,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달라.” 부탁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친구는, 자살했다. 왜 자살했을까.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친구의 비밀을 영원히 지켜주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이야기. 대단한 우정이지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친구의 마지막 부탁, 즉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그 말에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생각해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명예? 친구에게 자신이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자신은 명예를 더렵혀졌다 여겼던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

 

1948년 광복 이후 우리 역사에 몇 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그 대통령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통령은 단 한 명이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서거 당시 나는 일본의 사이타마현의 한 맨션 안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교환학생 중이었고, 어머니로부터의 인터넷 전화에 잠이 깼고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누워있던 내 몸은 일으켜세워졌다. 누군가 일으켜 세운 듯 했다. 티비를 틀었고, 일본 뉴스에서도 그 사람의 서거 소식이 특종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 후 몇 일 간, 애먼 줄담배만 태웠다. 왜 그런 선택을 하였을까. 친인척 비리가 있다는 검찰의 발표. 그리고 검찰 소환.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 검찰 소환일 뿐이었다. 민주화운동을 거쳐 국회의원 그리고 대통령까지. 독재 시대를 끝내려는 노력과 다음 시대를 새롭게 만들려는 노력을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해왔던 인물. 아마 그는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통감(痛感)했을 것이다. 자신의 집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 바위에 서서 죽음으로써 더럽혀진 명예를 회복하고 살아남아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명예가 무엇인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명예가 무엇인지를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

 

그리고 2016년 지금. ‘명예로운 퇴진이라는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혼란을 막고 안정적인 방법을 찾는다는 그 사람의 사전에는 분명 두 글자가 없다. 나폴레옹의 사전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으로 유명하듯 그 사람에게는 제목으로 적은 이 두 글자, “명예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명예란 무엇일까. 지키고자 한다면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누구의 명예와 누구의 명예가 대립한다면 무엇을 지켜야할까. 국가의 명예와 개인의 명예가 충돌한다면 무엇을 지켜야 할까. 그 사람에게는 지킬 것이 없으니 충돌할 것도 없는 것일까. 하지만 누군가의 명예는 분명 훼손당하고 있다. 다름 아닌 국민이다. 국민의 명예, 국가의 명예 그리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명예는 난자(亂刺)당하고 조리돌림 당하고 있다.

 

---

19세기 프랑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요.”라고 말했다는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와네트. 하지만 사료에서는 그녀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 한다. 오스트리아 출생.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일한 여제이자 전쟁을 통해 자신의 왕위를 지켜낸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외로웠을 것이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했었던 적이었던 프랑스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시집을 가야했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자신의 남편과 함께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성공을 거둔다. 시민들의 명예를 위해, 시민들의 빵을 위해, 시민들의 권리를 위해 두 사람은 명예를 빼앗겼고 그것은 역사로 남았다. 시민혁명의 성공의 역사로, 시민들의 명예가 지켜졌던 첫 시작으로.

 

---

 

지금의 우리, 어떤 명예가 남아있을까. 남아 있다면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그것을 갖지 못한 단 한 사람에게 어떤 책임을 지도록 할 수 있을까. 세대가 변하고 시대가 흘러도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 그동안 살아있는 우리는, 고통스럽더라도 지켜내야 한다. 한 명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기에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멘트 핫도그  (0) 2016.12.03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0) 2016.12.02
명예  (0) 2016.11.30
멈추어 있다기보다 뒤로 가는 느낌  (0) 2016.11.29
절대값 취하기  (1) 2016.11.28
씨발  (0) 2016.11.27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6. 2. 14. 19:33 카테고리 없음

"무엇을 규탄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2016.02.15.



2016년 발렌타인데이의 홍대 거리. 눈발은 조금 날렸지만, 매우 추운 날씨였다. 발렌타인데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홍대는 언제나 그랬던 것인지 사람들이 많다. 한 남자는 오랜만에 나온 홍대 거리에서, 이상한 목걸이를 건 채 서 있다. 목걸이에는 영어로 "ASKME"라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일본어와 영어를 할 수 있다는 뜻으로 '日本語'와 'ENGLISH'가 다소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몇 분을 채 서있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헤메이는 듯한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그러고 있던 중이었다.

