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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한시_38 ‪#‎오늘한시‬ _38 애절애(哀絶愛) 한 사내 나무를 뽑는다 삼각삽 푸욱 흙에 쑤셔 넣어 발로 그 대가리 쳐밟고서 깊이까지 들어갈 수 있게 그의 무게 싣는다 손잡이 배에 걸치곤 아래 눌러 들어 올린 흙 위 나무 뿌리 허옇게 드러난다 알싸한 흙향 사내의 코 끝에 물방울 맺게 하고 기껏 키운 나무다 척박한 땅 일구어 키워낸 나무다 열매를 맺기 전 더 뿌리가 깊게 박히기 전 캐 버리는 사내 손 부들바들 삽 끝 흙 위 생채기 난 나무 뿌리에서 붉은 수액 흐른다 품을 수 없는 것 키워봐야 뭐할거냐 세울 수 없는 것 일으켜봐야 뭐할거냐 높다리 자란 모습 볼 수 없을 바에야 자라다 자라다 같은 모습 될 바에야 뿌리 채 뽑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잘라버린다 그 것 잘라버린다 그 아이사랑형제자매 모두 토막내 잘라버린 .. 더보기
현우의500자_122 ‪#‎현우의500자‬ _122 비를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 서울에 오게 된 것은, 아버지의 출장을 따라 나선 것이 계기였다. 고향인 경남 마산에서 서울까지는 지금도 4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거리다. 이도 차가 막히지 않았을 경우다. 조수석에 타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 가는 설렘도 갖기 전 비가 억수 같이 내렸다. 비가 온 탓인지, 왜인지 모르게 고속도로는 막힐대로 막혔다. 시간을 계산하는 것도 포기할 무렵, 잠이 든 채 나는 서울에 왔다. 고속도로 위에서 화물차를 운전하는 아저씨께서 창문 너머로 건네주신 과자는 이미 남아있지 않았다. 서울에 대한 설렘을 깨끗이 씻어 내렸던 비가, 참 싫었다. 지금은, 비가 좋다. 특히 지금 글을 적고 있는 오늘 같이 봄비가 많이 내리면 올해 모내기는 잘되겠구나, 하는 농부.. 더보기
현우의500자_121 ‪#‎현우의500자‬ _121 생각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어디선가 들은 것이거나 읽은 것에서 벗어나 자기자신만의 생각을 구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이전의 나는, 생각이란 누구나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다 보면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또 논쟁이 붙거나 토론이 형성되었을 때, 내가 말했던 내용은 사실상 내 생각이 아니라 유명학자나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은 내용들을 내 입과 시간을 빌어 전하는 것 뿐이었다. 누군가의 생각을 읊는 것과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갖고 그것을 밝히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표절과 창작이 가지는 사회적 입장과 유사하다. 바쁘게 보내게 되는 일상 속에서든, 오롯이 자신만을 바라볼 수 있는 자유의 시공간 속에서든 자신만의 생각을 갖는 것이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