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의500자 _6 2014.12.09.
장갑을 낀 들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럴거면 장갑을 왜 만들었나 싶다. 털신발처럼 장갑 안에 털을 덧대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아무리 이런 생각을 해 본 들 설겆이거리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 "나를 씻어줘. 나라고 이러고 있는게 좋을리 없잖아."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물을 틀어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 그릇을 물에 잠시 담궈둔다. 이렇게 하면 설겆이가 더 잘 된다. 하지만 이때가 문제다. 설겆이를 하기 위해 물에 담궈 두는 것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이것까지만 물에 담궈놓자라고 생각하며 모든 그릇이나 냄비를 다 쓰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설겆이가 시작된다. 설겆이거리들도 나름대로 나를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버리지만 말아달라는 간절한 바람때문일까. 설겆이를 하다보면 생각할 시간이 많다. 내가 먹은 것들이다. 내가 꺼내어 썼던 것들이다. 내가 이룬 것만큼 내가 더럽히거나 내가 일으켰던 불필요한 일들은 반드시 내가 다시 되돌려놓거나 고쳐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따금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