무거운 짐가방을 든 중년의 동양 남성이, 한 남자를 향해 다가왔다. 남자는, 자신의 목걸이를 보고 길을 물어볼 것이라 확신했고 역시 중년 남성에게 다가갔다. 영어로, 길을 잃었냐 물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짧은 순간이었지만, 남자의 바로 옆으로 비슷한 연배의 동양 여성이 중국어로 남자에게 묻기 시작했다. 가족인 듯 보였다.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빠른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남자는 중국어가 그리 유창하지 않은 탓에 거의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여성이 가르키고 있는 것이 '찜닭'이라는 것과 그것의 주소가 이화여대 인근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여기서 멀다' 라는 것을 짧은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설명을 했다. 어느샌가 남자 주변에는 한 가족이 모였다. 대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어린아이 세 명과 중년 남성의 어머니로 보이는 노인이 앞서 설명한 중년 남성, 여성과 함께 남자를 둘러쌌다.

'여기서 멉니다. 하지만 같은 음식을 파는 가게라면 이곳에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 가며 남자는 설명했다. 중년 여성은 알아들었는지 알겠다고 한다. 네이버 지도를 찾아보니, '안동찜닭홍대점'이 걸어서 약 5분거리에 있는 걸로 파악이 됐다. 함께 걷기 시작했다. 남자는 아이들과 노인들과의 속도를 맞추어가며 홍대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안동찜닭홍대점은 홍익대 정문의 길을 넘어 있는 곳에 있었고, 남자와 중국인-길을 걸으며 중년 여성에게 어디에서 왔냐 물으니, '다린'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 가족을 만난 곳은 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 가까운 공터였다. 평소 같았으면 5분 정도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발렌타이 탓인지 덕인지 사람들이 많았고 아이가 있었으며, 그들은 짐도 많이 들고 있었고 또 추웠다. 홍대 정문 앞길을 건너려는데, 중년 여성이 아직 멀었는지, 얼마나 걷는지를 중국어로 묻는다. 넉넉히 5분 남았다고 대답했다. 아이들과 중년 남성 그리고 노모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를 보며 꾸준히 따라고 오고 있는 듯 했다. 길을 건넜고, 지도에 표시된 위치에 도착했다.

하지만.

안동찜닭이 보이지 않았다. 지도의 위치는 남자가 서 있는 곳을 가르키고 있었지만 안동찜닭은 없었고, 찜닭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남자는 당황했다. 날씨는 추웠고, 사람들은 많았고 중국인 가족은 분명 지쳐 보였다.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남자는 주변의 가게에 들어가 안동찜닭이 옆 건물에 있지 않았느냐 물었다. 대답은, 한 가게에서는 자신은 모른다 였고 또 다른 가게에서도 역시 잘 모르겠으나, 아마 지금 없다면 문을 닫은 것이 아닌가 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남자는, 미안했다.

남자를 믿고 걸어 왔던 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중국인 가족들은, 가게가 없어졌다는 것을 이해한 듯 내게, 다른 가게에서 다른 음식을 먹을테니 남자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 연신 고맙다라 말해준다. 남자는 자기 탓에 추위에 떤 것이 아닌가 하며, 미안함에 '뚜이부치',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주억거린다. 노모부터 아이들까지 모두 추워보였지만 한 명도 잊지 않고 남자에게 고맙다 말해주며, 안동찜닭홍대점이 사라진 건물의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화가 났다.

첫 번째로 화가 난 대상은, 네이버 지도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네이버였다. 왜 없어진 가게를 지도에 번듯이 올려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이버 지도를 사용하는 사람이 내국인인 한국인이라 할지라도 가게나 빌딩이 없어졌거나 이동했을 때는 알려줘야 아닌가,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모든 가게의 이동을 네이버라는 회사가 확인할 수 없다고 해도, 변경된 사항을 업데이트 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가능하다면 법으로 규정하도록 하고 싶었다. 가게의 위치를 바꾸거나 인터넷에 등록을 해야할 경우, 변경된 위치를 각종 포털이나 지도 등에 알려주는 것을 의무로 만든다면 이런 불상사는 사라질 것이다.

