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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6.12.03 시멘트 핫도그
  2. 2015.03.11 2015년 3월 11일
  3. 2014.12.24 2014년 정리
  4. 2014.07.27 유병언 단상
  5. 2014.05.16 스킨스쿠바
  6. 2014.05.13 자력구제(self-help)
2016. 12. 3. 11:02 내 생각

‘시멘트 핫도그’ 20161203

 


2009 1,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위앙짠)의 근교, 어느 한 초등학교에서 2주간의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 유스클립(Youth CLIP)이라는 대학생국제교류단체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였고, 보건복지부의 후원으로 진행하게 된 봉사활동이었다. 2주간 내가 맡았던 업무는 다름 아닌 도서관 짓기였다. 그곳의 초등학교는 교사(校舍)와 화장실 건물만이 있는 곳이었기에 도서관을 세울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당시 현지에서 활동중이던 시민단체로부터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라오스에 가기 이전까지 내가 손에 벽돌을 잡아본 적은, 2006년 아동양육시설에서 공익근무를 할당시 식당을 증축할 때 뿐이었으므로 완전 초짜였다. 현지의 인부-라고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지역 주민들이었다와 협력하며 도서관의 바닥이 될 곳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학교의 정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널찍한 공간이 형성된 뒤, 본격적으로 벽돌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평소 한국에서 길을 걷다가 집이나 건물을 새로 짓는 공사장을 지나가며 보았던 대로, 현지 인부들이 쌓아놓은 벽돌 첫 줄 위에 잘 게운 시멘트를 얇게 발랐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벽돌 줄을 만들기 위해 벽돌을 올려놓는 일이 반복되었다. 집중해서 몇 장 째 올리고 있었는데, 현지인 인부이자 2주간 봉사활동 끝에 친구가 된 뎅(빨갛다는 의미의 이름)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손사래를 쳤다. 뎅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라는 건 확실했다. 이어 뎅은, 자신이 들고 있던 망치로 내가 쌓아 올린 벽돌을 가볍게 툭 하고 쳤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하며 놀라기도 전에 벽돌은 힘없이 툭 하고 쓰러졌다. 나는 당황했다. 분명 벽돌은 세워져 있는 듯 보였다. 몇 장의 벽돌이 아주 보기 좋게 줄지어 서 있었고, 그것은 내가 익히 보던 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뎅은, 그렇게 해서는 벽돌이 제대로 붙어있지 못한다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 잘 게운 시멘트를 한 움큼, 손에 들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판자에 덜어내더니 그것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꽤 두꺼운 핫도그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세워져 있던 벽돌 위에 툭 하고 올려놓았다. 그럼 벽돌 위로 핫도그 모양의 시멘트 덩어리의 반 정도가 드러나 보였다. 나머지 반은 아래 벽돌과 접착되어 있었다. 드러난 반 정도의 시멘트 핫도그 위에 새 벽돌을 올리자 새 벽돌의 무게에 의해 시멘트 핫도그는 납작 눌려졌고, 벽돌과 벽돌 사이에 시멘트들이 삐죽하며 묻어 나왔다. 그것을 시멘트 칼로 긁어내자, 그때야 비로소 내가 흔히 보던 모습의 벽이 드러났다. 이어 뎅은 다시 망치를 들어, 처음에 내가 세웠던 벽돌을 넘어뜨리던 강도와 비슷해 보이는 강도로 그 벽돌을 툭 하고 쳤다. 벽돌은 움직이지 않았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 시멘트가 잘 접착되어 있었기에 벽돌은 큰 흔들림이 없었다.

 

방법을 알게 된 나는, 2주간의 시간 동안 벽돌 쌓기에 나름의 조예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실제 공사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우스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여타 봉사자들보다는 빠르고 바르게 벽돌을 쌓아 올렸다는 것은 확실했다. 덕분에 내 손과 얼굴은 거칠어져 갔지만 말이다.

 

라오스에 가기 전까지 벽을 보면, 보기만 좋은 그 평평한 모습만 생각했다. 벽돌은 아주 얇게 바른 시멘트로도 충분히 붙어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벽돌을 서로 붙이기 위해서는 보이는 양보다 보이지 않는 꽤 많은 양의 시멘트가 필요했다. 그것들이 끈끈히 붙어 무너지지 않는 벽이 되었고, 건물이 되었고 라오스에서는 도서관이 되었다.


