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의500자 _9
'머리를 자르기 위해 머리를 기른다'. 머리가 길었기에 머리를 자른다와는 사뭇 느낌이 다른 말이다. 나는 머리가 잘려나가는 소리를 좋아한다. 긴 머리일 때는 스걱스걱, 짧은 머리일 때는 사각사각. 가위와 머리가 만나 내는 소리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하지만 바로 귀 옆에서 진행되는 소리이니 큰 노력은 필요하지 않다. 머리가 잘려나가면서 나는 새로운 스타일의 머리를 갖게 된다. 내가 원했던 모양과 미용사가 생각하는 모양이 다른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완벽한 모양은 나오지 않으니 모험의 영역으로 남겨둘 수 밖에 없다. 때론 '언어'란 이토록 부족한 성질의 것인지 생각해볼 시간도 있지만 언제나 그 가위의 스걱사각 소리에 정신이 아찔해지곤 한다. 머리를 자르기 위해 머리를 기르다보면 순서가 헷갈리기도 한다. 순서가 헷갈리는 때가 오직 머리 자르는 것 뿐이겠는가. 오히려 순서에 집착하다보니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못하고 살 때가 많아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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