두 번째로 화가 난 대상은, 가게를 옮긴 사람들이었다. 이유야 다들 있겠지만, 손님과의 약속을 함부러 져버린 듯 했다. '지난 번 거기 맛있더라' 라는 생각으로 '거기 다시 가자'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실망 뿐이었을 것이다. 가게를 옮긴 사람들에게 순간 화가 났지만, 이것은 주요한 대상에 대한 주된 화가 아니었다. 사실 첫 번째의 대상이었던 네이버 역시 그렇다.

마지막이자, 진실로 화가 났던 대상은 '이런 현상' 그 자체였다. 최근에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용어로, 유명지가 아니었던 곳이 사람들이 몰리고 유명지가 되면서 그곳의 임대료와 지대가 올라 원래 살던 사람이 떠나게 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홍대는 과거에는 인디음악과 미술 계통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그저 흔한 번화가가 되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몰리니 매장이나 가게가 장사가 잘되고, 자연스레 지대가 오르는 것은 고등학교 한국지리 시간에도 배우는 매우 상식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게 되었을 경우, 상식은 여지 없이 그 범위를 벗어나게 되었다. 홍대에서, '오래된 가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역사와 전통'을 가진 가게는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어떤 아이테이나 유행하는 품목이 있으면 그것으로 손쉽게 변하게 되고, 지대와 임대료는 '권리금' 등의 법으로는 규정되지 않는 암묵적 동의에 의해 운용되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런 현상'은, '너무나 쉽게 모든 것이 돈벌이에 의해 결정되는' 현상, 그 정도일 것이다.

홍대가 정체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남자는 홍대가 가진 자유로운 분위기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실질적 공간으로서 홍대가 유지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번 중국인 가족의 경우가 아니라도, 꽤 많은 외국인들에게 홍대의 길을 안내해주면서, 없어진 가게가 버젓이 관광 책자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보기도 했고 지도를 보고 막상 찾아가도 그 가게가 없어진 것을 몇 번이나 겪기도 했다.

----

한국을 찾은 중국인의 재방문율은 20%, 외국인 전체로 보면 4% 초반대로 조사되고 있다. 한국에 재방문하는 외국인을 늘리기 위해, 비자 문제나 호텔 문제 등 다양한 방면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런 움직임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은, 이런 움직임 역시 외국인을 위한 것이라는 것, 내국인 역시 겪고 있는 문제점을 포괄하지 못한다는데 그 첫번째 부족함이 있다. 서울의 홍대 뿐만 아니라 국내 여러곳에서도 '100년 가게'는 언감생심, 한 세대인 30년을 견디기에도 쉽지 않다. 많은 이유들이 있겟지만, 임대료의 급격한 인상과 퇴직 이후 요식업 개업이라는 일종의 공식 등 경제학적 문제, 사회복지 문제 등과 같이 복합적인 문제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내국인으로서 느끼는 문제점은, 고스란히 외국인도 느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활용해 현재 위치를 찾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찾기도 하지만, 아직도 이미 출판된 책을 들고 위치를 찾고, 가고 싶었던 가게를 마음에 품고 오기도 한다. 특히 일본 관광객이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없어진 가게는 결국 가지 못한 가게가 되어 버린다. 최신의 정보가 결핍된 관광 자료의 경우, 피해는 생계를 유지하는 한국인과 관광이나 여행을 온 외국인 모두가 나눠 갖게 된다.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이다. 급격한 서구화와 도심공동화 현상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지만, 특유의 역동성과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역사적 유적과 또 지역 문화는 세계 어디와도 비교를 거부할 만한 가치가 있다. '세계는 평평해지고' 있고, 의지와 약간의 비용이 있다면 외국은 어느 곳이든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관광객 모두의 마음은, 와보고 싶었던 한국이었을 것이고, 궁금했던 한국일 것이다.

---

오늘 남자는, 마음이 무거웠다.

