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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러브레터”를 보고. 2012.3.18. 권현우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몇 년 만일까. 영화 러브레터를 본지.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가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토요일에 학교를 마치면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특별한 이유 없이 영화를 한 편씩 빌려보곤 하던 때였다. 일본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지식이라곤 국사교과서에 실려 있는 식민지에 대한 내용이거나 우리나라의 광복에 대한 내용, 혹은 내가 처음 제대로 읽은 책인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조선총독부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러던 중, ‘러브레터라는 제목의 영화는 무엇인가 나를 이끌었던 것 같다. ‘일본이라는 것이 가지는 이전의 생각을 넘어, 단지 러브레터라는 네 글자만으로 내게 짧은 여운을 남겨 주었다.

러브레터라는 제목이 찍혀 있는 검은 비디오 테이프를 자전거 뒤에 꽁꽁 싸매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전에 살던 집 건너편에 있었던 비디오 대여점은, 지금은 근처 초등학생들이 즐겨 찾는 분식집으로 변했다, 중학교 3학년이 시작할 즈음에 이사 온 아파트에서 자전거를 타고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비디오를 보기 위한 준비를 했다. 집의 커튼을 다 치고 텔레비전에 비디오를 연결했다. 매주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매번 브라운관 텔레비전의 뒷부분에 비디오 연결 잭을 꼽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나만의 영화관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의 영화였지만, 중학교 3학년의 어린 시절의 나, 나의 감성에는 많은 여운을 남겼다. 그 당시에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고,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는 감정은 초등학교 6학년 당시 처음으로 했던 짝사랑의 대상이 되었던 여자아이의 집 앞을 중학교 시절 내내 일요일 마다 찾아가서, 앨범 뒤에 적힌 집 전화번호에 공중전화를 해서 항상 그 여자아이의 할머니가 받았을 때의, 그 감정이 아닐까 하는 정도의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것마저도 가슴 떨리고, 수화기 너머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면 놀라 전화를 끊어버리는 그런 시절이었다.

러브레터”, 추억이 담긴 영화였지만 다시 이 영화를 보는 것은 항상 두려웠다. 중학교 3학년의 추억을 이 영화와 함께 했기에 만약 내가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이 영화를 본다면 그 때의 그 감정이, 마치 영화의 엔딩처럼 한명한명 이름을 기억하려 하지만 아무도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 영화를 오늘 다시 보았다.

왜냐고 묻는다면, 중학교 3학년의 내가 보고 싶다고 지금의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왔다고 대답할 것이다. 12년 전의 나, 16살의 내가 28살의 나에게 러브레터를 보낸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변하지 않는 영화에 비해서 내가 많이 변했고,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장면이 더욱 세부적으로 다가왔으며, 기억은 영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때의 나는 죽은 남자주인공을 이해했다면, 지금은 살아 있는 여자주인공옆에 있는 남자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중학교 3학년 당시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내 코 끝을 간질이던 그 냄새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 사뭇 새롭다.

오겡끼데스까.” 직역하면 건강하세요?’라는 말이고, 의역하면 잘 지내나요?’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잘 지내나요. 더 이상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는 그대 잘 지내나요. 영화에서도 대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산 메아리는 다시 대답해준다. 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내요.

지금 내가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것은,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투철한 역사의식도, 같은 지역에 있는 이웃 국가라서도 아니고, 이 영화 러브레터덕분이다. 이 영화를 보고 일본어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 영화가 없었더라면, 나에게 일본은 여전히 상투적인 가깝지만 먼나라로 남았을지 모르고, 2009년의 일 년, 일본에서의 교환학생은 상상조차도 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다르게 다가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방의 모든 커튼은 내려져 있고 나만의 영화관에 있는 것은 다르지 않지만, 고등학교를 가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던, 볼 빨간 권현우와 외무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손 하얀 권현우는 다르다. 하지만 더욱 더 다른 것은 영화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라 하겠다. 예전에는 몰랐다. 아니, 알긴 알았지만 그때의 내가 알던 영화와 지금의 내가 본 영화는 다른 영화라 하는 것이 옳겠다.

러브레터”, 써 본 적은 없다. 내 기억으로는 없다. 받은 기억도 없으며 준 기억도 없다. 하지만 러브레터는 기억에 남아 있다.

고등학교 시절, 도서부원이었다.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있었지만, 나도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 뒤에 서서 책을 읽고 싶었고,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을 찾아서 내 이름을 적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했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러브레터를 찍고 있다. 도서관에서 아무도 빌려 볼 것 같지 않은 책을 빌려, 도서카드를 뒤적거리기도 하고 혼자 창가에 앉아 서 있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고향의 시립도서관이든, 학교의 도서관이든 이제 책을 빌려도 도서 카드에 이름을 적어주지 않고 붉은 색 선으로 책을 인식하고, 나에게는 흰색 종이를 내뱉는 것으로 을 빌려주는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누가 그 책을 빌렸는지도 모르게 되었고, 그 사람의 이름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분명히 나는, 처음 도서 전자인식 시스템을 알게 된 날, 내 마음 속의 파르테논 신전의 한 기둥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카지마 미호. 나는 영화 속의 나카지마 미호가 좋았다. 나카지마 미호에서 히로스에 쿄코로, 히로스에 료코에서 우에노 주리로, 우에노 주리에서 미야자키 아오이로, 미야자키 아오이에서 아오이 유우로, 아오이 유우에서 사와지리 에리카로, 사와지리 에리카에서 여전히 히로스에 료코로. 내가 좋아하는 일본 여자 배우들은 변했지만 그 시작은 나카지마 미호였다.

안타깝게도 작년 여름의 유럽 여행에서 피렌체에서 잊지 못할 아시아인 여자는 히로스에 료코와 닮았었다. 잊을 수 없다. 나카지마 미호에게 괜시리 미안하다.

그리고 이와이 슌지 감독의 감성에서 이누도 잇신 감독의 감성으로 옮겨 갔다.

이제 글을 정리하면서, 나도 가끔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가 있다. 물론 내가 쓰는 영화 시나리오는 그 어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내 머리 속의 영화를 글로 옮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이와이 슌지 감독이나 이누도 잇신 감독이 만든 영화와 같은 영화를 꼭 한 편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23.5도 기울어져 있는 지구를, 23도로 바꾸어 놓은 것 같은, 아주 미세한 차이이지만, 상상할 수도 없이 큰 변화를 야기하는 그런 영화를 꼭 한번 찍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한다.

러브레터”,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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