 


우리 사회도 그렇다. 어떻게 이 사회가 유지되고 있을까 생각을 해보면, 겉으로 보면 별다른 것 없이 멀끔해 보이지만 사람들 사이 사이에도, 제도 사이 사이에도 두꺼운 핫도그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 그것이 개인 간에는 사랑일 수도 있고 가족 안에서는 책임감과 존경일 수도 있고, 사회 전체로 보면 법과 제도든지, 민주주의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겉에서 볼 때는 어떻게 지탱되고 유지되는지 궁금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떤 시련이나 고난이 닥치면 결국 이런 끈적임과 접착력이 그것을 지켜준다. 사랑, 가족애, 책임과 의무, 민주주의라고 했지만 그것들 결국 하나로 묶으면 연대(連帶)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아껴 여기고, 누구 하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함께 손을 잡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무너지려 할 때 힘을 모아 버틸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주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시멘트 핫도그가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겉모습에 신경을 써온 듯 했다. 겉으로 멀끔하면 되니, 부실공사를 한 탓에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붕괴했고, 씨랜드에서는 유치원생과 선생님을 포함한 2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세월호가 가라앉으며 사망자 295명과 실종자 9명이 발생한 것이다. 겉보기에 배는 바다에 침몰하지 않을 듯 보였다. 바다에 빠지더라도 나라가 승객들을 구해낼 것이라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어 사회적 연대는 원활히 진행되지도 않았다. 불필요한 색깔 논쟁과 유가족을 비난하는 글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법적인 책임만이라도 제대로 묻길 바랐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다시 말해 벽 안에 끈끈히 묻어 있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그것은 건물 하나를 짓기 위해 필요한 시멘트 핫도그 보다 더욱 중요하다.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공교롭게도 우리는 사회적 연대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가 누구를 지킬 것인가. 누가 국가를 지킬 것인가. 지킬 것은 자기 자신 뿐인 세상에 살고자 하는가,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가. 산업화가 주었던 사회적 연대 배고픔과 민주화가 주었던 사회적 연대 민주주의를 넘어 무엇을 사회적 연대의 목적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해 보인다.

 

일을 마치고 난 뒤 뎅과 술을 마시면, 우리는 서로를 격려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가 느꼈던 연대감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난 뒤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애국심 따위가 아니라 우리 친구의 이야기이며,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며, 우리보다 먼저 더 나은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이 남긴 이야기들이다. 더 튼튼한 벽을 세울 것이다.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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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1. 22:32 내 생각

2015년 3월 11일 - 2014.03.11. 