추운 날씨였고, 아이와 노인까지 있는 중국인 가족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먹지 못했다. 이것 역시 슬픈 요소이기도 했지만 한국에 대한 그들의 인상과는 별도로 우리나라를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해서,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것 자체가 슬펐다. 확실할 수 없는 그 근저에는, 지금도 임대료와 지대와 권리금에 허덕이고 있는 영세 사업자들의 문제와 한국을 좀 더 한국답지 못하게 만드는 문화 역시 일조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한국에 온 모든 이, 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제대로 한국을 즐기고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남자는 바랐고, 이 글을 적고 있는 나도 바랐다. 중국인 가족이 따뜻하고 안전하게 오늘 밤, 그들의 숙소로 돌아갔길 바란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5. 3. 29. 22:21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105


실례합니다. 길을 물어봐도 될까요? 내 옆을 지나던 젊은 무리에게 다가가 영어로 말을 건다. 다들 당황한 듯 보였지만 한 명의 남학생이 선뜻 내게로 다가온다. 어디를 가고 싶다고 하셨죠? 제가 콜센터에 전화를 해볼게요. 내게 들은 호텔의 이름을 콜센터에 묻지만 해결이 되지 않자 직접 내게 영어로 해보라며 전화기를 건넨다. 버스 번호는 다행히 확인했지만 어디서 타는지 알 수 없다. 내게 전화를 건네었던 남학생이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겠단다. 정류장으로 가는 사이 무리는 하나둘씩 떠났다. 정류장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있다며, 상해 토박이라 한다. 아까 무리 중 한 여자를 좋아하지만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그. 이름은 프랭클린이다. 버스가 올 기미가 없자 택시를 태워주겠다며, 상해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란다. 호텔 앞 로비에서 내려 악수를 청하자 포옹을 하자기에, 가벼운 포옹을 나눈다. 우정에 국적은 무의미했다.

'현우의500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우의500자_107  (0) 2015.03.29
현우의500자_106  (0) 2015.03.29
현우의500자_105  (0) 2015.03.29
현우의500자_104  (0) 2015.03.29
현우의500자_103  (0) 2015.03.29
현우의500자_102  (0) 2015.03.29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4. 12. 3. 01:48 내 생각

전통과의 단절 2014.12.02.


칠석(음력 7월 7일)은 챙기는 사람은 구시대적인 사람이 되고, 할로윈데이를 즐기는 사람은 트렌드를 잘 따르는 사람이 되는 시대. 중국은 '문화혁명'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과거와의 단절을 도모했고 그 상흔을 지금까지 품고 있다. 한국은 문화혁명 따위 거창한 이름은 갖지 않으면서도 전통을 단절하는데 어찌 이리도 반색하고 있는지. 문화와 전통의 유지 및 발전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 혁명의 시대  (0) 2014.12.15
또 한 번 실패의 기록  (0) 2014.12.12
전통과의 단절  (0) 2014.12.03
정규직 애가  (0) 2014.11.27
인류 역사 진보와 장애인  (0) 2014.11.20
깃털 한 올  (0) 2014.11.20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4. 8. 21. 02:58 카테고리 없음

샹하이, 샹하이 2014.8.21. 


중국에 온 지 4일쨰가 되는 늦은 밤이다. 18일 오전에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가 채 되기도 전에 나를 중국에 실어다 주었다. 비행기는 2011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그 육중한 날개에 올랐던 기억에서 멈추어 있었으니 3년 만이다. 


매일 중국에서의 내용들을 글로 남기고자 하였으나, 이렇게 늦어지게 된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지금 내가 적고 있는 것은 기록이 아니라 기억이다. 사람이 가진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이라, 기록이라는 형태를 빌어 기억을 보충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늦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피로'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순간에도 피로는, 중국을 흐르는 두 강의 강물을 그 어떤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황해처럼, 나에게 밀려들고 있다. 


어떻게 써야할까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여행이 아닌 탓에 여행기라 이름 붙일 수도 없고 정식 비즈니스 트립도 아니기에 으레 적기 마련인 보고서 형식이 될 수도 없다. 고민을 하여도 내 글이 쉬이 목적에 맞게 바뀔 것같지는 않으니, 내가 느낀 감정이나 생각 등을 간략히 적어 내려가는 것으로 이 하얗고 넓은 여백에 흔적이라도 남기고 한다. 



역시 오늘도 무리일까


현지 시간으로 1시 반, 한국 시간으로는 2시 반이 지나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연희동 내 방 책장에 쌓이는 먼지처럼 나를 괴롭힌다. 그래도 이렇게 자리에 앉은 만큼 강하게 남아 있는 세 가지 생각은 우선 적어놓아야겠다. 


