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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새벽에 토해낸 토사문

2015.09.01. 


새로운 달력을 펼치는 심정이야 기대와 후회가 동시에 밀려드는 어떤 것인 줄 알면서도, 또 한 장 넘겨보게 된다. 감정이 없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하고도 숭고한 행위란 시간을 기다리는 것 뿐 아니겠는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이야기 속에는 그 시간 속의 부단한 사건들을 징검다리 정도로만 치부시켜 버리는 데에 반감이 들어,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 따위 지금 해결해 버리고 말겠어 라며 몽니 부려 보지만 어찌 됐든 기다리는 것은 시간 뿐인 듯 하다. 


감정이 없는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결국 감정이 없는 일이다. 음식물 쓰레기에서 흘러 나오는 침출수라도, 그것이 자신의 감정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면 반갑지 않을까 하면서도 이왕 나오는 것이라면 누구나 마시고 싶어 하는 1등급 청정수였으면 하는 바람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나오는 것이라곤 사하라 사막 위에 뿌려진, 아프리카 부족의 독특한 술 뿐이다. 이 술은 기우제를 지내는데 사용될 뿐 아니라 사막을 지키고 있는 선인장이 취하고 또 취해 여기가 사막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되는 용도로도 기능하니, 기특하지 아니한가. 아니, 사막이란 말이다. 비 한 방울 흘러 내리지 않고 물 줄기 하나 찾기 힘든 사막과 같은 감정을 지닌 인간들이, 결국 품고 가진 것은 가시 가득한 선인장 뿐인 것이다. 


오아시스가 있을 것이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대지만, 그 오아시스에 담겨 있는 물이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는 알아볼 생각조차 않은 사람들. 이들을 탓하거나 힐난할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뭄! 가뭄! 가뭄의 해갈에 무엇이든 도움이 될 것을 건드려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이 두서 없는 글도 침출수 향기를 풀풀 풍기며 적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황과 이이가 논쟁했다던, 사단칠정 까지 가지도 않을 듯 하고 스피노자는 뭐한다고 그리고 많은 감정을 분류해 놓았는지, 48가지나 되는 감정 그 중 하나라도 제대로 느껴 본 적 있다면 수원지라도 찾은 것은 아닐까 하고 기대 반 우려 반을 해보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란 가죽 안에 뼈나 내장이나 뇌나 피나 이리저리 많은 것을 진화론으로 주어 담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뇌가 하는 것이라곤 고작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믿고 싶은 합리성을 제공할 뿐, 이 아이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를 바에야 결국 감정 하나 믿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오노노노, 감정이 최고다! 라고 할 이야기는 아니지. 왜 감정감정 이야기를 하는지, 좀 더 적어야 이 글이 유서가 됐든 자기소개서가 됐든 뭐라도 의미가 생기겠군.


감정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 뿐인 상황에서, 그래. 네 말이 옳아. 무조건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 라고 말하는 대신, 감정을 가져, 지금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슬프면 울고 웃기면 웃어 라고 말해주는 것이 더욱 낫지 않을까. 


참는다고 참을 수 없는 것이 감정일 터인데, 우리가 배운 것이 이성은 뛰어난 것이고 감정은 숨기고 그것을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거나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따위의 비난 아닌 예의를 익혀왔던 결과일런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문제였든, 사하라 사막의 부족이 뿌린 술 냄새 말고 사막에서도 꽃 피울 수 있도록 그 씨앗이 바나나 나무든 악마의 꽃이든 뭐든 피어낼 수 있도록 그 밑에 감정의 계곡을 흐르게 할 필요가 있다. 뭐 이런 이야기가 하고 싶었지. 


새로운 달력을 마주하면서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노래를 흥얼거리며 몇 일 일을 할까 생각하기 보다 그 검고 붉은 숫자들 안에 겪을 감정들을 쏘옥쏘옥 담아 보면 달력이 춤을 추고 하루가 노래를 부르고 일 년이 악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금 해보았다.


어쨋든 나는 글 쓰는 연습을 좀 더 해야겠다. 누구한테 하는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독백처럼 너절이는데.. 너무 재밌어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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