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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이야기를 할 때에는. 2012.8.15.

이야기를 할 때에는. 2012.8.15.

 

이야기를 할 때에는 되도록 집중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려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못하는 순간들이 매번 찾아오곤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주제와 하고 싶은 주제는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다양한 전개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흔히들 다른 이와 이야기를 할 때 공통된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과 상호간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들 한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이 만나서 각자가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또 심지어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그 만남을 끝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저 일리가 있다는 이야기에 부정의 뉘앙스를 더하고 싶다. ‘부정한다라고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은 나 역시도 많은 이야기를 상대방의 의향과 그의 관심사에 맞추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러한 시간들이 나에게 많은 의미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의 뉘앙스라도 더하고 싶은 이유는, 범부의 이야기에 나름의 의미를 더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젊은이라고 불리는 나로서는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걱정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도 않고 또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심정적 동요나 그를 위한 유서를 써야하겠다는 마음은 전혀 먹지 않은 채, 마치 내게 남은 시간이 영원이라도 되는 것 마냥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거짓이다. 나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을지 내가 어떤 삶의 과정 속에서 감은 두 눈을 다시 뜨지 못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가 가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한정된 시간에서 우리가 다른 이를 만나는 것은 분명 큰 일 임에 틀림이 없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가진 빵의 크기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그 빵을 먹게 되면, 남아 있는 빵이 이전에 먹었던 빵보다 더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빵이 자신의 일생에 남겨진 마지막 빵이라면 더욱 그 의미는 확대될 것이다. 다른 이를 만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거나, 같이 하늘을 보고 있거나, 손을 잡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나름의 의미는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상대방과 무엇인가 대화를 나눠야 할 것이고 그 대화의 주제가 중요한 것은, 남겨진 빵과 같이 서로에게 소중한 무엇을 먹어 치워 나가는 것의 그 즐거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제안하는 것이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서로가 무엇을 알고 있고 그리고 알고 있지 못한 지에 대해서 일단 서로 묻는 것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도, 그리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전혀 모른 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의외의 것에서 공통된 관심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역시 기쁜 마음을 갖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각자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것 역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기술적으로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라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이야기하게 될 것이고, 잘 모르는 분야나 생소한 분야 혹은 알고 싶지만 알 수 없었던 분야가 있다면 피하게 되거나 혹은 질문하게 될 것이다. 이때 내가 제안하는 대화가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탐색 과정이 마무리 되면 우리는 서로가 몰랐던 분야에 대해서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것이고 그 설명의 과정과 이어지는 질문의 과정 등으로 우리는 그 대화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제안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전문적인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기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최근에 있었던 재밌었던 이야기나 즐거운 이야기, 혹은 어딘가로 여행을 가게 된다는 등, 그것도 아니면 정치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숨을 쉬기도 한다. 이런 대화가 우리가 하는 일상적인 대화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하루하루 반복되는 대화에 싫증을 느꼈거나 아니면 어떤 이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내가 이 사람을 만나서 보낸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았을 때 긍정보다 부정의 표정을 짓고 있다면, 내가 한 제안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한번 시도라도 해 본다면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던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상대방 역시 당신으로부터 새로운 향기를 맡게 되어 당신 둘의 관계는 더욱 돈독하게 되거나, 아니면 더욱 전문적인 관계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카페에 앉아서 가만히 책을 읽는 척 하면서 주위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무엇인가 서로에게 아쉬움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쉬움이란 상대방과의 친밀함은 함께 보낸 많은 시간을 보낸 덕에 느끼고 있지만, 이 사람이 알고 있고 또 내가 알아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대응해 아마 오늘도 이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확신하기에 드는 아쉬움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 권의 책을 쓴다. 물리적인 의미의 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게 된 직후부터 시작하는 우리의 책 첫장은 이미 넘겨져 있고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운 내용의 책을 쓰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본인이겠지만 그 책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이동하게 될지는 단지 당신에게만 달려있지 않다. 당신과 당신이 만나는 누군가가 함께 그 책의 방향은 결정될 것이며 그에 대한 편집권은 사실 당신에게 있다.

당신이 만나는 누군가는 한 명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왔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는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그 변하지 않는 사실 속에 우리의 삶은, 우리의 책은 변할 수 있으리라는 것 역시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내 제안을 한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당신과 만나는 사람은 소중하니, 서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도록 하세요.”

불교 용어로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들 쓰는 말 중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때 옷깃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옷깃이 아니다.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도록 한 부분이라고 국어사전은 친절히도 우리가 알고 있는 옷깃이 잘못된 위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옷깃을 스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옷깃을 스치기 위해서는 서로가 꽤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이나 토르소를 맞대고 있어야만 한다.

얼굴이나 상체를 가까이 맞대는 것들 중 가장 일상적인 것은 이야기가 아닐까. 옷깃은 스칠지 스치지 않을지 모르지만 서로에게 좋은 인연이 되도록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욱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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