첫 번째, 여기 사람이 있다. 

중국에, 그리고 샹하이에 사람이 있다. 사람이 있다는 정도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있다. 세계 인구의 4분 1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중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하루에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손가락 발가락을 다 동원해서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가족이 있고, 자신의 꿈이 있고 삶이 있다. 사람으로 시작하지만 각자가 다른 모습을 갖고 있는 가족과 그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가 있다. 어미의 품에 꼭 안긴 아기도 있고, 젊은 신혼부부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나이가 들어 자신이 곧 돌아가게 될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노인도 있고 자신보다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도 그 건물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기에 더욱 큰 꿈을 품을 수 있는 청년도 있다. 환한 웃음을 품고 있는 사람도 있고, 수심에 가득찬 모습으로 독해 보이는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고뇌를 희석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운동화를 털어주는 사람도 있고 번듯한 차에 앉아 막힌 도로 위에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도 있다. 


둘째, 매력. 

익숙하지 않은 언어이기도 하거니와 그 말의 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한 중국어를 듣고, 기름에 푹 담겨 있는 야채와 고기가 잔뜩 들어간 중국 음식을 먹고, 세상의 모든 물건을 다 모아 놓은 듯 해보이는 시장에 가서 중국의 공산품을 사서 보니 여기 매력 있다. 굳이 다른 표현을 쓰자면, 중국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뉴스로 접하거나 책으로 접한 중국과는 다른 느낌이다. 마치 고전을 읽는 느낌이다. 100페이지가 넘어가기 전까지 결코 자신이 재밌는 책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 고전과 같다. 중국은 나라 밖에서 보기에는 덩치가 크고 욕심 많은 나라처럼 보였지만 중국에 와서 보니 여기, 꽤 재밌어 보인다. 그리고 찾아보면 더 재밌는 일들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중국의 한 도시이지만, 중국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고 민족이 있고 문화가 있다. 그것들이 궁금해진다. 같은 중국이라 할지라도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곳이 있다고 하니, 그곳은 또 어떨까. 그곳에서는 또 어떤 사람들이 살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고 있을까. 아마도 이 '중국'이라는 고전은 한 권은 아닌 듯 하다. 중국이라는 책'들'을 하나씩 더 읽어내려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셋째, 공장 아닌 시장, 시장 아닌 공장

중국의 과거 명성은, 세계의 공장이었다. 값싼 인건비와 대규모 설비투자가 가능한 지리적 조건 등에 힘 입어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그 지위를 굳혀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공장임과 동시에 시장이다. 시장과 공장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서구 국가들의 위기를 타개해보려는 일종의 중국 소비 진작 전략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중국이 가진 구매력이 어디 까지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구매력과 생산력이 균형을 이루었을 때 그것이 발생시키는 시너지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경제학에서는 생산과 소비를 나누어 설명한다. 생산자의 역할을 기업이 하고 소비자의 역할을 가계가 맡아 담당한다. 하지만 이것이 미시를 넘어 거시, 아니 거시와 미시 경제학의 기준을 나누지 않고 단지 국가 내 생산과 구매의 접접을 구하고자 하는 시도를 한다면 그 대상은 반드시 중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생산력의 하락과 구매력의 상승이 맞물리는 시점 이후 발생하는 특이점과 문제점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중국, 여기가 답이다. 

빈부격차가 심해 여전히 누군가는 생산자로, 아니 오히려 하층계급 노동자로 남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능력 덕인지 부모의 능력 덕인지 태어나 단 한 번도 '생산적'인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동시에 살고 있는 중국. 하지만 노동자가 노동의 가치를 통해 자신의 구매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나라. 여기가 중국이 아닐까. 




공식적인 일정을 시작한 지 3일이 지난 시점이지만, 하루하루 일정 소화와 사람들과의 만남 등으로 하루가 일주일 아니 한달과 같이 느껴지는 매일이다. 그러는 사이에서도 중국은 나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매력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내가 어떤 것을 여기서 얻어 갈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내가 어떤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지 또한 얼핏얼핏 슬쩍슬쩍 보여주기도 한다. 