오늘은 일본에서 쓰나미가 일어난 지 4년이 되는 날이다. 그와 더불어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 날이기도 하다. 형의 큰 아들, 즉 나의 조카의 생일이다. 불교적 전통을 가진 우리 가족은 음력 생일을 쇠지만, 나는 큰 조카의 생일을 양력으로 기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이 일으킨 천재지변으로 죽은 날, 우리집은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날이다. 4년 전에 일본 열도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죄를 지은 것이 없다. 죽은 이들 중에 범죄자나 살인자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그런 죽음을 당해야만 하는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죄를 짓지 않았지만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부모의 사랑 덕에 태어난 조카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삶이란 죽음을 담보하는 과정 중 하나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사는 그 순간부터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선택할 수 있도록 삶을 운영할 뿐이다. 자살을 꿈꾸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자신의 목숨을 내맡긴 곳에서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을 기대하고 있지 않는다.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태어나 사랑하는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평화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죽기를 바라는 것, 이것은 문명이 이룩해낸 성과이다. 불과 물을 다룰 수 없었던 시기, 많은 인류의 원조들은 야생 동물들의 먹이감이 되는 불상사를 당했거나 치수(治水)에 실패한 탓에 여름이면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야만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랑이라는 가치가, 일반화되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최소의 단위가 가족(최근에는 개인이 되고 있긴 하지만)이다. 삶과 죽음이란 결국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우리 인류는, 가족과 괴리된-사랑과 괴리된 탄생과 죽음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2011311일은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진 날이다. 그들이 그런 상황에 빠졌던 것은, 단지 자연재해가 일어날 곳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 뿐이다. 그리고 우리 조카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그것 뿐이다. 삶과 죽음이란 어찌 보면 운, 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누구의 아들딸로 태어날 것인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운의 한 측면을 갖고 있다면, 죽음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 관리나 인생을 통해 운영되어온 삶의 원리가 타락이 아니라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더이상 현대는 죽음조차도 운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할 듯하다. 어떤 죽음을 구할 것인지에 대해서 선택의 권리는 박탈되었다. 박탈된 선택권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그 권리를 찾아오겠다 의지를 불지르게 만들었다. 자살이 그 하나의 방법이며, 안락사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되짚어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의 진실이, 지구가 자신을 지키는 원리라 하여도, 이미 생겨버린 측은지심, 가족의 사랑 속에서의 탄생과 죽음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사례가 아니라 한국의 사례만 하여도 무수한 사례를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 죽음에 대한 측은지심이 정치에 의해 훼손되고 정치화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훼손된 측은성은, 그것을 없애고자 하는 정치세력에 의해 더욱 강한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사랑이라는 가치에 눈을 떠 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든, 국가가 해야할 일은 국민 개개인이 그 가족의 사랑 속에서 태어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호막을 쳐 주어야 할 것이며, 또한 그 개개개인이 고통 속이 아니라 사랑 속에서 얼굴에 흰 천을 덮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데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데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일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나, 객사하는 사람을 두고 앞뒤없이 너의 책임이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충생신고와 사망신고를 받는 행정의 원칙과 젊은이들의 젊음을 담보로 내맡겨진 안보의 원리 역시 '가족의 사랑 안에서의 탄생과 죽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만나지 못하는 이를 위한 보호이며, 단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당할 수 있는 이의 수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2011311일 일본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 날 나의 조카가 태어났다.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은 416일의 세월호 사건 당일 어딘가의 나라, 어딘가의 가족 안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차가운 철제 배 안에서 많은,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누구나 사람을 죽는다. 그러니 죽음을 인정하라 따위의 말은 더이상 이 지구 상 위의 많은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311일의 일본을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416일을 기억해야 하고, 그 유가족들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죽지만 그 죽음이 예상하지 못했던 죽음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할 수 있었던 불상사에 대해서 국민이 권력을 이양해 가며 많은 돈과 힘을 싣어준 국가라는, 추상적 존재에 대한 역할을 다시 한 번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 사랑 안에서의 탄생과 죽음은 인권 진보의 산물이 아니라, 선사 시대에는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삶의 운영 원리 중 하나이며, 그것을 최근에 들어서야 이룩해낸 성과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빌어, 선택한 죽음이 아닌 '뒤집어 씌어진 죽음'을 맞이한 모든 이에 대한 애도와 함께, 그런 와중에도 가족의 일원이 된 우리 조카를 비롯한 모든 새로운 존재들에 대한 환영과 함께, 각자가 살고 있는 정부에 대해서 과연 요구하는 것들이 무리한 것들인지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 생각을 알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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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4. 15:39 내 생각




2014년 정리. 2014.12.24. 


# 1
세월호가 가라 앉았고, 유병언이 떠올랐다. 한 명 한 명, 기억해야 하는 사람은 수 백 명인데, 단 한 명의 이름이 뉴스에 등장했다. 종교가 등장했다. 거대악이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이단을 싫어했고, 자기 가족이 죽지 않은 사람은 탓할 사람이 필요했다. 정부를 욕하자니 카톡을 뒤질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에 떨었다. 유병언은 죽어 가라 앉았지만 세월호의 기억도 같이 가라 앉았다. 유병언을 떠올린 사람은 알고 있었으리라. 세월호를 가라 앉힐 수 있음을.

# 2
군대에서 폭행을 당해 몇 명의 청년들이 죽었다. 병영혁신위원회인가 이름도 외우기 힘든 뭔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군 가산점제를 부활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낸다. 문제가 군대 내부의 문제에서 남녀 문제로 비화된다. 남녀가 싸우기 시작한다. 군대의 폭력 문제는 잊혀진다. 남녀 문제는 활활 불타오르지만 군대 내 가혹행위나 폭행문제는 서서히 식어간다. 식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얼어간다. 군대를 갔다 온 뒤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군대에서 '살아서 나와야' 함에도, 그 '살아서 나오는' 것은 무시받기 시작했다. 나도 갔다 왔고 너도 갔다 올 것이니 너는 그냥 견디고, 가산점 줄테니 여자랑 싸우란다.

