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건물을 지어라.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에 대한 계획 내지 확신을 가지게 된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한 채의 건물을 짓는 것과 유사한 것이라 생각한다. 지구는 둥글다고 하지만 지구 위에는 분명 높은 산이 있을 수 있고, 낮은 계곡이 있을 수도 있으며, 넓은 대륙이 있는 반면, 아주 작은 섬도 있다. 이러한 기반의 높고 낮음의 차이, 그리고 바다에 둘러 쌓여 있는지 아니면 육지인지의 차이, 더 세부적으로는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지반이 무른지 아니면 견고한 지반을 가지고 있는지 등은 자신이 정하지 못하는 선천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는 언덕의 낮은 곳,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 건물을 지어야만 하는 입장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언덕의 높은 곳이나 햇빛이 잘 드는 곳, 곡식이 잘 자라는 곳 그리고 지반이 단단한 곳에서 건물을 짓는 것에 대해서 마냥 부러워만 한다. 자신은 그 지반이 약하고 낮으며, 빛과 물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곳에서 있으면서 초막이나 움막 하나만을 지어놓은 채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덕 위를 바라보면서 ‘나는 왜 저런 곳에 건물을 짓지 못할까?’하면서 부러워함과 동시에 ‘세상은 불공평해’ 하면서 끝도 없는 불만을 키워나가고만 있다. 하지만 몇몇의 위대한 인간들은 자신의 좋지 못한 환경에서도 그 한계를 이겨내고 높고 웅장한 건물을 지어 올린다. 위대한 인간들은 다른 이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데 그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이러한 노력은 무른 땅을 마른 땅으로, 햋볕이 들지 않는 곳에 있었던 높이의 건물을 많은 햇볕을 받을 수 있는 높은 건물로 바꾸었고, 사람 한 명 들르지 않았던 어두운 곳을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방문하게끔 하는 성과를 형성시켜 나갔던 것이다. 선천적인 차이, 혹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이나 재능의 차이에 대해서 인정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관해서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지나가야 하는 것은, 낮은 곳, 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자재와 건축 기술은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기적인 욕망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높은 건물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들 스스로를 섬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자재’의 공정한 분배와 ‘건축 기술’의 수평적 확산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정해야 하는, 마치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 어떤 특권이나 거래는 허용되지 않는 것과 같은 공리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 세우고 있는 건물은 우리의 이름을 걸고 세우는 건물이다. 한 해의 계절도 견뎌내지 못하는 건물을 매년 새롭게 세우는 노력을 하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튼튼한 기초 공사와 철저한 설계, 그리고 그 설계에 맞는 좋은 자제와 건축기술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겉이 번지르르한 건물에 사람들이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건물에서 사람들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건물은 외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물이 외로울 진대 그 건물의 주인이 외롭지 않을 수는 없다.
외모에 대한 중요성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세 단계를 착실히 진행해 온 건설업자라면 그 건물의 외양에 대한 것에 대해서도 철저한 인식과 훌륭한 설계 그리고 좋은 자재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내 외모 중에 어느 부분이 아름다우며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콤플렉스를 가지며 또, 장점을 드러냄과 동시에 단점을 보완하는 설계를 하였을 것이며, 남들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 되기 위해 운동이나 체력 관리 등을 해왔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 사람의 외모는 남들과는 다른, 개성을 충분히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거부함과 동시에 그 건물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예상이 되는 그런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외양을 만드는 것, 자신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설계, 그리고 설계에 맞는 노력이 수반되어야만이 자신만의 건물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건물들은 다채롭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한 건물들 하나하나가 우리 동네, 우리 지역을 넘어 세계를 아름답게 할 것이다.
외양 뿐만 아니리 내부의 인테리어 역시도 매우 중요하다. 건물의 내부에는 여러 방들이 있다. 이러한 방 하나하나에 그 건물 주인의 모습이 드러난다. 거실에 음악이 흐르는지, 흐르지 않는지, 흐른다면 어떤 음악이 흐르며 흐르지 않는다면 음악이 아닌, 다른 소리(예를 들면, 새소리 혹은 비명소리)가 들리는지, 하나의 방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들을 수 있으며 또 다른 방에서는 어떤 요리가 준비되어 있는지. 내부의 방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모습들이 있을 수 있기에 ‘중요성’만 언급하고자 한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설계도면을 그릴 때, 그 내부의 구조 역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물 짓다보면 되겠지’ 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이다. ‘살아보면 알겠지’, ‘나이가 들면 알겠지’ 라는 생각들이 우리가 실수를 하게 되는 대표적인 설계도면에 적힌 문구이다. 시간이 지나도 모르는 것은 많다. 살아가면서 기성세대들을 만나게 되는데, 기성세대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눠진다. 무엇인가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것은 그 역시도 노력을 통해서 얻은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간’은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줄 뿐이지 우리에게 ‘지식’을 선물해주지는 않는다.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서 내부의 방은 달라질 것이다. ‘독서’는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임을 언급하고자 한다.
자신의 건물을 지어라.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건물을 가지고 있다. 현실의 공간산은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의 공간에서는 매년 매월 매시간 새로운 건물들이 태어나고, 완성을 했든 하지 못했든 많은 건물들이 부수어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건물을 짓고 있는 과정에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떤 건물을 지을 것인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언급했던 것들,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과 이루고자 하는 꿈을 지켜주는 건물의 설계도를 그리는 것, 좋은 자재를 구하고 적절한 건축기술을 익히는 것 그리고 외양과 내부의 조화를 이루는 것 등을 이루는 주체는 모두 우리 스스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혹시 자신이 지금 설계도 없이 자신의 건물을 짓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지금 그 건물 밖으로 나와 무엇이 문제인지 한번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고 했을 때,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건물의 위치가 낮으면 낮을수록, 그 건물을 부수고 다시 세울 수 있으므로 한번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손에 망치를 들려봄은 어떨까 한다.
우리는 자신의 건물을 짓고 있다. 지금도 그 건물은 세워져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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