앞으로의 일정이 다시 궁금해진다. 그리고 사람이 궁금해진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3. 7. 10. 18:08 카테고리 없음

높은 산은 그 뿌리가 깊다. 2013.7.10. 


'지구과학'이라는 과목을 언제 처음 배웠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학교 때였던 것 같기도 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인지도 모른다. 언제 처음 배웠든 지금의 시점에서는 꽤 오래 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당시 교과서나 수업의 내용과는 전혀 관계 없는 '딴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지금에 와서야 글로 남긴다. 



히말라야 산맥에 대해서 배울 때였다. 히말라야 산맥은 판게아 이론에 의해서, 인도 대륙판과 유라시아 대륙판이 만나 형성된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라고 했다.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각층은 아주 미세하고 움직이고 있다고도 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그 단위가 '억' 년의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죽고 난 뒤, 우리의 몸이 땅이 되고 난 뒤 대륙판의 어느 모래 알갱이가 된 이후라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낄 수 없다고는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설명하셨다. 히말라야 산맥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높은 산맥의 모습 그대로 땅 속에 습곡이 형성되어 있다. 그렇기에 히말라야는 매우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중국이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것도 같은 원리가 아닐까. 중국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우리의 국조(國祖)라고 할 수 있는 단군에 관련된 서술도 중국의 역사서에 비추어 그 연대를 계산할 정도이니 중국의 역사는, 역사의 기준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우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 히말라야 산맥처럼 깊은 뿌리를 가진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과 2차세계 대전으로 인해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할지라도, 미국이 국가로서의 역사를 가진지는 채 400년이 되지 않는다. 그 이전의 미국 원주민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으니, 역사의 단절을 통해 국가의 건국을 설명하는 미국은 역사성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 미국의 패권이 흔들린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유럽 역시 같을 것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역사를 오롯이 지금의 이탈리아가 갖고 있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카이사르가 정복했던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정복을 하기 보다 현지 사람들에게 자치를 허락하고 로마의 관리 아래로 들어 오도록 했던 게르만(지금의 독일), 그리고 카이사르가 그 땅을 밟은 이후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일컫어지는 브리타니카(영국),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럽 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부터 시작하여, 이집트까지.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긴 역사를 가진 국가들은, 지금 자신의 높은 산맥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국이 발전할 것이라는 것을, 히말라야 산맥을 배우면서 생각했던 나는, 거기서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시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단군 이래로 한반도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에서 한(韓)민족으로서의 역사를 일구어왔다. 고조선이 있었고, 고대 삼국이 있었다. 그리고 남북국시대에 이르러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던 신라와 대조영의 발해, 다시 후삼국 시대로 접어들지만 다시 통일의 기틀을 이루었던 고려와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역사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조선까지.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나라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모습도 큰 산맥이 아닐까. 지반이 허약해 언제 산사태가 일어날지 모르는 산맥이 아니라, 하늘과 같은 높은 높이로 우뚝 서있는 그런 산맥이 아닐까. 지금 대한민국이 가진 세계적 위상은 비대칭적인 형상을 가진 산맥으로 보여질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도 깊은 뿌리가 있는, 장구한 역사가 있는 나라이기에 그 본연의 모습은 언젠가 다시 드러날 것임을 믿음에 의심의 공간은 없는 것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 듯 했다. 히말라야 산맥을 통해서 역사를 알려주는 듯 했고, 산에서 쉽게 보이는 고사리를 통해서 백악기 시대 공룡의 발자국을 알려주었다. 깎아내리는 듯 한 절벽에서 지구를 덮을 만큼의 많은 물이 있었던 시절을 알려주어 자연의 무서움 또한 알게 해주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히말라야 산맥을 처음 배울 때, 역사라는 것이 그 나라를 지탱하는 깊은 뿌리가 되고, 또 그것을 잊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움츠리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작아진 것은 아니다. 언젠가 몸을 활짝 피는 날이 오면, 같이 어깨동무 하고 평화를 위해서,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힘써 나갈 수 있는 당당한 구성원이 될 수 있기를, 역사와 히말라야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바래본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묄새. 용비어천가의 이 구절은, 결국 우리에게 나무라는 자연을 통해서라도, 역사를 꼭 알아야 함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