# 3
청와대에서 작성한 문건이라고 말했다. 공식문서라 인정했다. 근데 찌라시란다. 찌라시란다. 전단지도 아니고. 찌라시란다. 청와대는 공식문서를 말할 때 찌라시라 하는 가 보다. 국립국어원은 청와대에 뭐라고 항의라도 했을까. '국어를 올바르게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나쁜 사람들의 손에 휘둘리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럴리 없다. 누가 작성했든 그것을 작성한 사람은 공무원이지만 그것을 유출한 죄가 더욱 크다. 사실이든 아니든 관계 없이 작성한 사람은 공무원이지만 그것이 유출한 것이 더욱 크다. 유출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몇 장의 문서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일지 모른다. 그러니 유출한 죄가 더욱 크다. 국민의 신뢰를 유출해 어디론가 빼돌렸는데 이건 누가 찾아주나.

# 4
창업을 하란다. 으쌰으쌰. 창업을 하란다. '창업넷'이 '스타트업'으로 이름을 바꾼단다. 영어로 적으면 더 멋져보이는가 보다. 창업에 몇 조를 푼다, 몇 천억을 푼다고 이야기해도 창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 돈은 멀리 있다. 실패하면 내 탓이고, 성공하면 정부 덕이니 일단 실패든 성공이든 뭐든 해보란다. 대기업은 사내 유보금을 늘리면서 투자할 데를 찾지만 땅만 보이지 사람은 안보인다. 아, 내가 인문계열 전공자라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나 보다. 아닌 것 같은데. 스티브 잡스 아저씨. 아저씨는 왜 빵집은 열지 않았나요. 아이 브레드. ibread.

# 5
민주적 기본 질서는, 독재를 막기 위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87년도에 다시 헌 법을 적을 때 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말은 더 이상 이 반도 위에서 독재를 위한 정당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독재는 그만하고 민주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적으로 해결해 나갔다. 대통령을 뽑았고, 총선을 했고, 헌재 재판관을 추천했다. 민주적이다. 아주 민주적이다. 당의 강령이 민주적 기본 질서를 훼손한다면 그 당은 해산되어야 한다. 그 당이 독재를 준비할 당이면 말이다. 민주적이라는 표현에 대한 민주적 합의가 필요할 시기이다. 독재하려 했으면 해산되어야 했는데, 독재도 뽑혀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 6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글과 사진들이 길다랗게 올라오기 시작하는 연말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린다. 외과는 더이상 필요 없는 시대다. 내과나 정신과만 필요한 시대다. 내상을 입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서로의 내상을 확인하며 '힐링'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라는 옛 드라마 '다모'의 대사를 서로 울부짓으며 힐링한다. 난 별로 행복하지 않다. 난 정말 아프다.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너도 아프구나' 라고 말한다. 아프다는 말을 들려주면 낫는다고 티비에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떠든다. 행복하란다.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살란다. 남은 어찌 됐든 자신만을 위해서 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럼 너무 무정한 사람처럼 보이니 겉으로는 남을 위하면서 속으로는 오직 나만을 위해서 살란다. 나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여러분, 정말 행복한 한 해였습니까?'

# 7 
주옥. 내일도 주옥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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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7. 17:30 카테고리 없음

유병언 단상 2014.7.27.


(간만의 정치글, 적고 보니 정치글도 아니구먼) 
전 세모그룹 회장이었던 (故) 유병언의 시신이 발견되어 온 한국이 떠들썩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결론으로는 유병언 전 회장의 시신이 확실하다고 하니 의학 분야나 해부학에 관련해서는 지식이 없는 나는 믿을 수 밖에. 
유병언 전 회장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다투어 볼 일이라 생각했으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 법률도 책임도 사실관계 확인도 어렵게 된 이상 유병언 전 회장이 세월호 참사의 (마치) 주범으로 언론에 회자되는 시점부터 생각한 점을 한 번 적어볼까 한다. 

1. 구원파는 조직폭력배 조직인가?
신문이나 방송에서 '구원파'라는 명칭으로 '복음침례회' 소속의 신도들을 마치 '조직폭력배'와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현세에 구원을 받는 것을 골자로 한다기에 '구원파'라고 부른다는데, 언론에서 의도적으로 '조폭'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하는데 그 의도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과연 세월호 참사 이전에 '구원파' 신도였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소개할 때 '구원파'라고 소개했을까 아니면 '교회에 다닌다'고 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10만명 이상의 신도를 데리고 있다고 하는 복음침례회 소속의 신도들은 구원파라는, 유병언 개인 종교의 신도였을까, 아니면 누가 만들었든 내세(來世)에 대한 확신을 갖기 보다 현세(現世)에의 구원을 추구했던 '교회'의 신도들이었을까. 본인 주변에 복음침례회 소속의 신도가 없으므로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아마도 그들은 자신을 교회 신자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 내 주변에 통일교 신자는 몇몇 있는데, 그들은 자신이 교회를 다닌다고 말하고 어느 교회에 다니냐고 끈질기게 물어야 통일교라는 사실을 밝히곤 했다.) 4월 16일 이전이든 이후이든 말이다. 교주라기 보다 '성경 해석에 대한 자율성을 확보하였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같지 않은 구원파는 세월호 사건이 있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병언 전 회장은 '해석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다했을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한국 교회에서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마치 자신이 예수의 재림체인양 행동하고 있음에도 그러한 문제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그 목적이 무엇이 되었든 관계없이 결국, '구원파'만이 세간에서 조폭으로 낙인찍히고 있는 사실은 썩 편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2. '세모'와 '삼성' 
세모그룹의 전 회장이었던 유병언은 정관계의 로비에도 꽤나 공을 들인 듯 하지만 아직 그 실상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혹은 밝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 옳은 상황일지 모르나 나는 정부나 검찰 내부 구성원이 아니므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세모그룹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삼성그룹'이 떠오른다. 삼성은 고 이병철 회장이 삼성상회를 세운 뒤 사카린 밀수와 원단 수입 등으로 크게 성장한 회사를 이건희 회장이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는 회사이다. 한국에서 삼성의 지위는 국회와 청와대에 버금가는 지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의 오해일지 모르겠으나, '떡값' 사건이나 '삼성 장학생' 등 사회 각계각층에 로비를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라는 도그마의 주인공으로서 충실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1번에서 구원파를 언급했던 것처럼, 삼성을 하나의 '종교'라 본다면 '삼성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삼성 내부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중국에서는 '중국공산당'에 입당하기만 하면 그 사람의 삶에는 큰 문제 없이 말년까지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중국공산당 당원은 약 8천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도 채 차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중국 각지의 젊은 층들은 자신이 공산당이 되기 위한 노력을 불철주야하고 있고, 주변 친지 중 누군가가 공산당 당원이 되면 잔치를 벌이고 자랑할 정도로 높은 지위가 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중국 공산당만큼은 아니지만 '삼성' 그룹의 계열사 중 한 곳에 들어가면 '축하'를 해준다. 단지 취업에 성공했기에 받는 축하의 정도를 넘어 '삼성'에 들어갔기에 받는 축하라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이미 삼성그룹은 '삼성파'라고 불러도 될 만큼의 종교적 지위를 갖고 있음에도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사고에 휘말린 적이 없었기에 아직 건재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화 된 '또 하나의 약속'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삼성그룹 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망사건들은 단지 '개인의 잘못'과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치부되어 삼성그룹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극소화되고 있다. 태안 기름 유출 당시에도 삼성물산 소속의 '삼성 1호' 크레인 부선과 부딪힌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그 수많은 기름을 닦을 당시에도 아무도 삼성을 탓하지 않은 것은 무슨 탓일까? 삼성 1호의 와이어가 끊어진 탓에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의 선체에 구멍이 났고 그 결과가 태안 주민들 및 우리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심리적 상처와 경제적 손해를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나 그 책임은 누구에게 갔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3. 유병언과 이건희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두 달이 지났다. 심근경색 이후 입원이 이뤄지기 이전까지 이건희 회장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서 접했고, 그가 '골든타임 4분' 안에 병원에 당도한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다. 그리고 이어 삼성주식에 얼마나 많은 타격을 입힐 것인지에 대한 분석이 줄을 이었고 많은 국민들은 '삼성'이 겪을 위기에 대해서 걱정했다. 
유병언 전 회장은 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로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검찰에서 정해' 도피를 하던 중 사망한 것으로 지금의 상황에서 잠정적 결론이 났다. 지금까지의 검찰과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최초의 발견 및 신고가 이루어진 뒤 1개월도 더 된 시점인 지금에 와서야 유병언의 시신이라고 발표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유병언 전 회장이 그 이전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금수원 압수수색 뿐만 아니라 전국적 현상금 사냥이 이뤄졌음에도 발견되지 않았던 점도 이상하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약 1개월 뒤까지 '유병언'이라는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갑자기 마치 '악의 조종자'인 마냥 유병언을 언론과 비난의 주범으로 삼았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두 사람 모두 규모를 가진 그룹의 회장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아직까지는) 회장이다. 유병언이 청해진 해운의 주식 중 몇 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삼성 이건희 회장의 경우에는 지주회사인 제일모직(구 에버랜드)의 주식 중 경영권 방어를 위해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회장'이라 불리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되었든 회장으로서의 지위를 꽤 오랜 세월 유지해왔다. 한 명은 백골화된 시체로 발견되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아마도 지금 한국에서 가장 좋고 좋아 너무 좋은 최고급 병실에서 열심히 건강회복을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다른 현실과 말년을 맞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만, 세모 그룹을 삼성 그룹만큼 더욱 성장시키기 못했다는 것에 있어 유병언 전 회장은 꽤나 억울할 듯 하다. 

4. 종교와 사업
유병언 전 회장의 가장 큰 잘못은 결국 그가 '종교'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개신교'를 활용했다는 것이 그가 나름대로 성공할 수 있었고 또 그로 인해 실패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양날의 칼이다. 종교 지도자도 아니며, 사업체의 사장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에서 자신의 성공만을 추구하다 보니 결국 사업도 종교도 실패로 끝나게 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역시 '선택과 집중'이 영원한 진리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번 유병언 사건(아, 세월호 참사와는 별도로 유병언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사고와 관련해서는 유병언 사건이라 불러야 맞을 듯 하다. 그 이유는 한 개인과 관련된 사태의 범위가 넓고 크다. 또 세월호 참사와 분리시키는 것이 양 사안에 대한 독립성과 책임 소재를 더욱 확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의 교훈으로 삼성은 앞으로 절대 종교와 관련된 이해관계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미 사실상 종교의 지위에 오른 탓도 있겠지만, 종교를 활용하게 되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너무나도 쉽게 벗어나 버리게 때문에 '통제'를 중시하는 삼성은 결코 종교를 선택하는 따위의 '아마추어' 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병언의 패착은 결국 '종교'라 할 수 밖에 없다. 

5. 나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적고 있는지 모르겠다. 
간단히 적으면 이렇다.(여기까지 읽어준 사람에게 감사를..ㅜㅜ) 
- 구원파는 조폭이 아니다. 
- 유병언은 이건희가 아니다. 
- 유병언은 이건희가 되지 못했다. 
- 구원파보다 삼성파가 더 무서운 종교일지도 모른다. 
- (중요!!) 유병언을 잡고 그의 아들을 잡고 그와 관련된 어떤 누구를 잡아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원인 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원인 규명은 제대로 하지 않고, 또 구조 및 사후 대책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하지 않은채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진 미친 사람들이 일으킨 (주호영 의원의 말에 따르면) 교통사고와 같은 것이라고 인식시키고 있는 정부와 언론이 문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할지 섣불리 대답하기 어렵다. 

6.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10명과 가족의 손을 다시는 잡아보지 못할 사망자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살아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욱 눈을 부릅떠야 할 일이다. 

7.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누구나가 '세월호' 안에 있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나는 살아있으니 괜찮다.'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다가 단 한번 겪을 수 있는 비극이 일어난 이후가, 지금과 같이 이렇다면 나는, 억울해서 죽어도 죽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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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16. 16:47 카테고리 없음

스킨스쿠바


IMF가 오기 직전까지 우리집은 '스킨스쿠바' 용품점을 했다. 
아버지께서는 국제 자격증을 가진 민간잠수사이시면서 스킨스쿠바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셨다. 

당시 나도 아버지를 따라 새벽이나 주말에 바다에 나가 잠수를 즐기곤 했다. 
내 이름이 적힌 전용 수트도 있었으니 당시에는 꽤 열심히 했었다. 

IMF의 타격으로, 레저의 한 종류로 인식되던 스킨스쿠버를 많은 사람들이
그만두게 되면서 우리 가게도 업종을 바꾸어야만 했다. 

나 역시도 더 이상은 스킨스쿠버를 배울 수 없었다. 

그때는 제대로 자격증을 따지 못한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아쉽다. 

여름 방학이 되면 다시 스킨스쿠바를 배워야겠다. 

다시 스킨스쿠바를 배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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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13. 01:35 카테고리 없음

수원에서 일어난 오원춘 사건 때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다. 
진도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건 때 해경은 출동하지 않았다. 

자력구제(self-help)가 필요한 시기가 이미 왔다고 본다. 

경찰을 믿지 못하니 민간 보안업체들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마 해양경찰을 대신하는 해양보호 민간업체들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또 다른 의미의 자력구제. 

상조회사가 성업을 이루고 있다. 
월 몇만원의 돈을 보험처럼 내면 자신의 가족이 생을 달리하였을 때 자신이 담당해야 할 것은 '슬픔' 뿐이다. 나머지 일들은 상조회사가 다 해준다. 가족들이 담당할 슬픔또한 '가족처럼' 담당해준다고들 광고한다. 장례식장에서 음식을 나르는 사람은 아들의 친구가 아니라, 아들의 친구처럼 보이는 상조회사 직원이다. 

결혼정보업체가 '성혼율'을 자랑하고 '점유율'을 자랑한다. 
결혼할 상대도 스스로 찾지 못한다. 누군가 만나도록 해준 인연에 의해서 결혼할 상대를 '고르게' 되고 '조건'이 맞으면 그것을 '사랑'이라 포장해준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사랑마저 자신이 더욱 나은 '결혼'을 하기 위해서 많은 돈을 내고 인위적인 만남을 해야만 '성공한 결혼'을 할 수 있다. 

보험회사가 성업을 이루고 있다. 
의료보험 체계가 최상인 한국에서, 의료보험비를 제공해주는 기업이나 정부기관에 들어가지 않는 자영업층, 실업자층, 노인층은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민간보험에 의탁할 수 밖에 없다. 아프지 않기 위해 건강을 관리하도록 하는 보건복지부는 보험가입을 종용하고 외국 보험의 진입을 수월하게 하고 의료체계조차 대기업에 맡기려 한다. 

강남에서 '학교폭력 해결사'라는 것이 있었다. 
공익근무요원이라고 밝혀진 몇몇의 남자들이 학교폭력을 당한 아이들의 부모의 의뢰를 받아 가해자를 폭행하고 협박하는데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의 돈을 받았다고 한다. 학교는 학생을 지키지 못했고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지키고자 했다. 그래서 다시 '민간'으로 '폭력'의 권한이 돌아갔다. 

정규교육과정은 '지나치는 곳'이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모든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으며 자신들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 대학을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학원, 인강, 과외'이지 '학교수업에 충실하기'가 아니다. 

대학에 들어오니 '스펙'이 중요해진다. 
토익 점수가 중요해지고, 외부활동이 중요해진다. 비싼 토익학원 접수비와 시험비는 내가 감당해야 하는 미래의 담보이다. 대학교 교내에서 필요한 것은 학점뿐이다.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 '해피캠퍼스' 등 레포트를 파는 곳은 역시 성업을 이루고 취업 컨설팅을 위해 수백만원을 지불하는 학생들이 있다. 학점을 낮게 받으니 부모가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왜 우리 아이에게 학점을 이렇게 밖에 주지 못하냐?'고 따진다. 

한국은 성형의 천국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예뻐야 한다. 남들과는 다른 외모를 가져야 '내'가 산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이다. 그마저도 같은 얼굴을 갖게 된 '강남언니'들은 자신이 더욱 예쁘다며 자랑한다. 혹은 명품으로 스스로를 '다르다'고 인식한다. 성형을 하면서 생각한다. '나는 예뻐야 한다. 나라도 살아야 한다." 

자력구제. 

다른 사람은 모르겠다. 나는 살아야겠다. 남들이야 죽든 말든 나는 성형을 해서 예뻐져야 겠고 높은 토익 점수와 좋은 스펙을 만들기 위해 정의롭지 못한 것도 해야 겠다.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은 자는 곳이고 친구들을 만나는 곳이지 공부하는 곳은 아니다. 누군가 나를 괴롭히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신고를 해서 부모가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아프면 보험금을 받고 마음이 외롭고 아프면 결혼정보업체가 해결해준다. 이러다가 내가 죽으면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내 몸을 수습해줄 것이다. 괜찮다. '나는 편히 살았고 죽었고 살아남았다.' 

안타깝다. 원시 사회의 특징인 '자력구제'가 다양한 형태로 현대 사회에 침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

p.s 조심스레 예견해보건대 향후 몇 년안에 '개인 총기 소유'에 대한 문제가 한국사회를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으니 나 스스로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남을 죽일 수 있는 수단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조심스레 예견해본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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